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혁명의 영웅들: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선구자, 리처드 스톨만

체 게바라는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 혁명가로 유명합니다. 혁명 결과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지만 개인의 이익보다는 가난한 민초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겠다는 선한 동기로 일생 자신의 삶을 헌신했다는데 대해서는 대체로 이견이 없습니다. 체 게바라를 동경하는 이들이 세계적으로 많기 때문에 그의 초상은 옷이나 각종 상품, 심지어 어느 변방 국가의 동네 술집 벽면 한 편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어느 분야에나 혁명가는 있기 마련입니다. IT 업계의 걸물들 중 체 게바라와 합성한 이미지가 떠돌아다니는 인물이 있는데 그 주인공은 리처드 스톨만입니다. 리처드 스톨만은 일생을 오픈 소스 운동, 더 정확하게는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에 자신을 바친 사람입니다. 그는 히피처럼 장발을 하고, 갑작스럽게 피리를 불기도 하고, 맨발로 강연을 하는 등 젊은 시절의 스티브 잡스를 뛰어넘는 괴짜, 기인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리처드 스톨만은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일환으로 GNU 프로젝트를 통해 리눅스를 탄생시켰습니다. 리눅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적인 운영체제에 불만을 가진 많은 업체와 대중들을 열광시켰습니다. 리눅스는 소스를 공개하고 자유롭게 배포하였으며, 여기에 덧붙여 공개된 소스를 바탕으로 해서 개발자들이 업그레이드한 소스마저 공개할 수밖에 없도록 법적으로 강제하여 모두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으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살아있는 생물체와 같은 소프트웨어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IT 전문가이며 베스트셀러 작가인 에릭 레이몬드는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성장하면서도 안정된 시스템을 가질 수 있는 리눅스의 탄생은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IT업계의 최대 공룡 기업이었던 IBM마저 리눅스에 매료되어 자신들의 서버 컴퓨터 운영체제를 리눅스로 전환하였고, 그것을 계기로 종합 IT 솔루션 제공 업체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서버 컴퓨터 분야에서 리눅스는 지금까지 윈도우와 시장을 양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의 운영체제 역시 리눅스에서 발전한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종종 IT 업계의 체 게바라, 교주, 아나키스트로 불리는 이 괴짜 혁명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한걸음 더 들어가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분노한 천재의 결단

리처드 스톨만은 1953년 미국 뉴욕주 맨해튼에서 태어났습니다. 스톨만은 학창 시절부터 컴퓨터의 매력에 빠져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1971년 하버드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했는데, 특히 수학을 잘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1974년 하버드 대학 물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대학원 역시 MIT 물리학과로 진학했는데 이때 그가 남긴 논문이 인공지능 분야에서 지금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MIT인공지능연구소에서 탁월한 프로그래머로 명성이 높았던 스톨만은 결국 프로그래밍을 더 하기 위해서 박사과정을 중도에 그만두었습니다. 당시 MIT의 인공지능연구소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프로그래머들이 모여 있었고, 그들은 스스로를 해커라고 불렀습니다. 이때는 각종 사건으로 인해 해커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해커는 실력 있는 프로그래머의 대명사였습니다. 인공지능연구소의 천재 해커들은 재산이나 지위에 따른 차별 없이 컴퓨터를 통해서 인간의 삶을 더 낫게 만든다는 목표를 향해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최고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데 매진하는 이상적인 환경을 구축하였습니다.

물리학을 포기하고 MIT 인공지능연구소의 프로그래머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그가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투사가 된 데에는 몇 가지 계기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인공지능연구소 출신의 프로그래머가 만든 심볼릭스라는 회사에서 인공지능연구소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바탕으로 만든 소스 코드를, 스톨만이 요구했을 때 거절한 사건이 있었고, 스톨만은 한때 동료였던 그들의 낯선 행동에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다음으로 인공지능연구소에는 함께 쓰는 낡은 프린터가 있었으며, 프린터의 소스 코드는 당연히 공개되어 있었기에 스톨만을 비롯한 연구소의 프로그래머들은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프린터를 컨트롤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록스의 최신식 레이저 프린터가 연구소에 들어왔습니다. 레이저 프린터는 성능이 매우 좋았지만 여러 층의 연구원들이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결과물이 잘 출력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항상 밖으로 나가 층계를 오르내리며 확인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습니다.

스톨만은 각 연구원들이 자신의 단말기로 프린터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를 개선하려는 마음을 먹고 제록스에 소스코드를 요구했지만 제록스는 차갑게 거절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제록스의 프린터가 고장 날 때마다 소스를 분석해서 오류를 개선하려는 요구 역시 번번이 거절당했고, 그때마다 제록스에서 담당 직원이 나와서 고쳐줄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괴로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스톨만의 분노가 위험수위에 다다를 즈음 더욱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해커들이 사용했던 컴퓨터 PDP-10이 생산을 중단하고 새로운 컴퓨터로 대체되면서, 해당 컴퓨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스가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해커들이 분열하기 시작하였고, 더 나은 컴퓨팅 환경과 수익을 찾아 회사에 취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한, 1980년대 초중반 유닉스를 보유하고 있던 AT&T라는 거대 통신회사가 여러 회사로 나눠지는 일을 겪으면서 1969년부터 무료로 제공하던 유닉스를 유료화한다는 충격적인 방침을 발표한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스톨만은 1983년 GNU 프로젝트를 출범합니다. GNU라는 이름은 GNU Is Not Unix(GNU는 유닉스가 아니다)라는 이름의 약자입니다. 그리고 1985년에는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동참을 끌어내기 위해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을 설립하여 본격적인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을 시작하는 결단을 내립니다.

공유 정신의 계승자

프로그래머들이 상업용 소프트웨어를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자신과 대중들이 원하는 응용 소프웨어를 개발하는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해서는 상업용 운영체제에 종속되지 않는 독자적인 운영체제를 개발해야 했습니다.

스톨만은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하여 문서 편집기, 디버거, 컴파일러 등 운영체제의 다른 요소들은 다 개발했으나 운영체제의 핵심이 되는 커널을 개발하는 데는 많은 난관을 겪고 있었습니다. GNU 프로젝트가 큰 벽에 부딪친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혜성같이 등장한 인물이 있으니 바로 핀란드 출신의 리누스 토발즈입니다. 리누스 토발즈는 GNU의 소스를 활용하여 자신만의 커널을 개발해 둔 상태였습니다. 스톨만의 취지에 공감한 리누스 토발즈가 이 운동에 동참하였고, 스톨만의 운영체제와 리누스의 커널은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잘 결합하여 1992년 드디어 기존의 운영체제를 대신할 수 있는, 더불어 유닉스와도 호환이 되는, 완전한 운영체제가 새롭게 탄생하였습니다. 

이름은 그누/리눅스라고 명명했으나 대중들은 점차 간략하게 리눅스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리눅스는 이후 수많은 개발자들의 장난감처럼 되어 급격하게 발전했습니다. 이후 2000년에는 IBM, 썬과 같은 거대 기업이 참여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에 저항하는 재단이 만들어지면서 리눅스는 더욱 위세를 떨치고 영향력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스톨만의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은 Free라는 단어를 쓰기 때문에 공짜라는 의미와 혼동되기도 하지만, 스톨만은 무료가 아니라 오픈된 소스로 자유롭게 개발하는 구속되지 않는 자유에 방점을 두었습니다. 소스는 반드시 공개하되 그것을 특정 소비자들에게 패키지 형태로 최적화시켜서 유료로 판매를 하는 것 등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물론 독점적인 이윤만큼 큰 수익을 거두지는 못하겠지만, 공유의 정신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일정한 대가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반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리눅스를 중심으로 한 오픈소스 운동의 전파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뿌리는 앞서 다루었던 데니스 리치가 켄 톰슨과 함께 유닉스를 만들고 그것을 독점하지 않고, 소스를 공개하여 모든 연구자와 개발자가 자유롭게 활용하고 보완할 수 있도록 만든 정신에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모든 소스를 공유한다는 오픈 소스 운동은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온라인 세계를 함께 구축하고 활용하는 데 있어서 공유의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경험에서 출발한 이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러한 오픈 소스 운동은 각종 독점과 장벽을 통해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IT기업들의 개발 방식과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며 함께 나아갈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이 만들어낸 오픈된 소스가 없었다면, IT기술에 소외된 국가나 조직, 개인들은 그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 전체적인 차원에서 볼 때는 엄청난 낭비에 불과한,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을 것입니다. 혹은 그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비용도 감당하지 못해 더욱 현대 IT 문명의 혜택에서 멀어진 후진적인 생활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