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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는 살아있을 때도 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이름을 떨쳤고, 죽어서도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가 IT업계에 남긴 유산은 그의 독특한 생애와 기질만큼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의 강렬한 임팩트를 주었고, 지금까지도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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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IT혁명의 영웅들: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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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는 살아있을 때도 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이름을 떨쳤고, 죽어서도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가 IT업계에 남긴 유산은 그의 독특한 생애와 기질만큼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의 강렬한 임팩트를 주었고, 지금까지도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인류에게 가져다준 혁신은 매우 복합적이고 다양하지만, 크게는 3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퍼스널 컴퓨터, 둘째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 셋째 스마트폰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3가지 선물

공식적인 최초의 마이크로 컴퓨터는 MITS사가 1974년 출시한 알테어 8800이지만, 개인들이 실질적으로 컴퓨터를 갖게 되었다는 느낌을 준 것은 애플 컴퓨터입니다. 1975년부터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차고에서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1976년 출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애플 컴퓨터를 실질적인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알테어는 컴퓨터에 상당한 지식이 있는 마니아층이 조립 설계도를 보고 부품을 직접 납땜을 해가면서 만들어야 하는 전문가용이었지만, 애플 컴퓨터는 현대의 PC처럼 전부 조립되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완제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 스타워즈의 영화감독 조지 루카스로부터 3D 컴퓨터와 픽사라는 컴퓨터 그래픽 회사를 인수하여 만든 3D 애니메이션 영화는 주위의 우려와 조롱에도 불구하고 토이스토리를 비롯하여 연달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디즈니를 비롯한 할리우드 영화업계를 한 번 뒤집어 놓으면서 큰 발전을 이루게 만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시장을 완전히 장악당할 것을 두려워한 대기업과 정부의 방어 아래 2010년경에나 접할 수 있었지만, 2007년 한 손에 들고 다니는 컴퓨터, 아이폰을 출시함으로써 또다시 인류에게 상상으로만 여기던 미래를 현실로 만나게 하는 경험을 선물했습니다.

토이스토리3 (이미지 출처: 씨네21)

어쩌면 세계 최초로 3D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든 것은 IT와는 상관이 없어 보이며, 1980년에 기업을 공개하며 IT업계에서 이미 억만장자가 된 스티브 잡스의 외도(外道)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볼 수 없는 것이 현재 최고의 IT상품으로 손꼽히는 스마트폰은 IT기술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함께 만나서 시너지를 일으키며 빚어낸 합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폰의 디자인과 메뉴 구성은 스티브 잡스가 픽사의 최고경영자로, 2006년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된 것을 증명하듯 자신의 문화예술적인 경험이 상당히 반영된 것입니다. 또한, 아이폰의 전신은 스티브 잡스가 2002년 전 세계적으로 6000만 개 가까이 판매고를 올린, 음악을 듣기 위해 만들어진 MP3플레이어 아이팟입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과 밥 딜런에 대해서 밤새 이야기를 나누던 잡스에게는 숨길 수 없는 예술가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고, 그것은 차갑게 느껴지던 IT업계에 예술적인 혼을 불어넣은 상품을 만들게 한 것입니다.

 

딱딱한 외관의 IBM 컴퓨터, 복잡한 회로도를 그대로 드러낸 알테어 8800 같은 프랑켄슈타인 같던 초기의 컴퓨터는 스티브 잡스를 만나고 나서 비로소 인간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외양과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와 같은 유연한 얼굴을 가진 기술을 장착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후의 IT제품들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으니 사용자 경험과 디자인을 그 성능만큼 중시하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은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최고의 기능이 최고의 디자인이라고 지적했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디자인을 먼저 설계한 후 어떻게든 이 디자인 안에 부품들을 다 때려 넣어라고 말해 개발자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던 스티브 잡스였지만 1977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애플Ⅱ 개발자답게 자신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기능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고찰해보면,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과 기능은 분리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그 둘이 유기적으로 조화된 제품을 추구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철학으로 스티브 잡스는 IT업계에 더욱 유의미하고 흥미로운 진화를 일궈낸 것입니다.

 

 

괴짜에서 거물이 되기까지

그러면 여기서 스티브 잡스의 생애를 간단하게나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 편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라이벌이자 한 때 IT업계의 양대 산맥을 구축했던 빌 게이츠와 똑같은 해인, 1955년에 태어났습니다.

 

195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학 온 대학생에게서 태어났지만 일주일 후에 폴과 클라라 부부에게 입양되었습니다. 그의 양아버지 폴은 기계공이었기 때문에 손재주가 좋았고, 여가시간에는 차고에서 각종 전자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어린 잡스는 비록 빌 게이츠나 앤디 그로브와 같은 명문가의 선진적인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당연히 이러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기계에 대한 친밀도와 이해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을 실리콘밸리 근방에서 보낸 덕에 1호 실리콘밸리 기업인 HP의 공학박사들과 교류하면서 전자제품에 대한 지식을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전자제품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일을 취미로 삼았습니다.

 

과거 우리나라 청계천에서 트랜지스터 같은 부품을 구해와서 라디오를 만드는 마니아들이 있었던 것처럼 스티브 잡스는 실리콘밸리에서 각종 부품을 구해와서 전자제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0대 소년이었던 잡스는 구하기 힘든 부품을 휴렛 팩커드의 창업자 휴렛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구하고, 심지어 아르바이트까지 얻어냈다고 하니 이때부터 그의 남다른 기개와 고집스러움은 그 싹을 보였던 것입니다.

팀 쿡과 스티브 잡스 (이미지 출처: https://apnews.com/)

스티브 잡스를 정의할 수 있는 말은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괴짜라는 말입니다. 잡스가 대학을 중퇴하고 게임회사인 아타리사에 취직했을 때, 히피 문화와 인도 종교에 깊이 빠져 있던 잡스는 채식을 하면서 몸을 씻지 않아 악취가 진동했고, 지나치게 고집이 세서 모두가 그를 멀리했습니다. 보다 못한 사장은 잡스에게 야간에만 나와서 일을 하라고 하니, 잡스는 오히려 기뻐하면서 나이 많은 친구인 스티브 워즈니악을 매일 밤 불러 함께 게임을 즐겼습니다.

 

그런데도 실적이 좋아서 거액의 보너스를 받기도 했는데, 잡스 자신도 대단한 실력자였지만 당대 최고의 프로그래머이자 엔지니어였던 워즈니악이 잡스의 일을 거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비즈니스차 외국으로 떠났을 때, 일을 끝내고 멋대로 인도를 몇 달 여행하고 돌아와서 다시 일을 하겠다고 하면서 회사를 계속 다닌 평범치 않은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잡스는 타고난 괴짜였습니다.

 

빌 게이츠와 마찬가지로 1974년 알테어 8800의 영향을 받아 1975년부터 워즈니악과 퍼스널 컴퓨터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1976년 애플 컴퓨터를 창업해서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진정한 의미의 개인용 컴퓨터 애플을 만들면서 IT업계에 거물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1980년 주식시장에 상장하였고, 1982년 매출 1억 달러의 성과를 일궈내면서, PC 시장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며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혁신의 유산

1985년 매킨토시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스티브 잡스의 고집스러운 성격이 이사진과 불화를 일으키면서 회사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이후 넥스트를 설립하고, 1988년 넥스트 큐브를 출시했지만, 성능과 무관하게 상업성이 부족한 제품으로 실패를 거듭하게 되면서 잡스는 큰 위기를 맞이했고 빌 게이츠를 비롯한 업계 사람들의 냉소를 받아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1986년 인수하였던 픽사에서 1995년 100% 3D 컴퓨터 그래픽으로 제작한, 장편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가 개봉되어 3억 6,200만 달러라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이후에도 픽사의 <벅스 라이프>, <토이스토리 2>, <니모를 찾아서>가 연이어 성공하면서 잡스의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1997년 이사진의 요청으로 침체기를 겪고 있던 애플에 복귀한 잡스는 매킨토시의 중저가 모델인 아이맥을 성공시키면서 애플을 다시 살려 놓았고, 2001년 아이팟, 2007년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기술혁신과 이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면서, 시대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왼쪽부터 스티브 잡스, 존 스컬리, 스티브 워즈니악 (출처: https://www.voaafrique.com/)

잡스는 비록 한 시대의 거물이었지만 출생이 순탄치 않았던 것처럼 건강과 관련해서는 매우 불운했습니다. 2004년 췌장암 수술을 받았고, 투병생활을 이겨내고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한때 건재함을 과시했지만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 2011년 10월 56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삶을 돌이켜보면 장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빌 게이츠가 젊은 날 악동에 오만함과 공격적인 성격으로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것처럼, 잡스도 단순한 괴짜를 넘어서 사람들이 경원시할만한 기질을 갖고 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청년 사업가 시절, 일의 성과를 모두 자신의 공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었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자기 것인 마냥 사실을 호도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애플에서 쫓겨난 후 오랜 마음고생과 우여곡절을 겪고 난 후, 다시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신제품 발표회장에서 다른 사람들의 공을 치하하고, 우리 모두가 함께 일궈낸 성과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강조하는 유연한 상생의 리더로 거듭난 것입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를 이야기하고, 그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설사 그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괴짜에 모난 성격이었다고 하더라도 지금껏 세상에서 보지 못한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그의 고집스러운 제품에 대한 철학이 IT업계와 일반 대중들에게 남긴 혁신적인 유산들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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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 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뉴밀레니엄 시기, IT 벤처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한때 IT 콘텐츠 업체를 창업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최고의 콘텐츠를 찾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출판 분야에 뛰어들어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하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다. IT와 출판 분야에서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출판 콘텐츠와 온라인 네트워크의 결합에 대해 깊이 고민 중이다. 저서로 SNS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대안을 제시한 <소셜네트워크, 야만의 광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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