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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에 대해서 잘 모르는 소위 컴맹이라고 해도 IBM에 대해서는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PC라는 상품명을 고유명사로 만든 IBM을 모르는 현대인은 주위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국제 사무기기 회사(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 Corp.)라는 정체성으로 시작한 IBM은 이제 단순한 IT기업의 차원을 넘어선 글로벌 기업으로, 조금 과장하자면 인류의 자산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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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에 대해서 잘 모르는 소위 컴맹이라고 해도 IBM에 대해서는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PC라는 상품명을 고유명사로 만든 IBM을 모르는 현대인은 주위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국제 사무기기 회사(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 Corp.)라는 정체성으로 시작한 IBM은 이제 단순한 IT기업의 차원을 넘어선 글로벌 기업으로, 조금 과장하자면 인류의 자산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대표적인 근거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가 등록되어 있는 기업이 IBM입니다. 2020년에만 9000개가 넘는 특허를 등록하면서 27년째 세계 최고의 특허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1920년에 설립된 이 기업은 현재까지 미국에서만 15만 건이 넘는 특허를 받았습니다. 단순히 데스크톱을 생산하는 업체가 아니라 왓슨과 같은 인공지능을 만들고, 블록체인 기술, 양자 컴퓨팅 등 첨단 기술분야에서 미래를 선도하는 중대한 글로벌 기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IBM도 회사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심대한 위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IBM은 1980년대 후반부터 PC사업에 있어서 급격한 퇴조를 보였습니다. 컴퓨터의 브랜드보다 CPU와 운영체제의 브랜드가 더 중요한 시대로 넘어가면서부터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와 인텔의 CPU가 독자적인 브랜드 역량을 강화하고, IBM PC 호환기종의 다른 업체 컴퓨터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전방위적으로 공급하면서 IBM은 독점적인 컴퓨터 기업의 지위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한편으로 가격 경쟁력과 유통망 확보에 있어서는 델 컴퓨터 등에 밀리기 시작하였으니, 신제품을 개발하면 즉각 IBM을 찾아가 보고하는 등 IBM에 종속되어 하청업체였던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은 더 이상 IBM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장 상황과 맞물려 HP, 컴팩 등과 같은 기업들도 업계의 기린아로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빅 블루라고 불리던 거대한 코끼리 기업 IBM은 하이에나, 사자, 표범과 같은 신흥 강자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서서히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 IBM은 엄청난 적자를 맞고 완전히 무너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코끼리를 춤추게 만들 수 있다고 일성을 내뱉으며 등장하여 IBM을 다시 세계 최고의 IT기업으로 부활시킨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컴퓨터에 문외한으로 장외에서 영입된 루이스 거스너입니다.
하지만 처음에 거스너는 IBM의 최고 경영자를 맡은 생각이 전혀 없었으며, 오히려 거스너는 IBM에 대해서 안 좋은 기억을 갖고 있었습니다. 과거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최고 경영자로 재직하던 시절, 회사에서 컴퓨터 한 대를 바꿨는데, 그 제품이 IBM이 아니라는 이유로 IBM의 직원이 데이터 처리 센터 관리를 중단하고, 놀란 거스너가 IBM에 전화를 하자 연락조차 받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독점 기업이었던 이러한 IBM의 거만한 태도에 거스너는 충격을 받고 쓴웃음을 지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 치명적인 위기에 처한 IBM은 실리콘밸리의 많은 경영자 후보군에게 SOS를 보냈지만 모두가 거절했고, 거스너 역시 이 회사는 도무지 회생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며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IBM인사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짐 버크의 말 한마디 때문에 결심을 바꿨는데, 그것은 바로 IBM이라는 회사는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미국의 보물이니, 당신이 맡지 않는다면 이제 막 취임한 클린턴 대통령을 동원해서라도 당신의 마음을 바꾸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IBM을 맡아야 한다며 애국심을 호소하는 열렬한 설득에 거스너는 결국 커리어와 전혀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무너져 가던 IBM의 CEO 자리를 수락하게 됩니다.
그러면 IBM의 선장이 되기까지 루이스 거스너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겠습니다.
루이스 거스너(Louis Gerstner. 1942~)는 1942년 뉴욕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트럭 운전사였고, 어머니는 대학에서 근무하는 직원이었습니다. 비록 부유한 가정은 아니었지만 교육열이 높은 부모는 부업을 해가면서 자식들을 모두 명문대학에 입학시켰습니다. 거스너는 힘든 가정을 꾸려나가는 부모님을 돕고자 어린 시절부터 음식점에서 일을 했는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성적은 늘 최상위권이었습니다.
명문 다트머스 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하버드에서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1965년 세계적인 컨설턴트 업체로 유명한 맥킨지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는데, 데이터 중심의 냉철한 컨설팅으로 명성을 떨치면서 승승장구하며 젊은 나이에 맥킨지의 임원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도전에 목말랐던 거스너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신임 회장의 제안을 받고, 12년간을 재직했던 맥킨지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1978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 입사하여 회사의 성장을 이끌었고, 역시 실력을 인정받아 1985년 CEO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가 CEO로 근무하던 4년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연성장율이 60%를 상회하면서 재차 거스너는 유명세를 치렀습니다.
1989년 늘 새로운 도전을 즐겼던 거스너는 미국 최대의 과자 회사인 RJR 나비스코 CEO로 또다시 자리를 옮겼습니다. 부채가 많아서 존폐위기에 몰렸던 RJR 나비스코가 거스너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 것입니다. 거스너는 1989년 최고 경영자 지위에 오르자마자 불필요한 사업 분야를 정리하는 등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고객중심의 마케팅으로 3년 만에 빚더미에 앉은 회사를 흑자 구조의 회사로 바꿔놓았습니다.
그리고 1993년 IBM을 맡게 되었을 때, 거스너의 이러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IBM이 워낙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었고, 거스너는 IT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회생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을 넘어 거스너를 조롱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거스너는 박물관의 유물처럼 역사 속의 기업으로 사라질 뻔한 IBM을 살려냈습니다. 거스너의 전략은 어떻게 보면, 매우 심플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컨설턴트 출신답게, 이전 회사에서와 마찬가지로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하고, 실적 중심과 고객 중심으로 회사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먼저 사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0만 명의 직원을 내보내는 살을 잘라내는 것과 같은 구조조정을 감행했습니다. 이전까지 IBM은 임원이나 직원들이 자기만 잘하면, 얼마든지 수입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였고, 회의는 만장일치를 통해서 의사를 결정했기 때문에 뿌리 깊은 보신주의가 만연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서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방향으로 일처리를 했기 때문에 혁신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각 개인은 뛰어난 인재들이었지만, 회사 내에서는 소통이 되지 않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동력이 유입이 되지 않으니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떠나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제자리만 맴돌다 지쳐버린 코끼리처럼 앉은자리에서 죽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거스너는 회사 임직원의 수입을 회사 전체의 실적과 연동시켰고, 자신들의 비전을 고객 중심으로 새롭게 작성해서 보고하도록 했으며, 회의를 하면 반드시 그 자리에서 결론을 내고 실행하게 했습니다. 또한, 외부에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면서 양복을 다려 입고 권위적인 태도로 고객을 대하는 태도를 일신(一新)해서 쉬운 용어를 쓰고, 자율적인 복장을 하고, 사무실에서 편하게만 일하려고 하지 말고, 한 사람이라도 더 고객을 만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거스너 자기 자신 역시 6개월 동안 2만 명이 넘는 고객을 직접 만나면서 고객의 요구사항을 듣고, IBM의 비전을 제시하며 몸소 새로운 IBM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현장을 진두지휘하였습니다.
그리고 실무적으로는 모든 종류의 컴퓨터를 만들어놓고 고객을 기다리는 수동적이고 일방적인 PC 생산 라인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프리미엄 노트북 위주로 사업을 재편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IBM을 하드웨어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회사로 거듭나게 한 것이었습니다. 거스너는 많은 회사들이 IT를 기반으로 해서 업무와 자원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고, 생산성을 제고하고자 하는 욕구를 알아채고 여기에 엄청난 시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기업들에게 IT기반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그룹웨어(groupware, 협력하여 업무를 진행하는 그룹 작업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 최고의 인트라넷 소프트웨어와 그룹웨어에 관한 기술력을 갖고 있던 로터스를 인수했습니다.
로터스를 인수하여 만든 로터스 노츠라는 인트라넷 프로그램은 1995년 한 해에만 450만 개가 팔리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외에도 티볼리라는 거대 소프트웨어 업체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소프트웨어 사업에 뛰어들어 점차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2번째로 큰 소프트웨어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게 됩니다.
또한, IT기술이 필요한 회사들에게 컨설팅을 해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시스템까지 일체를 구축하고 관리까지 해주는 원스탑 IT서비스 업체로 거듭났습니다. 일방적이고 독선적이던 기존 IBM의 사업방식에서 벗어나 여러 업체들과 함께 공생하는 모델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러한 컨설팅 서비스 비즈니스는 성장을 거듭하여 2005년 IBM 전체 매출의 절반을 넘어서게 되었고, 그 결과 IBM은 소프트웨어 회사이자 서비스 업체로 성공적으로 변신하며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가치면서 IBM은 거스너가 2002년 퇴임할 때는 300억 달러 규모의 매출 실적을 올리며 완벽히 부활에 성공했습니다.
거스너의 성공 비결은 역시 컨설팅 업체에서부터 다져진 그의 냉철한 경영 노하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데이터를 근거로 한 과감한 구조 조정과 효율성을 중심으로 기업의 구조를 재편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무엇보다 시장 상황에 따라 하드웨어 회사를 소프트웨어 회사로 환골탈태시키는 과감한 혁신, 권위를 내려놓고 절대적으로 고객 중심으로 사고하고 전력을 다해 실행에 옮기는 사업 방식은, 어떤 사업 분야에서라도 꼭 되새겨볼 만한 할 경영자의 귀중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