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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천 냥 빚을 말로 갚은 적이 없지만 말 한 마디, 단어 선택 하나가 디자인에 끼치는 영향은 상당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언어의 온도’를 쓴 이기주 작가는 말이 가진 영향력에 대해 ‘귀소 본능’ 개념을 적용해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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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디자이너의 단어 선택: 카카오의 운영정책 변경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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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유대인, 미국문화에 대한 혐오를 담은 나찌 정부의 포스터.
이미지 출처: 더 가디언

아직까지 천 냥 빚을 말로 갚은 적이 없지만 말 한 마디, 단어 선택 하나가 디자인에 끼치는 영향은 상당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언어의 온도’를 쓴 이기주 작가는 말이 가진 영향력에 대해 ‘귀소 본능’ 개념을 적용해 설명합니다.

 

“나는 인간의 말이 나름의 귀소 본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언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무의식적인 본능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돌고 돌아 어느새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 – 이기주, ‘말의 품격’

 

르메르 브랜드의 컬렉션 이미지.
이미지 출처: 르메르 오피셜

MZ세대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패션 브랜드 ‘르메르(Lemaire)’는 지속가능성과 타임리스 컬러를 추구합니다. 여기에는 패션이 태도에 대한 문제라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어쩌면 말은 정신적인 세계를 전달하는 패션의 영역이 아닐까요?

 

“옷은 언어다. 다른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기 전, 당신에 대한 첫 번째 정보가 패션이다. 때문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길 원하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 르메르 브랜드의 디렉터 크리스토퍼 르메르(Christophe Lemaire)

 

인간의 감각 중 언어는 후각과 가장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후각은 가장 미련하면서 영민한감각으로 통상 0.2초만 있어도 냄새에 반응하고 15초가 지나면 어떠한 냄새라도 순응(adaptation)하게 됩니다. 지독한 냄새라도 1분만 맡고 있으면 어느새 후각이 마비되는 탓에 그 냄새를 맡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으로는 순응이나 선택적 피로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냄새에 대한 피로감, 악취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죠. 선택적 피로는 순응한 냄새 외에 다른 냄새에 대해서는 식별이 가능한 것을 의미합니다. 지독한 냄새가 주는 자극에 후각은 빠르게 적응한 것이고 알아차리지 못하는 냄새라도 이를 처음 접하는 상대는 코를 찌르는 냄새에 인상부터 찌푸릴 수밖에 없습니다. 언어도 마찬가지라 자신이 사용하는 단어, 화법 등이 거칠고 피로감을 일으킨다면 자신이 말하면서 듣는 언어에 대해 피로감을 덜 느끼도록 순응하게 됩니다. 단, 순응하지 않은 상태의 상대로서는 거친 말과 상스러운 표현이 녹아 있는 악취에 코 대신 귀를 막고 싶은 상황을 연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디자인은 브랜드와 직결되는 업무 영역입니다. 홈페이지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회사, 서비스, 제품이 사람이라고 하면 말하는 방식과 말을 할 때 선택하는 단어에 해당합니다. 어떤 태도를 갖고 어떤 결로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단어 선택과 표현 방식에서 여과 없이 드러나기 마련이죠. 최근 카카오가 ‘기술과 사람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 라는 비전으로 기업의 디지털 책임 실천방안을 고민하며 원칙을 발표했습니다.

 

2021년 1월 20일 카카오 운영정책 변경사항 중 금지하는 활동 업데이트. ©카카오

전 세계적으로 증오발언을 표현의 자유 영역으로 보고 그저 두고만 볼 것은 아니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입니다. 카카오는 지난 1월 ‘카카오 증오발언 대응 정책서’를 발표하고 원칙 수립을 위한 고민의 과정을 공개했습니다. 1년 동안 총 4차례에 걸친 숙의 과정은 민관학 공동연구와 카카오에서 발생하는 증오발언 데이터 분석, 시민사회 의견 청취를 통한 수렴 과정으로 구성되었으며 회의록까지 함께 공개하며 카카오라는 기업, 브랜드가 어떤 단어와 표현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증오발언에 대한 명료한 태도를 보일 것인지 차분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증오발언 근절을 위한 카카오의 4가지 원칙. ©카카오

국가인권위가 발행한 ‘혐오표현리포트’에 따르면 혐오표현이란 “성별, 장애, 종교, 나이, 출신지역, 인종,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어떤 개인, 집단에게 1) 모욕, 비하, 멸시, 위협 또는 2) 차별, 폭력의 선전과 선동을 함으로써 차별을 정당화, 조장, 강화하는 표현을 갖는 표현”입니다. 카카오는 녹서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플랫폼으로서 서비스나 콘텐츠가 혐오표현을 확산하거나 양성, 조장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감독할 필요성도 밝혔습니다. 플랫폼이 내부적으로 혐오표현에 유의하고 있다는 인식이 있을 때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언어를 전달하는 사용자도 취지에 공감할 것이고 원칙에 어긋난 표현에 따르는 제재에 수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혐오표현의 피해대상. ©카카오

온라인에서 혐오표현의 피해를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는지 사회적 소수자에 한정해 조사한 경과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노인, 호남전라도사람 순서로 나타났습니다. 디자이너는 이런 사회적 인식과 현상을 정확히 인식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이후 확진자라는 표현에 익숙해지자 샐러드, 운동기구 판매 등을 위해 ‘확찐자’라는 표현을 기사, 광고 등에서 접할 때가 있습니다. 이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느낄 수 없는 표현으로 상대방에게 공감을 표현해야 마땅한 UX Writing에서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되는 단어입니다. 말은 쉽게 섞이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평소에 사용하는 단어부터 긍정적인 표현을 사용하려고 애를 쓰고 혐오나 차별이 느껴지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배제하며 언어, 문화, 종교, 역사 등 다름에 대해 열려 있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평소에 뱉은 말은 다시 나에게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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