
이미지는 프로토타이핑 AI인 스티치 AI(Stitch AI)로 단 1분 만에 생성한 결과물이다. “넷플릭스 모바일 앱에 플레이리스트 생성 기능을 추가해달라”는 한 줄짜리 프롬프트를 입력하고 조금만 기다리면, 이렇게 메인 화면을 시작으로 플레이리스트 생성 버튼과 입력 창, 결과 화면까지 포함한 시안이 뚝딱 만들어진다.
저충실도(low-fidelity) 프로토타입도 겨우 만들어내던 2년 전과는 달리, 이제 AI 디자인 도구는 몇 가지 키워드만으로도 고충실도(high-fidelity) 결과물을 빠르게 만든다. 이토록 프로토타이핑이 쉬워진 지금 같은 시대에는 ‘사용자 경험’을 고민하는 일명 UXer*의 역할이 더 많은 화면 시안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UXer: 주로 UX 디자이너를 일컫는 용어로 쓰이지만, 이 글에서는 제품 개발/설계/UX 개선에 관여하는 IT 직군(기획자, 디자이너, 엔지니어, 리서처 등) 모두를 지칭했다.
이들에게 더 중요한 일은 이 디자인이 왜 필요한지, 사용자가 이 화면을 마주했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는 일이다. 결국 인간 심리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제품 설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인간 심리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디자이너는 물리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축가보다 성공할 수 없다.”
A designer who doesn’t understand human psychologies is going to be no more successful than an architect who doesn’t understand physics
조 리치(Joe Leech), “디자이너를 위한 심리학(Psychology for designers)” 중에서
UX 심리학은 사용자 경험과 인지 심리학이 합쳐진 용어다. 다만, 우리가 알아야 할 ‘UX 심리학’은 엄밀하게 심리학의 한 영역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행동경제학, 인지 심리학, HCI(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등에서 사용자의 인지와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다뤄지는 주요 개념을 UX 설계 관점에서 실용적으로 풀어낸 모든 이론을 폭넓게 포괄한다. 각 용어의 뜻을 더 자세히 짚어보겠다.
먼저, 사용자 경험(UX, User eXperience)은 모바일 앱이나 웹사이트처럼 디지털 환경에서의 경험뿐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경험 전반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빨대에 있는 주름을 한 번 떠올려보자. 주름이 생기기 전에는 빨대로 음료를 마시려면 고개를 앞으로 숙여야 했다. 하지만 주름이 생기며 빨대는 유연하게 구부러졌고, 사용자는 훨씬 편한 자세로 음료를 마실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주름 디자인 역시 사용자 경험을 개선한 UX 설계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인지 심리학(Cognitive Psychology)은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다루는 분야다. 교육, 법학, 헬스케어, 건축 등 다양한 영역에서 쓰이며, 이를테면 더 쉽게 새로운 내용을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거나(교육), 범죄 의도나 법적 행동을 이해하는 데(법학) 적용된다.
UX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이 영역은 단순히 예쁜 화면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용자가 서비스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흐름으로 조작하며, 결과적으로 어떤 경험을 얻는지 고려하고 설계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심리학은 본질을 탐구하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최근 흑백요리사 시즌 2가 넷플릭스에 공개됐는데, 매번 가장 궁금한 결과를 앞두고 에피소드가 끝나버린다. 처음에 ‘하나만 봐야지’라는 마음으로 재생한 우리는 결국 ‘다음 화 자동 재생’을 멈추지 못한 채 밤을 새운다.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마지막 참가자의 결과 발표 직전이면 꼭 광고가 등장한다. 시청자 입장에서야 답답하고 애가 타지만 기다리는 것 말고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이는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의 대표적인 사례다. 자이가르닉 효과는 완료된 일보다 미완성된 일을 더 오래 기억하는 경향을 설명하며, 미완성 효과라고도 불린다. 이를 UX 설계에 적용하면 사용자가 특정 작업(결과 보기)를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찝찝함을 자극해 다음 행동(지속 시청)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은 디지털 서비스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진다. 캔디 크러쉬나 피쉬돔 같은 게임을 하다 보면 생명, 즉 게임 가능 횟수를 모두 소진했을 때 하트를 구매하라는 메시지가 등장한다. 조금만 더 하면 스테이지를 깰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끼는 사용자에게 ‘결제’라는 행동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콘텐츠 플랫폼에서도 이 전략은 자주 쓰인다. 한창 재미있어지는 지점에서 글이나 영상이 끊기면, 더 많은 내용을 볼 수 있는 구독이나 결제 버튼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네이버 웹툰의 쿠키나 롱블랙의 구독 서비스가 대표적인 예다.
애플 워치의 활동 링 디자인 역시 자이가르닉 효과를 잘 활용한 사례다. 애플 워치는 하루에 채워야 할 일정량을 채우지 못하면 꾸준히 알림을 보내며 사용자가 ‘미완성’ 상태임을 인식하게 만든다. 이를 불편하게 느낀 사용자는 워치가 제안하는 행동인 걷기나 일어서기로 링을 완성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활동 링 디자인에는 사용자의 행동을 유도하는 또 다른 심리 효과 3가지가 숨어있다.
부여된 진행 효과

우리는 완전히 0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이미 일부를 완료한 상태에서 다음 행동을 훨씬 쉽게 이어간다. 애플 워치를 차고 있으면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가볍게 움직이기만 해도 활동 링이 채워지기 시작한다. 이를 본 순간부터 사용자는 나머지 활동량을 채울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진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 바로 ‘부여된 진행 효과’다. 온라인 강의를 수강할 때, 사전 설문조사에만 참여해도 진도율이 일부 올라가는 것 역시 이 효과를 적용한 디자인 사례다.
목표 가속화 효과

활동 링을 조금씩 채우다 보면 사용자는 점점 목표에 가까워진다. 그럴수록 더 속도를 내서 끝내고 싶어진다. 이렇게 목표에 근접할수록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동기가 더 커지는 현상을 ‘목표 가속화 효과’라고 한다. 애플워치는 목표 달성이 가까워지면 ‘움직이기 링을 거의 완성했어요. 조금만 더, 12분 동안 빠르게 걸어주세요.’와 같은 메시지를 보내며 효과를 더 극대화한다.
목표 시각화 효과

지금까지 얼마나 진도가 나갔는지, 그리고 목표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눈에 보이게 표현하는 것 역시 강력한 동기부여 요소다. 만약 활동 링이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목표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아무리 말해도 사용자에게는 와닿지 않는다. 이처럼 목표와 진행 과정을 시각화했을 때, 목표를 끝까지 추구하려는 동기가 더 커지는 현상을 ‘목표 시각화 효과’라고 한다.
반면 UX 심리학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을 때는, 사용자의 행동을 유도하기는커녕 오히려 이탈을 부르는 불쾌한 경험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부메랑 효과
외국어 학습 서비스인 듀오링고의 마스코트이자 앱 아이콘은 연두색 부엉이 캐릭터다. 한 번은 이 부엉이 캐릭터가 마치 괴상하게 녹아내리는 듯한 모습으로 바뀐 적이 있었다.

이는 앱을 다운로드만 해두고 잘 사용하지 않는 사용자의 시선을 끌어 다시 접속하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심리적 장치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SNS를 중심으로 불쾌감을 표현하는 반응이 많았고, 나 역시 징그러운 부엉이가 자꾸 푸시 알림을 보내는 것이 불편해 결국 앱을 삭제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반대의 결과로 이어지는 현상을 ‘부메랑 효과(Boomerang effect)’라고 한다.
다크 패턴
그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사용자를 속여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디자인도 있다. 이를 다크 패턴(Dark Pattern)이라고 한다. 갑자기 카드 결제가 이뤄져 확인해 보니 원하지 않았던 구독 서비스가 연장된 상황이나, 이를 해지하려 해도 환불을 받을 수 없거나 심지어 추가 수수료까지 요구받았던 경험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다크 패턴의 모습이다.
물론 이 방식은 단기적으로 수익을 올리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브랜드와 서비스 전체에 대한 인식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피크엔드 법칙과 부정 편향
이러한 일의 위험성은 피크엔드 법칙(Peak-End Rule)으로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이 법칙에 따르면 사용자는 전체 경험을 평균적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대신 가장 강렬했던 순간(피크)과 경험이 끝나는 시점(엔드)을 중심으로 그 경험을 평가한다.
서비스 해지 과정에서 겪는 부정적인 감정은 기억에 강하게 남고, 결국 서비스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형성한다. 여기에 더해 긍정적인 경험보다 부정적인 경험을 더 강하게 기억하는 경향인 부정 편향(Negativity Bias)까지 작용하면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충성도는 빠르게 하락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자이가르닉 효과, 부메랑 효과 등 몇 가지 이론을 예시로 소개했다. 각 이론을 서비스 설계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정보는 온라인상에 파편화되어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케이스 스터디를 하듯이, 직접 이론과 사례를 연결해 탐구하는 방식으로 학습해보길 추천하고 싶다.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요즘IT에 올렸던 사용자 심리 분석 케이스 스터디 글을 몇 가지 소개한다.
주제별 이론과 사례를 살펴보다 보면 특히 흥미롭거나 공감되는 지점이 생길 수 있다. 그 지점에서 출발해 추가 사례를 찾아보거나, 해당 이론과 연결되는 또 다른 원리를 조사하는 방식으로 사용자 심리에 대한 이해를 넓혀나갈 수 있을 것이다. 특정 이론을 기반으로 기존 서비스의 리디자인 전략을 구상해 보는 것도 좋은 케이스 스터디가 된다.
이론을 검색할 때는 영어 원문으로 구글링하는 편이 더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를 얻는 데 도움이 되고, 검색 결과로 나오는 다양한 해외 아티클을 참고해 보는 것도 좋다. 이처럼 하나의 이론에서 출발해 직접 탐구하고 적용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심리학 이론은 단순한 지식을 넘어 서비스 설계에 활용할 수 있는 사고의 틀이자 실용적인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피그마 메이크(Figma Make), 구글 AI 스튜디오(Google AI Studio), 스티치 AI처럼 UI 시안을 생성해 주는 AI 도구는 많다. 잠깐 프롬프트를 입력할 시간만 있으면, 순식간에 수십 개의 화면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결과물만 놓고 보면, 마치 AI가 모든 일을 대신해 주는 것만 같다.
하지만 실제 AI와의 협업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다르다.

먼저 어떤 결과를 원하는지 인간이 정확한 명령어를 입력해야 하고, AI가 만들어낸 수많은 출력물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지, 또 어떻게 다듬을지를 의사결정하는 과정 역시 인간의 몫이다. 이 지점에서 여러 가지 인지 심리학 이론은 논리적인 근거로 작동하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언제나 무엇이 더 설득력 있는 문구인지, 어떤 흐름이 더 사용자의 이해를 높이는지, 또 어떤 요소가 시각적으로 더 잘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한 판단은 사용자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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