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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사업의 성공, 대기업 IT계열사 참여가 해법일까?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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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사업의 성공, 대기업 IT계열사 참여가 해법일까? ①
반복되는 행정망 오류로 대기업이 공공 SW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2013년부터 상호출자제한기업*이 공공 SW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전면 제한하고 있는데, 일부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죠.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 집단’을 ‘공시대상기업집단’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이원화해 분류하고 있다. 두 집단 모두를 통상적으로 ‘대기업’이라고 부르는데, 이중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은 원칙적으로 공공 SW사업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논의는 2022년 보건복지부 시스템 문제로 인한 노령 연금 지급, 2023년 초 교육행정정보시스템 4세대 나이스의 작동 오류로 인해 열린 간담회에서부터 등장했습니다.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행정안전부, 일부 SI업체 관계자들이 공공 SI 사업의 정상화 방안을 찾고자 모인 간담회에서 사업비 1000억 원 규모에는 상호출자제한 기업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제기됐죠. 여기에 2023년 11월에 일어난 행정망 마비 사태까지 더해지면서, 지난 11월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대기업 참여 제한을 700억으로 낮추는 방안까지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대기업 SI업체가 공공SW 사업에 참여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불행히도 그렇게 간단히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SI 사업 파행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단순히 SI 업체의 사업 관리 능력뿐만이 아닙니다.
위와 같은 요소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아래와 같은 요인도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진 결과죠.
이 글에서는 SI 산업계가 왜 이런 자승자박의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2회에 걸쳐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첫 회에서는 재벌 IT 계열사가 국내 SI 시장을 장악하는 과정과 그로 인해 생태계가 왜곡된 과정을 다루려고 합니다. 2회에서는 행정망 마비 등의 이슈를 틈타 다시 재벌 IT 계열사의 공공 SW 시장 참여 완화 카드가 등장하는 가운데, 그와 같은 접근이 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지를 밝히려고 합니다. 먼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대기업’에 대한 단어의 정의부터 해보겠습니다.
매출 8000억 원 이하 대기업은 40억 이상의 공공 SW 사업에 참여할 수 있고, 매출 8000억 원 이상 대기업은 80억 이상의 공공 SW 사업에 참여할 수가 있어요. 또 중소기업에서 성장해서 대기업이 된 경우에는 일정기간 동안 ‘중견기업’이라고 혜택을 받는데, 이때는 20억 원 이상의 공공SW 사업에 참여할 수가 있지요.
물론 공공 SW 사업에 참여할 수 없는 대기업도 있는데요, 바로 ‘재벌’이라고 하는 상호출자 기업 집단에 속하는 대기업 IT 계열사입니다. 이들은 공공 SW 사업에 원칙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현재 많은 재벌 그룹의 IT 계열사가 있지만 그룹 외 사업, 특히 공공 SW 사업에 주로 참여해 왔던 재벌 IT 계열사라고 하면 통상 LG CNS, SDS, SK를 얘기하곤 하죠.
이런 법이 발효된 게 10년 전인데, 그렇다고 상호출자 기업 집단 즉 재벌 그룹에 소속된 IT 계열사가 모든 공공 SW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법이 만들어질 당시에도 많은 우려가 있어서 철도, 국방 등 국가 안보와 관련이 있거나 신기술 등 기술력이 필요한 공공 SW 사업에는 소위 재벌 IT기업의 참여가 가능하고, 추가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정부나 공공기관들이 참여 제한을 풀 수도 있어요.
이렇게 정부나 공공기관의 공공 SW 사업에 상호출자 기업 집단에 속하는 재벌 IT 계열사가 수주해서 시스템을 구축한 사례는 너무나 많고, 그 사업들 중에도 지연되거나 장애가 발생한 경우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죠.
그래서 요즘 논의되고 있는 대기업의 공공 SW 사업 참여 제한 문제는 엄밀히 말하자면 재벌 IT 계열사 중 3개 회사의 공공 SW 사업 참여 제한 문제라고 봐야 하는 것입니다.
좀 오래된 얘기인데, 2000년 초부터 우리 사회는 경제민주화가 중요한 화두 중 하나였고 그중 핵심적인 내용이 재벌의 지배 구조를 개선하는 문제였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소위 재벌이라고 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지배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결국은 많은 반발로 대부분의 법안이 폐기되기도 했어요. 그러나 경제민주화 문제는 계속 사회적 논의의 중심에 있었고, 박근혜 정부 초기에는 정부 여당에서 재벌 그룹에 대한 여러 가지 규제 법안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중 하나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그러니까 재벌그룹 IT 계열사의 공공 SW 사업 참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우려 때문에 재벌그룹 IT 계열사가 공공 SW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 두게 된 것이지요.
그렇지만 공공 SW 사업에서 재벌그룹 IT계열사의 참여를 제한하게 된 것은 단순히 재벌 그룹의 지배구조 개선만을 위한 조치는 아니었습니다. 공공 SW 사업에서 중소 전문업체의 참여 비율이 높은데도, 매출은 재벌 그룹 IT 계열사로 집중되고 있는 문제가 오랫동안 심각하게 폐해로 지적된 것도 중요한 이유였죠.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공공이든 민간이든 대부분의 SI 사업은 몇몇 외국계 IT 회사들이 독과점하고 있었습니다. 재벌 그룹의 IT계열사들은 주로 그룹 계열사들의 IT 사업에서 수익을 내는 회사에 불과했죠. 그때의 SI 사업의 구조는 매우 단순했지만, 대부분의 국내 IT 회사들은 그 정도의 사업조차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사업방법론이나 역량이 전혀 갖추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룹 계열사의 IT 사업을 맡아서 한다고 해도 고객이 된 그룹 계열사의 불만도 많았고, 한편으로는 그룹 계열사에서만 이익을 내지 말고 자생할 방법을 찾으라는 그룹의 압박을 받고 있기도 했죠. 당시 S사와 L사 같은 재벌 그룹 IT 계열사는 몇 년간의 유예기간 후에는 그룹 외 사업에서 이익을 내서 스스로 생존하라는 미션을 받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재벌 그룹 IT 계열사의 의사결정권자들은 그룹에서 이익을 보장해 주는 기간 내에 어떻게든 대외 사업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에 처했고 이를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기 시작합니다. 재벌 IT 계열사들은 적자를 보든 말든, 저가 수주가 되었든, 그룹 내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대외 SI 사업을 수주하고 국내 SI 시장을 장악해가기 시작했죠. 반면에 외국계 IT 기업들은 가격 경쟁에서 밀려 점차 국내 SI 시장에서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외국계 기업이 독과점하던 SI 시장을 국내 기업이 장악해버렸으니 국가적으로 좋은 일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재벌 IT 계열사들이 그렇게 사업을 수주한 후에 하도급 업체로 사업에 참여한 중소 전문 업체에게 희생을 강요한 경우가 많았다는 겁니다.
재벌 IT 계열사들이 SI 시장을 장악하기 전에 국내 SI 사업을 독과점했던 외국계 IT 회사들은 자체적인 사업방법론을 기반으로 사업비를 계산해서 고객과 협상하고, 사업을 수주한 후에는 적당한 이익을 챙기며 하도급 업체인 중소 전문 업체에게 어느 정도의 이익은 보전해주었죠. 심지어 외국계 IT 회사들은 당시 과학기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전신)가 제안한 용역 단가가 너무 낮았기 때문에 별도의 용역 단가표를 제시하고 사업을 계약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에 중소 전문 업체들은 외국계 IT 기업의 하도급 업체였지만 회사를 유지할 정도의 수익은 보장받을 수 있었죠. 그래서 2000년대 중반까지도 업무 전문성을 확보하면서 경험과 역량이 있는 직원들을 보유하고 성장한 중소 전문 업체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러나 재벌 IT 계열사들이 정부가 제안한 용역 단가보다도 낮은 사업비로 저가 수주를 하고 SI 시장을 장악하게 되면서, 중소 전문 업체는 재벌 IT 계열사로부터 지속적으로 사업비 인하를 요구받게 되었고 중소 전문 업체의 재무구조는 갈수록 열악해질 수밖에 없었죠.
재벌 IT 계열사는 중소 전문 업체가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게 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룹 계열사의 IT 사업을 그들이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재벌 IT 계열사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으면 그룹 계열사의 IT 사업에 중소 전문 업체를 참여시키지 않겠다고 한다거나, 반대로 대외 SI 사업에서 발생한 손실을 그룹 계열사의 IT 사업을 통해서 보전해 준다고 한다거나, 어떤 방식이든 많은 중소 전문 업체들은 재벌 IT 계열사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죠.
그나마 어떤 식으로든 재벌 IT 계열사가 중소 전문업체의 손실을 보전해 주고, 중소 전문업체들이 지속적으로 전문 역량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아마 지금과 같이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룹 내 계열사라고 해도 각 회사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 사업을 영위하고, 더군다나 각 회사에는 나름의 절차와 의사결정권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절차와 규정을 무시하고 자신들과 상관없는 사업에서 발생한 중소 전문 업체들의 손실을 메워 주는 것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리고 저가 수주가 만연한 상황에서 재벌 IT 계열사들이 또 다른 대외 SI 사업에서 중소 전문 업체들의 손실을 보전해 줄 방법을 찾기는 더욱 불가능에 가까웠을 겁니다.
그룹에서 지원하고 대외 사업의 적자를 묵인해 주는 시기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재벌 IT 계열사들도 이제는 외부 사업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 나름대로 정립한 사업 방법론에 근거해서 사업비를 계산하고 손익을 계산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이미 SI 시장에는 재벌 IT 계열사들이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적정한 사업비를 보장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죠.재벌 IT 계열사들이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 정부 제안 용역 단가보다도 낮은 사업비로 수주 경쟁을 하다 보니 과거 외국계 IT 회사들이 발주처에게 요구했던 공정하고 정당한 사업비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정착되어 버렸던 것이죠.
과거에 공공기관의 사업비 산정을 위해서 기능점수(Function Point)*를 산정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산출한 기능점수로 산정한 사업비는 약 126억 원 정도였지만 발주처는 예산이 100억 원밖에 책정되지 않으니 기능점수를 100억 원 이내로 조정해달라고 다시 요청했습니다. 예산이 부족하면 과업을 줄이는 것이 상식적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과업은 그대로 둔 채 억지로 예산 산정 근거를 조정하는 하는 것이 국내 IT 시장의 현실이죠. 이런 요청을 받은 게 불과 수년 전이니 아직도 부족한 사업비로 발주를 내는 발주처의 관행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 봐야겠죠.
*기능점수: 소프트웨어가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기능의 수를 수치로 정량화해 소프트웨어 규모를 산정하는 방식
재벌 IT계열사가 SI 시장을 장악하기는 했지만 스스로 무덤을 판 꼴이 되었고, 승자의 저주가 시작된 것입니다.
결국 재벌 IT 계열사가 그룹 외 SI 사업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사업을 실제 수행하는 중소 전문 업체에게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죠.
이런 열악한 SI 시장의 상황 때문에 많은 중소 전문 업체들은 경험 있는 직원들을 보유하면서 사업을 준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업을 실제로 수행할 인력을 보유하는 건 엄두도 못 내고 과거의 실적을 서류로만 쌓아 놓은 채로 사업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죠. 재벌 IT 계열사들이 사업을 수주하고 중소 전문 업체가 사업의 하도급 업체로 계약을 하고 나면, 중소 전문 업체는 바로 사업에 투입해 일할 수 있는 IT 인력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업무 전문성이나 사업 수행 능력은 점점 약화될 수밖에 없었죠.
2013년에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공공 SW 사업 참여를 제한하는 법안이 발효되고 난 후에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하도급 업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족쇄가 풀렸다’는 기사까지 나기도 했는데요, 상황이 나빴던 만큼 중소 전문 업체들이 그렇게까지 해방감을 느낄 정도의 상황이었다는 걸 알 수 있죠.
중소 전문 업체들은 재벌 IT 계열사들의 공공 SW 사업 참여를 완화하려는 최근의 이 같은 논의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는 SI 시장을 현재와 같은 열악한 상황으로 만든 발단이 되었던 재벌 IT 계열사들이 붕괴 직전에 있는 SI 산업 생태계를 아예 회복 불능의 상태로 만들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물론, 그동안 많은 시간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SI 산업 생태계를 현재와 같이 붕괴시킨 모든 책임이 재벌 IT 계열사에게만 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지난 20년 가까이 SI 산업 생태계가 붕괴되는 상황은 외면한 채 발주처와 재벌 IT 계열사, 대기업 SI 업체, 그리고 중소 전문 업체가 각각 그때그때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하다 보니 현재 상황이 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죠.
다만 우체국 차세대 금융시스템 구축 사업이나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구축사업, 차세대지방정보시스템 1단계 사업과 같이 시스템 가동 후에 문제가 있거나 사업 수행에 차질이 있었던 재벌 IT 계열사의 최근 수행 사업들만 봐도, 재벌 IT 계열사가 더 뛰어난 사업 관리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재벌 IT계열사의 참여 제한 완화가 현재 상황의 해법이 될 수는 없겠죠.
재벌 IT계열사의 공공SW 사업 참여를 제한했는데도 불구하고 SI 산업의 생태계는 왜 여전히 열악하기만 한 걸까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여전히 공공 SW 사업에서 정당하고 공정한 사업비를 보상받을 수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부족한 사업비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수주하겠다고 경쟁하는 SI 업체들이 있으니 국민 세금으로 사업을 발주하는 정부나 공공기관의 실무자들이 정당하고 공정한 사업비를 지급하겠다고 먼저 나설 이유는 없었겠죠.
또 다른 이유는 사실상 사업 방법론이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SI 업체들이 성공적인 사업 수행을 전제로 사업을 기획하지 않고, 오직 사업을 수주한 후에 책정된 사업비에 맞춰서 사업을 수행하기 때문이죠.
90년대 후반부터 전 세계적으로 아웃소싱이 대세가 되면서 외국계 IT 회사들은 각자 사업 방법론을 개발하고 정립하고 있었는데요. 대표적으로 IBM과 유니시스는 공동으로 컨설팅 업체에 의뢰해 아웃소싱 방법론을 정립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정립된 사업 관리 방법론은 두 회사의 사업 전개 방식이나 경영 정책에 맞게 수정되고 사업에 적용되었는데, 국내에 지사를 두고 있던 두 회사는 국내 사업에도 이 사업 방법론을 철저히 적용했죠.
그러나 재벌 IT 계열사들이 외국계 IT 회사로부터 국내 SI 시장을 빼앗아 올 때부터 적정한 사업비는 무시되었고, 사업 수행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능력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업 수행을 위한 준비나 사업비 산정 방법은 현실적이지 못했으며, 매우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죠.
재벌 IT 계열사들이 국내 SI 시장을 장악한 후에 외국계 IT회사 인력들이 재벌 IT 계열사로 이직했고, 그들의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국내 IT 회사들도 사업 방법론을 정립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미 적정한 사업비를 보상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사업 수행 계획을 수립하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또 대부분의 사업은 손실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재벌 IT 계열사는 중소 전문 업체에 최대한 손실을 부담시키고 자신은 손실을 보더라도 그룹 계열사로부터 벌어들이는 이익으로 회사를 유지할 수 있었죠.
이런 환경에서 사업을 수주하고 수행했던 인력들이, 재벌 IT 계열사의 공공 SW 사업 참여 제한이 발효되고 난 후에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던 일반 대기업 SI업체에 대거 이직하게 되었고, 그들은 재벌 IT 계열사에 일하던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했죠. 그러다 보니 국내 SI 업계에서 사업방법론은 형식에 그치고 실질적으로 사업 수행에 도움이 되지 못했죠.
어떻게 보면 이때가 재벌 IT 계열사들이 국내 SI 시장을 장악하면서 시작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점이었을 수도 있었는데요. 국내 SI 업계는 그 시기를 무의미하게 보냈고 결국 SI 시장에는 바뀐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물론 재벌 IT 계열사들이 공공 SW 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초기에는 중소 전문 업체들의 위상이 한없이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일반 대기업 SI 업체는 재벌 IT 계열사와는 다르게 중소 전문 업체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일반 대기업 SI 업체가 공공 SW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서는 고객이 신뢰하는 중소 전문업체을 찾아다니며 협력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상호출자기업의 공공 SW 사업 참여가 제한된 뒤 처음에는 SI 시장의 주도권이 중소 전문 업체에게 있었고, 공공 SW 사업에서 중소 전문 업체의 참여율이 높아졌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죠.
발주처의 담당자들은 공공 SW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대기업 SI 업체들은 어느 업체나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경험 많고 역량 있는 중소 전문 업체들이 어떤 SI 업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사업의 수주 여부가 결정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일반 대기업 SI 업체들이 공공 SW 사업의 주도권을 빼앗아오게 됐는데요. 여기에는조달청 입찰의 평가 방식이 크게 한몫을 했습니다.
조달청 입찰의 평가 방식은 정량적 평가와 정성적 평가로 나눠서 점수를 주는 방식입니다. 정량적 점수는 신용평가 등급이나 사업 실적과 같은 객관적인 자료를 기준으로 고정된 점수를 주는 것이고 정성적 평가는 제안서나 제안 발표를 통해서 사업 수행 능력을 평가하고 점수를 주는 것입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사업을 잘 수행하는지 평가하려면 사업 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정성적 평가가 사업 수주에 결정적인 요소가 되어야 하는데, 사실 정성적 평가 점수는 대부분의 경우 아주 근소한 차이밖에 나지 않습니다. 정보의 사전 유출이나 공정성 시비를 막기 위해서 정성적 평가를 하는 평가 위원들이 평가를 앞두고 불과 몇 시간 전에야 제안서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각 SI 업체가 제안하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고 정확하게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그러다 보니 사업 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정성적 평가에서는 큰 차이가 생기기 어려워졌습니다.
반면에 아무리 업무 전문성을 갖춘 중소 전문 업체라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대기업 SI 업체에 비해 신용평가 등급이나 재무구조, 사업 실적과 같은 정량적인 평가에서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래서 조달청 입찰의 평가에서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기는 쉽지 않죠. 발주처가 사업자 선정을 조달청에 의뢰하지 않고 자체 평가를 한다 해도, 대부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결국은 대기업 SI 업체가 공공 SW 사업에서 주사업자 혹은 대표 사업자로 선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이 되었든 평가의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또 발주처 입장에서는 혹시라도 사업이 잘못되었을 경우를 대비해 사업자의 규모나 재무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어서, 이런 평가 방식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얘기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렇다 보니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준비는 뒷전으로 밀리고, 제안 평가를 잘 받을 수 있는 온갖 방법만 난무하고 있는 게 현실이죠.
이렇게 공공 SW 사업의 수주전은 대기업 SI 업체의 수주 경쟁이 되었고, 어느 대기업 SI 업체가 수주하든 대기업 SI 업체는 최소한의 수익을 남기기 위해서 또다시 중소 전문 업체에게 사업비 인하를 요구하는 상황이 반복되게 된 것이죠.
수년 전에 수주 경쟁에서 유리했던 어떤 대기업 SI 업체는 사업 준비 단계에서부터 무조건 사업비를 절반으로 줄이라는 요청을 한 적도 있었는데요. 이렇게 사업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사업을 파행으로 몰고 가는 사례는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지경입니다. 이런 사업 기획은 최근 아파트 건설에서 문제가 되었던 무량판 건축물에서 철근을 빼는 일과 똑같은 일이라고도 할 수 있죠.
이렇게 몇몇 재벌 IT 계열사가 공공 SW 사업을 포함해서 국내 SI 시장을 장악할 때부터 시작해서 재벌 IT계열사가 공공 SW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지금까지도 거의 20년 가까이 중소 전문 업체는 갈수록 더 악화되는 열악한 환경에서 사업을 수행해야만 했습니다.
지금까지 재벌 IT 계열사가 국내 SI 시장을 장악하는 과정과 그로 인해 생태계가 왜곡된 과정을 다뤘습니다. 이어 2회인 <대기업이 참여하면 공공 SI 성공할까?>에서는 행정망 마비 등의 이슈를 틈타 다시 재벌 IT 계열사의 공공SW 시장 참여 완화 카드가 등장하는 가운데, 그와 같은 접근이 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지를 밝히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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