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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9월이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 스페셜 이벤트가 있다. 바로 글로벌 상장기업 중 1위(약 2912조 원)이자, 약 13억 명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한 애플의 신제품 발표회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단 한차례 9월이 아닌 10월에 진행했던 작년 신제품 발표회를 제외하면, 올해도 어김없이 기존과 비슷한 시기인 9월 1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파크 스티브 잡스 극장에서 개최되었다.
애플 CEO 팀쿡이 9월 14일 애플 스페셜 이벤트를 소개하는 모습. [사진=애플]
특히, 작년부터는 생중계가 아닌 녹화 영상을 송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동시에 전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시청자들에게 보다 더 높은 접근성(Accessibility)을 제공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애플 스페셜 이벤트 홈페이지 방문 시, 국제수화도 함께 제공되는 등 종합적으로 시각적, 청각적 정보에 취약한 사용자들을 배려한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까지 갖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 다양한 사용자를 포괄하는 보편적인 디자인을 뜻한다. 성별이나 나이, 장애, 언어 등으로 인해 이용에 제약을 받지 않도록 디자인된 것이 특징이다.)
이날 애플 스페셜 이벤트에서는 아이폰 13 시리즈 4개 모델(미니, 일반, 프로, 프로맥스)과, 전작 대비 디스플레이 크기가 약 20% 커진 애플 워치 7, 보급형 수요에 적합한 아이패드(9세대), 아이패드 미니(6세대)도 함께 소개되었다. 역시나 이날 스페셜 이벤트에서는 아이폰13시리즈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었다.
2021 애플 스페셜 이벤트에서 출시된 신제품 라인 [사진=애플]
하지만, 많은 이들의 기대와는 아이폰13은 과거 아이폰 11, 12시리즈와 유사한 외관 디자인으로 대중의 평이 매우 엇갈렸다. 특히 전작 대비 외관에서 나타나는 뚜렷한 차별성이 부족하다는 의견들이 다수 제기되었으며, 최근 ‘혁신’이라고 평가받는 삼성전자의 갤럭시 폴더블 제품들과 직접적인 비교를 하는 곳들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애플은 이제 불변의 법칙이라고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최근 진행된 사전 예약에서 역대급 판매량을 기록함으로써 이번의 논란 또한 가뿐히 잠재우고 있다. 해외 IT 매체 애플인사이더는 미국 웨드부시증권의 보고서를 인용하여 아이폰 13 사전 주문량이 전작 대비 약 20% 늘었다고 전했으며, 중국 온라인 쇼핑몰 징둥닷컴에서는 약 200만 명의 사전예약 판매(전년대비 약 33% 높은 수치)가 이뤄졌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역시나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에서는 10월 1일 자정부터 애플 공식 홈페이지, 쿠팡, 11번가와 같은 여러 온라인 채널을 통해 사전판매를 시작하였는데 대부분의 모델이 시작과 동시에 품절이 되는 등 또 한 번 아이폰 13시리즈의 위력을 체감할 수 있었다. 실제 필자도 쿠팡 앱을 통해 일찍부터 사전예약 대기를 하였으나, 끝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사전 예약을 시도하기 위해 쿠팡 앱에서 대기하였지만, 곧이어 품절되는 모습 (사진 = 필자 쿠팡 앱 화면)
매년 비판을 받으면서도 역대급 판매량을 기록하는 애플이다 보니 후속작이 최초 공개되는 ‘스페셜 이벤트’에 대한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이 높은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정작 애플의 스페셜 이벤트를 단순히 대중에게 신제품을 공개하는 행사로만 받아들이기에는 본래의 숨겨진 역할이 매우 크다. 특히, 스페셜 이벤트의 이면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소비자들의 ’무의식적 작용’을 활성화시키는 숨겨진 장치(뉴로 마케팅, 소비자들의 무의식에서 나오는 분석해 마케팅 전략에 적용하는 기법)들이 ‘이벤트 진행 전-진행 중-진행 후’ 각각의 단계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애플의 스페셜 이벤트는 애플 신제품의 인기와 매출을 높이는 하나의 ‘숨겨진 조력자’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애플은 매해 9월 정기적인 신제품 출시 이벤트를 진행하지만, 매번 철저하게 극비리에 준비된다. 신제품 관련 정보를 사전에 공개하지 않는 것은 물론, 신제품 발표회 일자마저 진행되기 며칠 전에 공개한다. 이는 대다수의 애플 직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항이다. 올해도 애플은 자신들만의 확고한 철칙에 따라 애플 스페셜 이벤트가 있기 약 1주일 전인 9월 7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에서 전하는 소식(California streaming)’이라는 제목의 초대장을 통해 14일에 열리는 애플 스페셜 이벤트를 예고했다. 물론 초대장에서도 본 이벤트에서 선보이게 될 신제품과 관련한 어떠한 정보도 사전에 공개하지 않았다.
팀 쿡 애플 CEO [사진=AP 연합뉴스]
애플이 이처럼 매번 신제품 공식 발표 행사 이전에 어떠한 정보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만에 하나 자체적인 사업 전략을 노출하게 될 경우 기업 경영에 심각한 타격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높은 브랜드 인지도와 고객 충성도를 보유한 애플의 경우 ‘비밀주의’를 고수함으로써 생성되는 수많은 루머들로 자연스러운 홍보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최대 이점이 있다. 특히, 신제품과 관련한 애플의 어떠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음에도 애플 스페셜 이벤트 일자가 임박할수록 더 많은 루머들이 양산된다. 루머 속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수많은 매체에서 앞다투어 신제품 관련한 얘기들이 다뤄지며 곧이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하는 셈이다.
이처럼 애플의 신제품이 출시되기 훨씬 더 전부터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목격하다 보면, 애플 제품에 관심이 없었던 소비자의 경우에도 이후 구매의사결정 시 무의식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러한 심리를 ‘편승효과’ 혹은 ‘밴드웨건 효과’(Bandwagon Effect)라고도 하는데, 즉 다수의 소비자들이 관심 있고 사용하는 제품을 보고 따라 소비하게 되는 ‘무의식에 모방하는 소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애플 매장 앞 긴 대기 줄의 모습, Schildergasse in Cologne, 독일 [사진=NBC News]
결국, 애플 스페셜 이벤트 진행 전 철저하게 유지되는 비밀주의 전략은 1년 내내 신제품에 대한 자연스러운 홍보 효과를 얻는 것과 동시에 대중에게는 ‘애플 제품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제품이다’라는 인식 및 브랜딩을 각인시키는 효과로 작용한다.
1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열성적으로 다음 해의 애플 스페셜 이벤트를 기다리게 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애플은 사람들의 기다림이 즐거울 수 있도록 환경을 충분히 조성해 준다. 특히 기다림에 대한 충분한 당위성(목표)을 제시하고 이벤트 진행 일자를 예측 가능하게끔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애플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기다림의 결과가 온다는 확신’을 심어줌으로써 신제품에 대한 욕망을 유예할 수 있는 환경을 선사한다. 즉, 쉽게 말해 ‘충분히 기다릴만한 가치다 있다’라고 판단되게끔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확신을 심어주는 데 있어서는 직접적인 ‘말’보다는 실제 애플 제품이 선사하는 총체적인 사용자 경험(UX)을 통해 입증한다. 이러한 과정을 경험한 소비자들은 애플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어, 후속작에서는 또 어떤 새로운 가치를 제공받게 될지에 대한 기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셈이다.
또한, 무조건적인 비밀주의를 고수하는 애플 입장에서도 스페셜 이벤트와 관련해서는 최소한의 정보는 간접적으로 노출한다. 즉, 소비자들과 별도로 약속하진 않았지만, 하나의 관행처럼 애플 스페셜 이벤트를 매해 동일한 월에 진행함으로써 대략적인 신제품 발표 일자를 예측 가능하게끔 하였다.
이처럼 애플은 직접적으로 기다림을 강제하지 않고 소비자들 스스로가 기다림에 대한 목표와 일자를 설정하게끔 하여 애플 스페셜 이벤트에 대한 종합적인 기대 심리를 높인다. 그리고 이렇게 개개인의 기대 심리가 높게 형성되면 ‘스탈당 신드롬(Stendhal Syndrome)’의 심리효과가 작용하는데, 이는 당장은 소유하지 못하더라도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제품을 생각할 때 드는 증상을 뜻한다. 즉, 신제품에 대한 오랜 기다림으로 높아진 소비자의 기대 심리는 애플 스페셜 이벤트를 통해 직접 실물을 맞이했을 때 순간적으로 제품 구매 욕구가 극대화된다. 이때 소비자들은 제품의 기능, 가격 등 여러 경쟁사와 비교해 보는 방식의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무의식적인 감정에 의해 소비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애플은 매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스페셜 이벤트 초대장을 제작해 매체에 전달한다. 올해 전달된 초대장은 과거의 평면 방식의 포스터 형태와는 달리,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AR 비주얼이 추가된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형태로 제작되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전하는 소식의 이름으로 전달된 애플 스페셜 이벤트 초대장 [사진 = 애플]
애플 공식 홈페이지에 기재된 초대장 내 애플 로고를 터치할 경우, AR 기능이 활성화된다. 단 해당 경험은 아이폰 사파리 앱을 통해서만 실행 가능하여 아이폰 유저들에게만 차별화되고 희소성 있는 초대 경험을 제공하였다.
AR 기능이 활성화된 후 벽면 또는 바닥면에 스마트폰 화면을 고정시킬 경우 애플 로고가 등장한다. 애플 로고 쪽으로 스마트폰을 이동할 시, 지평선을 배경으로 한 별들이 떠있는 밤하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애플 로고 안쪽으로 깊숙이 이동할 경우 스페셜 이벤트의 날짜 확인이 가능한데, 동시에 배경이 서서히 밝아지는 연출을 통해 특유의 몰입감, 생동감을 증대시키는 경험적인 요소가 인상 깊게 다가왔다.
AR 기능 활성화 및 초대장 확인하는 모습 [사진 = 트위터, @_inside Guilherme Rambo]
이번 AR 기능을 활용한 초대장은 향후 진행되는 애플 스페셜 이벤트와 관련한 수많은 루머들을 양산하였다. AR 화면에 나타난 숫자의 모습이 AOD (Always On Display: 완전하게 꺼지지 않는 화면)를 상징한다거나, 어두운 배경 속에서도 선명한 화질의 자연이 한 층 더 개선된 야간 카메라 센서를 의미한다거나, 밤하늘 별들의 모습은 기존 통신망이 잡히지 않았던 곳들까지 확대된다는 등의 다양한 해석이 존재했다.
올해 애플 스페셜 이벤트가 종료된 시점에서 보았을 때 추측 중 일부는 정답과는 먼 얘기들임이 확인되었지만, 정답과 상관없이 이벤트 진행 일자와 인접한 시점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상상과 토론이 가능하도록 일종의 장을 마련한 셈이다.
해당 과정을 통해 곧이어 진행된 애플 이벤트에 대한 사람들의 주목도를 한 층 더 높일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기대 사항을 자연스럽게 수집할 수 있는 창구로서의 역할도 한 것이다. 이는 당장 출시될 제품에 적용된 사항들뿐만 아니라, 애플의 장기적인 목표와 방향성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 등으로 확대 해석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확인 가능했다.
애플은 매해 완벽한 해석이 불가한 초대장을 제작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자이가르닉(Zeigarnik effect)’의 법칙 또는 미완성 효과가 작용하도록 의도한 게 아닌가 싶다. 사람은 미완성 과제에 대한 기억이 완성 과제에 대한 기억보다 더 강하게 기억되는 점을 이용하여, 신제품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기 위해 초대장 내 중계 날짜와 장소 외의 그 어떠한 정보도 직접적으로 명시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마치 드라마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실마리가 풀리지 않은 채 끝나는 것과 유사하게,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강력하게 이후에 있을 결과인 스페셜 이벤트에 대해 학수고대하게 만드는 효과로 작용한다.
금번 애플 스페셜 이벤트 오프닝에서는 캘리포니아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영상이 연출되었다. 물론 매해 신제품 발표회가 진행되는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파크 인근 모습을 소개하는 것으로도 단순 해석이 가능하지만, 실상 이번 영상의 숨겨진 목적은 스토리텔링의 법칙을 활용한 서브리미널 효과(Subliminal Effects)를 의도한 듯싶다. 여기서 말하는 스토리텔링의 법칙은 제품에 얽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으로, 소비자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을 제품에서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마케팅 전략이다. 즉, 사람들은 쓸모 있는 상품보다 자신의 꿈과 감성을 만족시키는 상품을 더 구매하고자 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2021 애플 스페셜 이벤트 오프닝 [사진=애플]
캘리포니아라는 도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망의 도시’와도 같다. 사막, 바다, 대지 등 광활한 자연과 함께 어울려 있는 최첨단, 모던한 느낌의 도시에 압도되며, 그 자연과 도심 속에서 자유롭게 음악을 연주하며 춤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의 매료된다.
팀 쿡 애플 CEO는 거대한 도시 캘리포니아 자체를 ‘큰 야망과 큰 꿈을 가진 사람들의 땅’이라고 표현하며, ‘발전을 이뤄내고 세상을 바꿀 물건을 만드는 곳’으로 소개한다. 그리고 그런 도시의 역할과 애플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연관 짓는다. 그는 애플 제품이 지닌 우수성을 소개하기에 앞서, 애플이 추구하는 가치와 그 가치를 추구하면서 만들어진 제품의 배경에 대해 우선적으로 스토리텔링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제품 자체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이면의 우수성을 캘리포니아라는 도시가 선사하는 ‘선망’의 요소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2021 애플 스페셜 이벤트 오프닝 [사진=애플]
이러한 스토리텔링을 접한 소비자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서브리미널 효과가 작용한다.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는 미약한 자극도 잠재의식 속에 기억되어 인간의 감정이나 행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론인데, 즉 해당 제품을 제작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해당 제품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조차 동일한 가치를 체감할 수 있다는 느낌을 무의식적으로 심는 것이다. 비록 소비자가 직접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며, 똑같은 일상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해당 도시에서 개발된 선망의 제품을 사용하며 각자의 일상에서 누리게 될 ‘사용을 멋지게’의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2021년도 애플 스페셜 이벤트도 대중의 많은 관심과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매번 신제품이 갖춘 신기술과 라인업과 관련한 분석에만 많은 초점이 맞춰져 있어 늘 아쉬움이 남았다. 따라서 필자는 상상 이상으로 많은 역할을 하는 숨겨진 조력자 ’스페셜 이벤트’의 이면을 각 주요 단계별로 파악해 봄으로써, 소비자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UX적 요소들을 분석해 보고자 하였다.
이번 글에서는 애플 스페셜 이벤트 진행 전의 주요 전략인 비밀주의, 즐거운 기다림, 상상의 극대화의 내용으로 소비자의 기대 심리를 높여 제품 구매 욕구를 극대화하는 관점에서 해석해보았다. 또한, 캘리포니아라는 선망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오프닝을 도입함으로써, 제품이 지닌 가치 이상의 가치를 조금 더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효과로 작용한 것 또한 확인 가능했다.
이어질 2부에서는 애플 스페셜 이벤트 진행 중에 사용된 제품 소개 방식에 있어서의 장단점과 함께, 이벤트 진행 후의 주요 전략에 대해 다뤄볼 예정이다.
참조 문헌 및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