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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화면 속에서 주황색 버섯을 때려잡는 것이 디지털 경험의 전부인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VR(Virtual Reality) 기기를 쓰고 실제 방아쇠를 당겨 사냥을 하는 가상 현실 수준으로 발전했다. 디지털 경험의 발전은 게임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일을 하러 사무실이 아닌, 온라인으로 출근한다.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수업을 듣는다. 심지어 전시, 박람회, 축제와 같은 가장 전통적인 오프라인 이벤트마저 디지털 경험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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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디지털 ‘전환’이라는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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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화면 속에서 주황색 버섯을 때려잡는 것이 디지털 경험의 전부인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VR(Virtual Reality) 기기를 쓰고 실제 방아쇠를 당겨 사냥을 하는 가상 현실 수준으로 발전했다. 디지털 경험의 발전은 게임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일을 하러 사무실이 아닌, 온라인으로 출근한다.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수업을 듣는다. 심지어 전시, 박람회, 축제와 같은 가장 전통적인 오프라인 이벤트마저 디지털 경험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랜선투어 진행 모습
여행마저 디지털 환경에서 재현하고자 하는 시도도 이루어졌다 (출처: 해럴드경제)

 

지난 2년간의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상태)은 이러한 재구성을 가속화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디지털화가 팬데믹에 의해 발생된 것이 아니라 촉진된 것이라는 점이다. 디지털화는 코로나 이전에도 있었고, 코로나 이후에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디지털 전환을 빠르게 다그친 건 팬데믹이 분명하다. 오프라인의 많은 상황이 비대면 디지털 환경으로 옮겨가면서, 많은 기업과 사람들이 오프라인을 디지털에서 재현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그런데 정말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많은 상황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게 맞는 것일까?

 

비대면이 초래하는 경험의 차이

디지털 경험은 기존의 오프라인에서 이뤄지던 많은 상황(이하 물리적 경험)을 온라인상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것과는 다르다. 대면 환경에서 이루어지던 물리적 경험을 그대로 디지털 경험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 디지털 경험은 물리적 경험을 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리적 경험의 디지털화를 단순히 편의성 개념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더 편리하게’가 아니라 ‘사람과의 접점이 사라진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배달음식은 원래도 언제, 어디서나 전화로 주문할 수 있었다. ‘배달의민족’은 주문을 편리하게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사람을 거치지 않고 하는 주문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발생시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달 절차 최적화에서 그치지 않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배달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다.

 

메타버스 오피스에 대한 논의를 보면 이러한 차이를 더욱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 편의성 측면에서만 바라보면, 메타버스 오피스는 단순히 사무실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출근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직원은 출퇴근 이동 시간을 아낄 수 있고, 대표님은 사무실 임대료를 아낄 수 있다. 그러나 재택근무에 대한 논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업무의 생산성, 동료 간 유대감 등이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사무실의 디지털 경험은 단순히 접근성이 높아진 것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화된 사무실에서는 화면 속 아바타를 움직여 출근을 하고, 화상카메라를 통해 실시간 영상을 마주 보고 회의를 한다. 어쩌다 지각을 하더라도 허겁지겁 뛰어들어오며 죄송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미안함을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회의 중 발표자가 방향을 잃었을 때 좌중을 휘감는 싸한 분위기를 감지하기 어렵다. 회의가 끝난 후 옆자리 동료와 잡담을 나눌 수도 없다. 부장님이 지켜보는 듯한 기분에 괜히 열심히 하는 척 할 필요도 없고, 대표님은 직원들이 어떤 표정으로 일하는지 슬쩍 살펴볼 수도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서 만난다는 것이 갖는 의미들이다. 디지털 환경에는 보고서를 넘기는 과장님의 표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피드백이 없고, 머리를 식히기 위한 커피타임에 동료와 나누는 잡담이 없다. 이러한 요소들은 물리적 대면 환경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그 역할을 인식하기조차 어려웠던 것들이다.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고 중요한 ‘업무환경’의 일부였다. 업무환경이 디지털로 옮겨간다고 해서 위와 같은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오지는 않는다.

 

직방 메타버스 오피스
직방의 메타버스 오피스, 근처에 있는 사람의 화면과 목소리가 연결된다. (출처: 중앙일보)

 

그래서 업무환경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물리적 경험을 디지털 경험으로 재현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단순히 접속 중을 나타내는 초록 표시등 대신 직접 캐릭터를 움직여 자리에 앉는 것으로 출근을 대신한다. 직방의 메타버스 오피스는 자사 직원의 캐릭터에 가까이 갔을 때 해당 직원의 목소리로 소통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설계됐다. 일부 영상회의 툴은 참여자들의 얼굴을 네모난 프레임 속에 가두어 배치하는 대신, 실제 회의실처럼 배치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도는 다소 역설적인 경험 디자인이다. 우리는 디지털 경험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마주하고도, 기존의 물리적 경험의 특징들을 답습하고자 한다. 물리적 경험의 디지털화가 갖는 장점은 너무나 뚜렷하다. 우리는 디지털화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편의성 측면에서도 개선점을 많이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경험에서 ‘타인과 만난다는 것’은 효율성 이상의 여러 의미를 가진다. 그것을 포기하기에는, 물리적 경험, 대면 환경이 주는 장점 역시 너무도 많다.

 

 

디지털화의 딜레마

업무의 시간 효율성 증대, 공간 비용 절감은 직원이나 관리자 모두의 입장에서 반가운 이야기다. 그러나 대면 환경 역시 구성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험요소이다. 그래서 디지털화된 사무실, 속칭 메타버스 오피스는 대면 환경의 특징을 재현하는 것으로 기존의 물리적 경험을 물려받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더 편해지고자 사무실을 디지털화했는데 물리적 환경의 특징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디지털화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딜레마이다.

 

학교 역시 디지털화의 흐름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줌’이나 ‘구글미트’ 등의 화상채팅 솔루션을 사용하게 되면서 교육 역시 기존과는 다른 경험이 되었다. 학생들은 더 이상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공간으로 모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따로 선생님을 붙잡고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질문하기도 어렵다. 순간적으로 놓친 부분을 옆자리 짝꿍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교육의 디지털화에서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디지털화된 수업에서는 교수자가 강의를 녹화하면 수강생(학생)들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속도로 강의를 수강할 수 있다. 과목에 따라서는 매해마다 새로운 내용으로 녹화를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이 경우 교수자는 본인의 연구와 교수법 개발에 더 심혈을 기울여 수업을 준비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학교는 기존의 역할을 잃지 않기 위해 실시간 수업이라는 방법 택했다. 그러나 이 역시 일시적인 조치에 불과하다. 대부분 금지하고는 있으나, 수업은 얼마든지 녹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기존 수업과 갖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디지털화의 단점을 해소하기 위해 기존 물리적 경험의 특징을 답습하는 방식을 택한다면, 디지털화의 장점을 충분히 누릴 수 없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반쪽짜리 디지털 경험이 되어버린다.

 

비대면 환경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다. 이 새로운 환경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지 않고, 디지털만의 경험을 완전히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새로운 환경에 맞는 경험 디자인

증기기관차가 처음 등장할 당시, 기관사의 사망사고가 많았었다. 기존의 경험을 답습했기 때문이었다. 증기기관이 등장하기 직전까지 가장 대중적인 이동 수단은 마차였다. 마차를 운전하는 마부는 탑승객보다 앞에 탑승해 마차의 방향과 속도를 통제하는 역할을 했다. 증기기관의 발달로 기차라는 이동 수단이 새로 등장했음에도, 기관사의 자리는 마차와 같이 맨 앞 칸이었다. 심지어 실내도 아니었다. 초기의 증기기관차는 마차와 완전히 동일한 구조로 설계되었다. 새로운 경험을 설계해야 할 순간, 기존의 경험을 답습한 대가로 수많은 기관사가 다쳤다.

 

환경에 맞는 경험 디자인
마차와 동일한 형태로 설계된 초기 증기기관차 (출처: Wikipedia)

 

인간은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인간이 신체라는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피부에 직접 와닿는 물리적 경험이 완전히 소멸될 수는 없다. 코로나 팬데믹이 앞당긴 것은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가 아니라 ‘디지털화된 경험’이라는 새로운 영역이다. 새로운 영역은 새로운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기존 경험을 디지털 경험으로 ‘전환’하겠다는 관점은 서비스 제공자만의 입장이다. 새로운 디지털 경험을 제대로 설계하기 위해서는 소비자 관점에서의 경험 디자인이 필요하다.

 

코로나의 종식과 함께 물리적 경험은 다시금 되살아날 것이지만, 그로 인해 지금의 디지털 경험이 극단적으로 축소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코로나 사태의 탄력을 받아 폭발적으로 성장한 디지털 경험 시장은 물리적 경험 시장과 대비되며 더욱 견고히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영역에서 위태롭게 고삐를 쥐고 있는 기관사가 보인다. 당신이 기획자라면, 더 이상 기관사를 다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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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X Writing 전문 에이전시에서 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텍스트와 심리학의 관점에서 경험기획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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