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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출입문 닫습니다. 출입문 닫습니다. The door is closing.”
출퇴근길, 지하철역에 빽빽하게 몰려드는 사람들보다 나를 더 조급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지하철 안내방송이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쏟아져 내리기 무섭게 출입문을 닫겠다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아직 사람들이 내리고 있는데도 곧 열차가 출발하니 한 발짝 물러서 달라고 이야기한다. 지하철 안으로 한 발 내딛기도 전에 문을 닫고 가버릴까 봐 나도 모르게 앞사람에게 좀 더 가까이 밀착하게 된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재촉하는 지하철 방송 같은 패닉 유발 타이머는 디지털 세계에도 존재한다.
‘기간 한정 파격 특가 - 00:15:56 이 시간이 끝나면 쿠폰이 사라집니다’
빠르게 줄어드는 타이머 숫자를 보고 있으면, 필요한 물건도 없는데 당장 적당한 물건을 찾아 구매해야 할 것만 같은 충동에 휩싸인다. 저녁 메뉴 고민을 덜기 위해 잠시 들어간 배달 음식 앱에서도 할인 가능 시간 타이머가 똑딱거린다. 언제 시작됐는지도 모르는 타이머다. 전혀 생각지 않았지만, 15분 뒤에 할인이 끝난다는 이유로 곱창 주문을 고민하게 된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그저 곧 끝나니 기회를 잡으라며 재촉하는 경우도 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곧 68% 파격 할인이 종료된다고 하면 잠깐 구경이라도 해볼까 싶다. 또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슈퍼위크’라는 할인 기간이 끝나면 비싸지는 옷들이라 하니 이 타이밍에 하나 건져야 알뜰한 소비를 할 수 있을 듯하다. 패닉 유발 타이머는 왠지 모르게 미루던 지출을 당장 행해야만 합리적인 행동이라 느끼게 만든다. 이어 계획에 없던 충동구매를 하도록 이끈다.
이러한 패닉 유도 타이머와 붙어 다니며 사용자를 정신없이 불안하게 만들고 과소비의 길로 끌어들이는 구매 유도 4종 세트가 있다. 최근 유행하는 쇼핑 앱, 테무(Temu)를 살펴보며 사용자가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마구 결제하도록 만든 메시지로는 무엇이 있는지 샅샅이 파헤쳐보자.
테무(Temu)는 요즘 들어 국내 앱스토어 인기 차트 상위권에 항상 이름을 올리는 쇼핑 앱이다. 이 서비스는 어떤 방법으로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끌어올리고 있을까?
앱에 들어가자마자 화려한 조명 효과와 함께 쿠폰의 유혹이 펼쳐진다.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그저 앱을 받았을 뿐인데, ‘당신을 위한 특별한 상품’이라며 무려 13만 원 쿠폰을 준다. 이 13만 원에 놀랄 틈도 없이 26만 원 쿠폰 묶음이 포함된 스핀을 돌리라고 한다. 잭팟이 터졌다. 상품 5개만 구매하고 받으라며 나온 26만 원 쿠폰 다음 화면에서는 ‘남은 시간’ 타이머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1,000분의 1초인 밀리초 단위까지 보여주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마지막 직격타가 날아온다. 26만 원 쿠폰을 10분 안에 사용하면 39만 원 쿠폰으로 바꿔 준다고 한다. 앱에 들어온 지 5분도 안 되었는데, 당장 10분 안에 39만 원 어치 물건을 사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렇게 테무의 구매 유도라는 굴레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내게 주어진 10분 안에 39만 원 어치 물건으로 장바구니를 채워보자. 메인 화면에서 어떤 물건이 있는지 둘러보려고 하니 주황색 글씨가 눈에 띈다.
“품절 임박”, “1개만 남음”
줄무늬 양말의 재고가 딱 1개 남았다고 한다. 양말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품질이 어떤지, 가격이 적당한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재고가 1개만 남을 만큼 인기 좋은 물건이라면 그만큼 괜찮다는 거 아닐까? 무엇보다 얼른 장바구니에 담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딱 하나 남은 이 물건을 채갈지도 모른다.
만약 이런 생각을 했다면 재고 부족 메시지 덫에 걸려든 것이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자. 전시된 거의 모든 상품이 품절 임박 상태다. 1, 2개만 남은 물건도 여럿 보인다. 테무의 상품 소싱 스킬이 아주 좋아 물건이 다 잘 팔리는 건지, 정말 누군가 남은 하나를 구매하면 메인 페이지에서 품절 상태로 바뀌는 지, 이는 확신할 수 없다. 문제는 다급한 마음이다. ‘몇 개 남지 않았다’는 문구를 보면 고민할 틈도 없이 빠르게 장바구니에 넣고 결제를 해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재고 부족 메시지에 쫓겨 1개만 남았다는 양말 페이지로 들어갔다. 역시나 ‘하나만 남음’이라는 문구와 함께 쉴 새 없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모래시계 애니메이션이 보인다. 그 아래 눈에 띄는 주황색 글씨가 하나 더 있다.
‘서두르세요! 품절 임박 및 14명의 장바구니에 담겨있습니다!’
남은 재고는 하나뿐인데 무려 14명의 장바구니에 담겨 있다니! 한 명이라도 먼저 결제를 누르는 순간, 이 양말과의 인연은 끝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열댓 명의 경쟁자가 머릿속에 그려지며 마음이 한층 더 조급해졌다.
이처럼 다른 사용자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며, 구매를 합리화하도록 돕는 문구를 ‘활동 메시지’라고 한다. 최근 432명이 이 상품에 별 5개를 주었다는 메시지, 최근 24시간 동안 144개가 판매되었다는 메시지, 999명 이상의 장바구니에 담겨있으니 서두르라는 메시지 등. 이들 모두 내가 양말을 필요로 한 적이 없으며, 이 쇼핑 앱에 그걸 사려고 들어온 게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하도록 만든다. 처음 계획이 무엇이든 일단 빠르게 움직여 모두가 사는 이 상품을 무사히 쟁취하는 것만이 목표가 되어 버린다.
다른 사람들의 활동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신경전을 하는 이 순간에도 39만 원 쿠폰을 사용할 수 있는 10분의 시간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이 없다. 어떤 옵션을 선택할 건지 결정하기 위해 상세 페이지를 읽으며 스크롤을 내렸다. 아래로 쭉 내려가 보니 구매하려고 했던 양말과 비슷한 권장 상품 목록이 나온다.
권장 상품들에는 공통적으로 패닉 유발 타이머가 달려 있다. ‘번개 특가’, ‘특별 세일’이라는 문구와 함께 곧 터질 듯이 줄어드는 시간이 보인다. 안 그래도 쿠폰 타이머에 불이 붙어 이미 마음이 타들어 가고 있는데 또 하나의 폭탄이 던져졌다. 이러다 양말만 수십 세트 주문하게 될지도 모른다.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양말 여러 켤레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하지만 쿠폰을 사용하려면 여전히 채워야 하는 금액이 많이 남아있다. 양말 페이지에서 벗어나 이것저것 누르다 보니 어느새 기간 한정 혜택 페이지에 들어왔다. 어떤 상품은 모든 주문이 무료 배송인 독점 행사 중이다. 또 어떤 상품은 번개 특가로 제공된다. 이 모든 이벤트는 한정된 기간 진행된다고 하는데 정확히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곧 할인이 끝나는 행사 상품이니 다른 것보다 여기 물건들을 먼저 둘러보고 장바구니에 넣어야 한다는 정보만 알 수 있다.
구매 유도 4종 세트의 굴레에 빠져 정신없이 물건을 담다 보면 금세 수십만 원 어치 장바구니를 채울 수 있다. 이처럼 사용자를 빠르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강력한 힘은 사실 그들 내면 심리에 숨어 있다.
재고가 부족한 상품을 보며 당장 구매하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는 두려움을 느낀다. 다른 사용자의 행동이나 쿠폰 사용 시간 타이머를 보며 지금 빠르게 움직여야 나중에 후회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것, 그렇게 결제까지 해버리는 것, 이 모두 후회 회피 편향(regret aversion bias) 때문이다.
후회는 정서적 고통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사람은 논리적인 결정이 아니라 순간적인 감정에 따라 의사결정을 해버린다. 때로는 후회를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 자체를 꺼리기도 한다. 이러한 편향적 사고를 후회 회피 편향이라고 한다. 주식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미래에 후회할까 봐 어떤 결정도 하지 못하는 상황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편견은 다른 사람들의 선택을 따라 하려는 행동 패턴으로 이어진다. 베스트셀러와 같이 이미 많은 이가 선택한 옵션을 따라 구매하면 책임을 피할 수 있고, 곧 후회할 가능성이 낮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이들의 구매 내역을 알 수 있는 재고 부족 배지나 활동 메시지는 더욱 효과적으로 지출을 유도할 수 있다. 패닉 유발 타이머나 기간 한정 메시지도 마찬가지다. 사용자는 이 시간이 끝나면 가격이 올라 후회할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를 피하기 위한 감정적 지출을 한다. 그 어떤 후회도 하지 않을 만한 안전한 선택을 하려는 마음이 결국 충동구매라는 오류를 범하게 만드는 것이다.
후회를 피하려다 가장 후회할 과소비를 하는 아이러니, 이는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다.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인지 부조화 상태에서는 불편한 마음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자신이 덫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는 힘들다. 후회를 하기 싫다는 마음과 후회스러운 행동을 했다는 사실 사이 발생한 간극을 좁히기 위해 뇌가 합리화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예정에 없던 양말 구매를 했지만 어쩌다 이런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반성하기보다 소비를 정당화한다. 어차피 양말은 계속 신어야 하니 이참에 낡은 양말을 버리고 새로 채우면 되겠다 생각하는 것이다.
정리해 보자. 소비자는 후회 회피 편향으로 인해 구매 유도 메시지에 흔들리다 후회할 만한 충동구매를 한다. 곧 이렇게 다다른 인지부조화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구매를 합리화한다. 이렇게 ‘과소비 심리 메커니즘’이 완성된다.
과소비 심리 메커니즘 때문에 우리는 구매 유도 메시지에 속수무책으로 걸려들고도 쉽사리 행동을 바꾸지 못한다. 이를 아는 서비스들은 우리의 심리적 허점을 이용하여 지출을 유도하기 위한 구매 유도 메시지를 남용한다. 실제로 동일한 상품임에도 구매 유도 메시지 4종 세트가 붙은 경우, 소비자에게 선택될 확률이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러나 이는 사용자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비합리적인 소비를 하도록 만드는, 엄연한 다크패턴 디자인이다.
테무 말고도 굉장히 많은 서비스가 이러한 다크패턴 메시지를 사용한다. 이런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 쇼핑 앱이 거의 없을 정도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서비스가 비슷한 방법으로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물론 그만큼 클릭과 구매 유도에 효과적이라는 뜻이기에, 이는 쇼핑 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다크패턴 디자인이다.
그러나 구매할 마음이 없는 사용자를 꼬드겨 충동구매를 일으키는 문구와 구매를 마음먹고 들어온 사용자의 선택을 쉽게 만들어 주는 문구는 사실 한 끗 차이다. ‘재고가 부족하다’, ‘쿠폰이 만료된다’처럼 사용자의 연약한 부분을 찔러 과소비나 충동구매를 유도하는 재촉 메시지 대신 좀 더 세련되게 상품을 어필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글에서 소개한 4가지 유형 외에도 사용자의 구매를 불러일으키는 메시지는 많다. 이를 살펴보며 현명한 소비를 유도하는 문구와 디자인에 대해 고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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