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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혁명의 영웅들: 컴퓨터와 인간의 새로운 소통 방식, 더글러스 엥겔바트

2017년 포켓몬고라는 게임이 세계적으로 대유행을 했습니다. 스마트폰에서 포켓몬고 게임을 실행하면 카메라에 찍힌 현실의 거리 풍경 위에 몬스터가 등장하고 몬스터 볼을 던져서 그것을 잡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에 적용된 기술을 AR 즉, 증강현실(增强現實, augmented reality, AR)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최근에 미디어에서도 많이 다루고 있는 용어입니다. 증강현실이란 말하자면 현실에 가상의 이미지나 정보를 덧입혀서, 현실이 더 확장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텔레비전으로 수영 올림픽 경기를 보고 있을 때 레인마다 국기와 레인 번호, 등수 등이 덧입혀져서 보이는 것들이 증강현실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IT 기술을 지속적으로 증강시켰고, IT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능력도 증강하고 있습니다. 컴퓨터가 인간의 사고와 행동방식을 닮아가고, 인간과 컴퓨터가 서로 소통하면서 인간의 능력이 점차 증강되도록 만드는 꿈, 그 꿈을 꾸고 실현시켜왔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편리한 문명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장에서는 그 분야의 역사적 중심에 있는 인물이면서 최초의 마우스 개발자로도 유명한 더글러스 엥겔바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미래에서 온 예언자

더글러스 엥겔바트(Douglas Engelbart)는 1925년 미국 오레건주 포틀랜드시에서 태어났습니다. 포틀랜드의 시골 마을에서 성장한 엥겔바트는 오레건 주립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해군으로 필리핀에서 2년 간 전자 레이더 엔지니어 사병으로 복무했습니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필리핀에서 미국으로 귀국하는 과정에서 엥겔바트는 한 편의 놀라운 잡지 기사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으며, 자신의 인생 항로를 결정지었습니다.

 

최초의 마우스 (출처: SRI International, https://www.sri.com/)

 

월간 잡지 <애틀랜틱 먼슬리> 1945년 7월호에는 MIT 공과대학 교수이며, 루스벨트 대통령의 과학 자문이었던 바네바 부시가 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As We May Think)’라는 기사가 실렸는데, 여기에는 컴퓨터로 정보를 관리할 때 도서관의 분류처럼 단순한 기록 방식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로운 연상작용과 같은 텍스트의 개념, 즉 하이퍼텍스트의 개념으로 설계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또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라는 당시로서는 놀라운 개념도 제시하였습니다.

 

미래지향적이면서도 허황되지 않고 논리적인 부시의 기고문에 깊은 감명을 받은 엥겔바트는 앞으로 자신의 인생을 평생 이 이론을 현실로 만드는데 바치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오레건 주립대학을 졸업한 엥겔바트는 1958년 창설된 NASA(미 항공우주국)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NACA(미 국가항공자문위원회)에서 일했습니다. 1940년대는 기계에 구멍이 뚫린 카드를 집어넣어서 계산을 하던 컴퓨터를 쓰던 시절이었기에 바네바 부시는 자신의 이론을 마이크로필름 장치 형태인 미멕스(Memex, 기억 확장기)라는 디바이스를 통해서 표현하였습니다.

 

하지만 엥겔바트는 레이더 엔지니어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서 레이더 스크린에 시각화하여 많은 사람들이 글과 이미지 같은 컴퓨터의 정보를 브라운관을 통해서 보고 조작하는 개념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이후 엥겔바트는 1957년 UC 버클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자신의 연구를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스탠퍼드 연구소(SRI, Stanford Research Institut)에 정착하게 됩니다.

 

엥겔바트는 SRI에 자신이 어떤 연구를 하더라도 방해받지 않는다는 조건을 제시해서 수락받았고, 드디어 바네바 부시가 제안한 미멕스, 즉 모든 정보가 인간의 뇌가 연상작용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상적인 컴퓨터를, SRI에서 하나씩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바네바 부시가 제안했던 것을 넘어서 인간과 보다 유기적으로 상호 소통이 가능한 컴퓨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에 관한 아이디어를 창안하여, 그 둘이 서로 유관하게 움직이면서 텍스트 정보, 이미지, 영상을 주고받고, 사람이 조작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하나씩 개발해 나갔습니다.

 

초기에 SRI에서 엥겔바트는 괴짜 취급을 받았습니다. 진공관 컴퓨터가 막 트랜지스터 컴퓨터로 전환하고 있던 시기였으므로, 일반의 관점으로는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법한 컴퓨터를 자신만의 독자적인 노선으로 외롭게 개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글러스 엥겔바트 (출처: 위키백과)

 

엥겔바트의 연구를 한 단어로 이야기하자면, 미래형 컴퓨터의 개발이었습니다. 미래형 컴퓨터는 다시 말해 인간과 컴퓨터가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 작용하면서 서로 소통할 수 있고,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를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으며, 모든 정보를 대중 일반이 서로 공유할 수 있고, 인간이 사고하는 방식으로 유연하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컴퓨터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미래형 컴퓨터가 인간의 지능과 능력을 증강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SRI 내부에 설립한 하위 연구소도 증강 연구센터(Augmentation Research Center)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엥겔바트는 이곳에서 1962년 인간 지성 증강에 관한 개념적 프레임워크라는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자신이 목표로 하는 바를 구체화해서 세상에 내보인 것입니다. 그 논문은 마치 바네바 부시의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가 했던 역할처럼 미래형 컴퓨터를 통해 새롭게 정리된 정보와 그 정보를 조작, 검색, 분류, 입력하는 등등의 활용 방식이 인간의 능력을 증강시킬 것이라에 대한 청사진이었습니다.

 

실제로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를 통해서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정보를 얻고, 각종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놀라운 일들을 해내고 있습니다. 단순한 일뿐만 아니라 게임, 의사소통과 같은 일상생활의 문화, 삶의 양식 전반에서 말이죠. 그리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새로운 문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바네바 부시, 엥겔바트라는 미래로부터 온 예언자 같은, 과학자, 기술자들에 의해서 하나씩 현실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직 연구만이 목표인 괴짜 과학자

초창기 SRI에서 엥겔바트의 연구는 워낙 독창적이었기 때문에 동료 과학자들에게서도 외면받았습니다. 당연히 지원되는 자금도 부족해서 엥겔바트는 연구를 지속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엥겔바트의 집념 어린 결과물들이 하나씩 등장하면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났고, 나중에는 그를 정말 예언자처럼 존경하는 제자 연구원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현대 인터넷의 기반이 되는 하이퍼텍스트, 비트맵 스크린, 분산 컴퓨팅 시스템, 그래픽 사용자 환경, 코드 키셋(code key set), 마우스 등등이었습니다. 당시 시대를 앞서간 그의 발명품과 그의 설계도, 인간의 능력을 증강시키는 아이디어들을 모두 합하여 간단히 NLS(oNLine Sytem)라고 불렀습니다.

 

엥겔바트는 그간의 성과를 모두 정리하여 1968년 12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추계 합동 컴퓨터 학술대회에서 90분간 시연을 했고, 이 프레젠테이션은 후일‘모든 시연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완벽하고도 충격적인 발표회였습니다. 높이가 6미터나 되는 장대한 스크린에 엥겔바트의 얼굴과 텍스트가 겹쳐서 나오고, 외부에서 전송된 정보가 하나씩 떠오르며, 마우스라는 신비한 기계를 굴리면 커서가 움직이면서 화면을 조작하는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 시연을 참관하던 대중들은 모두 숨죽여 그 장면들을 지켜봐야 했고, 모든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후 잠시간의 침묵 후에 일제히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더글러스 엥겔바트 시연 장면 (출처: http://vimeo.com 동영상 캡쳐)

 

엥겔바트는 과학계의 신성(新星)으로 떠올랐지만 이후에 이어지는 그의 행로는 그다지 순탄치만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엥겔바트가 타고난 지독하게 편협한 연구원 기질 때문이었습니다. 엥겔바트가 자기 휘하의 연구원들에게 요구하는 프로젝트는 도무지 끝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갈 때쯤 새로운 과제를 끊임없이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업화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연구결과가 대중들의 피드백이나 경제적 성과를 얻지 못하자 연구원들은 점차 지쳐갔습니다.

 

그때 제록스 산하의 팔로알토연구소에서 엥겔바트에게서 배우고 무대 뒤에서 온갖 험한 일을 도맡아 했던, 그의 분신과도 같았던 연구원 윌리엄 잉글리시를 데려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잉글리시를 따라 증강 연구센터의 핵심 연구원들도 순차적으로 제록스로 빠져나갔고, 결국 엥겔바트는 자신의 NLS를 PARC(팔로알토연구소, Palo Alto Research Center)에게 바통 터치 형태로 넘겨준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편 1967년 SRI를 통해 출원된 마우스 특허는 후일 스티브 잡스에게 겨우 4만 달러라는 터무니없는 저가에 판매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당시만 해도 마우스에 대한 가치나 앞으로 다가올 PC의 시대에 대해서 SRI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엥겔바트의 존재가치는 점차 희미해져 갔습니다. 하지만 엥겔바트는 2013년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연구를 지속했고 그가 남긴 하이퍼텍스트, 시분할 컴퓨팅, 분산 컴퓨팅, GUI(그래픽 사용자 환경), 멀티미디어 프레젠테이션 등등 숱한 IT분야의 중대한 유산들은 온전히 후대에 계승되었습니다.

 

또한, 인간과 컴퓨터가 좀 더 나은 방식으로 소통하고, 그러한 기술을 통해 인간의 능력을 증강시키겠다는 엥겔바트의 집념과 이상은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인간 컴퓨터 상호작용)라는 유력한 IT 산업의 한 분야로 자라나 지금도 많은 연구원들이 그의 뜻을 이어받아 피땀을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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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

닷컴 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뉴밀레니엄 시기, IT 벤처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한때 IT 콘텐츠 업체를 창업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최고의 콘텐츠를 찾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출판 분야에 뛰어들어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하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다. IT와 출판 분야에서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출판 콘텐츠와 온라인 네트워크의 결합에 대해 깊이 고민 중이다. 저서로 SNS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대안을 제시한 <소셜네트워크, 야만의 광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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