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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슈탈트 심리학에서 말하는 완결성 원리(closure principle)를 보여주는 일러스트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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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도 어렵고 두꺼운 책을 다 읽어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더 없이 행복한 장면입니다. 그 순간에 우리는 자부심과 성취감을 느낍니다. 제품을 발표하거나, 프로젝트의 디자인을 마무리하거나, 게시하기 버튼을 누르는 순간에도 그렇습니다. 이 모든 순간들은 무언가를 마무리하는 순간이며, 아직 오지 않은 미지의 영역과 우리가 방금 막 끝낸 지점을 구분하기 위해서 표시하는 마음 속의 이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무언가를 끝내기 위해서 고군분투합니다. 그러지 않을 거라면 우리 모두는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작업을 아직 끝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겁을 내고, 두려워하고,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이런 두려움 때문에 쉽사리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시작이 어려운 이유는, 그 일을 끝내려면 엄청나게 많은 일들을 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굳이 일을 벌여서 우리의 손을 더럽히고 자기 자신이 가진 약점을 마주하기보다는, 미래에는 성공할 것이라는 환상과 착각에 빠져드는 것이 훨씬 더 편안한 선택입니다.
일단 시작하면, 현실에 대한 섬뜩한 느낌이 찾아 듭니다.
심지어 우리의 아이디어가 생각했던 것만큼 독창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우리가 머릿속에서 구상했던 것을 만들거나 그려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거나, 우리의 앞길을 가로 막고 있는 마음의 장애물을 헤치고 나아갈 의지와 확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지점만 바라볼 뿐, 거기에 어떻게 도달할 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습니다.
이건 단지 근시안적인 게 아닙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우리의 창의적인 활동에도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끝마치지 못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많은 연구들이 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마무리가 된 모든 것들은 따져보면 그 전까지는 모두 끝마치지 못한 것들이었습니다. 끝마치지 못했다는 느낌과 그로 인한 긴장감은 우리에게 유리할 수도 있고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긴장감을 활용해서 완성도를 높이고, 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고, 훨씬 더 매력적으로 디자인을 하는 방법을 이해하려면, 미완성의 상태가 우리의 마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 전에 먼저, 우리는 결제가 안 된 계산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블루마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k)은 게슈탈트 심리학(Gestalt psychology)을 가르치는 교수와 함께 어느 붐비는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아직 무명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이 때만 하더라도, 이런 대화가 심리학 분야에서 그녀의 이름을 엄청나게 유명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사실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계산서를 기다리는 동안, 두 사람은 자신들이 목격한 신기한 상황에 대해서 열심히 토론을 했습니다. 어쩐 일인지 웨이터들은 이미 요금 계산이 끝난 계산서보다는 아직 결제가 안 된 계산서의 내역을 훨씬 더 잘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건 마치 결제가 끝나는 순간, 웨이터들의 머릿속에서 그 내역이 사라져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단순한 관찰에서 호기심이 생긴 자이가르닉은 일련의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끝마치지 못한 작업이 이미 완료된 작업보다 훨씬 더 크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밝혀 냈습니다.
끝마치지 못한 작업은 인지적인 긴장감을 유발합니다. 즉, 그것을 끝마쳐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떠오르게 만들어서 불안하고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이런 효과는 단순히 계산서에 있는 주문 내역을 기억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목표를 달성했는지, 우리가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놓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제품을 만들고 디자인 하는 사람들이 이런 긴장감을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의뢰인의 인내심을 한계에 들게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미루기의 달인이었습니다. 그는 작품의 마무리를 10년이나 미루면서 다양한 드로잉과 그리기 기술을 연습하고, 가다듬고, 마스터 한 다음에야 결국에 그 작품을 끝마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고 무언가를 마무리하는 비결은 완료에 대한 강박이 아니라 시작하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끝마치는 것에 생각하지 않고 일단 시작하면, 어쨌든 그걸 마무리해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게 되고, 결국에는 그 일을 끝마치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마음 속에 시도 때도 없이 끼어 들어서 절대로 떨쳐지지 않는 그런 종류의 생각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것이 좋습니다. 모든 작업이 동등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며, 그런 모든 작업들이 우리의 성공에 기여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는 그 정반대입니다. 마무리 짓지 못한 작업 중에서는 우리가 목표에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탄력을 주는 것이 있는 반면, 어떤 것들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잠들기 전에 아직 읽지 않은 수많은 이메일과 알림을 확인하는 것은 단지 악몽을 위한 재료가 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의 공간을 낭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대신에 우리는 불편하더라도 도전적인 문제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것이 더 좋습니다. 코딩이든, 디자인이든, 글쓰기이든 관계 없습니다. 일단 시작하면 긴 시간 동안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작업을 한다면, 우리는 원하는 목표에 훨씬 더 빠르게 효과적으로 도달할 수 있습니다. 미완성 상태의 작업은 단지 우리의 마음 속에 계속해서 떠오를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학습 속도를 높이고 완성도를 높이기도 한다는 걸 보여주는 연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와이콤비네이터(Y-Combinator)의 전설적인 투자자인 폴 그레이엄(Paul Graham)이 언급했듯이, 위대한 작가들의 글을 읽다 보면 그들이 언제나 뛰어난 작품만 썼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그들이 최고의 결과물만 세상에 공개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도 세상에 공개하지 못한 엉터리 작품들이 수백 개는 있을 것입니다. 언제나 성공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다면, 그 전에 수많은 실패를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언제나 잘 하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미완성된 것의 혼란스러움을 받아들이고, 그러한 긴장감이 주는 탄력을 활용해서 창의적인 결과물을 끌어내십시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말하는 완결성 원리(closure principle)를 보여주는 일러스트레이션
사람들은 완성되지 않은 어떤 형태를 보면 스스로 그것에 집중해서 창의적인 프로세스의 일부가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각적인 재료들을 즉시 알아볼 수 있지만, 여기에 있는 그림들을 이해하려면 약간의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게슈탈트의 원칙은 디자이너들이 보다 흥미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모션 디자인(motion design)에서의 어려운 문제들을 극복하는 데에도 도움을 줍니다.
영화를 만들거나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할 때, 우리는 화면의 한쪽에서 뭔가를 사라지게 했다가 반대편에서 다시 나타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션 디자이너를 지망하는 초보자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뭐냐 하면, 이러한 애니메이션을 말 그대로 전부 다 그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그런 여유를 느긋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색깔이 달라도 같은 모양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물체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게 하는 것은 처음에는 직관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두 위치 사이의 움직임을 애니메이션으로 명확하게 연결하지 않아도, 동일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일한 모멘텀(momentum)을 사용하면 우리는 그것이 사실상 동일하거나 관련 있는 물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모멘텀은 어떤 대상에게 속성을 불어넣어 줍니다. 그리고 동일한 모멘텀을 사용하면, 중간의 시간과 경로를 없애 버린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에 손상을 주지 않습니다. 위의 그림에서도 우리는 왼쪽에서 사라진 공이 오른쪽에 나타났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완성의 장점을 활용하면, 보다 매력적인 비주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모션 디자인에서는 표현해야 하는 개체가 지나치게 많거나 제약 조건에 부딪혔을 때, 이런 특성을 활용해서 두 지점 사이의 간극을 연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라는 단어는 우리들 대부분이 들어보지 못했던 용어였습니다. 현재는 책, 기사, 동영상, 팟캐스트 등의 홍수 속에서 널리 논의되며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주제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방법을 터득한 산업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엔터테인먼트, 광고, 그리고 뉴스 산업일 것입니다. 그 외의 어떤 산업도 사람들을 화면에 착 달라붙어 있게 만들지 못합니다.
아무리 평범한 드라마라도 마지막 장면이 되면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 끝을 맺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이어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보고 있었던 동영상의 엔딩 크레디트가 아직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어느 새 다음 동영상이 몇 초 후에 시작된다는 메시지가 나타납니다.
이들 산업은 미완성의 심리학을 아주 잘 알고 있고,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트레일러이든, 예고편이든, 광고이든 간에, 이들은 모두 미완성이 가진 힘에 기대고 있습니다. 이런 동영상들은 갈등이 해결된 것이 아니라, 갈등이 심화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신문 기사나 동영상의 제목은 주로 솔깃한 질문을 던지는데, 그 해답은 말해주지 않고 은근한 힌트만 줄 뿐입니다. 어떤 여지를 남겨두고 끝나는 영화는 수많은 논의를 불러 일으키지만, 뻔한 결말을 보여주는 영화는 금방 잊혀집니다.
역대 가장 성공한 프랜차이즈 영화들 중 하나인 <어벤저스>가 박스오피스를 강타한 이유는, <어벤저스>가 영화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작품이어서가 아닙니다. 마블(Marvel)의 우주에서는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각각의 작품들은 이전의 영화에서 설명하지 않고 남겨두었던 내용을 꺼내 들어서 관객들에게 친숙함을 주는 한편, 스토리의 진행에서는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벤저스>는 감자튀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조각을 먹으면, 또 하나를 먹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이건 모두 의도된 것입니다.
둘 다 미완성의 힘을 활용해서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콘텐츠(영화)와 상품(감자튀김)에 대한 긴장감과 흥미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이만큼 해왔습니다. 이제는 멈추기가 어렵지 않나요? 그것이 바로 미완성이 주는 힘입니다.
미완성의 힘은, 이제는 놀랍지 않겠지만, 실제로는 시작의 힘입니다. 우리가 일단 무언가를 시작하면, 우리의 두뇌는 회로를 다시 구성하기 시작합니다. 이전에는 없었던 무언가가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우리는 모멘텀을 얻었고, 자세를 잡은 다음, 공이 계속해서 굴러가게 하면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내부에서 모멘텀을 만들 수도 있고, 우리가 창조하는 것을 위해서 모멘텀을 구축할 수도 있습니다.
미완성의 상태는 긴장감을 유발하고, 다시 작업을 하고 싶게 만들며, 불편한 느낌이 들게 해서 우리를 자극합니다. 이러한 느낌이 우리의 머릿속을 마음대로 떠돌아 다니게 놔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작업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완성은 완성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며, 우리 스스로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까지도 그러한 모멘텀에 노출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토르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시작하기만 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