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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2부에서는 프로덕트 기획을 위한 고객 인터뷰 방법을 단계별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3가지의 고객 인사이트를 도출했다. 오늘은 이러한 고객 인사이트를 토대로 프로덕트를 설계하는 방법을 알아보고자 한다.
[3가지 고객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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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3가지 인사이트로 어떻게 프로덕트를 설계할 수 있을까? 실무 사례를 토대로 하나씩 살펴보자.
우리가 도출한 고객의 페인 포인트는 고객이 ‘조금이라도 불편을 겪는 모든 것’이 아니라, ‘돈을 지불해서라도 해결하고 싶은 가장 강력한 고통스러운 지점’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고통을 치유하는 해결책을 통해 고객에게 매직 모멘트(Magic Moment)를 제시할 것이다.
매직 모멘트는 와우 포인트(Wow Point) 또는 아하! 모멘트(AHA! moment)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동일하게 프로덕트의 가치를 깨닫는 순간을 뜻한다. 따라서 매직 모멘트를 경험한 고객은 단순 고객에서 높은 생애 가치를 지닌 고객(충성고객)이 된다. 충성고객을 유치한 프로덕트는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1부를 통해 확인했다. 그러므로 일단 그들의 페인 포인트를 해결하는 매직 모멘트를 발굴해야 한다. 매직 모멘트를 발굴했다면 고객이 최대한 빨리 이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하자.
예를 들어, 페이스북(현 메타)의 매직 모멘트는 주변 지인들뿐만 아니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 또는 비즈니스적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인물과 쉽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2010년대, 그로스 해킹(Growth Hacking)을 통해 프로덕트를 급성장시키던 시기의 페이스북 핵심성과지표(KPI)는 ‘더 빠르게 더 많은 친구와 연결되고 소통하는 경험’을 만드는 것이었다. 실제로 14일 안에 10명의 친구를 만들면 3년 동안 페이스북을 이용한다고 한다. 페이스북의 회원가입 단계를 보면, 매직 모멘트를 최단 시간에 경험시키기 위한 노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넷플릭스의 매직 모멘트는 개인 취향에 맞춘 콘텐츠를 무한히 탐색하고 시청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넷플릭스의 핵심 KPI는 ‘최대한 빨리 콘텐츠를 볼 수 있는 고객 경험’을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한 달에 1개 이상의 영화를 본 고객은 넷플릭스를 2년 동안 이용한다고 한다.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있다면 지금 접속해보자. 첫 화면에서부터 매직 모멘트를 경험시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넷플릭스는 동일한 콘텐츠의 섬네일(Thumbnail) 이미지도 고객이 평소 어떤 유형을 많이 선택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이미지를 노출시킨다. 예를 들어 영화 어벤져스의 섬네일을 노출시킬 때 평소 여성 인물 이미지를 많이 선택한 고객에게 블랙 위도우를, 남성 인물 이미지를 선택한 고객에게는 아이언맨을 보여주는 식이다. 또한 콘텐츠 재생을 망설이는 고객을 위해 미리 보기 화면을 자동 재생시키거나, 국내 인기 작품과 과거에 시청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추천작을 제안한다. 최근에는 ‘랜덤 재생’이라는 기능을 론칭했는데, 이 역시 자신들의 매직 모멘트를 최단기간 경험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이처럼 매직 모멘트는 고객이 최대한 빨리 경험할 수 있게 설계되어야 한다. 페이스북과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 에어비앤비 등 글로벌 프로덕트의 초기 단계, 즉 온보딩(On-boarding)단계를 경험해보자. 온보딩은 회원가입부터 프로덕트의 매직 모멘트를 경험하는 순간까지를 의미한다. 성공한 프로덕트들이 온보딩 과정에서 어떻게 고객이 매직 모멘트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는지 살펴보면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고객이 자신의 페인 포인트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아마 고객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쟁사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마땅한 서비스를 찾지 못했다면 스스로 나름의 솔루션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경쟁 서비스나 고객 솔루션의 존재는 우리 입장에선 고객 유치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이다. 따라서 이것을 뛰어넘는 경쟁 우위 포인트를 찾아내야 한다.
필자가 가계부 앱을 설계하던 당시, 고객 인터뷰를 통해 발견한 페인 포인트는 매일 지출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애당초 가계부를 쓰는 사람들에게 지출 정리가 페인 포인트일 리 없다고 생각했던 예상과 달리, 그들 역시 매일 지출을 정리하는 일이 귀찮고 때로는 누군가 대신해주길 바란 것이다.
이 귀찮음을 덜기 위해 가계부를 오래 쓴 얼리어답터들은 나름의 해결책으로 카드 결제 내역을 자동으로 가져오는 가계부 앱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드 이외의 지출 내역(이를테면 현금결제나 계좌이체)은 직접 작성해야 했다. 또한 문자 내역을 읽어오는 기술은 아이폰에 적용되지 않아, 아이폰 유저는 직접 수기로 지출 내역을 입력하는 것 외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것은 안드로이드 유저에겐 카드 결제 이외의 지출까지 자동으로 불러오는 편의를 제시함은 물론 아이폰 유저에게는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큰 기회를 의미했다.
실제로 고객의 수입과 지출 정보를 읽어올 수 있는 기술은 다음의 3가지다.
1) 문자 파싱(Parsing) 정보의 실시간성이 있고, 카드 결제 내역과 같은 SMS 문자로 받은 금융 정보만 불러올 수 있다. 안드로이드만 적용됨. 2) 스크래핑 정보의 실시간성이 없지만(매번 고객의 허락을 받아야만 함), 대부분의 금융기관 정보를 불러올 수 있다. 모든 OS에 적용 가능함. 3) API 정보의 실시간성이 있고, 모든 OS에 적용된다. 하지만 금융기관의 주도적인 협조 없이는 개발이 불가능함. |
최종적으로 3가지 기술 중 빠른 아이폰 시장 진출을 위해 스크래핑(Scraping) 기술을 선택했다. 스크래핑 가계부 앱은 고객의 금융 정보를 한 번만 연결해두면, 이후부터는 직접 수입 지출을 작성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당시 수기로 입력해야 하는 기존의 가계부 앱에 비해 확실한 효용을 제공했다. 이 덕분에 뱅크샐러드는 아이폰에서 가계부 앱 시장을 빠르게 점령할 수 있었다.
웹이나 앱 같은 IT 프로덕트는 고객이 자주 사용해야 할 이유가 있어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즉, 고객 일상과 맞닿아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고객들이 평소 어떤 생각과 행동을 많이 하는지를 토대로 고객 시나리오를 구상해야 한다. 고객 시나리오는 기획자의 상상이나 기대에 의해서가 아닌, 고객 인터뷰를 통해 발견한 그들의 실제 경험과 행동, 인터뷰이의 공통분모에 기반한다.
고객의 행동과 생각을 기반으로 한 제품 설계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브랜드 마케팅에서 쓰이는 ‘브랜드 인지 피라미드’를 소개한다.
브랜드 인지 피라미드는 말 그대로 특정 카테고리에서 각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인지 정도를 나타낸 것이다. ‘신발'을 예로 들어보자. 신발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는 무엇인가? 필자의 경우 나이키가 떠오른다. 이처럼 카테고리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브랜드가 ‘최초상기' 브랜드다. 아마 모든 마케터들이 자신의 브랜드가 고객들의 최초 상기 브랜드가 되길 바랄 것이다. 예컨대 ‘공무원 합격은 에듀윌’, ‘침대는 에이스’, ‘가전은 LG’와 같은 광고 문구가 많이 노출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럼 나이키 다음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아디다스가 떠오른다. 최초상기 다음에 떠오르는 것이 ‘비보조상기’다. 더 이상 떠오르는 것이 없어 일단 신발 매장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컨버스를 발견했다. ‘아, 컨버스도 있었지.’ 브랜드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이 바로 ‘보조인지’이다. 만약 매장에서 버켄스탁이라는 브랜드를 처음 알게 되었다면, 그것은 ‘무인지’ 브랜드였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 프로덕트 설계에 활용할 것은 단 하나, 고객의 ‘최초상기’다. 고객이 우리 프로덕트와 관련해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 길을 걷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지에 주목하자.
이것은 가계부 사용자 인터뷰에 대한 로우 데이터의 일부다. 각 행마다 다른 인터뷰이의 답변인데, 그들의 답변에서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그들은 매일 지출을 확인하고, 주에 2~3회 정도는 항목별 지출을 체크했다. 즉, 가계부 사용자에게 최초상기는 “오늘 얼마 썼지?"와 “이번 달 카페(특정 항목)에서 얼마 썼지?"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가계부 앱은 그들의 최초상기에 가장 빠른 답을 줄 수 있는 형태로 설계되어야 했다.
위 이미지는 2017년 론칭 당시 뱅크샐러드 가계부 화면이다. 가계부의 첫 화면은 “오늘 얼마 썼지?”처럼 고객들이 매일 떠올리는 최초상기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번 달 카페(특정 항목)에서 얼마 썼지?”는 주에 2~3번 정도 확인하기 때문에 첫 화면일 필요는 없지만, 고객이 원할 때 언제든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배치했다.
뱅크샐러드의 경우 현재 버전의 앱이 있기 전, 이미 가계부 앱을 출시한 적이 있다. 그 앱은 1년도 채 운영하지 못하고 중단됐다. 마케팅으로 열심히 신규 회원을 유치해도 고객들은 다시 앱을 찾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첫 앱을 설계할 당시, 필자를 포함한 제품개발 팀원들은 가계부 사용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기존 가계부 서비스들의 지출 내역 리스트는 매력이 없다는 주관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다. 첫 화면에서 시각적인 매력만을 고민해, 이번 달 총 지출 금액만 보여주었고 “오늘 얼마 썼지?”에 대한 고객의 최초상기에 대해선 답을 주지 못했다.
또한 ‘항목별 지출을 확인할 수 있는 파이 차트’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보다 더 나은 시각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으로, 지금까지 여느 가계부 서비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시각 정보를 제시했다. (심지어 애니메이션 효과까지 넣었다.) 그러나 그것은 고객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따라서 ‘가계부'로서의 쓰임을 기대하고 앱을 설치한 고객들이 첫 화면에서 가계부로써 효용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렇게 첫 가계부 앱 론칭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 후 오랜 기간에 걸쳐 가계부를 꾸준히 써온 수십 명의 고객을 만났다. 가계부 앱 유저뿐만 아니라, 용돈 기입장을 쓰는 학생부터 엑셀로 생애 자산 관리를 하는 대기업 직장인, 심지어 복식부기를 쓰는 회계사나 가계부 잘 쓰는 법으로 강연을 하는 프리랜서까지 가리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매일 지출을 확인하는 것과 항목별 지출을 확인하는 것이 그들의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반복적으로 일어나는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가계부 유저의 최초상기를 기반으로 앱의 첫 화면을 설계할 수 있었고, 높은 리텐션 지표로 성공을 증명했다. (2019년 기준, 매일 뱅크샐러드 앱을 방문하는 고객 중 60% 이상이 가계부 유저였다.)
지금까지 고객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프로덕트 기획법 전반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처럼 고객 인터뷰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 방법으로 성공을 이루었고, 반대로 고객을 간과했을 때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객을 만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은 공감한다. 실제로 “고객을 꼭 만나야 하는 시기가 있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이 질문은 고객을 꼭 만나야 하는지, 만나야 한다면 꼭 만나야 할 때만 만나도 되는지에 대한 의도가 숨어있다. 이 질문엔 “제3자에게 우리 고객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만나보아야 한다."라고 답변한다.
결국 수많은 가계부 사용자를 만나고 나서야, “가계부 유저는 지출을 통제하는 것이 그들이 자산을 증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에 가계부를 쓴다.”라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고객 정의 유무에 따라 프로덕트 기획 과정에선 엄청난 차이가 발생한다. 즉, 고객을 만나고 그들을 이해하는 과정은 후퇴하는 것이 아닌 더 강한 추진력을 얻기 위한 준비이다.
부디 이 글이 고객 인터뷰가 생소했던 누군가에겐 새로운 돌파구가 되고, 고객의 중요성을 잠시 잊고 있었던 기획자에겐 초심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1. 시장과 고객을 이해하기 위해 실존하는 진짜 고객을 만나야 한다. 2. 프로덕트가 초기 기획 단계에 있다면 업계의 얼리어답터를 만나자. 3. 고객 인터뷰를 통해 3가지 고객 인사이트를 도출하자. 4. 고객의 페인 포인트를 해결하는 매직 모멘트를 (최대한 빨리) 제공하자. 5. 고객의 기존의 해결책을 뛰어넘는 경쟁 우위 포인트를 모색한다. 6. 첫 화면에서 고객의 잦은 최초상기에 대한 답을 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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