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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 IT 열한 번째. 1990년대(1), IT강국을 향한 발걸음

1990년대 한국의 IT 역사를 짚어보기 전에 당대 한국의 사회적인 상황을 먼저 간단히 살펴보면, 1990년대 한국은 IMF 구제금융을 받기 이전과 이후로 명확히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IMF 사태 이전까지 대한민국의 경제는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이라는 말이 횡행할 정도로 가파른 경제적 상승 국면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1996년에는 1인당 GDP가 1만 달러를 넘어섰고, 선진국들만 가입할 수 있다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회원국이 되었습니다.

 

1993년 들어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세계화라는 기치를 높이 올리고, 군부 정권의 계획 경제를 빠른 속도로 민간 중심의 개방적 시장 경제체제로 전환시켜 나갔습니다. 금융 실명제가 전격적으로 도입되었고, 정치 사회적으로는 지방 자치제가, 군사면에서는 하나회라는 군부 사조직이 해체되었으니, 이 과정에서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두 전직 대통령은 1995년 법정에 서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환경부가 신설되고 참여 연대를 비롯한 시민 단체가 생겨나며 선진적인 사회의 면모를 조금씩 갖춰 나갔습니다.

 

문화 대통령이라고 불렸던 서태지가 등장하는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다양성이 증폭하면서 세기말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시작되었던 1997년 말 이전까지의 대한민국은 그렇게 태평성대를 방불케 했으니, 학계에서부터 일반에 이르기까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일궈낸 나라라는 자긍심이 퍼져가던 시기였습니다.

 

[이미지 출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포스터]

 

하지만 1990년대 초중반 한국의 이러한 화양연화(花樣年華) 같은 화려한 무대의 뒤편에서는,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세계화의 무드 속에서, 지식정보산업사회로 나아가는 선진화의 대열에 결코 뒤처질 수 없다는 경쟁적인 의식이 정재계의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서는 분명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보화는 뒤쳐질 수 없다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서 산업화가 수백 년이 늦어지면서 나라를 강탈당하는 굴욕을 겪었던 아픈 역사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1990년대 김영삼에서 김대중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한국 정부의 인식은 비록 산업화는 늦었지만, 지식정보사회로 가는 타임라인은 단지 수년 정도의 격차에 불과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결코 뒤처질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따라서 정보화를 주요 국책사업으로 삼고 추진했습니다. 1993년 정보통신부의 설립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정부에서는 컴퓨터의 하드웨어 분야에서는 멀티미디어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의 텍스트 기반 컴퓨터 사용 환경에서 세계적으로 PC의 보급과 함께 매킨토시와 윈도우의 개발 등과 같은 그래픽 컴퓨팅 환경이 조성되면서 이미지, 동영상, 음악 등과 같은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다룰 수 있는 컴퓨터 하드웨어가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워크스테이션의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콤비스테이션을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를 중심으로 한 산·학·연 협력의 결과물로 1994년까지 개발했습니다. 운영체제 분야에 있어서는 1991년부터 1994년까지 20명의 개발 인력이 투입되어 최대 20개에서 30개까지 활용이 가능한 멀티 프로세스를 지원하는 변형 유닉스 운영체제도 개발했습니다. 소프트웨어 분야 중, 워드프로세서는 1990년 10월에 설립된 소위 토종 한국 소프트웨어 업체인 한글과 컴퓨터가 만든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이 1990년대 중반까지 무려 시장의 80%를 장악하였고, 차후 레이저 프린터 출력 기능까지 장착한 이 프로그램은 출판 시장에 새로운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 출시된 컴퓨터 (출처: 위키백과)]

 

다만, 1990년대 중반 이후 불법 소프트웨어가 만연하면서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은 압도적인 지배력을 상실하였고, 시장의 혼란을 틈탄 여타 국산 워드프로세서 소프트웨어와 MS 워드가 약진하기 시작합니다. 1998년에는 경영난을 못 이긴 한글과 컴퓨터가 MS(마이크로소프트)에 프로그램 소스코드를 넘기고 투자를 받으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철회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워드프로세서 이외의 분야인 스프레드시트(spread sheet, 도표 양식의 수치계산 프로그램)를 비롯한 사무용 소프트웨어 시장 전반은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 제품군이 시장을 제패하였고, 여기에 자극을 받은 한글과 컴퓨터를 비롯한 한국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MS 오피스와 호환되는 사무용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으로 1990년대 정부는 1980년대 후반부터 추진해온 PC 보급을 더욱 강도 높게 추진하면서, 학교마다 전산실을 만들고, 대대적으로 교육용 컴퓨터를 보급했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시책은 가정에도 컴퓨터가 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을 갖게 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들을 중심으로 아이들을 위해 고가의 컴퓨터를 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민간에도 컴퓨터가 점차 보급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보급된 컴퓨터는 게임이나 PC 통신으로 주로 활용되기는 했지만, 대한민국의 청소년과 젊은 층들이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접하고 익숙해지면서 정보통신강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인터넷의 전신, PC 통신의 부흥

선진국은 웹브라우저가 출시된 1990년대 초반부터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시작하였지만, 한국은 이후 스마트폰 보급에서도 다소 격차가 있었던 것처럼 약 5년여 정도 뒤쳐진 199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이 그 이전에도 마냥 온라인 문화와 기술의 불모지였던 것은 아니었으니 당시에도 인터넷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PC 통신 문화가 번성했습니다. PC 통신이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을 때, 대중들이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익숙하게 활용하는 것이 가능했고, 비즈니스 분야에서도 후발 주자를 넘어 선도적인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터넷을 하기 위해서는 TCP/IP라는 통신 규약을 처리할 수 있는 복잡한 소프트웨어가 필요하고, 컴퓨터 사용자가 직접 데이터 서버에 접근해야 했기에 특정한 정부의 연구기관이나 학교에서만 가능했지만, PC 통신은 상대적으로 접근이 매우 용이했습니다. 필요한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는 중앙 서버 컴퓨터에 설치된 상태에서 개인 PC 사용자는 서버 컴퓨터에 설치된 프로그램만 실행하면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PC 통신은 1988년 한국데이터통신에 의해서 천리안이라는 독특하고 흥미로운 이름으로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한국데이터통신은 1991년 PC 통신 서비스를 본격화하면서 데이콤이라는 이름으로 변경했습니다. 천리안은 일기예보, 뉴스, 증권 시황 등과 같은 각종 유용한 생활, 시사, 경제 정보를 제공하였지만, 1990년 가입자가 5천 명을 겨우 상회할 정도로 서비스가 활성화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반도체 기술의 발전과 함께 1990년대 초중반부터 컴퓨터 가격이 점차 낮아지고, 정부의 IT교육과 보급에 힘입어 PC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점차 사용자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접속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PC 통신 사용자가 1993년에는 20만 명으로 늘어났고, 1997년에 300만 명을 넘어서면서 본격적인 하나의 대중문화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1997년 개봉하여 큰 인기를 끌었던 전도연과 한석규가 주연한 영화 <접속>의 흥행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PC 통신에는 다양한 동호회 즉 커뮤니티가 있었는데, 이것은 향후 인터넷 시대 커뮤니티 서비스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또한 IP라고 불리는 유료 정보 제공업체는 CP(Contents Provider)로 발전하여 현재의 콘텐츠 비즈니스로 발전하였으며, PC 통신을 통해서 최초로 책을 판매하던 업체는 인터넷 전자상거래의 초기 모델로 역할했습니다. 이외에도 PC 통신의 많은 서비스, 관련된 업체들, 사용자들이 인터넷 시대의 프로토 타입으로 향후 본격적인 온라인 시대를 여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1990년대 청소년, 대학생을 둔 부모님들은 밤을 새워 PC 통신으로 채팅이나 게임을 하던 자녀들을 한심하게 바라보기도 했고, 전화선을 이용했던 PC 통신의 특성 때문에 전화비가 폭증하면서 아이들의 등짝을 때리기도 했지만, 당시 PC 통신 키즈들이 훗날 대한민국 인터넷 비즈니스의 주역이 되었던 것도 분명합니다. 이때 혼나면서 PC 통신을 즐겼던 젊은 층들이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인터넷 커뮤니티 서비스, 전자 상거래 업체, 온라인 게임 등을 개발하면서 IT 시대의 주역으로 자라났고, 지금 현재까지도 정보통신강국인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 문헌>

1) 한국산업기술발전사. 2020년. 진한엠엔비. 산업통상자원부·한국공학한림원

2) 대한민국 IT사 100. 2009년. 비즈북스. 김중태.

3) 세계가 놀란 한국의 과학기술. 2016년. 자음과모음. 조중행 외. 

4) 한국 인터넷의 역사. 2014년. 블로터앤미디어. 안정배.

5) 융합화 시대의 정보통신. 2010년. 진한엠엔비. 김창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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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

닷컴 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뉴밀레니엄 시기, IT 벤처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한때 IT 콘텐츠 업체를 창업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최고의 콘텐츠를 찾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출판 분야에 뛰어들어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하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다. IT와 출판 분야에서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출판 콘텐츠와 온라인 네트워크의 결합에 대해 깊이 고민 중이다. 저서로 SNS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대안을 제시한 <소셜네트워크, 야만의 광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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