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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아마 부동산을 위협하는 유일한 키워드일 수도 있다. 메타버스, NFT,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 코로나 바이러스가 불 붙인 디지털화는 비대면의 영역을 넘어 우리 생활의 전반을 차지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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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아마 부동산을 위협하는 유일한 키워드일 수도 있다. 메타버스, NFT,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 코로나 바이러스가 불 붙인 디지털화는 비대면의 영역을 넘어 우리 생활의 전반을 차지하게 될까?
VR 게임기 <오큘러스 퀘스트2>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 페이스북은 사명을 메타로 바꿨다. 우리나라 대통령 후보들은 ‘메타버스와 NFT가 가져올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공약을 내세웠다. 기술의 발달이 초래할 미래에서 '제2의 현실'을 떼어놓고는 논의가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가상현실에 열광할까? 가상현실은 왜 필요할까?
가상현실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각 분야마다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경험이 중요한 입장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공간의 물리적인 한계를 부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일을 하기 위해 반드시 사무실에 가지 않아도 된다.' 수준의 변화가 아니다. 재택근무는 사무실에 있는 노트북을 집으로 가져오는 수준의 변화에 불과하다.
혁신이라고 불릴 수준의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공간의 개념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 현실과 동일하게 느껴질 정도로 완벽한 가상현실이 구현된다고 가정해 보자. 그 가상현실에서도 사무실에 가서 노트북을 열고 업무가 가능하다. 그렇다는 것은 사무실에 가지 않고 집에서도 업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의 디지털화가 만들어낸 공간 혁신은 여기에 그쳤다. 그러나 가상현실이라면? 가상현실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가상현실에 접속시켜주는 디바이스가 노트북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 업무공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진다. 사무실은커녕 홈오피스조차 필요 없다. VR기기를 착용하고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을 할 수 있다면 사무실도 무의미하고 출근이라는 행위도 무의미해진다. 언제 어디서든 VR기기만 있으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퍼시스 책상도 필요 없고 시디즈 의자도 필요 없다. 이 정도 수준의 변화가 일어나야 공간의 한계가 허물어졌다고 할 수 있다.
공간의 혁신이 일의 형태만 변화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완벽하게 구현된 가상현실은 이동 거리와 시간이라는 개념을 소멸시킨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애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좌표를 정하는 1초면 충분하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기 위해 15시간 이상 비행기를 탈 필요도 없다. 역설적이게도, 여기까지 오면 보통 그려지는 미래는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사람들은 두 평 남짓한 방에서 VR기기를 쓰고 누워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모든 생활은 그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생존을 위한 취식과 배설, 수면 이외의 활동은 가상현실에서 이루어진다.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행복할까?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디스토피아와는 다르다. 가상현실이 훌륭해졌다고 해서 모두가 2평짜리 방에 처박혀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수도권 외 지방의 부활을 예견한다. 디스토피아가 예상된다고 해서 기술의 발전을 억지로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술은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에너지가 되기도, 살상 무기가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가상현실이 완벽히 현실을 재현했을 때를 가정하면서 출발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위의 이야기보다 앞선 질문은 '가상현실은 현실을 대체할 수 있는가?'이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는 현실의 완벽한 재현을 위해, 시각과 청각을 책임지는 VR기기와 함께 촉감을 전달하는 전신 수트가 등장했다. 영국 드라마 <블랙미러>에서는 VR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스크린으로 사방을 두르는 것으로 대신했다. 위 에피소드의 마지막에는 아래와 같은 장면이 등장한다. 그러나 등장인물이 보고 있는 것이 창문인지, 더 업그레이드된 고급 스크린인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상상력으로 미래의 가상현실을 그리고 있다.
사진의 장면은 미디어아트를 떠오르게 한다. 미디어아트는 미디어 자체를 예술로 표현하는 것에 가깝다. 기획자의 입장에서 미디어아트를 처음 접했을 당시에는 시각예술의 일종으로 느껴졌다. 이색적인 체험을 가능케 하는 공간 연출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다시 접하게 된 미디어아트는 일종의 가상현실로 다가왔다. 마치 '가상현실은 이래야 한다'라고 제시하는 것 같았다.
현실의 공간은 지금 수준의 가상 공간이 절대 줄 수 없는 다양한 감각을 충족시킨다. 깊이감, 개방감, 이질감, 격리감 등의 감각이다. 오감으로 지각되는 감각과 이러한 정서적인 감각을 모두 합하여 공간의 분위기가 완성된다. 공간의 분위기는 우리가 공간을 경험하는 것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현재의 VR 기술은 이러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에 지극히 취약하다. VR이 처음 등장하던 시기, 추락하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시뮬레이션이 인기를 끌었다. 간단한 그래픽이 주는 깊이감을 통해 순간적으로 높은 곳에서 오는 공포 반응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해당 시뮬레이션은 그 공포 반응 이상의 감각은 전달하지 못했다. 기술의 한계였을 것이다. 지금의 VR은 손의 악력을 인식하는 단계까지 진화했지만, 여전히 시청각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후각은 차치하더라도, 공간감이 주는 분위기를 완성하려면 아직 많은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자주 언급한 기술 발전이 불러올 디스토피아를 그린 시리즈 블랙미러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가상현실의 미래를 제시한다. 그중 가장 현실적으로 가상현실을 구성하는 방법으로 제시된 것은 뇌에 직접 전극을 꽂는 방식이다. 뇌가 지각하는 오감은 물론, 그 이상의 감각들을 모두 전기신호로 만들어 넣어주는 것이다. 이 정도 수준으로 감각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가상현실 경험은 사실상 흉내내기에 불과하다.
가상현실과 메타버스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하는 애널리스트들 중, 지난 휴가를 가상공간으로 떠난 사람은 몇 명이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책 <공간의 미래>의 저자 유현준 교수는 기기와 소통하는 방식의 부하가 작아져야만 가상현실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우리가 PC와 소통하는 방식은 키보드와 마우스, 디스플레이라는 매개체를 거친다. 스마트폰은 이를 디스플레이 하나로 축소시키면서 모바일이 웹 경험의 파이를 크게 차지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상상 속의 미래 시점인 블랙미러 시리즈에서도 관자놀이 옆에 전극을 붙이는 방식을 사용했다. 우리가 가상현실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디바이스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현재 VR이 제시하는 가상현실과의 매개체는 얼굴의 절반을 뒤덮는 고글이다. 거기에 손의 움직임을 기록할 모션 센서를 손에 쥐어야만 한다. 이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불편하다. 부하가 커질수록 가상 공간이 전달하는 감각은 현실적이지 못하게 된다. 고글일지, 안경일지, 디스플레이일지, 전극일지는 모르겠으나, 가상현실과 현실을 이어주는 매개체는 점점 눈에 띄지 않는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그래야만 가상현실의 현실감 확보가 가능해진다.
이렇게 가정하면 결국 최후의 형태는 디바이스를 몸에 심는 경우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블랙미러에는 이것을 ‘접속시간 제한’이라는 조치로 예방하고자 하는 모습도 등장했다. 시대의 변화는 기술이 가장 앞서고, 다음에야 사람들의 인식이 변한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들이 모여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법과 제도가 가장 늦게 변혁을 맞는다. 준비된 채로 기술 발전을 경험하는 경우는 드물다. 경험이 앞서고 그에 맞추어 따라간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당장 내일 메타버스가 완성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드물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가상 공간이 형성될 수도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상상력과 추진력이다. 미디어에서 주입한 가상현실 말고, 당신이 꿈꾸는 미래 가상공간의 모습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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