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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 직업 톺아보기: ① e스포츠 기자

‘e스포츠’라는 키워드가 세상에 등장한지 2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일반인들에게 e스포츠 업계의 일은 생소하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업계에 다양한 직업들이 존재하지만 프로게이머 외에는 관심을 받기 힘들뿐더러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e스포츠에 관심이 생겨 취업을 희망하는 이들도 실질적인 조언이나 도움을 받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 하여 이번 e스포츠 직업 톺아보기 시리즈를 통해 e스포츠와 관련된 각 직업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고, e스포츠 기자로 그 첫 장을 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할까?

LCK 미디어데이의 모습
LCK 미디어데이의 모습 (출처: 라이엇 게임즈)

 

참 당연하게도 프로게이머들의 경기를 취재하는 것이 가장 주된 업무다. 경기장에 마련된 기자실에서 그날 경기의 내용과 결과가 어땠는지를 실시간으로 서술하여 보도하는 일인데, 이를 보통 ‘스트레이트’ 기사라고 부른다. LCK(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처럼 다전제로 치러지는 경기라면 세트 별로 스트레이트 기사를 쓰고, 경기 전체의 승패가 결정된 이후엔 각 세트의 결과를 한데 묶은 종합 기사를 작성한다. 

 

이후에는 승리팀의 주요 선수들 혹은 코칭스태프와 인터뷰를 나누는데, 이때 방송으로는 볼 수 없던 선수들이나 나오지 않았던 질문과 답변들이 오간다. 간혹 현장에서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해 경기가 지연될 때는 그런 사고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 보도할 때도 있다. 매 경기가 끝난 뒤에는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MVP 선수를 실시간으로 뽑는데, 현장에 나간 기자단들에게도 투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현장의 생생한 모습과 선수들의 표정을 담을 수 있도록 사진도 찍는다. 일반적인 스포츠처럼 역동적인 모습은 많지 않지만 다양한 표정들이 나오기도 하고, 때론 카메라가 익숙해진 선수들의 장난스러운 모습도 담을 수 있다. 현장에 나간 e스포츠 기자들만이 생산해낼 수 있는 유니크한 콘텐츠다.

 

결승전 같은 중요한 경기를 앞뒀을 땐 중계진이나 다른 팀 감독 코치들에게 연락해 경기에 대한 예측을 묻는 프리뷰 기사를 쓰기도 한다. 비시즌에는 선수들의 영입과 이적 소식을 주로 다루고, 그간 바빠서 못했던 선수와 관계자들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한다.

 

e스포츠가 게임으로 진행되는 만큼 단순히 경기 소식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에 대한 소식도 자주 다루게 된다. 프로 경기가 진행되는 종목들의 새로운 패치나 캐릭터 출시 소식뿐만 아니라 게임사의 동향이나 신작 게임 소식들도 다룬다. 여느 IT 산업 기자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업무 내용이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e스포츠 기자
때로는 선수들의 역동적인 표정과 제스쳐를 담을 수 있는 사진 실력도 필요하다. (출처: dexerto.com)

 

사실 e스포츠 기자라는 포지션의 수요가 다른 업계 기자들에 비해 결코 많지가 않다. 국내 e스포츠 전문 매체라고 해야 서너 군데 정도뿐이고, 나머지는 스포츠 전문 매체에서 취재를 하거나 게임 혹은 IT 전문 매체에서 다른 콘텐츠와 병행 취재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e스포츠 시장이 커지고 있다고 해도 메이저 언론들은 롤드컵 결승이나 아시안게임과 같은 굵직한 소식 외에는 다루지 않기 때문에 전문기자를 고용하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체 e스포츠 기자 풀이 그리 넓지가 않고, 채용 빈도도 높지 않다.

 

그런데 막상 매체에서 e스포츠 전문기자를 채용하려고 해도 ‘뽑을만한 사람이 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주로 사람인이나 잡코리아, 미디어잡 같은 구직 사이트를 통해 채용을 진행하는데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단순히 ‘취업’만을 위해 두드려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본적인 미디어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지원자가 태반이다. 아직까지 e스포츠 전문 기자라는 것이 생소하기 때문에 지원자가 많지 않은 이유도 있다.

 

물론 그 와중에도 게임과 e스포츠가 좋아서 지원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데, 전혀 준비가 돼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매체 입장에서는 ‘키워서 써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성장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미지수이기 때문에 채용에 있어 굉장히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만약 e스포츠 기자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들 필요가 있다. 블로그나 커뮤니티를 통해 주기적으로 경기 분석글을 올리는 등 여러 방법으로 자기가 가진 능력을 보여주거나 e스포츠 산업 전반에 대한 넓은 관심과 이해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있어야 한다. 기본적인 e스포츠 지식이 있다는 것을 어필해야 채용하는 입장에서 ‘빠른 성장’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준비된 자가 1년에 몇 없는 채용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주의할 점도 분명히 있다. 간혹 프로게이머가 좋아서 팬심으로(프로게이머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기자가 되는 사례도 있는데 이럴 경우엔 오래가지 못한다. 생각보다 고된 직업이기도 하고, 팬심으로 일을 하면 비판적인 자세를 취할 수 없기 때문에 기자로서의 가치가 결코 높아질 수가 없다.

 

대인관계를 맺는 일도 중요하다. 아무리 게임과 e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깊다 하더라도 기자라면 직접 사람들을 만나고, 취재를 위해 전화 통화를 많이 해야 하는데 이런 일들에 어려움을 느끼는 신입기자들이 종종 있다. 기자로서의 퍼포먼스를 내기가 어렵다. 짧은 텍스트로 소통하는 일에 적응된 최근의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통화에 대한 거부감 혹은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기자 업무를 하기 위해선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것들이다. 물론, 글을 잘 쓰고 잘 경기를 보는 눈이 남다르고 분석 능력이 뛰어나다면 위의 문제들을 상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외우고 배워야 할 것도 많다. 수백 가지의 게임 캐릭터 이름이나 스킬, 아이템 이름뿐만 아니라 수백 명의 국내외 선수들의 본명과 아이디도 외울 필요가 있다. 인터넷 트렌드에도 민감해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는 밈(meme)에 대해서도 그 의미와 출처를 이해하고 있어야 기사에 활용하거나 신조어 사용에 유의할 수 있다. 또 e스포츠 관련 밈들 중에서는 과거 e스포츠 역사와 연결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과거의 것들도 배워놓는 것이 좋다(가장 흔히 쓰이는 예: 콩라인 혹은 3연벙).

 

 

e스포츠 기자의 매력은?

e스포츠 기자
롤드컵과 같은 역사적인 무대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점도 e스포츠 기자의 큰 장점 중 하나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게임과 e스포츠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유명 선수들과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당연히 앞서 언급한 것처럼 팬심으로 접근하는 것은 배제해야 한다.

 

기사를 쓰는 입장에서 가장 좋은 점은 소재의 고갈이 없다는 점이다. 일주일에 열리는 e스포츠 경기만 해도 일정표를 꽉꽉 채울 수 있는데 해외 무대까지 눈을 돌리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종목과 경기들, 그리고 팀과 선수들이 있다. 한 가지 예로 리그 오브 레전드만 해도 중국의 LPL이나 북미의 LCS, 유럽의 LEC 소식만 다뤄도 e스포츠 팬들의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다. 일부 비인기 종목의 팬들 사이에서는 기사가 나온다는 것 자체를 반가워하기 때문에 소재 고갈로 고민할 일은 거의 없다.

 

e스포츠 기자가 많지 않다는 점은 역설적이게도 ‘스타 기자’가 될 가능성도 높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한국은 전 세계 e스포츠 시장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고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소식을 해외 팬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꽤 가치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해외 e스포츠 관계자들은 대부분이 트위터로 소통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적극 활용한다면 글로벌 네트워크 형성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외국어에 능통하다면 해외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널리 알릴 수도 있고, 이런 루트를 통해 해외의 유명 프로게이머를 서면으로 인터뷰할 기회도 많기 때문에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최근 2년간은 코로나 때문에 거의 없었지만 1년에 최소 한두 차례 해외 출장의 기회가 온다는 것도 e스포츠 기자가 가질 수 있는 장점 중 하나다. 물론 쉬운 업무가 아니고 체력적으로도 힘든 것이 해외 출장이지만 만약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과 같은 역사적인 행사의 중심에서 함께 할 수 있다면 e스포츠인으로서는 더 없는 영광일 것이다. 

 

장점이라 하기엔 애매하지만 e스포츠 기자들은 대부분이 취재뿐만 아니라 사진 및 영상 촬영, 편집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 가끔은 모든 업무를 떠맡는 것 같아 불만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난 돌아보면 다양한 작업들을 수행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가 된 자신을 보면서 한 단계 성장했음을 느끼게 된다.

 

 

힘든 점은 무엇이 있을까?

e스포츠 기자
시즌 중엔 경기장에서 살다시피 한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주로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경기가 진행되다 보니 사생활에 지장을 받는 경우가 많다. 남들 쉴 때 일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오후 5시부터 시작되는 LCK의 경우엔 두 경기가 모두 풀 세트 장기전으로 가거나 경기가 지연되는 일이 발생하면 아슬아슬하게 막차를 타고 퇴근하거나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단기간도 아니고 프로게이머들의 연간 시즌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라이프 사이클에 대한 고민과 이런 것들을 감내할 각오가 돼있지 않다면 버티기가 어렵다. 비교적 낮 시간이 조금 한가할 수는 있겠지만 주로 오전에 오는 게임사들의 보도자료들을 처리하거나 미팅, 인터뷰 일정이 잡히면 하루 종일 업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주말과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한다면 e스포츠 기자는 적성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해외리그나 행사가 있을 땐 새벽시간에 업무를 봐야 하는데 워낙 해외리그가 많아 에너지 드링크와 카페인의 힘으로 버티며 업무를 처리할 때도 많다. 체력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게임이나 e스포츠 콘텐츠는 일반 유저나 팬들의 접근이 비교적 쉽다. 자연스레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전문가들도 놀랄 만큼 정교하고 심도 있는 분석 글과 자료들이 올라온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한 가지 콘텐츠에만 집중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에 반해 기자는 한 가지 종목이나 특정 팀에만 매달릴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는 퀄리티나 정성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따라가기 힘든 콘텐츠지만 독자들은 사정을 봐주지 않고, 팬들이 기자보다 낫다는 다소 억울한 평가가 따라붙게 된다. 기자 입장에서 공정한 평가가 아닐지라도 이런 일들은 굉장히 흔하게 벌어지기 때문에 적응하고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관심과 애정이 있다면 매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e스포츠 시장이지만 앞서 설명한 것처럼 시장규모에 비해 e스포츠 전문기자의 수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고, 뉴페이스들의 유입도 많지 않다. 워라밸 측면에서 힘든 점이 있지만 본인이 게임과 e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직업이다. 굉장히 다양한 종목들과 팀,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배워야 하고, 매년 큰 변화가 이루어지는 시장이기 때문에 남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도록 e스포츠 기자만의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취재 능력이 뛰어나고 외국어에 능통하다면 충분히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기자가 될 수도 있다. 

 

현재 활동하는 e스포츠 기자들의 연령대가 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인데, 타 업계에 비해 평균 연령대가 낮기 때문에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만 놓치지 않는다면 충분히 롱런할 수 있는 직업이다. 최근에는 e스포츠가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이 되는 등 공식 체육화의 바람도 불고 있으니 앞으로 e스포츠 기자들의 활동 반경은 점점 더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시우

FPS 게임 프로게이머, e스포츠 전문기자, 프로게임팀 감독까지 20년째 e스포츠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Gen.G 오버워치 컨텐더스 팀 감독직을 거쳐 현재는 Talon 레인보우식스: 시즈 팀 감독을 맡고 있으며, 프로게이머 지망생과 학생들을 위한 진로 상담 및 특강, 컨설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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