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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UX는 디자이너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고, 국내에서 디자인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시각적인 요소에 한정된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실제 디자인은 설계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그저 예쁘게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목적에 맞게 설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UX 디자이너도 마찬가지다. 버튼을 식별하기 좋은 위치에 알맞은 크기로 그리는 것 외에 UX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UX 디자이너는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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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UX는 디자이너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고, 국내에서 디자인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시각적인 요소에 한정된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실제 디자인은 설계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그저 예쁘게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목적에 맞게 설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UX 디자이너도 마찬가지다. 버튼을 식별하기 좋은 위치에 알맞은 크기로 그리는 것 외에 UX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UX 디자이너는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어 사용의 관성 때문인지 여전히 디자이너라 하면 시각적인 디자인에 한정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사용자 경험 설계는 UX 컨설팅이나 리서치로 분야를 나누기도 한다. 용어 사용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의 사용자 경험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디지털 기기를 전제로 이루어진다. 그래서인지, 사용자 경험 설계 자체도 비주얼 디자인에 한정된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하지만 비주얼 디자인의 영역이 아니면서 사용자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빈틈들이 존재한다. 그 중 놓치기 쉬운 부분들 두 가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디지털 기반의 많은 서비스가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리고 앱의 사용성을 개선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들인다. 비주얼과 관련된 UX 디자인은 물론이고 UX 라이팅에 공을 들여 텍스트를 다듬기도 한다. 그러나 앱의 사용성에 들이는 노력에 비해, 업데이트 경험은 거의 방치된 듯한 상황을 종종 목격한다. 소비자는 주기적으로 앱을 업데이트하며, 이를 위해 플레이스토어나 앱스토어에 접속하면 업데이트 내용을 안내한다. 모든 사용자가 그 문구를 주의 깊게 읽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는 없지만, 아무 사용자도 업데이트 문구를 읽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도 없다.
얼마 전, 한 증권사가 MTS 앱을 리뉴얼했다. 업데이트 수준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앱을 출시하면서 ‘기존 서비스를 종료하겠다’고 안내했다. 그러나 앱 아이콘의 색이 변하고 글씨가 커진 것 외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명확히 안내하는 문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앱 내의 안내 공지에서도 ‘불편했던 사항들을 중심으로 개선하였습니다.’라는 표현만 존재했고, 신규 앱의 주요 기능은 공지사항을 통해 확인하라는 문구만 있었다. 해당 공지사항에서 함께 안내할 수는 없었는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게다가 해당 공지에서 말하는 게시글은 다른 공지사항에 묻혀 쉽게 찾아볼 수도 없었다.
즉, 어떤 점이 나아졌는지 명확히 알 수 있는 안내가 없었다. 왼쪽의 안내 문구는 리뉴얼된 앱이 아니어도 이미 가능한 기능들이었다. 게다가 ‘쉽고 바르게’는 오타로 받아들여지기 쉬운 문구다. 의도했는지 오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양한 요소가 신규 앱의 호감도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사용자 경험 입장에서 앱 리뉴얼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우선 사용자는 완전히 처음부터 서로 다른 두 앱을 비교하지 않는다. 새로운 앱의 사용성이 아무리 대폭 개선되었어도 기존 앱의 익숙함을 이기기는 어렵다. 따라서 리뉴얼한 앱은 기존과 완전히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용자가 새로운 앱으로 넘어가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제시해주어야 한다. 사용자가 새로운 앱으로 넘어가야 하는 이유가 ‘기존 서비스의 종료’라면, 이러한 변화를 달갑게 받아들일 사용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사실 앱 업데이트를 대단히 특별한 경험이라고 볼 수는 없다.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이고, 문구를 주의 깊게 읽는 사람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발생한 사용자 경험의 빈틈을 훌륭한 위트로 채운다면, 뜻밖의 순간에 재미있는 경험을 전달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슬랙의 업데이트 안내는 무엇이 개선되었는지, 왜 이 업데이트를 해야 하는지 명확하면서 유머있게 전달된다. 친근한 말투로 유쾌하게 전달하는 UX 라이팅이 슬랙의 강점으로 분석된다. 덕분에 사용자는 뜻밖의 순간에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오른쪽 업데이트 내용이다. 모든 업데이트가 많은 개선 사항을 담고 있을 수는 없다. 단순히 버그를 수정하는 정도의 업데이트도 주기적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슬랙은 업데이트 내용이 많을 때뿐만 아니라, 눈에 띄는 개선사항이 없는 순간에도 일관된 사용자 경험을 놓치지 않는다. 다른 앱에서 개선사항이 많지 않을 때의 업데이트 안내 문구와 비교하면 차이를 더 잘 알 수 있다.
요즘은 디지털 기반 서비스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기존에 오프라인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들도 웹이나 모바일 기반 디지털 플랫폼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에서 아무리 많은 서비스가 제공된다고 해도 결국 그것을 제공받는 주체는 물리적인 신체를 가진 사람이다. 디지털 경험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오프라인 경험 역시 그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은행은 디지털로의 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영역 중 하나다. 은행 서비스는 어려운 용어를 많이 다루기 때문에 앱 사용성에서 UX 라이팅에 특히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은행의 브랜드를 경험하는 곳은 모바일 뱅킹뿐만이 아니다. 여전히 일부 서비스들은 오프라인 창구를 방문해야만 가능하게 되어있다.
은행 지점의 창구를 방문하는 고객은 대개 은행 업무나 앱 사용에 밝지 않거나, 모바일로 해결되지 않는 무언가를 제공받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내가 뭔가 서툴러서’ 혹은 ‘내가 뭔가 필요해서’ 은행에 방문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창구 직원의 언어에서 전달되는 정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창구 직원의 언어가 앱의 UX 라이팅과 얼마나 일치할 수 있을까? 일관된 브랜드 경험을 전달하고 싶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경험이다.
대출 상담은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경험이므로 개인적인 사례를 밝히고자 한다. 부동산 전세대출 관련 상담을 받으러 은행 창구에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전세 보증금 소송을 진행하면서 상황이 아주 복잡하여, 일반적인 전세대출은 실행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었다. 전세 보증금 미반환 피해자를 위한 보증 대출을 상담받고자 하였으나 흔히 발생하는 케이스가 아니라 상담이 어려웠다. 그러나 그런 특수보증 대출을 시행하는 은행이 많지 않았으므로, 해당 브랜드 은행만 세 지점을 방문했었다.
두 번째 방문한 지점에서는 ‘다른 지점으로 가시는 게 어떻겠냐?’며 진행해주기 싫어하는 내색이 티가 났고, 마지막으로 방문한 지점에서는 ‘기존 거래가 없으신 데 여기서 이런 복잡한 대출을 해줘야 할 이유도 없지 않겠냐?’며 난색을 보였었다. 해당 은행과 첫 거래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앞으로 영원히 해당 은행과는 거래가 없을 예정이다.
앱의 사용성이 아무리 좋아도, 오프라인 창구 경험에서 경험하는 정서가 부정적이라면 브랜드 경험의 총합은 마이너스가 된다. 특히 인간은 오프라인의 대면 경험에서 온라인 비대면 상황보다 정서를 강하게 경험한다. 훌륭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면 오프라인 경험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프라인 경험은 워낙 업종과 상황에 따라 범위가 넓지만, 기억에 남는 개인적인 사례를 하나 더 풀어놓으려 한다. 동네에 하나씩 있을 법한 작은 카페에서 겪은 일이다. 디저트 카페를 좋아하는지라 새로 오픈한 디저트 카페에 서너 번 방문하여 사장님과 알아볼 정도가 된 적이 있었다. 디저트와 커피가 마음에 들었지만, 학교 도서관에서도 충분히 공부가 가능했으므로 카페 공간에 대한 니즈가 충분치 않은 상황이었다.
시험을 치르느라 한동안 가게에 방문하지 못했는데, 어느 날 사장님에게 ‘가게에 잠시 들러 달라’는 DM이 와있었다. 가게에 도착하자, 사장님은 “신메뉴가 나왔는데, 먹어보고 평가를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내 이름이 적힌 작은 디저트 포장 상자를 건네주었다. 시험 보느라 고생했을 텐데 당을 충전하라는 농담도 함께 건넸다. 이후로 그 카페에는 주 3회 출근도장을 찍게 되었다.
오프라인에서는 소비자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 온라인의 자동화된 문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장님은 소비자의 이름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까지 고려하여 환영의 말을 건넸다. 오프라인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언어가 전달할 수 있는 힘의 크기를 알 수 있는 경험이었다. 심지어 나는 당시 카페공간에 대한 니즈가 없었음에도 매일 방문하고 싶은 카페가 생겨버렸다. 사용자 경험이 중요한 브랜드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UX는 ‘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의 약어이다. 경험이 시각적인 요소에만 한정되지 않는 것처럼, UX 역시 시각적인 디자인의 범위에 속하지 않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언어는 특히 강력한 정서 전달 매개체가 될 수 있다. 경험을 전달하는 채널이 오프라인이라면 공간감과 타인의 존재 등 더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용성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선은 불편한 것을 없애고 최적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불편한 것을 없애는 것과 좋은 경험을 전달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 되어야 한다. 불편(-)을 없애는 것은 0이 될 수는 있으나 (+)가 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불편한 경험이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은 어쩌면 이미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좋은 경험을 전달하기 위한 노력 역시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지 점검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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