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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라는 키워드가 세상에 등장한 지 2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일반인들에게 e스포츠 업계의 일은 생소하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업계에 다양한 직업들이 존재하지만 프로게이머 외에는 관심을 받기 힘들뿐더러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e스포츠에 관심이 생겨 취업을 희망하는 이들도 실질적인 조언이나 도움을 받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 하여 이번 e스포츠 직업 톺아보기 시리즈를 통해 e스포츠와 관련된 각 직업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두 번째 직업은 e스포츠의 토대가 되며 없어서는 안 될 직업, 프로게이머다.
프로게이머가 꿈인 청소년들이 가장 궁금한 것은 바로 프로게이머가 되는 방법일 것이다. 프로게이머가 되는 방법은 종목의 상황에 따라 크게 2가지로 나뉜다. e스포츠로서 이제 막 스타트를 끊은 종목과 이미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자리를 잡은 종목이다.
전자의 경우엔 게임이 출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이고, 이 경우엔 그 게임의 최상위 랭커(상위 0.1% 이내) 자리를 차지한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프로게이머가 된다. 대부분 빠르게 게임에 적응한 재능파이거나 다른 종목에서 경험을 쌓고 넘어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으로 오버워치나 배틀그라운드, 발로란트 같은 게임들이 있다. 오버워치의 경우 2016년 5월에 게임이 출시됐고, 곧바로 크고 작은 대회들이 열리다가 10월에 오버워치 에이펙스라는 큰 대회가 개최됐다. 불과 5개월 만에 오버워치 프로게이머들이 등장했는데 이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의 대부분은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나 블랙스쿼드, 사이퍼즈 등 다른 게임에서 프로게이머 경력이 있거나 상위 랭커였던 선수들이다. 재능 있는 선수들이 빠르게 판을 차지한 모양새다. 배틀그라운드와 발로란트도 마찬가지로 경험 있는 선수들이 게임 출시와 동시에 종목을 전향하여 자리를 잡았다.
오버워치 e스포츠 초창기 정상에 올랐던 루나틱 하이 팀 선수들은 대부분 스페셜포스, 블랙스쿼드, 사이퍼즈 등 다른 종목에서 활동하다 넘어온 경력자들이다. (출처: 데일리e스포츠)
체계적인 시스템이 도입된 대표적인 경우는 스타크래프트와 리그 오브 레전드를 꼽을 수 있다. 물론 두 게임 모두 초창기에는 위에 언급한 게임과 출발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게임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3년에서 5년이 지나가며 프로리그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활동하는 팀과 선수들이 고정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유망주 발굴로 눈을 돌리게 됐고, 당장 최상위 랭커나 즉시 전력감이 아니라도 연습생으로 선발해 육성에 집중하는 것이다.
스타크래프트의 경우 주기적으로 전국 PC방을 순회하면서 커리지 매치라는 아마추어 대회를 개최했고, 입상자들에겐 프로리그 드래프트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드래프트를 통해 선발되면 프로게임팀에 입단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성공한 e스포츠 모델인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경우엔 프랜차이즈 시스템 도입 이후 모든 팀들이 2군과 3군 팀을 만들어 활동 중이다. 프로게이머의 경우 최상위 티어인 챌린저 혹은 그 바로 아래의 그랜드마스터 급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나이가 어린 유망주들의 경우 마스터에서 다이아1까지 커트라인을 낮춰 잠재력을 보고 연습생을 선발한다. 바로 이것이 갓 걸음마를 시작한 종목과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은 종목의 차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랭크 게임 등급표. 지역별 서버에 300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챌린저 티어 유저는 상위 0.01%에 속한다.
앞서 설명한 예시들은 인기 있는 팀 단위 종목의 경우이며, 각 종목의 인기와 시장의 상황, 개인 단위 종목의 경우에는 데뷔 방법에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물론 공통적인 것은 상위 0.1%에 드는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축구나 야구 등 대중적인 스포츠의 경우 그 종목의 프로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이르게는 초등학생 때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한다. 흔히 말하는 학원 스포츠의 길을 걷는 것인데, e스포츠에서는 이런 과정들이 생략된다.
e스포츠 초기의 경우 그 게임의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하는 선수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재미로 게임을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남들보다 재능이 있고, 주변의 추천으로 자연스럽게 대회에 나가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하게 된 사례가 적지 않다. 각 종목의 초창기에 프로게이머들의 태도나 인성문제가 자주 불거져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학원 스포츠처럼 준비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기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문제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프로로서 성장한다.
평균적으로 10대 후반에 데뷔해 20대 중후반에 은퇴를 한다. 프로게이머의 99% 이상이 남성인데,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두더라도 군 입대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20대 후반을 넘기지는 못한다. 제대 이후 복귀하는 선수들도 종종 있지만 경쟁이 심한 종목에서는 선수로 복귀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리그 오브 레전드처럼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선수들이 많은 종목이 대표적이다. 반면 신인 선수가 등장하지 않는 스타크래프트나 스타크래프트2의 경우엔 전역한 선수들이 복귀해 프로게이머 활동을 이어가는 사례가 많다.
30대 후반에도 꾸준히 활약하고 있는 철권 프로게이머 ‘무릎’ 배재민. (출처: 데일리e스포츠)
평균적으로는 20대 후반에 커리어가 끝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30대 프로게이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기 관리만 잘한다면 30대 중후반에도 충분히 프로게이머로 활동할 수 있다. 특히 FPS 게임이나 개인 단위 종목에서는 30대 선수들이 많다. 발로란트에서도 최근까지 ‘솔로’ 강근철(1988년생)의 사례가 있었고, 대표적인 피파 프로게이머인 김정민 선수 역시 1988년생이다. 워크래프트3 종목에서 현역으로 활동 중인 장재호는 1986년생이고, 철권 랭킹 1위 ‘무릎’ 배재민과 스트리트 파이터 종목의 ‘잠입’ 이선우 역시 1985년생이다. 이들은 여전히 전성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40대 프로게이머의 탄생은 시간문제라고 볼 수 있다.
프로게이머의 수입은 한마디로 천차만별이다. 종목의 규모와 인기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는 연예인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여느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프로게이머의 수입은 실력과 인기에 비례한다.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인지도마저 낮은 선수들은 수입이 아예 없는 반면, 우승권 전력에 인기가 많은 선수들은 한 달에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을 넘게 버는 경우도 있다. 기본적으로 연봉이 높기도 있지만 스트리밍이나 유튜브 활동을 통해 부수익을 올리는 경우도 많다.
앞서 설명한 사례는 리그 오브 레전드와 오버워치를 제외한 나머지 종목의 이야기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도입한 리그 오브 레전드 대회(LCK)나 오버워치 리그의 경우에는 최저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다. LCK는 6천만 원부터 시작하며 2부 리그인 챌린저스 선수들도 최저 연봉이 2천만 원으로 책정돼있다. 2020년 기준 프로야구 최저 연봉이 3천만 원인 것을 감안하면 꽤 높다고 볼 수 있다. 오버워치 리그의 경우엔 글로벌 대회이기 때문에 달러로 책정되며 5만 달러부터 시작한다. LCK 최저 연봉과 비슷한 수준이다.
전통적인 프로 스포츠들보다 높게 책정된 LCK의 최저 연봉.
물론 이것은 말 그대로 최저 연봉이고 경력 있는 선수들은 대부분 억대 연봉을 받는 시대가 됐다. 수십억 대 연봉을 받는 ‘페이커’ 이상혁을 제외하더라도 10억이 넘는 연봉을 받는 선수의 수가 상당히 많아졌다. 시장이 큰 북미나 중국 리그에 진출한 선수들은 국내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로 인해 최근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들의 연봉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흘러나오고 있기도 하지만, 일각에서는 프로게이머의 짧은 수명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 프로게이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하며 돈을 버는 아주 편하고 좋은 직업처럼 보인다. 그러나 게임을, 그것도 승부의 세계에서 게임을 일로 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프로게이머에게 있어 가장 힘든 점은 사생활의 부족이다. 프로게이머는 주로 야간에 활동을 하고, 경기가 평일 저녁 혹은 주말에 열리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없다. 상대적인 직업이기 때문에 마음껏 쉴 수도 없다. 일주일에 하루도 온전히 쉬기가 어렵다. 종목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1월부터 시즌 준비를 시작해 3월에 정규 시즌에 돌입하고, 10월까지 쉼 없이 달린다. 11월이나 12월에 몰아서 쉬는 것이 프로게이머가 유일하게 취할 수 있는 휴식다운 휴식이다. ‘워라밸’과는 거리가 먼 직업이다.
특히 프로게이머는 게임을 재미로 할 수 없다. 자신이 선호하지 않는 캐릭터나 플레이 스타일이 있더라도 승리를 위해선 참아야 한다. 또 대부분의 팀에서 집중력을 흩트린다는 이유로 다른 게임 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있다. 개인 연습을 하다 연패를 당하더라도 꾹 참고 자신의 패인을 분석할 줄 아는 인내심이 요구된다.
이런 힘든 과정들을 버틴다 하더라도 막상 경기에 나가서 지면 자책감뿐만 아니라 팬들로부터 받는 비판과 비난, 심지어는 악플 등으로 인해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심한 경우엔 불면증이나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보통 멘탈이 아니면 버티기가 힘든 직업이다.
또한 게임의 인기가 식으면서 자연스럽게 프로게이머로서의 직업 가치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종목사(게임사)의 의지에 따라 운명이 좌우되는 경우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블리자드의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다. 블리자드는 2018년 겨울, 갑작스레 “2019년부터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공식 대회를 개최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이로 인해 당시 많은 프로팀들이 해체하고 관계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선수들은 강제로 은퇴를 하거나 다른 종목으로 전향해야만 했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고자 최근 국회에서는 이른바 ‘히오스 법’이라고 불리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프로게이머의 가장 큰 장점은 젊은 나이에 또래보다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이다. 남성의 경우 4년제 대학교와 군대를 다녀온다면 아무리 빨라도 27살 즈음에 취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프로게이머들은 보통 이 시기에 은퇴를 한다. 남들이 첫 취업을 할 때 은퇴를 하고 삶의 다음 단계를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선수의 수명이 짧다는 단점도 있지만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삶의 기반을 마련한 뒤 30대를 맞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메리트가 될 수 있다.
더불어 해외 무대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중 하나다. 1년에 수 차례 해외에서 대회가 열리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단순히 대회 출전뿐만 아니라 해외 프로게임팀에 입단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해외에서 생활하는 것은 젊은 나이에 돈 주고도 하기 힘든 경험이라 볼 수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은 중국과 미국 무대로 국한되어 있었지만 최근에는 유럽, 동남아, 남미, 일본 등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에 채택된 e스포츠.
e스포츠의 사회적 지위와 인기, 가치가 점점 상승하고 있다는 점도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요인이다. 오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e스포츠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프로게이머들도 금메달을 따면 군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한국e스포츠협회 역시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대한체육회 가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적지 않은 선수들이 선수 때의 경험을 살려 코치나 감독으로 변신해 커리어를 이어간다. 국내 코칭스태프들의 지도력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아 선수들 못지않게 해외 무대로 진출하는 사례가 많다.
최근 프로게이머 지망생이 늘어나고 취미로 게임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은 사람들이 늘면서 프로게이머 학원도 각광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프로게이머 출신 강사들이 증가하고 있다. 만약 e스포츠가 정식 체육 종목으로 인정받을 경우, 학원 스포츠로의 외연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자리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LCK의 해설가 김동준-이현우 역시 프로게이머 출신이다. (출처: 포모스)
극소수지만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말을 유창하게 잘하는 경우엔 해설가로 변신하기도 한다. 높은 게임 이해도를 바탕으로 게임사에서 기획자로 근무하거나 맵 제작자로 근무하는 경우도 있고, e스포츠 대회 운영과 기획을 담당하거나 혹은 스튜디오에서 게임 연출(옵저버)을 맡을 수도 있다.
가장 흔한 사례는 개인 방송을 하는 것이다. 프로게이머들이 스트리머나 BJ, 유튜버로 활동하는 것인데 게임을 일로써 한다는 것에 큰 차이는 없지만 승부에 대한 압박감과 스트레스는 크게 줄어든다. 그러나 경쟁이 심한 데다가 프로게이머 시절의 인기와 인지도가 시청자 수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프로게이머의 화려한 면만 보고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섣부른 판단으로 준비되지 않은 채 프로게이머를 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 특히 “공부가 하기 싫어서”라는 마인드로 접근하는 경우엔 십중팔구 실패하고 만다. 회피 창구가 아닌 직업으로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공부해야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원활한 선수 생활을 위해서는 결격사유에 해당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금전적 이득을 취하고 대리 게임을 진행한다거나 사회적 물의가 될만한 언행, 학교폭력 등의 이력이 있다면 프로게이머가 되기 힘들다. 프로게이머는 소속팀과 기업, 스폰서뿐만 아니라 그 게임을 즐기는 수많은 유저들을 대표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언제나 언행에 신중해야 한다.
대리 게임이나 반사회적 언행 등은 대표적인 결격 사유가 된다. (출처 : 포털 검색)
이처럼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은 데뷔부터 활동까지 결코 쉽지는 않다. 하지만 재능을 바탕으로 챔피언이라는 꿈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국내외 팬들과 미디어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매력적인 직업임은 분명하다. 또한 e스포츠의 인기와 가치가 올라가며 프로게이머 출신들이 강사로 활동하는 등 은퇴 후 진로도 예전보다 다양해지면서 더욱 안정적인 직업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e스포츠의 성장에 맞춰 다양한 종목의 프로게이머들이 더 많이 활약하는 미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