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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Con US 원정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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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Con US 원정대 시리즈
① 온 가족이 함께 가는 개발 콘퍼런스
원래 PyCon US 2024에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지난해 가을쯤 한국에서 PyCon을 처음 시작한 배권한 님, CPython 프로젝트 코어 개발자인 나동희 님하고 같이 차를 타고 가며 PyCon US 얘기를 할 때만 해도 분명했다. 열흘 이상 자리를 비우기에는 업무도 부담이지만, 학기 중인 아이들 등하교도 걱정이었다.
그 후로 다른 분들이 얘기해도 그저 “잘 다녀오세요” 인사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PyCon US의 아시아 그랜트* 비율이나 참여율이 저조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곧 PyCon US의 얼리버드 티켓이 오픈되었다는 얘기 역시 들려왔다. 그랜트는 어차피 떨어질 수도 있으니, 한 번 지원이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서 얼리버드 티켓을 구매하고 그랜트까지 신청하게 되었다.
*그랜트: PyCon에 참여하고 싶지만, 재정적인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재정 지원 프로그램
혼자 파이콘에 다녀오면, 한국에서 남편 혼자 애 둘을 돌보기 쉽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딸을 데리고 가기로 하고 함께 그랜트를 신청했다. PyCon 한국에도 재정지원 프로그램이 있었다. 함께 그랜트를 신청한 분은 한국에도 있었으니 미국에도 같은 프로그램이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찾아 보고 신청했다고 한다.
일단 가기로 결정한 다음, 여러 명이 함께 가야 재미있을 것이니 주변 분들에게 같이 가자고 권유했다. 덕분에 꽤 많은 사람이 그랜트를 신청했다. 작년에는 아시아 그랜트 비율이 정말 낮았다는 얘기 역시 이들을 부추기는 동기가 되었다. 결국 올해 한국에서는 지난해보다 많은 사람이 그랜트를 받았다. 물론 그랜트를 받지 못했음에도 함께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랜트를 받으려면 지금까지 파이썬 관련 어떤 활동을 해왔으며,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 적어야 했다. 그동안 파이썬과 파이콘 관련 활동을 오래 해왔는데, 그간 여러 활동을 다 끄집어내 적었다. 마이크로소프트 MVP 갱신 서류 제출을 위해 작성해 둔 지난해 활동 기록도 잘 활용했다. PyConKR, PyConAPAC, PyLadies Online 콘퍼런스에서도 발표자로 참여한 경험도 잊지 않았다.
(미리보기지만, PyConUS에서 US Chair인 마리아타를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만나서 인사를 건넸다. 지난해 PyLadies Online 콘퍼런스에서 발표했었다고 얘기하니 놀랍게도 마리아타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엄청 감사했다. CPython 코어 컨트리뷰터이기도 마리아타는 내게 연예인과도 같은 분인데, 그런 개발자가 나를 기억해 주다니 너무나도 영광스러운 기억이다.)
아무튼 이런 경험 덕분인지, 다행히도 그랜트를 받을 수 있었다. 놀라운 점은 초등학생인 딸도 그랜트가 되었다는 점이다. 내 딸은 비록 초등학생이지만, 엄마와 함께 PyConUS에 꼭 참여하고 싶으며 앞으로도 파이썬을 배우고 싶다고 작성했다. 이처럼 활동 내역이 많지 않은 사람이 그랜트가 되기도 했다. 어떤 기준으로 그랜트를 선발하는지는 명확히 모르지만, 첫 참여나 파이레이디스(PyLadies) 기금으로 그랜트를 받을 수 있는 이들이 우선 선발되는 듯하다. 만약 파이콘에 참여하고 싶다면 너무 겁먹지 말고 그랜트를 신청해 보길 바란다.
이왕 이렇게 된 일, 가족이 모두 함께 가자고 해서 4인 가족이 움직이기로 했다. 아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인 지금까지 PyGame으로 만든 게임이 제법 많다. 그러니 그 게임을 만든 이야기로 OST(Open spaces)를 해도 괜찮겠다 생각이 들었다.
PyCon US 2024는 5월에 열렸다. 하지만 24년 초부터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함께 가는 분들과 꾸준히 잡담을 나눴다. 그 방에서 ESTA(미국 전자여행허가서)라든지, PyCon US 홈페이지를 통한 호텔 예약이라든지, 사전 준비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혼자 준비했다면 어리버리하다가 미국 근처도 못 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난생처음 미국에 가보는 것이었다.) 이렇게 가는 김에 아주 재미있게 즐기다 오기로 마음먹었다.
소심한 성격을 극복하려 일단 파이레이디스 자원봉사를 신청했고, 라이트닝 토크도 준비했다. 모두 다 그랬겠지만, 가기 전날까지 계속 일을 했다. 가는 날도 공항에서 메일 답장과 업무를 했다. 그러다 보니 준비가 부족해 라이트닝 토크에 대한 자신감이 줄어 든 것은 문제였다.
그래도 가족과 함께 간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혼자 가면 옷도 현지에서 구해 입는 등 서바이벌 그 자체였을 거다. 4인 가족이 함께 가니 햇반, 김, 라면과 소고기 고추장을 트렁크 하나 가득 채울 만큼 샀는데, 육류 성분이 들어간 건 금지 물품이라고 해 짐을 다시 싸는 해프닝도 있었다. 대신 빈 트렁크에 부스에서 자원봉사 할 때 사용할 전통 과자와 사탕을 챙겼다. 약과, 달고나, 믹스커피, 양갱 등을 담았다. 이처럼 같이 가는 이들과 무엇을 가져갈까, 한국 개발자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얘기하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다. 다과는 실제로 부스에서 자원봉사를 할 때 많은 분과 링크드인 친구를 맺고 친근감을 더하기 위한 좋은 소재가 되었다.
피츠버그 공항에 내려 짐을 찾으러 가는 길에 ‘Welcome to PyCon US’가 적힌 전광판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사진을 찍어 PyCon US 원정대 메신저에 공유했다. 예전에 클리블랜드에서 열릴 때도 비슷한 이벤트가 있었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피츠버그에서도 이를 보게 될 줄이야!
PyCon US 관련 정보는 X, 링크드인 등 SNS에도 올라오지만, 마스토돈이라는 미디어 서비스에서 가장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었다. 이처럼 PyCon US 관련 SNS 채널에 자원봉사 같은 행사에 좀 더 능동적으로 참여할 기회가 눈에 많이 띄었다. 짐을 기다리며 마스토돈에서 행사장으로 가는 28X 버스 정보를 접했다. 버스 티켓을 키오스크에서 구매할 때 버스가 떠난다며 우리 가족을 챙겨준 사람들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마찬가지로 콘퍼런스에 가는 분들이었다.
PyCon US 2024 원정대 채팅방에는 파이썬의 창시자, 귀도 반 로섬(Guido van Rossum)을 봤다는 증언이 쏟아지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 부스에서 정말 가까이 볼 수 있었다”는 등 메시지에 귀도를 실제로 볼 수 있을까 설레기 시작했다.
실제로 행사가 끝날 때까지 그를 생각보다 자주 볼 수 있었다. 귀도는 항상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PSF(Python Software Foundation) 부스에는 그의 등신대도 있었다. (이 등신대는 행사 막바지 파이레이디스 옥션에서 아주 비싼 가격에 팔렸다. 등신대를 낙찰받은 분은 진짜 귀도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첫날은 에듀케이션 서밋(Education Summit)이었다. 같이 간 동료가 파이썬 소프트웨어 재단의 펠로인 앤서니 쇼(Anthony Shaw)를 만나보라고 했는데, 그가 누구인지 찾기 어려웠다. 앤서니 쇼가 우리 집 책장의 “CPython 파헤치기”를 쓴 저자였다는 건 뒤늦게 알았다.
아주 유명한 교육 프로그램, PY4E(Python for Everybody)를 만든 찰스 세브란스(Charles Severance) 교수님도 봤다. 기회가 되면 가서 인사하고 한국에서 PY4E 스터디의 라이브 코치가 나였다고 자랑하고 싶었는데, 결국 기회가 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이처럼 행사장에서는 한국에서 보았던 책의 저자, 유명한 강의의 튜터, 교수와 개발자를 정말 많이 만날 수 있었다.
PyCon Talks 첫날 오프닝에는 여러 지역의 주요 기여자들 영상이 나왔다. 그러다 CPython 코어 컨트리뷰터인 동희 님이 등장해 깜짝 놀랐다. ‘와! 우리 원정대 채팅방 멤버 중 한 분이라고요.’ 서로 사진을 공유하고 채팅방이 난리 났다.
나는 파이레이디스 부스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다. 봉사활동 타임은 지난해 파이레이디스 컨퍼런스에서 함께 발표했고 APAC에서 만났던 개발자, 마야(Maya)와 같은 시간대로 신청했다.
부스 자원봉사자의 역할은 도네이션을 위한 티셔츠 판매와 파이레이디스 런천, 디너에 대한 안내였다. 지난해 파이콘 한국에서 파이썬 로고 티셔츠를 완판하는 등 티셔츠 판매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이번 역시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었다.
PyCon US는 서울 코엑스보다 훨씬 큰 공간에서 열린다. 특히, 행사장에서 거의 모든 끼니가 제공되는 것이 특징이다. 커뮤니티 모임, 스폰서 디너, 파이레이디스 옥션 디너 등 식사 자리가 많아 혼자 밥을 먹거나 무엇을 먹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티켓 가격이 400달러였는데, 물가를 생각하면 밥만 먹어도 티켓이 비싸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아침, 점심, 저녁에 커피까지 행사장에서 해결했다. 비건을 위한 식사도 기본으로 함께 제공되었다.
PyCon US의 라이트닝 토크는 5분 이내로 짧게 진행하는 발표다. 기술 발표와 다르게 주제에 제한이 없으며, 꼭 파이썬 관련 내용이 아니어도 된다는 특징이 있다.
나는 PyCon 한국 라이트닝 토크에서도 얘기했던 파이썬 관련 유튜브 채널 운영 계기와 과정을 준비했다. 첫 날, 숙소에 돌아와 업무 메일에 답장하다 라이트닝 토크에 선정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다음 날 오전 발표였기에 열심히 슬라이드를 만들고 뒤늦게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가족들에게 열심히 호응할 것을 부탁하고 도착했는데, 순서가 선착순으로 정해졌다. 조금 늦게 도착했는지 12번째 발표여서 차례가 오후로 밀렸다.
그렇게 가장 발표하고 싶었던 두 번째 날 오후에 기회를 얻었다. 정작 슬라이드 읽느라 반응이 어떤지를 살필 여유조차 없었는데, 다행히도 호응이 좋았다고 주변 분들이 얘기했다. 발표가 끝나고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특히 Learner Python 사이트의 운영자인 루벤 러너(Reuven M. Lerner)가 인상적이었던 점을 매우 친절하게 말해 주어 영광이었다.
그렇게 라이트닝 토크를 마치니 언젠가 기술 세션 발표에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 가족들도 다음에는 본인이 하겠다며 서로 나섰다. PyCon US에 또 올 수도 있겠다 싶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둘째 날 저녁에는 파이레이디스 옥션이 열렸다. 모두 PyCon US의 가장 재미있는 행사가 이 옥션이라 말했다. 특히 함께한 몇 분은 미리 이천까지 가 기념 도자기를 만들어 참여했다. 이 도자기는 무려 1,300달러 정도에 팔렸다.
5살쯤으로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그린 그림도 서로 사겠다고 환호했다. 여기저기서 부르며 서로 가격 올리기를 부추겼다. ‘아니,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지?’ 싶었는데, 볼펜 한 자루도 몇백 달러에 팔리는 곳이라고 들었다. 옥션 수익이 기부되는 만큼 참여 자체가 의미 있는 듯했다. 나도 다음에는 PyCon US 참여 여부에 상관 없이 옥션에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받은 그랜트를 다시 기부할 수 있는 셈이니까. 지금도 가족들과 무얼 만들어 도네이션할지 가끔 얘기하고 있다.
지난해 PyCon APAC에 이어 US에도 참여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아는 사람이 생겼다. 이전에 누군가 PyCon이 마치 명절 같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나 역시 PyCon US 첫 참여인 만큼 다양한 이들과 만나 인사하는 것에 더 중점을 두었다. 콘퍼런스 내내 열심히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인사했으니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하지 않았나 싶다. 기술 관련 발표는 유튜브 채널에 영상으로 공개하니 천천히 익히기로 했다.
특히 올해는 한국인이 PyCon US에 가장 많이 참여한 해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워낙 거리가 먼 탓에 PyCon US는 아시안 참여 비율이 낮다. 그래서 PyCon US, 나아가 다른 지역의 PyCon에 참여하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요즘IT 시리즈 글로 이번 경험을 공유하려고 한다.
PyCon US에 참여한 이들의 다양한 관점을 나누기 위해 준비했다. 그 시작을 맡아 생생한 현장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경험 위주의 글을 썼다. 이번 후기 시리즈가 좀 더 많은 개발자가 오픈소스 생태계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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