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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라이엇 게임즈에 한국 대표로 합류해 서울에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리그 오브 레전드’를 국내에 출시했다. 그 후 미국 로스앤젤레스 본 사로 건너가 최고 경영자에게 보고하는 최고 임원(Executive Team)으로 일하면서 전 세계의 e스포츠 및 퍼블리싱 프레지던트를 맡았다. 이후 2021년 퇴사하고 한국으로 귀국해 현재는 벤처캐피털 비트크래프트에서 아시아 지역 게임 스타트업 투자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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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 상생 작전 펼친 '리그 오브 레전드' 국내 출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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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라이엇 게임즈에 한국 대표로 합류해 서울에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리그 오브 레전드’를 국내에 출시했다. 그 후 미국 로스앤젤레스 본 사로 건너가 최고 경영자에게 보고하는 최고 임원(Executive Team)으로 일하면서 전 세계의 e스포츠 및 퍼블리싱 프레지던트를 맡았다. 이후 2021년 퇴사하고 한국으로 귀국해 현재는 벤처캐피털 비트크래프트에서 아시아 지역 게임 스타트업 투자를 담당하고 있다.

 

지사장으로서 본사 퍼블리싱 프레지던트로 경험한 라이엇 게임즈 퍼블리싱을 3가지 주제로 소개한다. 먼저 전략을, 그다음은 구체적인 지역화 사례를, 그다음은 한국 지사 이야기다. 시간순으로 본다는 세 번째 이야기가 제일 앞에 와야 하겠지만, 전체 전략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되어 이렇게 순서를 바꿨다.

 

<출처: 라이엇게임즈>
 

엔진을 바꾸며 비행하기

‘리그 오브 레전드’의 한국 출시를 앞두고 상황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라이어터*들에겐 익숙한 “엔진을 바꾸면서 비행기가 날고 있다!”라는 말은 빈 말이 아니었다. 일단 목적지 방향으로 비행기를 띄우고 떨어지지 않도록 그때그때 엔진을 고쳐가며 성능을 높여야 했다.

*라이어터: 라이엇게임즈의 직원을 이르는 말

 

2011년 12월에 디데이가 있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백지상태에서 사람부터 충원하고 조직을 체계적으로 만들어 회사 모양새를 갖추어나갔다. 미국 본사와 한국 지사 사이의 관계도 정해진 것이 하나도 없었기에 모든 쟁점을 하나하나 조율하며 각자의 역할을 분명히 했다.

 

2002년에 AWS가 공식적으로 등장했지만 아직 서울 리전이 없었다. 그런데 꼭 서울 리전이 있고 없고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은 실시간 대전이라서 짧은 레이턴시*가 중요했다. 네트워크뿐 아니라 서버 성능도 중요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이 정도 성능을 요하는 게임은 AWS를 사용하지 않았다. 직접 하드웨어를 구입해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 기존 방식대로 IDC에 서버를 구축했다. 델 컴퓨터를 배편으로 받아 IDC로 옮기면 본사 서버 담당자가 비행기를 타고 와서 설치했다.

*latency: 데이터 패킷이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

 

서버를 준비하며 마케팅 플랜도 마련했다. 대대적인 TV 광고, 지하철역 광고판에 붙이는 광고 등 당시 흔히 볼 수 있는 마케팅은 하고 싶지 않았다. 플레이어들과 소통하고 가까워질 수 있는 활동을 원했다. 머리를 맞대고 라이엇 게임즈의 미션에 충실하면서 플레이어들에게 다가갈 방법을 고심했다. 그 결과 플레이어들과 직접 소통하는 방법을 고안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라이어터들이 플레이어들과 ‘리그 오브 레전드’를 플레이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플레이어들은 실제 라이어터들이 자사의 게임을 즐긴다는 사실에 놀랐다. “게임을 맘 놓고 할 수 있다니!” 라이어터 역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포럼에서 플레이어들의 질문에 답을 주고받으며 적극적으로 교류를 가졌다. 그 결과 포럼은 라이어터와 플레이어 사이에 우호적인 대화가 빈번히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었다. 한국 플레이어의 마음속으로 더 다가갈 방법도 고안했다. 바로 한국 플레이어를 위한 맞춤형 콘텐츠와 경험을 제공할 한국형 챔피언을 만드는 일이다. 이 작업은 출시 전부터 진행되었다. 한국형 챔피언으로 구미호를 낙점하고 나서 챔피언 이름을 공모했는데 경합한 끝에 ‘아리’가 탄생했다.

 

많은 사람에게 ‘리그 오브 레전드’를 알리는 방법으로 미디어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출시 전 몇 달을 각종 미디어의 기자들을 직접 만나 라이엇 게임즈와 ‘리그 오브 레전드’의 미션 및 전략을 전달하는 데 내 개인업무 시간 대부분을 쏟아부었다. 또한 2011년 9월에 미국에서 온 동료들과 함께 미디어 데이를 가졌다. 많은 사람에게 알렸으니 게임 입문자를 플레이어로 안착시킬 방법도 필요했다. 고민 끝에 ‘리그 오브 레전드 입문 가이드’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게시하고, 숙련된 플레이어들이 새로운 플레이어들을 코칭하는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당시 인기 있던 ‘카오스’를 하는 탑 게이머들을 직접 찾아 만나 ‘리그 오브 레전드’를 소개했다. 플레이하도록 설득하고, 커뮤니티에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마지막 퍼즐 조각으로 PC방 공략 방안이 필요했다.

 

한국은 PC방의 성지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인 PC로 게임하는 사람도 많지만, PC방 이용률도 만만찮기 때문에 관련 마케팅도 온라인 게임 퍼블리싱에서 너무나 중요했다. 게임 순위가 PC방 위주로 집계될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모여서 왁자하게 플레이하기 좋은 장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PC방에서 플레이되지 않는 게임은 입소문을 타기 어렵다. 그래서 PC방 대표님들의 협조를 끌어내야 했다. 로테이션과 상관없이 모든 챔피언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등 PC방 전용 혜택을 본사에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들어본 적도 없는 외국산 게임의 아직 구현되지도 않은 혜택만으로 설득될 일이 아니었다. 결국 권정현 상무와 PC방 사업 매니저가 같이 차를 몰고 PC방 투어에 나섰다. 2주 동안 전국의 주요 PC방 대표님들과 프랜차이즈 담당자를 만나 ‘리그 오브 레전드’의 장점과 혜택을 설명했다. PC방 사장님들은 영업 담당자가 온 줄 알았다가 상무가 직접 현장을 다닌다는 사실에 놀라곤 했다. 일정이 바쁘다 보니까 제대로 된 숙소를 잡기도 어려워서 찜질방에서 쪽잠을 자고 다시 새벽에 출발하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그 덕분인지 초기부터 PC방 순위가 나쁘지 않게 나왔다. 지금은 몇 년째 게임트릭스 1위를 유지하고 있으니 고생한 보람은 있다고 생각한다.

 

PC방 공략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이어서 살펴보자.

 

 

PC방 상생 작전

‘리그 오브 레전드’ 출시를 준비하면서 국내 PC방에 대한 전략을 마련할 목적으로 PC방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및 FGI 소비자 심층 조사 등을 시행했다. 그 결과 PC방 영업에서 제일 가치로 ‘상생의 경제학’을 도출했다. 이어서 ‘영업망이 아니라 파트너다’라는 실천 원칙도 세웠다. PC방 성과가 ‘리그 오브 레전드’ 성패를 가를 거라 생각했다. 따라서 플레이어가 집이 아니라 PC방에서 더 재미있게 ‘리그 오브 레전드’를 플레이할 프로모션이 필요했다. 전략이 성공한다면 PC방에 플레이어들이 몰려갈 것이고, PC방 점유율도 올라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윈윈, 상생의 경제학이다.

 

게임 서비스를 오픈하면서 ‘리그 오브 레전드’의 프리미엄 PC방 가맹 혜택을 발표했다. 유료 프리미엄 PC방 서비스에 가맹한 PC방에는 모든 챔피언을 사용할 수 있는 파격적인 혜택을 부여했다. 그뿐만 아니라 가맹PC방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에게 보너스 IP(Influence Points) 20퍼센트를 추가로 제공하기로 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모든 챔피언을 플레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출시 직전, 적정 가격 등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던 당시에 PC방 사장님들을 모시고 FGI를 진행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의 PC방 붐이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 시점에 사장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서비스 가격이 아니었다. “정말 게임 플레이어들이 PC방에 올 만한 의미 있는 혜택을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MMORPG처럼 집에서 혼자 즐기기 좋은 게임이 많은 시기였고, 각 게임사별로 PC방 프리미엄 혜택을 제공하긴 했지만 집으로 향하는 발길을 바꾸기에는 불충분했다. 정말 임팩트 있는 꾸준한 혜택이 제공된다면 좋겠다는 의미였다. PC방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심사숙고해 만든 대안이 PC방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를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에게는 모든 챔피언을 무료로 선택,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혜택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 본사를 설득해야 했다. 사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무료로 누구나 이용 가능한 게임이고, 당시 게임 내에서 로테이션 방식으로 7종의 챔피언이 무료로 제공되었다. 하지만 ‘랜덤 7종’에 국한된 것이었다. 한국 서비스 시작 당시 게임 내 챔피언은 아리를 포함해 88종이었다. 이 챔피언들을 PC방만 가면 모두 무료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큰 결정이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것이 매출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국 오피스에서는 이 방법이 친구, 지인과 함께 플레이할 때 더욱 재미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특성에 맞는 방법이며, 또 PC방과 함께 상생하고 성장할 수 있는 방향이라 확신했다. 결국 본사 경영진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지속적으로 챔피언을 기획하고 추가하면서 게임의 재미를 더하는 구조다. 그랬던 만큼 신규 챔피언이 출시될 때마다 PC방에서 이 챔피언을 플레이해 볼 수 있다는 것은 실제 플레이어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라이엇 게임즈와 PC방 그리고 플레이어 3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최고의 상생이었다.

 

PC방 상생 작전의 일환으로 ‘PC방 토너먼트’도 기획했다. 2012년 여름 처음 시행한 ‘PC방 토너먼트’는 e스포츠의 저변 확대를 통해 플레이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도록 준비한 아마추어 이벤트였다. ‘리그 오브 레전드’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으며, 토너먼트 행사가 열리는 곳도 별도의 행사장이 아니라 참여 의사를 밝힌 동네 PC방이었다. 말 그대로 바닥에서부터 ‘리그 오브 레전드’의 기세를 확인할 수 있는 풀뿌리 동네 리그로서 소임을 다했다.

 

PC방 토너먼트 2년째가 되던 2014년 6월에는 참가 경쟁률이 310퍼센트로, 매 대회마다 실제 참가 가능한 인원의 3배 이상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PC방 사장님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PC방 토너먼트는 유저들에게는 새로운 재미를, PC방 사장님들에게는 매출 향상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PC방과 이를 찾는 고객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매장 홍보와 손님에 대한 서비스 향상에 도움이 됐다”, “손님들도 좋아하고 PC방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다”, “비수기에 이러한 대회가 영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사장님들의 말이다.

 

 

마케팅, 별들에게 물어봐

클로즈 베타 준비가 한창이었다. 한국 서비스 시작을 알리고 기대감을 올려야 하는 시점이었다. 지금은 페이스북, 틱톡, 인스타그램 같은 SNS가 대중적이지만 2011년에는 그렇지 못했다(심지어 틱톡은 그 당시 존재하지도 않았다). 지금과 달리 SNS나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활발하지 않았기에 주로 인터넷, TV, 미디어 광고를 했다. 우리는 판에 박힌 방식보다 좀 더 새롭고 진정성 있는 방식을 원했고 여러 번 아이디어 회의를 가졌다.

 

“e스포츠의 ‘별’들에게 게임 후기를 받아보는 게 어때요?” 누군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듣자마자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비용이 문제였다. “스타 선수들의 협조를 구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 텐데…” 스타트업인 라이엇 게임즈는 예산이 빡빡했다. 지나치게 많은 마케팅 비용을 사용하면 오픈 베타와 정식 출시에 쓸 예산이 부족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파급력이 큰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자 점점 더 간절해졌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최영우 e스포츠 팀장(현재 아프리카티비 글로벌 사업 상무)이 자진해 손을 들었다. “조심스럽지만 친분이 있는 선수들과 업계 관계자에게 한번 부탁을 해보겠습니다.” 최 팀장은 업계에 워낙에 잔뼈가 굵어 아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빈손으로 스타들에게 추천 글을 받아낼 수 있을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애초에 안 될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안 될 거라 생각하고, 기대하지 말자고 마음먹었건만 사람 마음이 그렇게 안 된다. 마음이 자꾸만 최 팀장으로 향한다. “어떻게 이야기는 전해봤어?”라고 묻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렀다. 

 

며칠이 지났다. 최 팀장이 방문을 두드렸다. “흔쾌히 해준다고 합니다.” “와! 그래!”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수고했어! 근데 누가 해준대?” “이윤열 선수, 장재호 선수, 홍진호 선수, 김정균 선수(당시 선수, 그 후 코치), 김동준 해설가입니다.” 나는 깜짝 놀랐다. e스포츠의 살아 있는 레전드, 그 외의 말이 필요할까? 한 명이라도 섭외가 된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티비에서만 보던 그 유명한 스타들을 죄다 섭외했다니! 이름을 듣자마자 거짓말처럼 아주 찔끔 눈물이 났다. 잠깐 천장을 바라보았다. ‘살았다.’

 

이윤열 · 장재호 · 홍진호 등 유명 e스포츠 선수들, 김정균 코치, 김동준 게임 해설가가 ‘리그 오브 레전드’를 직접 플레이한 소감을 담은 인터뷰 영상을 만들었다. 클로즈 베타 테스트 기간에 맞혀 이 영상을 라이엇 게임즈 한국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이윤열 선수는 “다양한 챔피언을 통한 끝없는 전략이 가능한 게임”이라고 말했고, 홍진호 선수는 “요즘 주변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만 한다”는 말로 칭찬을 대신했다. 또 장재호 선수는 게임의 작품성에 높은 점수를 주며 팀플레이를 강점으로 꼽았다. 이미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단에서 활동 중이었던 김정균 선수는 “PC방만 가도 북미 서버로 플레이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며 ‘리그 오브 레전드’가 공식적으로 출시되면 이후 참여 플레이어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김동준 해설가는 “제2의 국민 게임이 되지 않겠냐”는 예상을 내놓기도 했다.

 

 

클로즈 베타 테스트

클로즈 베타 테스트는 공식 출시 전에 플레이어 피드백을 듣고 문제점을 파악하는 절차다. 공식 출시는 아니지만 몇 달 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준비했고 처음으로 한국 플레이어에게 선보인다는 기대도 있었지만 걱정도 컸다. 클로즈 베타 테스트는 양날의 검이다. 이 기간 평가가 좋으면 이후에는 순풍, 그렇지 않으면 무풍이다. 우리나라는 워낙 게임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서 피드백이 실시간으로 공유되기 때문에 입소문이 빠르다. 커뮤니티 평가에 클로즈 베타 테스트만 아니라 정식 출시 후 운명이 크게 좌우될 수 있다. 제발 긍정적이길! 클로즈 베타를 시작하면서 많은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다. 좀처럼 평정심을 찾기가 어려웠다.

 

2011년 11월 15일, 드디어 주사위는 던져졌다. 클로즈 베타 서비스가 시작된 날이다. 오후 4시, ‘리그 오브 레전드’ 한국 서비스를 개시했다. 플레이어들의 접속이 이어졌다. 게임 커뮤니티에는 기존에 북미 서버에서 플레이하던 플레이어들과 새로 유입된 국내 게이머들이 한데 어우러져 클로즈 베타 테스트에 대한 의견과 플레이 팁을 나누는 게시글로 성황을 이루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 공식 홈페이지에도 클로즈 베타 테스트에 대한 피드백이 접수되었다. 하나하나 놓칠 수 없었다. 서버를 모니터링하면서 게시물을 하나하나 읽어나갔다. 가능한 모든 채널을 열어둠으로써 직접 경험한 구체적인 의견을 최대한 많이 듣고자 했다.

 

“북미 서버에서는 영어 때문에 적응하기 어려웠는데 한글화 된 버전으로 플레이할 수 있어 편하다”, “한국 서버에서 게임하니까 훨씬 환경이 좋다”, “테스트 기간 동안 제공되는 10만 RP로 다양한 아이템을 체험해 볼 수 있어서 좋다” 등 클로즈 베타 테스트에 대해서 흡족해하는 플레이어의 의견이 속속 이어졌다.

 

그런데 피드백과 행동이 달랐다. 테스트 키를 배포한 만큼 플레이어 참여가 이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플레이어 수까지 줄었다. 하루 이틀 플레이하고 다음날 발길을 끊는 것이다. ‘게임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재미없나?’ ‘우리가 모르는 문제가 있나?’ 갖가지 추측이 들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5대 5 실시간 대전 게임이기 때문에 플레이어 수가 부족하면 매치메이킹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게임을 떠나게 된다. 그러면 플레이어 수가 거듭 줄어드는 늪에 빠질 수도 있다. 발 빠르게 추가 베타키를 배포했다. 유명 커뮤니티마다 글을 남겨 추가키 배포 소식을 알렸다.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유입되었지만 그들 역시 오래 머물지 않았다.

 

3주가량 열린 클로즈 베타 기간이 끝났다. 다행히 서버는 잘 버텨주었다. 클로즈 베타가 버그나 서버의 안정성만 확인하는 절차는 아니다. 무엇보다 흥행면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얻어 성공적이었다 얘기할 순 없었다. ‘과연 이 게임이 한국에서 먹힐까?’ ‘어떻게 이탈 문제를 해결하지?’ 클로즈 베타 테스트를 거치고 나면 좀 나아질까 싶었는데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플레이어 피드백과 데이터를 분석해 오픈 베타 때까지 미진한 부분을 보완해 나갔다. 마케팅, PC방 혜택, 커뮤니티 모니터링, 서버 준비 등 시간은 없는데 할 일은 넘쳐났다.

 

 

운명의 시간 : 오픈 베타 서비스

클로즈 베타 테스트에 이어 2011년 12월 12일부터는 2주간 오픈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다. 참여를 원하는 플레이어는 사전에 ‘리그 오브 레전드’ 한국 공식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과 클라이언트 다운로드를 한 후에 한국 서버 오픈에 맞춰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오픈 베타 서비스는 사실상 정식 출시와 같은 단계였다. 실제로 PC방 게임 순위를 게재하는 게임트릭스 등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의 한국 서비스 공개일과 게임 등록일을 12월 12일로 삼았다. 이날을 기점으로 게임 순위 경쟁에 돌입한 것이다.

 

오픈 베타 서비스 기간 동안 이전에 만든 북미 서버 계정에 한해 소환사를 제외한 플레이어 계정 정보(XP 수치 포함 레벨, 게임 레이팅, 전적, 훈장 RP, IP, 룬, 룬페이지 정보, 챔피언, 스킨, 부스트 등 구매해 소진되지 않은 상품 모두)를 한국 서버로 무료로 이전할 수 있게 했다. 원래 9월 27일까지 생성된 계정에 한해 무료 계정 이전 혜택을 주려고 했으나, 이전 정책 발표 이후 북미 서버에 새롭게 가입한 유저들이 급증하면서 12월 11일까지 생성된 계정으로 대상 폭을 넓혔다. 그만큼 ‘리그 오브 레전드’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는 신호였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오픈 베타 서비스 개시일로부터 2주 내에 북미 계정의 국내 ‘리그 오브 레전드’ 사용자가 한국 서버로의 이전 신청을 마치면 14일간 사용할 수 있는 IP 부스트, 챔피언 케일과 은빛 케일 스킨 등 다양한 혜택을 추가로 제공했다. 원래대로 기준을 적용하고 이후에 플레이어들이 비용을 내는 방식이 제일 상상하기 쉬운 방식이었지만 우리는 당장의 매출이나 실적보다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고 더 많은 사람이 기꺼이 ‘리그 오브 레전드’를 즐기기를 바랐다.

 

2011년 12월 12일 오전에 서버를 오픈했다. 클로즈 베타가 끝나고 오픈 베타를 준비하면서 제대로 잠을 자본 적이 없었다. 지사 설립, 채용, 본사와 협업 업무를 하며 6개월을 보냈다. 가히 살인적인 스케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오픈 베타 전날에도 한숨도 못 자고 출근했다.

 

운명의 시간이 되었다. 조금씩 플레이어들의 접속이 늘었다. 잘 버텨주던 서버는 저녁이 되면서 더 많은 플레이어들이 접속하자 불안정해졌다. 래그가 생긴다는 글이 일제히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첫인상이 중요한데 문제가 지속되었다. 아무리 게임이 좋아도 서버에 문제가 생기고 게임하기 어려운 환경이면 플레이어들이 발길을 돌릴 수 있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굳이 서버 접속도 안 되는 게임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몇 백 개의 게임이 서비스 중이었다. 잠시 발길 돌린 플레이어를 많은 어벤저급 경쟁 게임들이 서버를 팽팽 돌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아, 이러다 허무하게 무너지겠어.’ 식은땀이 흘렀다. 서버는 본사 직원들이 몇 달 동안 한국에 체류하면서 설치했다. 계획대로라면 출시 후에 바로 본국으로 출국해야 했다. 오랫동안 집과 가족을 떠나 타지에서 밤낮없이 일해온 탓에 그들도 지칠 대로 지쳤다. 뒷일을 맡을 로컬팀이 있었지만 아직은 본사팀에 비해 경험을 비롯해 대응 능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어 보였다. 나는 안정화 작업을 마무리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다행히 그 며칠 사이 서버는 눈에 띄게 안정화되었다. 이 정도면 당장의 서비스 운영에 큰 차질은 없어 보였지만 근본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꿈이야 생시야?

서버 문제가 차츰 개선되면서 더 많은 사람이 ‘리그 오브 레전드’를 찾았다. 오픈 베타 첫 주인 2011년 12월 12일~19일 주간 PC방 점유율 1.9퍼센트로 차트에 진입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10위권에 진입했다. 우리가 꿈꿔왔던 날이고 믿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한국 라이어터들은 하이파이브하며 환호했다. 본사에 게임트릭스를 캡처해서 실시간 공유했다. 그들도 너무 기뻐하며 축하 메시지를 일제히 보내왔다. 게임의 EPL, e스포츠의 종주국에서 10위권에 진입하다니. 조금 더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10위권 근처에 있는 게임 간의 점유율 격차는 워낙에 작아서 한 주 한 주 요동을 친다. 다시 10위 밖으로 밀려날 수 있으니 안전하게 8~9위까지라도 올려놓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우리 예상 밖의 일들이 벌어졌다. 2012년 1월 마지막 주 PC방 게임 랭킹 순위에서 전주보다 2 계단 올라 4위를 차지했다. PC방 점유율 6.61%를 기록하면서 ‘스타크래프트(6.33%)’를 제치고 종합 4위에 올라섰다. 출시 2달도 지나지 않은 신생 게임이 ‘국민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앞질렀다. 앞서 김동준 해설가가 이야기했던 “제2의 국민 게임이 되지 않겠냐”는 말이 피부로 와닿기 시작했다.

 

당시 리그 오브 레전드 위로는 ‘피파온라인 2’가 3위, ‘서든어택’이 2위 그리고 ‘아이온’이 1위였다. 모두 게임사에 큰 자취를 남긴 쟁쟁한 게임들이다. 그런 게임들을 차례대로 제치고 2012년 3월, 출시 3개월 만에 점유율 17%로 1위를 차지했다. 폭발적인 인기였다. 꿈이야 생시야? 지인에게서 처음으로 “라이엇 게임즈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듣기까지 내게 라이엇 게임즈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회사다. 그러니 입사를 하고 한국 지사장으로 일하면서도 이런 순간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10위 안에는 들어가 보자! 망하지는 말아 보자!’라는 생각으로 달려왔다. 그런데 1위라니, 역시나 게임은 출시 후에나 운명을 알 수 있는 것이다.

 

1위에 올랐지만 천하제패를 한 것은 아니었다. 한동안은 엎치락뒤치락 혼전이었다. 5월 중순에 ‘악마의 부활’이라는 캠페인과 함께 ‘디아블로3’가 뜨거운 기대를 모으며 출시되었고, 6월에는 ‘블레이드 앤 소울’이 출시되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3위로 내려왔다. 1위라는 영광의 시간은 짧았다. 우리는 또 다시 추격전에 돌입했다.

 

디아블로 3와 블레이드 앤 소울 등에 밀려 순위가 내려앉자 고민이 많았다. 한 번 1위를 맛보고 나니 3위는 성에 차지 않았다. 뭐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일리 있는 생각이었다. 어떤 순위든 가장 윗자리에 있다는 건 대단한 메리트다. 뭘 해야 하는지, 뭘 사야 하는지 모를 때도 해당 품목이나 서비스가 속한 영역의 1위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다. 게임보다 주관적이고 자유롭고 적극적인 선택이 이루어질 것 같은 책이나 영화 같은 문화적 성격을 띠는 상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무리하게 1위에 오르기 위해 ‘사재기’를 하거나 댓글 조작을 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것이다. 그만큼 1위 자리는 여러모로 중요하다.

 

PC방에서 순위를 올리기 위한 ‘PC방 이벤트’ 등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있었다. 마케팅적으로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제안이었지만, 나는 과감하게 제안을 반려했다. “한 주 한 주 순위에 연연해서 충격 요법처럼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평소 해야 할 일을 하자”고 직원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한다. 흔들리지 않고 각자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팀원들을 잘 다독일 것을 팀 리더에게 특별히 강조했다. 여름을 지나면서 순위는 안정되기 시작했고, 9월이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리그 오브 레전드가 거침없이 1위를 내달렸다. 레전드 시대가 열렸다.

 

일반적인 회사라면 시장에서의 성공을 목적지로 설정할 것이다. 게임업계라면 각자 자기가 출시한 게임이 1위 자리에서 오래, 큰 성공을 거두기를 원할 것이다. 많이 판매하는 것도 중요하고 오래 판매하는 것도 중요하다. 좋은 평가까지 거둔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결국 성공은 순위표의 어느 자리에 있느냐로 판단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라이엇 게임즈는 달랐다. 창업자 브랜든과 마크, 글로벌 담당인 니콜로 등 회사의 중추인 사람들의 비전은 남달랐다. 이들은 1위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 순위는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의 결과일 뿐이었다. 라이엇 게임즈의 목표, 목적지는 ‘세계에서 가장 플레이어를 우선으로 하는 회사’였다. 말뿐인 마케팅 구호가 아니라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진심을 다했다. 그런데 지사장인 내 입장은 성적에 자꾸 마음이 갔다. 그때까지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플레이어를 우선으로 하는 회사’라는 미션을 완전히 체화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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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래빗은 쓰고 읽고 펴내면서 더 나은 나를 만드는 시간, 가치가 성장하는 시간이 되는 책을 만듭니다. 나눌수록 더 커지는 지식. 지식을 글로 정리하고, 나누는 책을 통해 더 큰 가치를 만들어갑니다. <개발자원칙>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서비스 디자인씽킹> <텐초의 파이토치 딥러닝 특강>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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