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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약 1년 전, 전략적인 이유로 다른 회사와 합병하였다. 인터넷에서 IT 스타트업의 인수합병 관련 글을 읽어보면 '회사가 얼마에 팔렸다더라', '창업자가 돈방석에 앉았다' 같은 이야기가 많다. 돈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야기의 단편만 보여주는 것 같아 늘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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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약 1년 전, 전략적인 이유로 다른 회사와 합병하였다. 인터넷에서 IT 스타트업의 인수합병 관련 글을 읽어보면 '회사가 얼마에 팔렸다더라', '창업자가 돈방석에 앉았다' 같은 이야기가 많다. 돈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야기의 단편만 보여주는 것 같아 늘 아쉬웠다.
단순히 서류 작업이 끝났다고 해서 인수합병이 완료되는 것이 아니다. 서류 작업이 끝나고 나서가 진짜다. 진행 과정에서 회사는 (예상치 못한) 수많은 문제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 문제에 직접 손을 담가야 하는 것은 바로 실무자들이다. IT 스타트업이 인수 합병된 후에 사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실무자들의 업무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자.
인수합병이 진행되면서 필연적으로 새로운 지휘체계가 자리를 잡는다. 매각된 회사의 CEO가 회사를 떠날 수도 있고, 팀이 통폐합되면서 팀원들이 다른 팀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팀은 그대로이지만 새로운 팀장이 등장할 수도 있다. 사람들의 직함과 권한이 바뀌고 공지되는 것을 보면 실무자 입장에서는 '뭔가 분위기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나의 경우 합병 전이나 지금도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지만, (합병된 회사의 멤버들과 직위 레벨을 맞춘다는 이유로) 얼떨결에 승진을 했고 새로운 동료들이 팀에 합류했다. 합병되고 몇 달간은 누가 누군지, 조직 구성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누가 어느 정도의 책임을 갖고 있는지 우왕좌왕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변화에 적응하는 동시에 기존 업무도 처리해야 하니 다들 조금씩 예민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싫어한다. 일단 한 번 세팅이 됐으면, 그 익숙함 속에 계속 머무르고 싶은 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두 회사가 하나로 되었으니,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IT 인프라도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혼란이 확산되고 충돌이 일어났다. 조직이 통폐합되는 과정에서는 (비록 혼란스러웠지만) 저항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실무자들 업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영역부터는 수많은 미팅이 이어졌다. '각자의 익숙함을 최대한 지키기 대회'의 시작이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별로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사람은 기존 환경이 바뀌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변화에 따른 수많은 귀찮음을 전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계정을 새로 발급받아야 하고, 인터페이스를 익혀야 하고, 세팅을 새로 해야 하고, 기존 데이터를 옮기는 작업까지 해야 한다. 지난 몇 년간의 업무가 축적되면서 구축된 환경을 새롭게 정의한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합병하고 조직이 커지면서 보안 이슈도 있다 보니 로그인 정보를 얻는 것도 여러 번의 프로세스를 거쳐야 했고, 새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동료들도 챙겨줘야 하니 잡일이 많아졌다. 원래의 업무와 별개로 해야 하는 일이라 더욱 귀찮았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일만 늘어난 느낌이 많이 드는 구간이다.
실질적으로 가장 많이 바뀌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내가 이미 아는 사람, 나와 비슷한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한다. 합병된 후에는 더욱 그렇다. 비록 서류 상으로는 하나의 회사가 되었지만, 서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나 사용하는 용어가 다른 것을 보면 익숙함 사람들과 더 가까이 붙어있게 된다. 회사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이런 문화 차이를 하루빨리 없애고 싶어 하지만, 사람은 강요한다고 바뀌지 않는다. 바뀐 척은 할 수 있어도 정말로 바뀌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 이야기하고 합을 맞춰가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수밖에 없다.
어느 한쪽의 문화가 지배하기보다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실무자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명확하다. '합병한 회사 사람들 일 잘하더라'라는 인상을 반복해서 느끼게 해 주면 된다. 새로운 팀원에게 건네줄 데이터를 조금이라도 더 다듬어서 주고, 티켓 내용도 더 자세하고 읽기 쉬운 단어로 작성해 협력의 분위기를 만들면 도움이 된다.
위에서 부정적인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은 것 같은데, 인수합병 후 겪게 되는 좋은 일도 많다. 그것은 바로 이직을 하지 않고도 새로운 환경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것은 귀찮은 일이지만, 그 과정 속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이직 후 새 회사의 시스템에 나를 집어넣는 것과는 또 다른 경험이다. 개인적으로 합병 후 가장 좋아하는 점은 모르는 내용을 물어볼 사람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몇 달 전 더블베리파이(DoubleVerify)라는 미디어 측정 서비스를 연동하려고 했는데, 기술적인 부분에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기존 동료들은 (모두 나처럼) 해당 서비스를 만져본 적이 없어서 진행이 지지부진했다. 그런데 마침 합병된 팀원 중 한 명이 "나 그 서비스 다뤄봤어!"라며 자진해서 더블베리파이 Q&A 세션을 열어주었다. 나는 그에게 배운 내용을 토대로 PRD와 티켓을 작성했고, 서로 다른 회사 출신의 개발자들은 머리를 맞대어 서버를 최적의 상태로 세팅해주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손발이 맞았을 때의 기쁨은 남달랐다. 덕분에 프로젝트도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완료할 수 있었다.
서로 다른 회사를 하나로 합치는 일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경영자 입장에서도 머리가 아픈 일이겠지만, 실무자 입장에서도 골치 아픈 것은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른 회사와 시너지를 내기 위해 합병을 진행했지만, 시너지는 그냥 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로 합쳐지려면 문서 양식부터 개발 아키텍처, 커뮤니케이션 방법까지 거의 모든 부분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합병된 지 벌써 1년이 넘어가지만 아직 합쳐지지 않은 부분이 산더미처럼 남아있다. 기존 사업을 유지하고 조직을 하나로 합쳐 새로운 사업 모델까지 만들어야 하니 보통 일은 아니다.
결국 새로운 구성원들이 얼마나 빠르게 협력 마인드로 전환하느냐에 달려있고, 내가 먼저 잘해주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것을 지키느라 자존심 세워봤자 어차피 강제로 바뀐다. 내용물이 같아도 실무자인 내 손으로 바꾼 것과 강제로 바뀐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프로세스나 문화가 강제로 바뀌면 실무자 입장에서는 김이 팍 식어버린다. 그럴 바엔 내가 먼저 변화에 적응하고 남을 도우면서 티를 팍팍 내는 편이 훨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