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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 IT 열두 번째. 1990년대(2), 정보화 고속도로의 구축

1990년대 후반기 대한민국의 역사는 외환위기의 발발과 극복과정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 금융업체들은 서구에서 낮은 이율의 외채를 얻어서 동남아 국가에 장기적으로 대출하는 방식으로 이윤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동남아 국가들이 연쇄적으로 외환위기에 빠졌고, 도미노처럼 한국에도 외환위기가 발생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해외자본 유입으로 인한 외부적인 요인 외에도 대기업의 소위 문어발식 사업 확장으로 인한 과잉 투자, 중복 투자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 기업들의 부채규모는 GDP의 2배 규모였으며, 1998년 말 기준으로 대기업의 자기 자본 대 부채비율이 300%가 넘었습니다.

 

기업들의 연이은 부도로 결국 정부는 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지원받았고, 당시 대선 후보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여기에 함께 사인을 해야만 했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산업 전반에 개혁적인 조치를 시행하면서 이러한 외환위기를 극복하고자 고군분투했습니다. 부실한 금융기관들을 통폐합하며 정리하고,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지배구조를 개선하였으며,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빌 게이츠 MS 회장의 조언을 받아들여 IT를 새로운 대한민국의 중점 사업으로 육성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이러한 노력 끝에 한국 정부는 1997년 말에 승인받은 구제 금융을 2001년에 조기 상환하는 쾌거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글로벌 경제 기준에 부합하는 시장으로 한국의 경제 체질을 개선하고, 산업의 구조를 지식정보화 사회, 첨단 산업 중심으로 재편한 것은 많은 고통이 따르기는 했지만, 국가적인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은 전형적인 사례로 높이 평가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

한국의 산업화를 이야기할 때, 1968년 4월에 착공하여 1970년 7월에 완공한 경부고속도로를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경부고속도로 전구간 개통 기념식
[경부고속도로 전구간 개통 기념식 (출처: 한국도로공사)]

숱한 인명사고가 있었고, 길거리에 돈을 쏟아붓는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경부고속도로가 국민경제의 대동맥으로 엄청난 경제효과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후 1998년부터 본격화한 초고속 정보통신망의 구축은, 1970년대 이후를 관통한 고속도로 건설과 마찬가지로 2000년대 이후 대한민국 사회 전반을 관통하며, IT를 비롯하여 산업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온라인 고속도로의 건설이라 칭할 수 있습니다.

 

1993년 정보통신부라는 IT분야의 컨트롤 타워가 만들어지고 세계적인 변화에 발맞춰, 대한민국 정부는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기 위해 1995년부터 초고속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왔습니다. 그러다 1998년부터 21세기 정보화 시대의 선두주자로 나서기 위해서 원래 계획보다 5년이나 앞당겨서 전국적인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을 완료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합니다. 그 결과 2000년 말에 전국적으로 광케이블을 기반으로 하는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을 완료했습니다.

 

민간 차원에서는 1998년 두루넷이 한국전력의 광케이블망을 활용하여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이 서비스로 인해 이전에 전화선을 사용하여 텍스트 기반의 PC통신이나 즐기던 사용자들이 10 Mbps라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속도의 초고속 인터넷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은 당시 정부에서 한국통신과 데이콤이 독점하고 있던 기간통신망 사업자 라이선스를 경쟁체제로 개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던 한국통신과 하나로통신은 두루넷이 엄청난 열풍을 일으키며 성공가도를 달리자, 이내 ADSL 방식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세 업체의 경쟁으로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 사용료가 가장 저렴한 나라가 되었고, 가입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서비스 개시 약 3년여 만인, 2002년에는 천만명이 가입하는 놀라운 실적을 거둡니다. 이것으로 전국적으로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하는 최초의 국가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초고속 인터넷 사업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콘텐츠를 가릴 것 없이 상호 유기적으로 지식정보화 산업이 발전하는 것이 가능하게 한, 말 그대로 첨단 IT 인프라의 구축이었습니다. 정부가 선도하고, 민간이 뒤따르면서 21세기 한국 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인터넷 서비스의 출발

두루넷의 광통신망을 이용한 초고속 인터넷을 설계한 사람은 박현제 박사였는데, 이 박현제 박사는 바로 한국 인터넷의 대부, 전길남 박사의 권유를 받고, 당시 윈넷의 이용태 회장과 손을 잡고 이 사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전남길 박사
[전길남 박사 (출처: 넥슨 컴퓨터 박물관)]

전길남 박사는 박정희 정부가 과학자 유치 사업을 벌일 때 오로지 애국심 하나로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서 귀국하였고, 1983년 KAIST(한국과학기술원) 전산학과 교수로 국내 최초의 컴퓨터 네트워크, 인터넷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SDN(System Development Network)을 설계했습니다. 그리고 1984년에는 KAIST를 중심으로 전국 대학 및 연구원 8곳을 SDN 전산망으로 연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후 점차 SDN을 확장하고, 지속적인 교육과 개발을 병행하면서 한국을 미국에 이은 세계 두 번째 인터넷 국가로 만드는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미국에서조차 1989년 처음으로 상업적인 인터넷이 개통될 정도였으니,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인터넷에 대한 인식은 매우 후진적이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미국 역시 주로 연구실과 대학에서만 활용하고 있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비로소 상용화된 인터넷 서비스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눈여겨보고 있던 전길남 박사는 많은 후학들에게 인터넷 관련 사업을 할 것을 독려했습니다. 전길남 박사는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는데 그중에 인터넷기업협회 회장을 지낸 허진호 박사도 있습니다. 허진호 회장은 KAIS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삼보컴퓨터에서 일하다 미국의 ISP 사업에 관한 정보를 취득한 후 본격적으로 인터넷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1990년대 중반, 당시는 PC통신이 활개를 치고 있던 시절인데, 나우누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던 나우콤의 이사를 찾아가 PC통신에 인터넷 서비스를 넣어 PC통신 사용자들이 편하게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사업을 제안합니다. 문용식 이사는 이것을 즉각 받아들였고, 허진호 박사가 창업한 아이넷은 국내 최초로 인터넷을 서비스하는 업체가 되었습니다.

한때 기간 통신망 사업자의 가입수를 능가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아이넷의 서비스는 비록 1990년대 후반 대형 통신사들과의 경쟁에서 패배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1990년대 후반 이렇게 시작된 인터넷 서비스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확장되어 갔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에 힘입은 인터넷 서비스는 1990년대 후반부터 급속도로 사용자가 늘기 시작했습니다.

 

PC방
[PC방 (출처: 나무위키)]

한국의 독특한 문화이기도 한 PC방의 확장도 여기에 한몫을 했습니다. 1995년 홍대와 종로에서 처음 인터넷 카페가 생겨났으며, 1996년부터 대학가를 중심으로 PC방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는 블리자드라는 게임사의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의 선풍적인 인기와 이후 한국의 리지니와 같은 RPG 게임의 성공도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 1999년 전국적으로 1만 5천 개의 PC방이 생겨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PC통신을 넘어 인터넷을 사용하는 문화는 이즈음부터 자연스러운 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후반 애플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게임의 용도로 활용하였고, 유닉스가 만들어진 계기가 된 것도 스페이스 워라는 게임 때문이었듯이 IT 기술의 발전과 문화의 확장은 게임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인터넷 역시 마찬가지로 초창기에는 이렇게 게임과 함께 성장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게임 외에도 1990년대에는 인터넷 서비스의 시조 격인 사업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온라인 경매사이트로 시작한 옥션이 전자상거래 업체의 변모하였고, 중앙일보를 필두로 인터넷 신문이 만들어졌고 성공적으로 서비스를 이어갔습니다. 커뮤니티 서비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싸이월드와 아이러브스쿨 역시 1999년 문을 열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기에는 이렇게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초고속 정보통신망이 전국적으로 개통을 하고,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PC통신을 발판으로 삼아 인터넷 서비스가 본격화되었습니다. IMF 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서도, 그것을 조기에 극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IT 산업 전반에서 세계에서 가장 선도적인 국가로 혁신적인 전환을 이뤄낸 당대 한국 정부와 민간의 노력은 칭송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참고 문헌>

1) 한국산업기술발전사. 2020년. 진한엠엔비. 산업통상자원부·한국공학한림원

2) 대한민국 IT사 100. 2009년. 비즈북스. 김중태.

3) 세계가 놀란 한국의 과학기술. 2016년. 자음과모음. 조중행 외. 

4) 한국 인터넷의 역사. 2014년. 블로터앤미디어. 안정배.

5) 융합화 시대의 정보통신. 2010년. 진한엠엔비. 김창곤.

6) 한국경제 인사이트. 2021년. 21세기북스.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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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

닷컴 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뉴밀레니엄 시기, IT 벤처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한때 IT 콘텐츠 업체를 창업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최고의 콘텐츠를 찾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출판 분야에 뛰어들어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하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다. IT와 출판 분야에서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출판 콘텐츠와 온라인 네트워크의 결합에 대해 깊이 고민 중이다. 저서로 SNS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대안을 제시한 <소셜네트워크, 야만의 광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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