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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는 글을 써야 하는 동기와 마음가짐, 태도를 주로 말했는데 이것만으로는 글을 쓰는 데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구체적으로 내가 어떻게 글을 쓰는지 풀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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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는 글을 써야 하는 동기와 마음가짐, 태도를 주로 말했는데 이것만으로는 글을 쓰는 데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구체적으로 내가 어떻게 글을 쓰는지 풀어보려 한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말을 늘어놓기보다는 쓰인 글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글쓰기 과정을 말하는 것이 이해하기 좋을 것 같아 ‘글쓰기가 어려운 당신에게(7년째 쓰는 개발자로부터)’를 어떻게 썼는지 설명하겠다.
글을 시작하기 앞서 이건 지극히 나만의 방법이라는 것을 밝힌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특질과 그리고 살아온 배경,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맞을 수도 있고 잘 맞지 않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다만 내 글이 여러분들이 자신만의 글쓰기 방법을 찾는 데 참고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맞춤법이나 정리는 신경 쓰지 않고 의식의 흐름에 따라 생각나는 것을 두서없이 쓴다. 다른 사람들이 읽기 위한 것이 아닌 내가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 쓴다. 생각을 구분하기 위해 가운뎃점과 들여 쓰기 한다. 처음부터 정리하지 않는 까닭은 정제된 글을 쓰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도 하거니와 글쓰기 초반에는 글 흐름에 따라 지우고 다시 쓰는 일이 흔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대강 쓰는 단계에서는 다른 사람이 보는 글이 아니라 글 전체를 구성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나만 알아볼 수 있으면 된다. 언제 어디서나 보고 수정할 수 있는 인터넷 클라우드(Cloud)에 올리고 시간 간격을 두고 내가 쓴 것을 자주 본다. 자주 보다 보면 생각이 생각을 부르듯 점점 글들이 쌓여간다.
만화 <피너츠(Peanuts)>의 작가로 유명한 찰스 슐츠는 “완성된 작품이 노트의 습작과 같지는 않더라도 낙서에서 수많은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것을 발견했다”라고 말했다. 나는 역시 처음부터 글을 잘 쓰려고 하지 않는다. 낙서하듯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대충 아이디어를 적고 또 적어 모은다.
더 이상 적을 것이 생각이 나지 않으면 가운뎃점과 들여 쓰기한 내용을 소제목으로 묶어 구조화한다. 그러고 나서 소제목만으로 주제를 잘 표현할 수 있는지를 보고 어울리지 않으면 소제목을 다시 쓴다.
어떻게 하면 소제목으로 잘 분류할 수 있을까?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의 문제 해결 방식으로 널리 알려진MECE(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를 참고할 만하다. MECE는 ‘ME’ 상호 간에 중복되지 않고 ‘CE’ 전체로서 누락이 없게 분류한다는 뜻이다. <요즘IT>에 ‘MECE'로 논리적인 의견 전달하기’ 글은 MECE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항상 ‘MECE’를 생각하라 문제의 해결을 위해 생각을 구조화하려면 혼란과 중복을 피하면서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 <맥킨지는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 24 쪽
그다음으로 소제목들을 추상화 수준으로 맞춘다. LOA(Level Of Abstraction)라고 부르는 것으로 나는 이것을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배웠다. 예를 들어 두 개의 소제목이 비슷한 내용이라면 하나로 묶고 소제목의 하위의 문단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각 소제목이 제목을 잘 표현하는지도 보지만 글 제목이 각 소제목을 잘 표현하는지도 함께 본다. 그래서 경험상 소제목을 지으면서 글 제목이 바뀌는 경우가 많아 글 제목 역시 대강 짓는 편이다.
소제목이 MECE하고 LOA하다면 본격적으로 그 소제목에 해당하는 내용을 쓰기 시작한다. 가운뎃점과 들여 쓰기로 대강 쓰인 문장을 다른 사람이 읽는다는 생각으로 다시 쓴다.
나는 옆에 누군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에게 말하듯 쓴다. 그리고 문장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소리 내어 읽어본다. 소리 내어 읽다보면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글에 따라 다르겠지만 단순 뇌피셜만으로 글을 쓴다면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 내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면 글을 좀 더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되도록 근거를 찾아 인용한다. 단순 인용보다는 나만의 해석이 있다면 더욱 좋다.
소제목 내용 쓰기 순서를 단순화하면 아래와 같다.
1. 옆에 누군가에게 얘기하듯 쓴다.
1-1. 근거 기반으로 쓴다.
2. 소리 내어 읽어 본다.
3. 문장과 문단이 소제목과 잘 어울리는지 확인하다.
4. 문장, 문단, 소제목을 고친다.
나는 글을 한 번에 쓰지 않고 매일 조금씩 글을 쓰고, 읽고, 고치는 것을 반복하는데, 이는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개발자로 일하며 배운 것이다. 개발을 하며 아무리 설계를 잘 하더라도 처음부터 좋은 코드를 만들기 어려웠다. 코드는 경험이 쌓여가면서 개선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좋은 코드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동작하는 코드를 만들고 점진적으로 고쳐나아가는 것(리팩토링이라고 부른다)을 좋아한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처음부터 좋은 글을 쓸 생각을 일단 버리고 쓰고 계속 고치는 것을 반복함으로써 점진적으로 글을 완성시켜 나간다.
몇 년 전 회의에서 어느 참석자가 일상에서 쓰는 쉬운 말조차 영어로 쓰는 것이 불편한 적이 있다. 영어를 쓰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가 영어를 섞어 쓰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이다. 하지만 나는 쉽게 말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영어를 섞어 쓰는 것은 듣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 말을 듣는 사람의 다수가 영어나 어려운 단어를 모르는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듣는 이를 배려하지 않는 말은 아무리 좋은 뜻을 담더라도 잘 전달되지 않는다. 일례로 "거버먼트 인게이지먼트가 바로 레귤레이션이다" 같은 말이 그렇다.
입말과 글말이 다르지 않다. 나는 어려운 말,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말을 쓰는 것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되도록 더 알기 쉬운 우리 말로, 더 정다운 우리글로 쓰려고 한다. ‘결과적 일관성인가? 최종적 일관성인가?’는 내가 낱말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쓴 글이며 함께 일하는 동료의 글 ‘Aggregate를 애그리게잇 대신 조립물로 쓴 사연’에서는 다른 나라말을 우리말로 옮기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다른 나라말을 그대로 쓰지 않고 우리말로 고민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에 가까워져 자연스러운 학습과 깊은 이해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내가 글을 막 쓰기 시작했을 때 ‘되어’, ‘되다’라는 수동적 표현을 많이 썼다. 이런 표현이 우리말스럽지 않다는 동료의 의견을 듣고 의식적으로 고치기 시작했는데 책 <이오덕 우리글 바로쓰기>는 우리글답게 고치는 예문들이 가득하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 충격을 받은, 마음을 찔렀던
지속되고 있으며 → 이어지고, 이어오고
그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 뜻이 들어
빈곤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더해가고
실현시키는 → 실현하는
남성의 지배를 고착화시키는 → 굳어지게 하는
했었다 → 했다, 한 바 있다
눈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은 → 쓰는
을지로에 위치한 조그만 사무실을 → 있는, 자리 잡은
지금까지 말한 글다듬기는 당장 해보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 '테크니컬 라이팅 깔끔하게 완성하는 10가지 원칙’은 바로 해볼 수 있는 좋은 원칙을 소개하고 있어 참고할만하다.
글쓰기 다듬기의 기본은 맞춤법이다. 나는 주로 아래 두 곳을 쓴다.
나는 ‘당신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에서 성장의 핵심은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고 말했으며 ‘글쓰기가 어려운 당신에게(7년째 쓰는 개발자로부터)’에서도 역시 의도적으로 피드백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혼자서 글을 쓸 때에는 자기 인식이 낮아서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자기 인식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피드백이 필요하다. 나는 글다듬기가 끝나면 리뷰를 부탁한다.
글에 따라 리뷰를 부탁하는 시기도 다른데, 주제에 대한 확신이 없거나 함께 글을 기획할 때에는 글을 전부 쓰지 않고 간단하게 주제와 서론, 본론, 결론을 적어 의견을 요청한다. 글쓰기가 익숙지 않거나, 주제가 생소하거나 어렵다면 리뷰를 작게 자주 부탁하는 것이 좋다. 작게, 자주 요청하는 까닭은 내용이 너무 많으면 리뷰어가 집중하여 읽기 어렵고 피드백 받은 의견을 글에 반영하는 것 역시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글의 방향성이라도 바뀐다면 많은 부분을 다시 써야 한다.
다음으로 고민은 ‘누구에게 어떻게 부탁할 것인가’ 일 것이다. 먼저 내가 보기에 글을 잘 쓰는 주변 사람이 있다면 좋은 후보가 될 수 있으며, 주제와 관련된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하여 게시물을 올려 보는 것도 좋은 시도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면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글을 잘 쓰는 사람에게 친구 신청을 하고 글 리뷰를 부탁해 보는 것도 좋다. 물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내가 삶을 통해 깨달을 것이 있다면 변화의 시작은 ‘인지’이지만 진정한 변화는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자신을 노출하지 않으면 아무도 도움을 줄 수 없다. 자신을 감추는 꽁꽁 싸맨 것을 푸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인 것이다.
나는 한자리에 앉아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는다. 골똘히 오래 생각한다 해서 잘 써지지 않았고 억지로 쓰더라도 다음 날 모두 지운 경험이 많다. 그래서 나는 30분 제한을 두고 그 안에 시작하지 못하면 그날은 쓰지 않는다. 30분 안에 어느 정도 쓰면 최대 1시간을 제약을 두고 쓴다. 이것이 익스트림 프로그래밍(Extreme Programming)에서 말하는, 나만의 활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다.
여러분이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정도의 시간만, 그리고 일의 활력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시간만 일해라. (중략) 소프트웨어 개발은 통찰력 싸움이다. 그리고 통찰력은 준비되고, 잘 쉬고, 긴장이 풀린 마음에서 생겨난다. - <익스트림 프로그래밍> 78~79쪽
<닐 타이슨의 스타토크 - 트위터의 공동 창립자 비즈 스톤 인터뷰> 영상에서는 트위터의 최대 140자 제약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핵심은 제약으로부터 창의력이 피어난다는 것이다.
뇌과학에서는 뇌의 신경계를 구성하는 세포인 뉴런이 우발적인 결합이 창발성을 만든다고 한다*. 나는 뉴런의 우발적인 결합을 만들어내기 위해 한자리에서 오래 쓰지 않고 주로 운동을 하거나 아이들과 놀거나 전혀 다른 분야의 책을 보며 다양한 자극을 만든다.
* <눈 떠보니 선진국> 44쪽
무언가를 잘하고 싶을 때 스스로 충분히 해보지 않고 처음부터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말하는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를 찾는 것이다. 베스트 프랙티스를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 유효하지 않는 까닭은 각자가 처한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까지 말한 글쓰기 법은 참고가 될 수 있겠지만 당신 것이 될 수는 없다.
자신만의 글쓰기 방법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 선언문을 쓰는 데 참여 했으며, 컨설팅 회사 소트웍스(ThoughtWorks)의 수장인 마틴 파울러의 말을 들어보자.
제가 정확하게 TDD(혹은 어떤 기술)를 받아 들이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시험해 보고, 남용한 다음에, 여러분에게 잘 들어맞는 방식에 안착하세요.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세요.
(중략)
여러분은 TDD를 시도할 필요가 있으며, 사용해야 하며, 남용도 해보고, 여러분과 여러분의 팀에 잘 동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공식으로 뒤덮인 과학 안에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스스로의 경험 기반으로 함께 일을 해야만 합니다. -[한글화 프로젝트] TDD는 죽었는가?
이 말을 응용해 보면, 먼저 글을 많이 쓰고(“시험해 보고, 남용한 다음에”) 다른 사람들의 방법을 참고하여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여러분에게 잘 들어맞는 방식에 안착하세요”) 나 역시 스스로의 경험을 기반으로 글을 써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요즘 IT> 글 ‘변동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엔지니어의 자세’에서도 말하듯 숏컷은 없다.
백: 드라마 <대행사>에 그런 장면이 있어요. 주인공이 저연차 시절에 화장실에서 시니어 선배한테 “어떻게 하면 카피 잘쓰나요?”라고 물어봐요. 그랬더니 그 선배가 뭐라고 하냐면 “신입한테 ‘숏컷’이 어디있니? 질리도록 써. 그것밖에 없어!”라고 했어요. 요즘 많은 분들이 어떤 수단을 통해서 빠르게 성장하기를 바라요. 그게 되면 다들 했겠죠. 그게 정상적인 방법은 아닌 것 같아요.
(중략)
또한 성장에는 고통이 따를 수 있습니다. 성장이란 지금의 나보다 더 커지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좌절하기도 하고 한계를 느끼기도 하니까요. 백명석 님이 인용한 것처럼 ‘숏컷’은 성장을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꾸준히 해나가야 할 뿐이죠. 그런 건강한 성장을 지속해나가려면, 꾸준하게 성장통을 견뎌나갈 수 있는 마음의 준비와 정서적 안전장치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충분히 해보고 나만의 방법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나는 7년 동안 글을 쓰며 나름대로 방법을 찾았지만, 그럼에도 계속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계속 글을 쓰는 방법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작곡가이다. 작곡가의 기본 명제는 '좋은 곡을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 "작곡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계속 곡을 쓰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 히사이시 조, <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싶다>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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