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인터페이스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바꿔놓았는가
본문은 요즘 IT와 번역가 Yuna가 함께한 파브리지아 오시엘로(Fabrizia Ausiello)의 <The design of shallow thinking>을 번역한 글입니다. 필자는 인지심리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복잡한 문제를 직관적인 사용자 경험으로 풀어내는 프로덕트 디자이너입니다. 9년 이상 핀테크와 AI 분야를 넘나들며 디자인해 왔고, 현재는 글로벌 급여 운영 기업에서 시니어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또한 글쓰기를 통해 기술 환경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만들며, 변화하는지를 탐구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얕아진 사고가 우연이 아니라 디자인의 결과라는 관점에서, 디지털 환경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형성해 왔는지를 살펴봅니다.
*필자에게 허락을 받고 번역했으며, 글에 포함된 링크는 원문에 따라 표시했습니다.

지난주에 AI가 인간의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룬 글을 읽었습니다. 글을 읽다 보니 평소 무심코 ChatGPT를 사용하던 제 모습이 떠올랐는데요. 솔직히 조금 민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오래전부터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생각 하나가 분명해졌습니다. 우리는 AI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깊이 생각하는 힘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죠.
저 역시 많은 사람들처럼 인터넷과 함께 자라왔습니다. 그동안 여러 기술적 변화를 지켜보며, 인터넷이 한때는 곱씹고 생각하게 만드는 공간이었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공간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도 함께 봐왔는데요. 이런 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온 결과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어떻게 쓰고, 어떻게 반응하게 될지를 전제로 한 수많은 디자인 방식들이 쌓이면서, 지금에 와서는 수십억 명의 사고방식 자체를 바꿔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과장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그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보려 합니다.
저는 90년대에 태어났는데요. 그 시절을 떠올리면 인터넷이 마치 하나의 장소처럼 느껴졌다는 점이 특히 인상 깊습니다. 당시 인터넷은 지금처럼 늘 곁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삶 속의 특정한 자리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경우 그 자리는 ‘집에 있는 가족용 컴퓨터’였습니다. 그리고 그 장소에는 고유한 소리도 있었습니다. 바로 모뎀 연결음이었죠. 마치 학교 종이 처음 울리면 교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듯, 그 소리를 들으면 이제 어딘가로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터넷을 둘러싼 언어 역시 이런 감각을 더 또렷하게 만들었는데요. 우리는 ‘홈페이지’라는 말을 썼고, 웹에는 ‘주소’가 있었으며, 온라인에 접속한다고 말하기보다 온라인으로 들어간다고 표현했습니다. 페이지를 ‘둘러본다(browse)’는 말도 공간을 거닐듯 이동하는 느낌을 담고 있었죠.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나 ‘인터넷 익스플로러’처럼, 초기 브라우저 이름들 역시 미지의 영역을 탐험한다는 뉘앙스를 분명히 담고 있었습니다. 이후 등장한 ‘사파리’ 역시 이런 탐험의 비유를 이어갔습니다.
웹이 하나의 장소처럼 느껴지던 시절 인터넷에는 자연스럽게 공간감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으로 들어가 문을 열듯 페이지를 열고, 하나의 방에 머물며 정보를 찾거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하곤 했죠.

그러다 스마트폰이 등장했습니다. 인터넷을 주머니 속으로 옮겨온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인터넷을 언제나 곁에 있는 존재로 바꿔놓았는데요. 이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손만 뻗으면 모든 것에 접근할 수 있게 됐고, 그와 함께 인터넷이 지니고 있던 공간으로서의 특성도 본격적으로 뒤집히기 시작했습니다.
무한 스크롤로 끝없이 이어지는 피드는 경계를 지워버렸습니다. 더 이상 문을 열고 들어갈 필요도 없었죠. 애초에 로그아웃할 일 자체가 거의 없으니까요. 여기에 새로운 소식을 끊임없이 알려주는 알림까지 더해지면서,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멈출 수 있는 순간들 역시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그 결과 깊이 생각할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죠.
예전에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방식 자체가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한 번 들어가면 서둘러 소비하기보다는, 한동안 머물며 이것저것 눌러보고 천천히 살펴보는 일이 자연스러웠는데요. 당시의 서비스들 역시 이런 사용 방식을 전제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인터넷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목적에서 아직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디자인이 우리의 사고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방법은 과거의 인터페이스를 떠올려보는 일일 겁니다. 제가 디지털 환경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공간들만 떠올려봐도 그렇습니다. Blogger와 LiveJournal에는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갈 수 있는 넓고 빈 텍스트 박스가 있었고요. 포럼에서는 며칠, 때로는 몇 주 동안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MySpace에서는 그래픽과 음악은 물론, 프로필에 노출할 친구 8명까지 직접 선택할 수 있었죠.

이 공간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던 특징은 단순했습니다. 짧게 쓰라고 재촉하는 글자 수 제한도 없었고, 끝없이 이어지는 피드도, 하루 만에 사라지는 콘텐츠도 없었죠. 대신 쓰고,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여백이 주어졌습니다. 얼마나 길게 쓰든,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상관없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화면의 모양이 바뀐 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정보를 대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았죠. 멈출 수 있는 지점이 사라지면서, 우리는 무언가를 탐색하기보다는 빠르게 소비하는 쪽으로 점점 익숙해졌습니다. 그래서 요즘 우리는 긴 글 앞에서 자연스럽게 핵심만 훑어보거나, 먼저 요약부터 찾게 됩니다. 관심 있는 주제인지와 관계없이, 정보가 짧고 잘게 나뉘어 전달되기를 기대하게 된 것이죠. 이것이 바로 인터페이스 디자인이 우리의 사고 습관을 바꿔온 한 가지 방식입니다.
인터페이스 디자인은 우리가 온라인에서 어떻게 이동하고, 무엇에 반응하며,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소비하는지까지 바꿔놓았습니다.
저를 포함한 밀레니얼 세대는 이른바 ‘느린 인터넷’에서 살았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알고리즘이 없었기 때문에, 콘텐츠를 직접 찾아다녔죠. 마음에 드는 사이트를 북마크해두고, 긴 글도 끝까지 읽고, 때로는 낯선 사람에게 질문하며 대화했습니다.
초기의 인터넷은 정적인 메뉴와 사이트 맵을 따라 이동하는 구조였습니다. Articles > Technology > Reviews처럼 카테고리를 하나씩 클릭하며, 사용자가 직접 경로를 선택해야 했죠. 무엇을 보고 싶은지, 어떤 콘텐츠를 소비할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했고, 그만큼 사고가 개입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알고리즘 피드가 이 과정을 대신합니다. 참여도 지표와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콘텐츠를 추천하면서 거의 고민하지 않아도 다음 콘텐츠를 소비하게 됐죠.

댓글은 늘 글의 맨 아래에 있었습니다. 끝까지 읽고 나서야 의견을 남길 수 있었죠. 사소한 차이처럼 보이지만, 이 구조는 읽고, 생각하고, 대화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콘텐츠를 충분히 보기도 전에, 실시간 반응과 알림이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깁니다. 읽거나 보는 동시에 반응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주의는 금세 산만해졌죠. 솔직히 말해 우리는 더 많이 소비하지만, 덜 이해하고, 깊이 보지는 않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어디까지 봤는지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콘텐츠가 시간순으로 정리돼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끝나는 지점이 있었죠. 하지만 지금의 알고리즘 타임라인은 다릅니다. 새 콘텐츠 사이에 오래된 글을 다시 끼워 넣으며, 피드가 좀처럼 끝나지 않습니다. 여기에 스토리처럼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더 이상 자연스럽게 멈출 수 없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는 실제로 우리의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기능들이 생각하는 방식까지 바꿔놓고 있다는 점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트위터(X)의 디자인을 한 번 예로 들어볼까요. 트위터는 2006년, SMS 기반의 상태 업데이트 서비스로 처음 세상에 나왔습니다. 당시의 140자 제한은 플랫폼의 철학을 담은 선택이라기보다는 SMS 기술 자체의 한계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제약이었죠. 문자 메시지는 최대 160자까지 보낼 수 있었고 이 중 20자는 사용자 이름을 표시하는 데 사용됐습니다.
폴더폰으로 문자를 보내던 시절에는 나름 합리적인 제한이었지만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이후로는 더 이상 필수적인 제약이라고 보긴 어려워졌습니다. 그럼에도 이 글자 수 제한은 계속 유지됐고, 결국 트위터를 상징하는 핵심적인 특징으로 자리 잡았죠. 이후 플랫폼의 시각적 디자인 전반에 스며들며 사용자에게 보이지 않는 인지적 압박을 만들어냈습니다.
텍스트 창은 작아서 타이핑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짧게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복잡한 생각을 적으려 할수록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생각을 어떻게 줄일지부터 고민하게 되죠. 넓은 화면을 가진 블로그 편집기를 열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고 상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기보다 쓰기 전에 이미 머릿속에서 생각을 다듬습니다. 그런 점에서 글자 수 제한은 단순히 표현이 아니라 생각이 만들어지는 과정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이 제약이 우리에게 얼마나 깊이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2017년의 변화인데요. 트위터가 글자 수 제한을 140자에서 280자로 두 배 늘렸을 때, 사용자 행동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공간은 두 배로 늘었지만, 대부분의 트윗 길이는 이전과 거의 같았죠.
이미 우리는 오랜 시간 140자에 익숙해져 있었고, 더 많이 쓸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생각하고 쓰는 방식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제약이 사라졌는데도 그 제약을 스스로 내면화한 상태였던 셈입니다. 이 사례가 보여주듯이 하나의 디자인 선택은 곧 사용 습관을 만들고, 그 습관은 문화로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문화는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 자체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죠.
이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결과도 아니었습니다. 흔히 사용자 취향이 변했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 상당수는 사실 의도된 결과입니다.
그렇다고 이 모든 변화가 우리의 집중력을 무너뜨리기 위한 거대한 계획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트위터 초기의 엔지니어들이 인간의 인지를 재구성해 보자는 목표를 세우고 일했을 리도 없겠죠. 다만 기술적 제약과 제품상의 선택들이 쌓이면서, 지금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을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모두가 알듯이 오늘날 대부분의 플랫폼이 얕은 사고를 유도하는 구조를 갖게 된 건 우연이 아닙니다. 그 방식이 수익이 되기 때문이죠. 특히 광고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무료 서비스일수록 사용자의 주의를 끄는 것은 곧 핵심 자산입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주의는 깊이 몰입할 때보다, 빠르고 반복적인 반응 속에서 더 잘 붙잡힙니다. 같은 20분이라도 글 하나를 천천히 읽고 만족하는 것보다, 게시물을 빠르게 넘기며 여러 번 반응하는 편이 더 많은 노출과 클릭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 플랫폼들은 우리가 보고는 있지만, 집중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도록 설계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어떤 제품들이 깊은 몰입이나 자연스러운 멈춤을 돕는 기능을 꺼리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기능들은 플랫폼의 핵심 수익을 만들어내는 행동을 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품을 직접 만들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이 지점은 꽤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나 개발자인 우리는 흔히 사용자가 원하는 걸 제공했을 뿐이라거나, 비즈니스 요구사항이라는 한계라고 스스로를 설득하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찰을 줄이는 것과 사람들이 명확하게 생각하거나 제품과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는 가능성까지 없애는 것 사이에는 아주 미묘한 경계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사용자의 참여와 수익을 이유로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관행들을 어디까지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사실 우리는 스스로 인정하는 것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텍스트 입력창의 크기부터 알림이 울리는 타이밍까지, 인터페이스를 구성하는 모든 선택은 사람의 행동을 바꿉니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UX 원칙을 포기하거나 일부러 제품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좋은 디자인의 기준을 체류 시간이나 참여도 같은 지표 너머로 확장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의 중요성을 이해관계자들에게 설명하려는 노력도 필요하겠죠.
예를 들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사용자가 충분히 만족해서 앱을 닫는 순간을 성공으로 본다면 어떨까요? 이 상황에서 ‘품질을 최적화한다’는 건 어떤 의미가 될까요? 스크롤한 시간보다 생각한 시간을 보상할 수는 없을까요? 잠깐 스쳐 지나가는 공간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고 싶어지는 공간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들은 분명 다소 철학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주 실질적인 디자인 과제이기도 합니다. 이미 일부 팀들은 이런 방향을 실험하고 있고요. 우리는 더 나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도구와 함께 책임도 가지고 있으니까요.
깊이를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디지털 환경의 구조가 곧 우리의 사고 구조를 만든다는 점입니다. 경계가 있는 공간을 설계하면 우리는 그 안에서 오래 집중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죠. 사용자의 시간을 더 오래 붙잡는 데서 벗어나, 언제 멈출지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인터페이스를 만들 때 비로소 복잡한 문제를 다루는 데 필요한 사고력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사용자 참여를 높이기 위해 생각할 틈을 없애는 것이 항상 옳은 선택은 아닙니다. 그 방식은 쉽고 빠르지만, 그에 따른 대가는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단순한 향수 어린 시선으로만 보지 않는다면, 문제는 취향이 아니라 우리가 제대로 생각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입니다. 보고, 바로 반응하고, 넘기는 방식이 만들어낸 환경 속에서 우리는 길고 섬세한 사고 능력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복잡한 문제를 창의성과 공감으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고로 주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디지털 환경이 필요합니다.
지금 익숙해진 얕은 사고방식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한때 인터넷이 하나의 장소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그렇게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의도를 가지고 다시 설계한다면, 인터넷은 다시 장소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얕은 사고가 설계의 결과라면, 깊이 역시 설계할 수 있는 대상이니까요.
<원문>
The design of shallow thi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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