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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새해가 되면 정부에서 각 분야의 정책과 올해 해 나갈 주요 업무 내역을 공개합니다. 금융도 예외는 아니어서, 계속 새로운 발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금융은 관련 부처의 정책이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앞으로의 금융 변화를 알기 위해선 정책 설명자료 외에도 각종 간담회 등에서 정부 담당자가 어떤 의견을 냈는지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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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새해가 되면 정부에서 각 분야의 정책과 올해 해 나갈 주요 업무 내역을 공개합니다. 금융도 예외는 아니어서, 계속 새로운 발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금융은 관련 부처의 정책이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앞으로의 금융 변화를 알기 위해선 정책 설명자료 외에도 각종 간담회 등에서 정부 담당자가 어떤 의견을 냈는지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 3월 7일 금융위원회에서 개최한 핀테크 기업 간담회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간담회 주제는 '디지털 혁신을 통한 금융업의 실질적 경쟁촉진과 혁신방안'으로, 이번 간담회를 통해 앞으로 핀테크의 변화 양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은행, 카드, 보험과 같은 기존 금융업은 높은 진입장벽으로 인해 신규 진입이 어려운 영역인데요. 이러한 구조 때문에 쉽게 안주하는 것으로 보여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핀테크 기업이 금융업에 직접 진출한다면, 실질적인 경쟁을 통해 금융업의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 판단했다고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핀테크 업계가 요구한 건의 내용과 앞으로 금융 업계의 전망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핀테크가 은행업 신규 사업자로 진입할 수 있도록 소규모 특화은행을 도입하자는 요청이 있습니다. 소규모 특화은행(챌린저 뱅크)이란 기존은행의 방대한 업무범위와 라이선스를 쪼개어 스몰 라이선스로 만든 후, 특정 업무별 은행을 만드는 것입니다.
영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러한 챌린저 뱅크가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특정 고객을 위해 개인영업, 기업영업, 주택 담보대출과 같은 세분화된 서비스만 하는 것이죠. 예를 들면 소상공인 전문은행, 프리랜서 특화은행과 같이 틈새 고객을 목표로 하는 은행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대형은행 위주의 국내 시장 속 메기가 되어 수수료 경쟁 인하 등을 촉발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주장 같지 않나요?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 논의 때도 똑같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전문은행이 활동하고 있는 현재까지도 대형은행들의 독주는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대형은행의 압도적인 지점수, 기업 금융까지 커버하는 넓은 업무범위로 인해 인터넷 전문은행은 주류가 되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챌린저 뱅크도 여러 문제점이 있습니다. 특화된 여수신에만 집중하다 보니 대형은행처럼 자산 건전성 충격을 여러 사업 부문으로 분산하지 못합니다. 또 세세한 틈새시장에 집중하니 어차피 대형은행을 견제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많습니다.
은행대리업이란 예금, 대출, 외환 등 은행의 일부 업무를 핀테크사가 대리 수행하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Bank Agency’라고 표현합니다. 비슷한 예시로 창구가 없는 인터넷 전문은행이 증권사 창구에서 계좌개설이나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을 말합니다. 작년부터 시작된 우체국의 업무 위탁 확대를 예시로 들 수 있겠네요.
은행대리업의 필요성은 사실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습니다. 모바일 비대면 금융이 확산되고 있는 반면 은행 창구는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완전히 모바일로 대체하는 것도 중장년 고객과 같이 비대면에 취약한 계층에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20년 전부터 이미 은행대리업을 도입하여 활용하고 있습니다. 일본 역시 우리나라와 같이 점포 폐쇄가 계속되자 우체국이나 유통 업체, 통신 대리점에서도 예금이나 대출업무를 보게 한 것인데요. 이렇게 은행대리업이 본격화되면 비금융사 입장에서도 장점이 많아집니다. 은행 서비스 이용 고객의 데이터를 확보해서 자사 서비스로 빠르게 연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9년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항공사 전일본공수(ANA)와 소니은행이 손을 잡고 전일본공수의 자회사가 은행대리업에 진출했고, 2021년에는 일본의 대형 생명보험사 다이이치 생명이 스미신SBI인터넷은행, 라쿠텐은행과 업무협약을 맺고 온라인 은행대리업을 추진했습니다. 은행 계좌를 활용한 신규 고객 유입과 보험금 수납 과정에서 유출되는 사업 비용을 감소하는 등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례를 볼 때, 핀테크의 은행대리업은 양측에 새로운 활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국내에서 은행대리업을 하려면 관련 법령이 없어 은행업법부터 수정해야 합니다. 온라인, 오프라인 모두 파장이 클 것이라 법 개정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터넷 전문 은행처럼 인터넷 전문 카드사에 대한 라이선스를 만들어 달라는 건의도 있었다고 합니다. 신용카드 업계에서 오래 일한 저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인터넷 전문은행이 있음에도 인터넷 전문 카드사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건, 카드 사업의 본질과 실물 여부 때문입니다. 인터넷 전문은행은 어찌 보면 기존 은행의 모바일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은행업의 본질이 수신과 여신이기 때문에 디지털로 이루어져도 불편함이 없습니다. 은행의 여러 사업들도 비대면으로 구축이 어려울 뿐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카드 사업은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실물 카드가 있어야 하니 카드 발급 시설이 필요하고, 그 카드를 배송하기 위한 시스템도 필요합니다. 또한 신용카드를 쓸 수 있는 가맹점을 모집하고 결제 회선망도 운영해야 합니다. 온라인에서 진행할 수 있는 프로세스도 차츰 늘고 있지만, 아직은 오프라인에서 실물을 다뤄야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전문 카드사라는 발상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아직 해외 자료에서도 그런 내용은 본 적이 없어, 과연 이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현재는 국제 신용카드 사용 건에 대해 매입해 주는 경우에도 일반적인 카드사와 동일한 수준의 규제를 받고 있는데요. 이를 구분해서 별도의 라이선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구입니다. 면세점 등에 들어가 있는 VAN사에서 주장할 만한 내용으로, 핀테크사가 온, 오프라인에서 외국인 대상으로 새로운 사업을 진행할 경우 유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언론에서도 꽤 많이 언급된 종합지급결제업 도입에 대한 요구도 있었습니다. 종합지급결제업이란 은행의 '계좌'가 아니라 핀테크의 '계정'에서도 대금 지급, 자동이체 등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은행이 아니기 때문에 이자를 주진 못하지만 결제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죠.
만약 종합지급결제업이 허용된다면 핀테크사로서는 은행의 결제 트래픽을 상당 부분 가져올 수 있어 욕심이 날 만합니다. 종합지급결제업은 현재 은행권 제도 개선 TF에서도 같이 보고 있으니 올해 안으로 가시적인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핀테크에서 건의한 내용은 이 밖에도 다양합니다. 소액 단기 보험업의 진입장벽 완화, 금융 투자 취급 가능 업무 범위의 단계적 확대, 금융상품 비교추천 플랫폼의 활성화를 위해 취급 가능 상품의 확대, 소액 해외송금 한도 상향 등이 있습니다. 자주 등장하는 완화, 확대, 상향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전반적인 금융 규제를 해소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번 간담회에서 권대영 금융위 상임위원은 “은행에 대한 국민들의 질타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10년간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핀테크 기업들이 혁신 노력을 다시 가속화함으로써 금융권에 대한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고 신뢰 회복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은행에 대한 금융당국의 경고가 연일 계속되고 있어, 이러한 말 한마디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는데요. 현재 운영 중인 은행권 제도 개선 TF와 연계하여 반영해 나가겠다는 의견이니, 어떤 식으로든 금융 업계의 변화는 계속될 예정입니다.
핀테크 기업들의 요구사항을 듣는 자리였던 만큼 규제 완화에 대한 목소리가 가장 높았습니다. 제가 핀테크 관계자였어도 같은 의견을 냈을 것입니다. 국내 금융업 규제는 전체 산업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IT 기술의 발전으로 핀테크 기업이 무섭게 추격하고 있지만, 규제 때문에 막힌 것이 많으니 답답한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과연 금융당국에서 규제를 얼마나 완화해 줄지는 알 수 없으나, 규제 완화와 핀테크 부양이 기본적인 기조가 될 것임은 어느 정도 명확해 보입니다. 금융업에서는 제도 하나만 변경해도 기존에 없던 수많은 비즈니스 모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 변화를 계속 주시하며 사업 기회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글 길진세
편집 김나경 객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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