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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 IT 열여덟 번째. 한국 인터넷 항구 패권 전쟁

웹 브라우저

업무 이외의 목적으로 컴퓨터를 켰을 때 여러분이 가장 먼저 사용하는 서비스는 무엇입니까? 아마 대부분 웹브라우저를 더블 클릭하여 인터넷을 활용할 것입니다. 물론 업무를 할 때도 인터넷을 수시로 써야 할 경우도 많습니다. 크롬이든 익스플로러든 엣지든 간에 웹브라우저를 열었을 때, 펼쳐지는 화면은 대동소이합니다. 당연한 것처럼 웹브라우저에서 홈 화면으로 설정되어 있는 포털사이트가 열리는 것입니다. 마치 포털사이트가 곧 웹브라우저 인양 착각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크롬이 구글이고, 익스플로러가 네이버인 것처럼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웹브라우저는 웹브라우저일 뿐이고, 본래는 웹 브라우저를 열었을 때 디폴트 값, 즉 빈 화면이어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실제로 2000년대 필자가 IT업계 실무에 종사하고 있을 때, 빈 화면을 홈으로 사용하는 프로그래머들도 많이 봤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그만큼 포털 사이트에 익숙해졌다는 것이고, 포털 사이트에 극도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포털 사이트는 그에 상응하는 만큼 막강한 위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현재 한국의 포털 사이트는 네이버, 다음, 네이트 3강 체제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외국의 포털 서비스까지 포함한다면 구글까지 포함해서 4강 체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상황으로 정리되기 전까지 이 시장은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복잡다단한 상황들이 펼쳐졌었습니다. 마치 아메리카 대륙에 이주한 이민자들이 서로 노른자위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황야의 무법자들로 총싸움을 벌인 것과 같은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이번 장에서는 2000년대 한국 IT업계를 포털 사이트 패권 전쟁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검색 엔진들의 시대

풀뿌리 검색 엔진들의 시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00년대 한국 인터넷 업계의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터넷 포털 서비스 업체가 정리되었다는 것입니다. 정보의 바다라고 하는 인터넷에서 정보가 유입되는 항구를 장악하는 것 즉, 포털 사이트로 성공한다는 것은 향후 모든 인터넷 서비스에서 패권을 쥘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 전쟁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쟁은 그 의미를 알고 시작했든 모르고 시작했든 간에 누가 최고의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느냐로부터 출발하였습니다. 인터넷은 곧 정보이고, 가장 양질의 정보를 가장 빠른 시간에 찾아주는 서비스나 업체에 네티즌들은 열광하고 최고의 권력자로 등극시켜줄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인터넷 홈페이지가 수천 개에 불과하던 1990년대 중반,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충남대 화학공학과의 김영렬 씨는 1995년 12월, 코시크라는 검색엔진을 만들었습니다. 김영렬 씨는 오픈소스 운동을 벌였던 리처드 스톨만이나 리누스 토발즈와 같은 마인드로 자신이 이렇게 검색엔진을 간단하게라도 만들어두면 누군가 이 소스를 바탕으로 검색엔진을 계속 업그레이드시켜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한 달만 베타 버전으로 운영할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대했던 개발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오히려 사용자들의 요청만 늘어 무려 2년 동안 손수 관리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안철수 전 안랩 대표가 의대를 다니던 시절, 밤잠을 줄여가면서 컴퓨터 바이러스를 잡는 백신을 만들었던 것처럼 그는 이렇게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며 검색 엔진 개발과 인터넷을 널리 알리는데 힘썼지만 정작 학교에서는 대학교수를 비롯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단아 취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충남대학교는 김영렬 씨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 인터넷 보급의 둥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KAIST와 연합하여 웹코리아라는 사설 모임을 만들어, 인터넷 한글화에도 힘을 썼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KAIST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던 대학생 승현석 씨도 미스다찾니라는 국내 최초의 메타검색엔진을 개발하였습니다. 메타검색엔진은 상위 검색엔진이라는 의미이니 여러 검색엔진을 검색할 수 있는 진화된 서비스였습니다. 이외에도 대구대 김성훈 씨가 개발한 까치네, 계명대 전자계산학과 대학원생이었던 박민우 씨가 개발한 와카노 등의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이렇게 대학생, 대학원생을 중심으로 한 일부 인터넷 마니아들이 개발한 검색엔진의 시조새 격으로 황무지에 자생한 풀뿌리 같은 서비스들이 있었습니다. 대중들이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가장 성공적인 서비스로는 심마니가 있습니다. 

심마니 스크린 샷

[심마니 스크린 샷 (출처: 리브레위키 https://librewiki.net/)]

 

한글 워드프로세서로 유명한 ㈜한글과 컴퓨터의 개발자 5명이 만든 이 서비스는 한글 언어처리에 기술력을 갖고 있던 개발자들이 기업의 인프라를 활용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기술력이 뛰어났고, 1996년 3월 서비스를 오픈하여 그해 말에는 검색 서비스 1위에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검색 제국들의 침공

하지만 코시크, 와카노, 까치네, 미스다찾니, 심마니는 한순간에 역사의 유물로 전락하고 말았는데, 야후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야후코리아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1997년 9월에 서비스를 시작한 야후코리아는 거대 자본을 등에 업고 순식간에 1위 검색 업체로 등극했으니, 인터넷의 대중화와 맞물려 일반인들에게 검색은 처음부터 야후 하나였던 것으로 인식되기도 하였습니다.

 

야후의 검색 방식은 심마니와 같은 기존의 검색 엔진과 다른 점이 있었는데, 도서관의 책들이 분류기호에 따라 나뉜 것 같은 디렉터리 중심의 검색 방식으로 기존의 키워드 검색 방식에 익숙한 네티즌들에게는 오히려 낯선 것이었습니다. 요즘 대체로 키워드로만 검색하는 우리들에게는 메뉴판이나 책 목차를 펼쳐놓은 것 같은 검색 방식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처음으로 대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니 그것마저 오히려 세련되게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던 다른 검색 서비스 업체에게는 하나의 기회로 작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야후도 디렉터리 방식의 문제점을 수정하고 키워드 검색 방식을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1998년부터는 검색 포털 서비스 시장이 혼전 양상을 띠기 시작합니다. 라이코스가 라이코스 코리아를 설립하여 한국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했습니다. 연예인 이범수 씨가 장난감 개를 타고 나오던 독특한 광고 장면은 지금 휴대전화 광고만큼이나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라이코스 광고장면

[라이코스 광고장면 (출처: 한국광고정보센터 https://www.adic.or.kr/)]

 

다음으로 평창정보통신이라는 업체가 외국의 유명 검색 사이트인 알타비스타의 상표권을 수입하여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갑자기 외국 유명 검색 포털 업체가 3강 구도로 한국을 점령한 형국이 되었습니다.

 

 

포털 사이트 패권 다툼

기회만 엿보고 있던 한국의 토종 IT기업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엠파스였습니다. 후발주자였던 라이코스는 야후와 차별화하기 위해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업체들과 계약을 맺어서 해당 부분을 강화시키는 전략을 펼쳤습니다. 여기에 맞대응을 하기 위해 야후 역시 콘텐츠 부분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것이 하나의 허점으로 작용했으니, 1999년 11월 엠파스는 기존 업체가 검색 포털의 기본에 해당하는 검색 기능에 소홀한 틈을 타 검색 본연의 기술을 강화하여 이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검정 선글라스를 낀 토끼 옆에 야후에서도 못 찾으면 엠파스라는 슬로건이 달린 광고판이 지하철 전역에 깔리기도 했는데, 이때부터 공고했던 야후의 아성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엠파스의 겁 없는 도전은 아래 더 강력한 포털 서비스 업체들이 등장하면서 점차 퇴색되어갔습니다.

 

네이버는 훨씬 더 치밀했습니다. 네이버는 한국 네티즌들의 인터넷 사용 형태를 면밀히 분석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이 궁금한 것 이외에도 국가적인 문제, 시사 문제, 사회적인 정보에 매우 열광한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포털 사이트 전면에 뉴스와 실시간 핫이슈들을 배치하였고, 결정적으로 지식인이라는 서비스를 도입하여 당시로서는 웹에 콘텐츠가 부족하여 원하는 질문에 적확한 답을 바로 찾을 수 없었던 한계를 극복하였습니다.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인터넷의 지향을 거칠게나마 앞당겨서 현실화시킨 것입니다.

 

지식인 로고

[지식인 로고 (출처: 네이버 캡쳐)]

 

이와 달리 다음은 자신들만의 강점으로 포털 사이트 시장의 한축을 차지하였습니다. 한메일이라는 이메일 서비스로 시작한 다음은 자신들이 가진 소통의 강점을 살려, 다음 카페라는 포털형 커뮤니티 서비스를 마련하였습니다. PC통신 동호회의 향수를 가지고 있던 네티즌들은 다음카페 서비스를 통해 갈증을 해소하였고, 다음은 순식간에 대형 포털로 성장하였습니다. 오히려 초창기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종합 포털 1위는 검색보다는 커뮤니티 서비스로 유명했던 다음이었으며 2004년부터 네이버가 1위를 차지한 후 지금껏 부동의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편, 대기업 SK가 이러한 인터넷 항구 전쟁에 본격적인 참전을 선포하였습니다. 처음부터 IT로 출발했던 다른 기업들과 달리 IT 분야에 축적된 노하우가 없었기 때문에 뭔가 색다른 히든카드가 필요했고, 당대 최고의 커뮤니티 서비스 업체, 싸이월드 인수함으로써 차별화에 성공하였습니다. 이렇게 한국 인터넷 포털 업계는 3강으로 정리되었습니다. 물론 시간이 흐를수록 강력하게 검색 서비스를 틀어쥐는 데 성공했던 네이버가 압도적인 1위로 성장해나갔지만, 지형 변화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과거 영어 자료 검색에나 활용되던 구글이 200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서면서 크롬 웹 브라우저, 유튜브 등을 무기로 한국의 포털 서비스 시장을 점차 잠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윈도우 운영체제, 웹 브라우저처럼 포털 서비스 시장은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탐스러운 과실입니다. 윈도우 독재 체제를 무너뜨린 리눅스가 등장하여 운영체제 시장의 판도를 바꿔버린 것처럼, 다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한국 포털 서비스 업계의 불안한 4강 구도 역시 언제든 변화의 물결을 맞이하고 시장이 재편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의 성공에 안주해버린 기존 포털 서비스에 불편을 느낀 사용자들의 불만이 임계점에 이르면, 이 강고해 보이는 시장에도 새로운 기린아가 출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 문헌>

1) 한국산업기술발전사. 2020년. 진한엠엔비. 산업통상자원부·한국공학한림원

2) 대한민국 IT사 100. 2009년. 비즈북스. 김중태.

3) 세계가 놀란 한국의 과학기술. 2016년. 자음과모음. 조중행 외. 

4) 한국 인터넷의 역사. 2014년. 블로터앤미디어. 안정배.

5) 융합화 시대의 정보통신. 2010년. 진한엠엔비. 김창곤.

김동훈

닷컴 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뉴밀레니엄 시기, IT 벤처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한때 IT 콘텐츠 업체를 창업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최고의 콘텐츠를 찾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출판 분야에 뛰어들어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하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다. IT와 출판 분야에서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출판 콘텐츠와 온라인 네트워크의 결합에 대해 깊이 고민 중이다. 저서로 SNS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대안을 제시한 <소셜네트워크, 야만의 광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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