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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첫 파이콘이 열린 2014년은 둘째가 막 돌이 지난 무렵이었다.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파이콘에 가서 남이 해준 밥을 먹으니 너무 꿀맛 같았다. 육아휴직으로 인해 직무와는 단절된 삶을 살다가 예전에 함께 일했던 개발자 동료들과 여러 발표를 듣고 있으니 다시 사회와 연결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파이콘부터 준비위원회로 함께 일하며 여러 해 동안 파이콘 한국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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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첫 파이콘이 열린 2014년은 둘째가 막 돌이 지난 무렵이었다.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파이콘에 가서 남이 해준 밥을 먹으니 너무 꿀맛 같았다. 육아휴직으로 인해 직무와는 단절된 삶을 살다가 예전에 함께 일했던 개발자 동료들과 여러 발표를 듣고 있으니 다시 사회와 연결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파이콘부터 준비위원회로 함께 일하며 여러 해 동안 파이콘 한국을 준비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집에서는 엄마든 아빠든 주말에 시간을 비워 세미나나 컨퍼런스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는 독박 육아를 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에 망설일 수밖에 없다. 또 배우자가 출장 중이거나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면 참여는 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2017년의 파이콘에서는 이 문제를 모두가 나서서 해결하기로 했기에 큰 의미가 있었다. 오프라인 행사가 열리지 않았거나 일부만 열렸던 코로나 시기에는 주춤했지만, 이때의 컨센서스가 이어져 2023년 올해 파이콘에서도 아이 돌봄을 제공한다. 이 글에서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고,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를 공유하고자 한다. 다양성 있는 커뮤니티를 꾸리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미국의 파이콘에서는 이미 부모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어린아이들을 돌봐주는 ‘아이 돌봄’이나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영코더’가 열리고 있었다. 주말에 가족들을 두고 혼자서 활동한다는 부담을 덜고, 가족들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장이 된 것이다. 파이콘 한국 준비위원회의 일부도 해외 파이콘을 다녀온 뒤 이런 프로그램이 한국에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꾸준히 나눠줬다.
하지만 실제로 마련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다. 우선 아이 돌봄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돌봄 선생님뿐만 아니라 돌봄을 위한 공간, 놀이도구, 안전 및 위생에 관련된 고려가 필요했다. 또 행사장에 이런 시설을 만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근처 키즈카페 이용권을 지급하는 게 나을지 직접 돌봄 시설을 마련하는 게 좋을지 여러 차례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여러 논의 끝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직접 공간을 마련하고 아이 돌봄 선생님도 모시자는 것이었다. 키즈카페에는 아이들을 돌봐줄 선생님이 없어 안전이 우려되기도 했고, 아이들이 가족과 동떨어진 채로 있기 보다 행사장 안에 있으면서, 간접적으로 파이콘을 함께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사실 근처의 키즈카페 이용권을 지급하는 게 운영 비용이 적게 들기에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준비운영위원들 모두 참가자들이 아이가 함께 있다는 사실에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계기로 만들자는 것에 마음을 모았기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
직접 공간을 마련하면 어린아이들이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공간을 직접 설계하고 꾸며야 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행사에 놀이시설을 설치해 주는 장난감 대여업체를 알아보았고 업체를 통해 일정을 조율하고 행사 전날 장난감과 매트 설치를 했다. 또 가장 중요했던, 아이들을 돌봐주실 돌봄 선생님을 모을 전문 업체를 알아보았는데, 여성 개발자를 위한 기술 행사인 우먼 테크메이커스(Women Techmakers)의 행사 진행자를 통해 추천받을 수 있었다.
여기 들어갈 비용은 커피 케이터링에 들어갈 비용에서 가져왔다. 모두에게 커피를 제공하려던 계획을 없애고, 거기에 투입될 예산을 아이 돌봄과 영코더에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커뮤니티가 함께 편의보다 미래 세대에 대한 투자를 나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파이콘은 사실 처음 열렸던 2014년부터, 아이 돌봄 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던 2017년까지 매년 개최일이 하루씩 늘어나고 있었다. 2014년에는 하루, 2015년에는 이틀, 2016년에는 사흘, 2017년에는 나흘 열렸다. 이렇게 행사 일정이 하루씩 늘어나다 보니, 아이 돌봄에 대한 니즈가 더 커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2017년 이후 2019년까지는 꾸준히 운영할 수 있었다. 2019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행사로 전환됐기에 따로 운영하지 못했지만, 코로나 종식으로 오프라인 행사가 이전 규모로 재개된 올해에는 다시 아이 돌봄을 운영한다.
지난해 파이콘에 아이를 데리고 오신 분을 만났다. 그분은 몇 년 전 아이 돌봄을 이용한 경험이 있던 분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눴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이에게 파이콘에 가자고 했더니 놀이방이 있는 곳이냐고 하더군요.”
행사장에 돌봄 공간이 없다면 누군가는 파이콘에 오는 것을 포기할 수도 있다. 그게 엄마든 아빠든, 누군가 아이를 돌봐주지 않으면 참여가 어렵다. 그 때문에 누군가가 포기하는 것을 막고 싶었다. 다 같은 커뮤니티 사람들인데, 모두 함께 어울릴 수 있다면 커뮤니티가 더욱 풍성하리라 생각했다.
사실 나는 아이 돌봄을 이용하지는 못했다. 나도 해마다 주말에 파이콘에 참여하면서 아이의 아빠, 조부모에게 육아를 부탁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기에 파이콘이 마련한 아이 돌봄 프로그램이 무척 반가웠다. 그러나 본인의 아이를 맡기려고 이런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프로그램을 준비한 게 아니냐 하는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에 거리를 두었다. 이제는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미 아이들이 다 커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이전과 같은 마음이다. 내 아이를 맡기지는 않겠지만, 아기를 맡기지 못해 참여를 주저하는 커뮤니티원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길었던 코로나가 주춤해져 올해 파이콘은 몇 년 전처럼 코엑스에서 열릴 예정이며, 아이돌봄을 제공할 예정이다. 아이 돌봄을 위해서는 인력과 공간뿐만 아니라 준비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이콘 한국 준비위원회에서는 올해도 아이 돌봄을 준비하고 있다. 육아로 인해 행사에 오길 망설이는 누군가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 아이를 돌보기 위해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미래를 만들어갈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나누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2017년 파이콘 준비위원회에서는 초등 고학년이나 중학생도 부모와 함께 파이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초등 저학년까지는 아이 돌봄에 참여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아이들은 그럴 수 없었다. 이렇게 탄생한 게 ‘영코더’이다.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파이콘에 참여하면서 서로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의미였다. 영코더 또한 사실 비용이 들긴 했지만, 커뮤니티가 함께 가족과 함께하는 행사를 만들어가자는 의지를 갖고 실행한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 2023년 파이콘에서도 이 기조가 이어져, 아이돌봄에 더해 영코더 프로그램도 운영될 예정이다.
세미나나 컨퍼런스에 참여하면 시간을 빼야 하기 때문에 가족에게 미안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이들도 우리 사회 일원이며, 앞으로 우리 커뮤니티 일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장이 앞으로도 꾸준히 마련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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