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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라이엇 게임즈에 한국 대표로 합류해 서울에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리그 오브 레전드’를 국내에 출시했다. 그 후 미국 로스앤젤레스 본사로 건너가 최고 경영자에게 보고하는 최고 임원(Executive Team)으로 일하면서 전 세계의 e스포츠 및 퍼블리싱 프레지던트를 맡았다. 이후 2021년 퇴사하고 한국으로 귀국해 현재는 벤처캐피털 비트크래프트에서 아시아 지역 게임 스타트업 투자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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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L 만든 '라이엇 게임즈' 글로벌 퍼블리싱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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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라이엇 게임즈에 한국 대표로 합류해 서울에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리그 오브 레전드’를 국내에 출시했다. 그 후 미국 로스앤젤레스 본사로 건너가 최고 경영자에게 보고하는 최고 임원(Executive Team)으로 일하면서 전 세계의 e스포츠 및 퍼블리싱 프레지던트를 맡았다. 이후 2021년 퇴사하고 한국으로 귀국해 현재는 벤처캐피털 비트크래프트에서 아시아 지역 게임 스타트업 투자를 담당하고 있다.

 

지사장으로서 본사 퍼블리싱 프레지던트로 경험한 라이엇 게임즈 퍼블리싱을 3가지 주제로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전략을, 그다음은 구체적인 지역화 사례를, 그다음은 한국 지사 이야기다. 시간순으로 본다면 세 번째 이야기가 제일 앞에 와야 하겠지만, 전체 전략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되어 이렇게 순서를 바꿨다.

 

라이엇 게임즈의 글로벌 퍼블리싱 전략

많은 기업의 궁극적 목표가 그렇듯 라이엇 게임즈 역시 ‘리그 오브 레전드’를 출시하기 전부터 글로벌 시장 진출을 계획했다.

 

라이엇 게임즈는 로스앤젤레스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플레이어들은 세계 여기저기 모든 곳에 있다. 그들이 사는 지역의 문화와 니즈가 다르고 독특하므로, 라이엇 게임즈는 각 지역에 적합한 방식으로 플레이어에게 접근하고 만족을 선사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대흥행을 이루며 성공적으로 세계 시장에 이름을 각인시켰다.

 

처음에는 지역별 게임 퍼블리셔들과 제휴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제휴를 맺은 퍼블리셔들이 플레이어에게 최고의 경험을 제공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라이엇 게임즈가 직접 퍼블리싱을 하기로 결정했다.  타지역에서 퍼블리싱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무척 힘들고 성공 사례가 많지 않다. 

 

제일 큰 이슈는 운영적인 측면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본사와 지사 간의 혼란 및 갈등이 심해지기 십상이다. 본사 직원들은 직접 글로벌 차원에서 결정하고 리드하기를 원하고 지사 직원들은 본인들이 지역 전문가로서 권한을 갖길 원한다. 게임 자체가 워낙 훌륭해 플레이어에게 외면받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다면, 단기적으로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내부 이슈가 대외적인 타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본사가 오너십를 갖고 있는 분야와 지사가 오너십을 가진 분야를 명확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라이엇 게임즈는 처음부터 본사와 지사 간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초기에는 센트럴(central)과 로컬(local)이라는 프레임워크를 사용했다. 센트럴은 글로벌 일을 하는 로스앤젤레스 본사에 있는 팀을 의미하고 로컬은 각 지사를 의미했다(로컬에는 북미 퍼블리싱팀도 포함된다). 센트럴은 글로벌하게 일관성을 유지하는 부분을 책임졌고 로컬은 지역별로 달라야 하는 부분을 책임졌다.

 

예를 들어, 캐릭터, 스킨, 맵, 게임 플레이는 어디서나 동일해야 한다. 이처럼 글로벌하게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 ‘게임 내의 콘텐츠(in-game content)’는 본사 개발팀이 담당한다. 그리고 각 캐릭터의 포지셔닝 및 에셋(asset)도 세계적으로 동일해야 했다. 이 영역은 본사에 위치한 글로벌 마케팅팀이 책임졌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플레이어들도 여전히 같은 게임을 한다고 느끼길 원했다. 그리고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e스포츠 대회를 진행하려면 세계 모든 플레이어들이 같은 게임을 해야 했다. 만약 지역별로 게임, 캐릭터, 맵 등이 다르면 글로벌 대회에서 고려할 사항이 훨씬 많아진다. 지사는 현지화해야 할 것 그리고 각 지역별로 달라야 할 것을 책임졌다. 예를 들어, 지사는 본사에서 만든 마케팅 가이드와 에셋을 활용해서 각 지역에 맞는 마케팅을 진행할 수 있다. 가령 서울 오피스는 한국 인플루언서와 함께 새 캐릭터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제작할 수 있고, 멕시코 시티 오피스는 스킨 세일 이벤트를 할 수 있고, 파리 사무실은 플레이어 토너먼트를 개최할 수 있을 것이다.

 

플레이어들은 다른 언어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문화도 다르고 게임에서 무엇을 어떻게 경험하고 싶은지에 대한 선호도도 다르다.

 

현지 팀들은 누구보다 자신들의 시장을 잘 알고 있다. 그들에게 어느 정도 실행 자율권을 주어야 해당 지역에서 장기적인 성공을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라이엇 게임즈는 지사가 소유한 범위 내에서 확실한 권한을 주었다. 라이엇 컬처에서 임파워먼트는 본사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지사에도 존재한다. 지사까지 수평적 문화를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 라이엇 게임즈의 각 지사는 본사에 승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결정을 내림으로써 시장에 대한 명확하고 간결한 이해를 바탕으로 각 시장의 플레이어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보고 라인도 단순화하고 명확하게 했다. 지사 내 직원들의 보고 라인은 모두 지사 내에 있었으며 최종 결정과 책임자는 지사장이다. 본사에 보고 하는 사람은 지사장뿐이다. 내가 한국 지사장을 맡았을 때는 한국의 모든 권한을 내가 가지고 있었고 서울 오피스에 있는 임원들은 모두 나에게 보고했다. 본사와 복잡하게 얽힌 매트릭스 관계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당시 인터내셔널 총괄이었던 니콜로에게만 보고했다. 

 

이렇게 간단한 구조 덕분에 촉박한 시간 안에 서비스를 론칭하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장에서 시간 낭비 없이 플레이어의 니즈에 재빨리 대응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안으로는 능력 있고 의욕을 가진 현지 직원들의 이탈을 막을 수 있었다. 책임과 권한이 적절히 주어지면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기 마련이다.

 

그 결과 외부적으로는 세계 구석구석에서 많은 팬층을 확보하는 동시에 내부로는 모든 지역에서 하이퍼 로컬 모델을 통해 현지 인재를 채용하고 유지할 수 있었다.

 

 

에피소드: 아리, 한국 플레이어를 위하여

한국 플레이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의 모든 경험에 집중했다. 다른 외국계 게임사들과 차별화된 한국 플레이어만을 위한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한국화된 콘텐츠였다. 외국계 회사의 지사는 주로 퍼블리싱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게임 내 요소들을 현지화하기 힘들다. 개발은 본사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본사 개 발팀이 특정 지역용 콘텐츠를 개발해 준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국 플레이어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싶었다. 우리에게 한국 플레이어들은 그냥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세계에서 게임 지식과 스킬 수준이 가장 높고 미래의 흐름을 예측하게 해주는 길라잡이 같은 존재였다. 본사 개발팀도 이점에 완벽히 동의했고 적극 협조를 해줬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챔피언 아리다.

 

어릴 때 여름이면 TV와 극장에 내걸리는 납량 콘텐츠 단골 소재들이 있었으니 그중 하나가 구미호다.  꼬리가 아홉 개 달렸다는 여우, 구미호.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 ‘아리’는 바로 이 구미호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라이엇 게임즈 서울 오피스와 미국 본사 챔피언 개발팀이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공들여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당시 프로듀서로 챔피언 개발팀을 이끌었던 폴 벨레자는 개발 과정에서 한국 오피스와 밀접하게 일하면서 한국의 전설 속 캐릭터 중 어떤 캐릭터가 근사한 챔피언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한국 오피스에서 많은 전설 속 캐릭터를 제안했는데 그중 구미호 전설이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우리 디자이너 역시 구미호에게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고요. 스타일은 살리면서 우아함과 민첩함을 가지며 동시에 강력한 힘을 뿜어내는 유혹자로서의 구미호 본연의 캐릭터에 충실하고 싶었어요. 또한 힘의 원천이 여우구 슬과 아홉 개의 꼬리라는 게 눈에 확연히 드러나도록 하는 것도 중요했고요.” 폴이 훗날 한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구미호 챔피언 개발에는 매우 특별한 공을 들였다. 미국 개발팀은 구미호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한국에서 방대한 자료를 모아 영어로 번역하고 그림, 사진, 한국 드라마 등을 미국에 전달했다. 그리고 수시로 화상 미팅을 했고 여러 차례 본사로 출장가서 개발팀과 미팅을 가지며 틀을 잡아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본사 개발팀도 구미호에 매력을 느끼고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듯했다. “이 정도면 좋은 결과물이 나올 거야”하고 모두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몇 달이 지나고 드디어 기다리던 아트 초본이 메일로 왔다. 우리는 두근두근하는 심장을 부여잡고 메일에 첨부된 파일을 열어봤다. 한동안 서로 화면을 응시하며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아… 이게 아닌데…” 예술적으로 만들긴 했는데 한국 사람 눈에는 예쁜 서양 여성이 한복을 입은 것 같았다. 우리의 DNA가 기억하는 그 묘하고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구미호가 아니었다. 만약 이렇게 구미호 챔피언이 출시되면 한국 플레이어들이 크게 실망할 것이 뻔해 보여 난감했다. 어디서부터 다시 피드백을 줘야 하 나… 더 집요하게 본사와 조율하는 수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머리는 댕기 머리, 신발은 꽃신, 백지장같이 창백한 피부, 한복 등 아주 디테일하게 이미지를 보냈다. 그렇게 수정을 반복하며 우리가 상상하던 아리가 모습을 갖추어 나갔다.

 

한국 팬들의 투표를 거쳐 최종적으로 ‘아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아리, 단비, 초롱, 루리, 나비, 다솜 이렇게 여섯 이름이 후보였는데 아리가 37퍼센트, 단비가 32퍼센트였고 나머지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아리’는 ‘아리땁다’라는 형용사에서 온 말이다. 마음이나 몸가짐이 맵시 있고 곱다는 뜻이다. 팬 중에는 ‘아리 아리 아리랑’에서 온 말 같다며 우리말의 느낌이 잘 살아 있는 이름이라고 좋게 평가해 주었다.

 

2023년 7월 현재 ‘리그 오브 레전드’ 홈페이지에서 판매하는 아리의 스킨은 총 17개다. 그중 한복 아리는 이름 그대로 한복을 입은 아리 모습이다. 한복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댕기 머리를 한 모습이다. 손에 든 여우구 슬과 아홉 개 꼬리까지, 누가 봐도 구미호다.

 

 

 

에피소드: 나는 성공하려고 왔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출시만으로도 1분 1초가 부족한데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했다. 이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상황이 답답한 건 사실이었다. 어쨌든 지혜롭게 큰 갈등 없이 빠른 시간 내에 중요한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커뮤니케이션에 임했다.

 

한국 대표로서 내가 본사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초반에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한국 지사의 위상과 결과가 달라지는 만큼 책임이 무거웠다. 만약 내가 한국 입장만 계속 견지하면 단기적으로 한국에서 필요한 것을 얻을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본사와 갈등이 커지고 최악에는 본사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비협조적으로 임할 수 있다. 반면에 본사의 뜻대로 맞추어 주면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몰라도 본사 위주의 정책 때문에 결국 한국 직원과 한국 고객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그러면 결국 한국 사업에 큰 지장이 생길 것이다.

 

본사 위주의 시스템이 안착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를 계속 고민했다. 게 임을 출시하고 플레이어들과 소통하고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것보다 본사 직원들에게 보고하고 비위를 맞추는 데 시간과 신경을 쓰게 될 것이었다. 잘못된 방식이다. 처음부터 틀린 구조로 세팅하면 그 방식대로 지속될 것이다. 한국 직원들의 사기는 떨어지고, 열정 가득한 능력 있는 직원들은 회사를 떠날 것이다. 결국은 본사에 비위를 맞추는 직원들만 남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라이엇 게임즈도 기존에 진출했던 수많은 외국계 회사처럼 실패하거나 그저 그런 평범한 회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실패하려고, 남의 비위를 맞추려고 굳이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라이엇 게임즈로 이직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성공하려고 왔다. 그에 대한 나의 철학은 뚜렷했다. 지금은 그들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가 힘들 수 있지만 성과로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간략히 라이엇 게임즈의 퍼블리싱 이야기를 소개했다. 여기서 소개하는 이야기는 책에 풀어놓은 온전한 경험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어떤 이야기가 실렸는지 가늠할 수 있도록 앞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풀어놓을 예정이니 기대해 주시길 바란다.

 

  1. 리그 오브 레전드 플레이어 중심주의 – 라이엇 게임즈에서 퍼블리싱이란(LOL) <– 이번 이야기
  2. <리그 오브 레전드> 출시 이야기
  3. 월간 쇼 앤 텔 + 페일 앤 텔 <- 둘 묶어서 하나로… 자연스럽게 잘 이어집니다.
  4. 미션 임파서블 작전 + 퇴사, 그리고 다시 입사 <- 둘 묶어서 하나로… 자연스럽게 잘 이어집니다.
  5. 페이커, 레전드 오브 LoL
  6. <아케인>, 에미상을 거머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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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래빗은 쓰고 읽고 펴내면서 더 나은 나를 만드는 시간, 가치가 성장하는 시간이 되는 책을 만듭니다. 나눌수록 더 커지는 지식. 지식을 글로 정리하고, 나누는 책을 통해 더 큰 가치를 만들어갑니다. <개발자원칙>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서비스 디자인씽킹> <텐초의 파이토치 딥러닝 특강>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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