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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을 넘어 비즈니스로] #2. 백명석 케이타운포유 CTO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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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변동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엔지니어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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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을 넘어 비즈니스로] #2. 백명석 케이타운포유 CTO 인터뷰

 

코드는 현실 세계를 반영해야 합니다. 비즈니스의 요구 사항과 사람은 컴퓨터의 작동 방식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현실 세계는 컴퓨터의 작동 방식과는 무관하게 바뀌는 공간이죠. 우리 프로그래머가 현실의 문제를 외면한다면 컴퓨터는 사람의 사고와 행동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것이고, 고객은 떠나갈 것입니다. 고객이 떠난 자리에는 프로그래머가 설 자리도 없습니다.

 

그래서 비즈니스를 코드로 구현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다양한 프로그래머의 고민, 문제 해결, 성장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앞으로 인터뷰나 에세이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해 코딩과 비즈니스의 관계를 톺아보려 합니다. 시리즈 두 번째로, 백명석 케이타운포유(이하 케타포) CTO를 만났습니다.

 

백명석 CTO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후 1996년 LG-CNS에서 개발자로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두 번의 스타트업을 거친 후 Daum과 Kakao에서 10년간 개발자로 일했고, 이후 SKPlanet/11번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6월부터는 글로벌 K팝 팬덤 커뮤니티 기반 쇼핑몰 ‘케이타운포유’에 개발본부장으로 합류하여 구성원들과 함께 커머스, 물류 플랫폼을 개선, 고도화하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엔지니어로 정주행하는 사람

제가 백명석 CTO를 인터뷰하기로 했던 건, 대형 포털, 대기업 계열 이커머스와 스타트업에서 기술 리더로서의 경험을 모두 하신 데서 비롯된 인사이트를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두 가지의 상이한 경험에서 배울 점이 있을 거라 기대했죠.

 

그런데 인터뷰를 진행하고 나서는 그 이상의 배움이 있었습니다. 특히 백명석 님이 왜 오랜 기간 엔지니어로서 자기 역할을 꾸준히 잘 해나갈 수 있는지 그 비결을 알게 된 듯합니다. 인터뷰 내내 자기 객관화가 잘 된 생각을 공유해주셨고, 자기 분야를 둘러싼 사회 변화와 동료들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잘 못하는지 아는 일은 성과를 내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만, 더불어 직무에 대한 만족감에도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명석 님의 자기 객관화 역량이 그가 오랜 기간 엔지니어로써 올바른 자리를 선택하고 올바르게 역할을 수행하는 데 중요하게 쓰였으리라 짐작합니다.

 

또한, 시니어로서 후배들을 이끌어줘야 한다는 사회적 책무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사내에서는 물론 경력에 대한 고민으로 찾아오는 후배들의 고민을 본인의 일처럼 대하는 모습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니어가 될수록 엔지니어 역시 함께 일하는 리더십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부분 역시 백명석 님이 엔지니어로서 꾸준히 장수하는 비결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저는 이 글이 엔지니어로 오래도록 일하고자 하는 분들께 귀감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대를 안고 인터뷰 내용을 다시 반추해보니, 결국 엔지니어로서 오랫동안 성장하기 위한 원칙에 대한 대화를 백명석 님과 나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 5가지로 추려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백명석 케이타운포유 CTO
백명석 케이타운포유 CTO <출처: 케이타운포유>

 

1. 브라키오처럼 일할 것인가 랩터처럼 일할 것인가

가장 먼저, 대기업이라 할 수 있는 직전 회사와 스타트업 문화를 가진 현재 회사에서의 역할과 환경이 매우 다를 텐데, 그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느끼는지를 물었습니다. 백명석 님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역할 변화를 설명했습니다.

 

“큰 회사는 브라키오사우루스 같아요. 거대 초식 공룡 있잖아요. 그 공룡은 되게 느려 보이지만, 한번 움직이면 한 발걸음이 아주 크잖아요. 반면에 작은 회사는 재빠르게 뛰어다니는 육식 공룡 같죠. 빠르게 움직이지만 움직인 총합으로는 작다는 점이 특징이죠.”

 

일하는 방식을 결정할 때 기준이 될 만한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안영회(이하 안): 굉장히 큰 회사에서 기술적인 역할을 해오시다가, 지금은 스타트업에서 CTO 역할을 하고 계시잖아요. 큰 회사에서와 지금 하시는 기술적 역할에서 가장 큰 차이점을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백명석(이하 백): 구체적인 차이를 예로 들려면 코드 리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를 예전에 SK플래닛 다닐 때나 다음에 있을 때 코드 리뷰에서 보던 것과 지금 보는 것이 많이 달라졌어요. 그때는 코드리뷰를 굉장히 기술적인 측면으로 진행했어요. “작은 함수로 추출하는 게 어때요?, 변수 이름, 함수 이름을 이렇게 바꿔보면 어때요? 하는 의견을 많이 냈죠. 그런데 지금은 먼저 코드 자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큰 회사에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던 부분이지만, 작은 회사에 와서는 관점이 바꿔야 했습니다. 제가 대기업에서 같이 일하는 개발자가 가장 많을 때는 250 ~ 300명 정도 됐어요. 그때는 아무래도 형식적인 부분을 많이 봤어요. 그런데 지금은 개발자 15명과 같이 일해요. 그래서 코드를 이해하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지금은 이해를 해서 도와주려다 보니 제가 개발자들에게 질문하는 것도 달라지더라고요.

 

: 대기업에서는 코드를 이해할 수도 없었지만 이해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신 거네요.

: 이해를 깊이 못 하고, 이해를 깊이 못 한 상태에서 도와줄 수밖에 없었죠.

 

: 정리하자면 규모가 있는 곳에서는 코드 리뷰를 보편적인 프로그래밍의 관점에서 보편적인 것을 보는데, 지금은 내용까지 접근할 필요를 느끼신다는 거네요. 코드 리뷰를 예로 차이를 말씀하셨는데, 또 다른 차이도 있나요?

: 큰 회사를 오래 다니면서 개인적인 불편함을 느낀 게 있었어요. 저는 좀 다양하게 작게 실행해보고 싶은데, 큰 회사에서는 뭔가 하나를 계획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중간에 계획을 수정하기보다는 계획대로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잖아요. 그게 나쁜 것은 아닌데 저는 불편했어요. 그런데 지금 작은 회사에서는 계획을 세워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매일 이벤트가 있어서 만족스럽습니다.

 

: 커머스라서 더 그렇겠어요.

: 그렇죠. 커머스라서 그렇기도 하죠. 사실 작은 회사 와서 보면 아쉬운 것도 있긴 해요. 큰 회사 있을 때의 좋은 점도 있긴 하니까요. 그런데 모든 걸 다 만족할 순 없다고 생각해요.

 

: 아쉬운 점 중에 개인적인 것 말고 직무적인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나요?

: 직무적인 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이전에는 회의를 많이 했는데 지금은 저도 코딩을 좀 하고 개발자들 코드도 많이 보고요, 실제 업무적인 것을 더 많이 고민하거든요. 회의는 지금은 일주일을 다 합쳐봐도 예전에 하루 하던 것만큼도 안 해요.

: 대기업에서 느끼신 불편함 중에서 본질적인 건 해소가 됐네요.

 

회사 규모에 따라 장단점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 단정할 수는 없고, 자신의 상황이나 선호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브라키오 사우루스처럼 신중하지만 한 걸음의 임팩트가 큰 상황에 놓일지, 랩터처럼 걸음의 총합은 브라키오보다 작지만 속도감 있게 임팩트를 만들어갈지는 각자의 선택에 따라 다릅니다. 엔지니어들이 오랜 시간 동안 엔지니어로 일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런 상황을 잘 조율하고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다음 스텝의 ‘목적’을 생각하기

필자는 백명석 님이 대기업을 나와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던 당시 그를 만난 일이 있습니다. 그때 전해 들었던 이직 과정에서의 다양한 고민과 앞선 인터뷰를 통해 백명석 님의 ‘목표 지향적’인 성향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다음 단계를 선택할 때에도 이런 목표 지향적 성향이 발휘되는지, 된다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이 대화 내용이 엔지니어들이 일이나 인생에서 다음 스텝으로 움직일 때, 그‘목적’을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 케이타운포유에 어떻게 오게 되셨어요?

: 제가 6달을 놀았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급하게 이직하기 보다 그간의 경험, 배움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려 했죠. 그런데 코로나 시절이라 그런지 온라인으로 강연 요청이 간간히 들어오고, 멘토링도 하면서 이직 제안에 대해서 고민하다 보니 6개월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6개월 지났을 즈음 다시 일을 하고 싶기도 해서 몇가지 제안을 두고 고민하다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ktown4u.com
ktown4u.com 캡처 <출처: 케이타운포유>

 

: 제가 배경을 조금 알고 있는데, 당시 대기업 오퍼와 이곳 오퍼를 두고 고민하셨었죠?

: 그룹사와 같은 대기업에서 좋은 제안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다시 큰 회사에서 일하기 보다 작은 회사에서 좀 더 협력적으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좀 작지만 케이타운포유로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표님과도 미리 몇 번 만났는데 비전도 좋고 사람에 대한 신뢰도 가서 오게 됐어요. 저는 오너가 운영하는 회사는 안 다녀봤어요. 전문 경영인이 운영하는 회사만 다녀봤죠. 오너가 대표니까 업의 전문성도 있을 거라 봤고, 연말에 전문 경영인 교체되어 계획이 바뀌는 일도 안 생길 것 같고요. 또 회사가 ‘물류’를 하고 있는데 저는 물류는 안 해봤거든요.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 물류 업무에 대한 호기심도 있으셨군요?

: 예전에 사티야 나델라가 마이크로소프트 컨퍼런스를 하면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2021년에 기술 산업은 미국 GDP 의 5%에 불과하다. 2030년까지 10%로 증가할 전망이다. 그래도 나머지 90%가 남아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오프라인 기업이 온라인으로 오면 무엇을 할까 생각해봤는데 제일 먼저 커머스를 할 것 같았고, 그다음에는 물류를 할 것 같았어요.

 

: 실제로 그렇게 움직이고 있더라고요. 

: 그래서 커머스는 아주 디테일하게는 몰라도 SK플래닛과 11번가에서 약 5년 동안 겪은 게 있으니 알겠는데, 물류는 배워보면 좋겠다 생각했죠. 지금 회사는 직접 물류 창고를 운영하고 있어요.

 

케이타운포유 오프라인 상설 매장
코엑스 아티움에 위치한 케이타운포유 오프라인 상설 매장 <출처: 케이타운포유>

 

: 언제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하시나요? 

: 사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1, 3, 5, 7, 9로 고비가 오더라고요. 1년 다녀보면 원래 여기 오려고 했던 목적에서 한 75%는 달성해요. 3년 정도 지나면 거의 다 하고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 다시 새로운 가슴 뛰는 목표를 찾아내지 못하면, 회사에서 업무를 통해 기여하면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 대체로 목적지향적인 분들이 조직에 속하면 이런 패턴이 나타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예를 들어서, SK플래닛 갔을 때 11번가에 MSA를 적용하고 안정화하는 게 목적이었는데 그게 3년 걸린 것 같아요. 그 후로도 2년을 더 다녔는데요, 재밌게 지내기는 했지만 그만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입사하기 전에는 이런저런 기대가 커요. 그런데 막상 가보면 사실, 어떤 경우에는 하루 만에, 일주일 만에 그 꿈이 깨지기도 해요. 꿈과 희망이 깨진 상태로 그냥 급한 일을 하다 보면 1년이 지나요. 그러다가 이제 내가 없어도 돌아가겠다, 이런 정도가 되면 ‘이제 난 뭘 해야 하지’ 이런 고민이 드는 거죠. 대충 놀고먹어도 월급은 나올 텐데, 그러고 살기에는 아직 일할 나이니까 그러지 않고 싶고요.

 

필자는 팀장 시절에 연봉 협상을 하면서 회사와 직원은 상호 이익에 입각해서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팀원들에게 경력 개발에 대한 계획을 묻고는 했습니다. 첫 회사 사장님이 연봉 협상할 때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인식하는 법을 알려 주셨는데, 그걸 그 사장님께 갚는 대신에 후배들에게 전수하려고 했습니다. 백명석 님이 해마다 혹은 격년으로 다음 단계를 고민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엔지니어들도 그런 부분을 배울 수 있는 멘토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3. 성장에 지름길은 없다

백명석 님은 후배나 동료 개발자들의 경력 개발에 깊이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름길을 찾아 빠르게 성장하려는 질문을 하는 이들이 많아 안타까웠다고 강조했죠. 성장에 지름길이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사실 같습니다. 엔지니어로서 오랫동안 의미 있게 일하려면 이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 개발을 오래 하셨는데요, 세대가 많이 바뀌었잖아요. 개발자들도 많이 바뀐 것 같나요? 

: 코로나 시기에, 다른 회사 사람들 대상으로 강의를 많이 하다 보니까, 제가 뽑은 사람이 아닌 남들이 뽑아놓은 사람들을 볼 기회가 많이 생겼어요. 훌륭한 분들도 많았지만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죠. ‘숏컷’을 하는 경우들이 그래요.

 

: 숏컷이 뭔가요?

: 드라마 <대행사>에 그런 장면이 있어요. 주인공이 저연차 시절에 화장실에서 시니어 선배한테 “어떻게 하면 카피 잘쓰나요?”라고 물어봐요. 그랬더니 그 선배가 뭐라고 하냐면 “신입한테 ‘숏컷’이 어디있니? 질리도록 써. 그것밖에 없어!”라고 했어요. 요즘 많은 분들이 어떤 수단을 통해서 빠르게 성장하기를 바라요. 그게 되면 다들 했겠죠. 그게 정상적인 방법은 아닌 것 같아요.

 

JTBC 드라마 대행사
JTBC 드라마 대행사 <출처: JTBC>

 

또 요즘 분들의 특징만은 아니고요. 예전에는 미리 뭔가를 준비하고, 그다음에 뭔가를 했는데 요즘에는 어떻게 하면 준비를 적게 하고 빠르게 갈 수 있나, 이런 고민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다른 회사 분들도 커피챗을 많이 요청해오시는데, 대부분 무엇을 공부해야 하냐고 물어보세요. 이것만 보면 되냐, 하는 족보 같은 거요. 어떻게 하면 빠르게 위로 올라갈 수 있어요? 나 잘하고 있어요? 이런 걸 물어봐요. 그런데 저는 그런 걸 대답해줄 수 없어요.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이후에 ‘뷰카 시대*’라고 이야기하는데, 제가 뭔가가 정답이라고 지금 말해도 그게 내일 뒤바뀔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 변동성의 시대에 ‘숏컷’을 찾을 수는 없어요.

 

*뷰카(VUCA)시대: 뷰카는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 만들어진 말이며, 뷰카시대는 변동적이고 불확실하고 복잡하고 모호해 예측이 어려운 사회, 경제적 환경을 말한다.

 

사람들이 많이 물어보는 게, 뭐를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라고 물어봐요. 예를 들면 코드리뷰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리팩토링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이런 걸 묻죠. 저는 그럴 때 ‘자전거 배우기’ 그림을 보여줘요. 자전거는 타봐야 배울 수 있잖아요. 책을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다 이해하고서 배우게 되는 것도 있지만, 한번 해보고 넘어지고 해보고 넘어지면서 배우는 것도 있어요.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몇 년에 걸쳐서 그걸 배운 거예요. 그런데 질문하시는 분들은 어쩌면 ‘당신이 몇 년 동안 배운 걸 나는 한 번에 완벽하게 배우고 싶어’라는 마음이 있는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오랫동안 해서 자기 몸에 익어야 하고, 이해가 깊어져야 배울 수 있어요. 그런데 금방 빠르게 될 수 있는 방법은 없냐고 물어보면, 저는 빠르게 안 배웠기 때문에 답을 해줄 수가 없죠.

 

: 왜 그러는 걸까요? 

: 제 생각에는 코로나 때 온라인에서 빠르게 뭔가를 잘하는 것 같이 포장되어 보인 사람들이 많이 보였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나도 이제 빨리 잘돼야 하는 거 아니냐는 불안감을 갖는 게 아닐까 싶어요.

 

최근 요즘IT에 발행된 글 <당신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를 쓴 유영모 님이 저의 회사 동료인 관계로,  어떤 글을 쓸지 서로 고민을 나누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가 엔지니어의 경력 개발에 대한 연재를 하겠다고 해서 기쁘게 지지한 일이 있습니다. 한편,  [코딩을 넘어 비즈니스로] 연재 역시 엔지니어가 시니어로 나아가며 자신에 맞는 경력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4. 스스로 판단하기에서 함께 잘하기로

백명석 님은 주니어와 시니어를 구분하는 확고한 기준을 갖고 있었습니다. 먼저 자기 스스로 깨친 후에는 팀으로 함께 가기 위한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점이 시니어가 걸어야 할 길이라고 제시합니다. 자신이 만드는 프로그램의 사회적 맥락을 파악하고 여기에 기초하여 개발을 해나가는 방식을 저는 ‘도메인 드리븐'이라고 부르는데요. 백명석 님의 설명을 들으며 조환 님의 이야기를 다룬 지난 글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고,  또다시 ‘도메인 드리븐'이라고 부르는 태도와 연결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 주니어 개발자와 시니어 개발자를 나누는 기준이 있으신가요?

: 개발자들이 주니어랑 시니어가 뭐가 다른지 궁금해해요. 제가 생각할 때 주니어는 주어진 일을 잘해야 해요. 일정 준수, 요구사항을 만족시키는 데까지 해야죠. 품질도 높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 중요한 건, 어떤 문제에 대해 그것을 자신이 결정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를 잘 아는 거예요. 제가 아는 친척 분이 동네 소아과를 해요. 그분이 동네 소아과에서 제일 중요한 건 이 환자를 내가 치료할까, 상급병원으로 보낼까를 결정하는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주니어 개발자들이 이 정도는 내가 결정해도 된다고 생각해 사고를 친 경우가 많았어요. 물어보기 불편하니까 물어보지 않고 판단했겠죠. 이걸 내가 물어봐야 하는 일인지 내가 결정하고 공유하면 되는 일인지 판단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 개발자들이 그걸 어떻게 익힐 수 있죠? 

: 저는 처음에 만나면 “무슨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으면 매번 물어보라”고 해요. 물어보지 말라고 할 때까지 물어보라고 하죠. 물어보다 보면 아마 선배들이 어느 순간 그런 건 알아서 하라고 그럴 거예요.

 

: 모니터만 보지 말고, 소통을 해서 이슈 판별하는 능력을 키우라는 말씀이네요. 

: 애자일하시는 분이 얼마 전에 SNS에 글을 올리신 게 있는데, 이런 일화였어요. 사람들이 “언제 페어프로그래밍을 해야 하냐”고 묻는다는 거예요. 그 사람은 “언제 페어프로그래밍을 안 하면 되는지를 물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서로 따로 일하다가,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익숙하지 않은 페어프로그래밍을 하면서 실패를 하고, ‘이게 안 된다’고 한다는 거예요. 쉬울 때 많이 해봐야 어려울 때도 할 수 있다는 거죠.

 

: 시니어는요?

: 저는 두 가지를 생각해요. 하나는, 먹고 떨어져주는 사람이 시니어예요. 과제가 주어지고, 그것에 대해 이 사람이 ‘다 됐다’ 하면 다 된 거예요. 이 사람이 다 됐다고 한 걸 내가 다시 확인을 해야 한다면 시니어가 아니에요.

 

: 이 정도가 되는 결과를 내야 한다는 조건이네요. 

: 두 번째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잘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에요. 주변 사람들을 도와서 회사의 전체적인 생산성을 높이는 사람이죠. 자기 혼자 잘하는 사람은 시니어라고 말하기 어려워요.

 

: 스스로가 이제 시니어가 됐다고 느끼신 때는 언제예요?

: 저는 다음에서 처음 팀장이 됐을 때, 나이 많은 팀장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좋은 리더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후배들을 많이 구박했어요.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죠. ‘내가 이렇게 좋은 말을 하는데 저 친구는 왜 이렇게 안 들을까’. 그런데 나중에는 내가 잘못했구나 느꼈어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내가 변화될 필요가 있다고 느꼈을 때요. 나 스스로도 나를 변화시키지 못 하는데, 타인을 어떻게 바꾸겠어요. 내가 바꿔야죠. 다른 사람들이 따라오고 싶다 하면 감사한 거고 아니면 마는 거죠.

 

: 그럼에도 관점 전환을 못 하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 충분히 괴로워보면 돼요. 이게 맞는 말인데, 사람들이 왜 내 말을 안 들을까, 이게 정말 괴로우면, 고민을 해요. 해법을 찾으려고요.

 

마지막에 ‘충분히 괴로워 보면 된다'라는 말을 들을 때 ‘좌절에 대한 제 느낌이 떠올랐습니다. 무언가 도전한 일이 잘되지 않았을 때 좌절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좌절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뜻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현재 능력치를 정확하게 알게 해 주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넘어서려면 좌절을 딛고 일어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표현은 다르게 할 수 있지만 백명석 님이 시니어로 나아가는 길에서 언급한 괴로움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5. 계속 재미를 느끼는 일에 집중하기

주니어와 시니어를 가르지 않고, 개발자 생활을 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중요하게 끌고 가야 할 부분에 대한 의견도 듣고 싶었습니다. 상황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자기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백명석 님은 새로운 기술을 탐색하기보다는 자신의 관심 영역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에 가치를 두고 있었습니다.

 

: 엔지니어들이 가장 밥값을 하는 건 어떤 요소라고 생각하시나요?

: 아는 개발자분들 중에 개발 역량도 뛰어나지만 비즈니스 마인드나 역량이 뛰어난 분들도 많아요. 그런데 저는 스스로 비즈니스 역량이 굉장히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만나본 CTO분들 중에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뛰어난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저는 그게 안 되거든요.

 

: 그분들이 비즈니스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게 어떤 거예요? 

: 제가 다음에서 2014년 1월에 개발 본부장이 됐어요. 본부장 위로 가려면 개발 외에 다른 것도 봐야 하잖아요. 개발 관련 일만 하고 싶은데 주변에서 다른 업무로 영역을 확장해 보라는 권유가 있었어요. 정중히 사양하려고 했는데, "한번 해 봐라. 잘 할지 못할지, 좋아할지, 해 봐야지 알 수 있지 않느냐?"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시도해 보게 됐어요. 개발, 기획, UX가 모두 있는 조직이였어요. 잘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제 능력이 부족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일을 하다가 시간이 나면 우리 서비스를 잘되게 하려면 어떤 시도를 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시간이 나면 코드리뷰를 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더라구요.

 

: 저는 제삼자의 입장에서도 명석님 성향이 프로그래머 성향이 강하다고 느꼈어요. 

: 저는 예를 들면 리팩토링을 하면서 ‘이건 새로운 패턴이네, 그러면 이걸 어떻게 프로세스화해서 사람들한테 전달할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건 너무 재밌는데 어떻게 돈 잘 벌지 생각하는 건 재미가 없더라고요.

 

요즘에는 주어진 문제를 코딩으로 빠르게 잘 풀어내는 건 사실 한참 후배님들이 저보다 훨씬 잘해요. 그런데 그분들이 회사 내에서 인정받게 하고 중요한 일을 하게 만드는 그런 역할은 다른 사람보다 제가 잘하지 않나 싶어요.

 

: 한국 사회에서는 그 일이 중요한 것 같아요. IT하는 분이 사장님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큰 기업은 보통 재무 하시는 분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기업을 리드하시는데, 그런 분들은 IT 개발자의 판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설득을 못 하면 여지없이 오판으로 가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 개발자들이 자기가 하는 일이 회사가 돈 버는 것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이야기해주면 좋은데, 그걸 잘 못한다고 생각해요.

 

: 요즘 기술 변화가 많은데, 관심 가는 신기술이 있나요?

: 요즘에도 새롭게 나오는 신기술에도 관심이 있고 열심히 배워보지만, 이런 일에 예전보다는 시간을 덜 할애하는 것 같아요. 지금은 내 강점을 더 강하게 만드는 데 더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객체 지향을 통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요구사항을 빠르게 반영해줄 수 있는 좋은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는데, 지금도 이게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이쪽 공부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객체지향 원칙들, 리팩터링, TDD, 디자인 패턴, 아키텍처 패턴 등 우리한테 뭐가 맞나 이런 걸 더 많이 공부하고, 고민해요.

 

: 관심사를 나 중심으로 좁혔다고 이해하면 되나요?

: 챗지피티한테 물어보면 꽤 많은 게 빠르게 답이 돌아오잖아요. 신기술에 관한 것도요. 그렇게 답을 얻을 수 있는 건 제가 얕게만 알아도 되는 것들이죠. 깊게 알아야 하는 것은 챗 GPT한테 물어봐도 원하는 대답이 안 나와요.

 

: 명석님은 프로그래밍적인 걸 좋아하셨는데, SK플래닛 계실 때는 포지션과 미스매칭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자기 객관화가 되어 그런 점까지 인지하고 계신 점이 굉장히 독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저는 회사를 옮길 때 그 회사가 어떤 회사인가 보다는 내가 거기 가서 무얼 하냐가 더 중요했어요. 지금까지 근무한 회사들 보니 회사를 6개를 다녔는데, 세 개는 그룹사이고, 나머지 세 개는 스타트업이더라고요.

 

: 케타포 이후에 계획이 있으세요? 

: 예전에 다음에서 리더십 교육을 받을 때, 거기서 ‘인생에 비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 비전은 20년 후에 이루어질지 말지 정도의 꿈, 그런데 생각만 하면 가슴이 뛰는 너무 좋은 꿈을 말해요. 그걸 위해서 내가 5년 이내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런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비전에 대해 생각을 해봤는데, 나중에 개발자로서 여태까지 내가 겪었던 지식이나 경험을 잘 정리해서 누군가에게 공유를 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런 작업이 반복되면 좋을 것 같고요. 성취감도 느낄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것저것 많이 기록하고 중간중간 정리해서 공유하고 있어요.

 

 

마치며

앞서 말씀드렸듯이, 규모가 다른 회사에서 기술 리더의 역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명석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야 할 자신의 원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성장하려는 사람이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을 성찰하고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성장하고 있나요? 조직 안에서는 해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긴 흐름으로 보면, 주니어에서 시니어가 되어야 합니다. 백명석 님에 따르면 혼자 자기 몫을 할 수 있다면 시니어로 입문했다고 할 수 있지만, 시니어로서 인정받으려면 함께 성과를 내야 합니다. 

이렇게 앞으로 나아갈 때 왕도나 지름길을 찾는 일보다는 스스로에게 맞는 방법과 자신의 상황에서 효과가 나는 방법을 찾는 일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20년 넘게 엔지니어로 정주행하고 있는 백명석 님의 이야기를 통해 이 생각에 더 확신이 듭니다.

 

또한 성장에는 고통이 따를 수 있습니다. 성장이란 지금의 나보다 더 커지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좌절하기도 하고 한계를 느끼기도 하니까요. 백명석 님이 인용한 것처럼 ‘숏컷’은 성장을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꾸준히 해나가야 할 뿐이죠. 그런 건강한 성장을 지속해나가려면, 꾸준하게 성장통을 견뎌나갈 수 있는 마음의 준비와 정서적 안전장치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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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머로 사회 생활을 시작해서 IT 컨설팅과 IT 서비스 회사 경영자로 동종 업계에서 스무 해 이상 일 하고 있습니다. 한 때는 한국 스프링 사용자 모임을 만들어 운영했던 만큼 커뮤니티 활동과 지식 공유를 즐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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