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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혁명의 영웅들: 윈텔 시대를 이끈 주역, 앤디 그로브

윈텔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윈도우와 인텔을 합친 말입니다. 1990년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와 인텔 CPU(중앙처리장치)의 결합은 성능을 보증하는 컴퓨터의 대명사였습니다. 물론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시장이 다변화되면서, 양상이 조금 복잡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PC에 있어서만큼은 우리는 여전히 윈텔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경쾌한 음악 소리와 함께 인텔 인사이드라는 로고가 마지막에 등장하는 각종 컴퓨터 관련 광고를 텔레비전에서 접했던 기억을 갖고 계신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IT혁명을 이끈 주역들은 학자와 엔지니어가 그 근본 초석이 된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기술 발전이 연구실에만 남아 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시장에서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상품군과 서비스를 개발하여 대중에게 직접적인 유익함을 제공했던, 최고의 IT 사업가들 역시 IT혁명의 당당한 한쪽 날개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IT혁명은 그 분야의 특성상, 기술자와 사업가를 완전히 구분하는 것이 모호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빌 게이츠를 비롯한 IT혁명을 이끌었던 IT 경영자들도 한 명씩 살펴보겠습니다. 그들의 삶과 사업방식에서 새로운 IT혁명과 4차 산업혁명과 같은 미래 비전에 관한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먼저 지난 30여 년간 윈텔 시대를 이끌었던 한 축, 인텔의 최고 경영자 앤디 그로브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한 인텔

앤디 그로브는 인텔을 만든 사람은 아닙니다. 인텔을 만든 사람은 지난번 윌리엄 쇼클리 편에서 이야기했던 바와 같은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 출신 연구원들입니다. 간단하게 그 과정을 되짚어보면, 쇼클리의 괴팍한 성격을 못 견디고 뛰쳐나온 8인의 공학자들이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만들었고, 여기서 수익 문제 등으로 갈등하던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는 페어차일드를 나와 인텔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는 페어차일드 시절부터 그 실력을 인정받아 눈에 띄었던 앤디 그로브를 영입하여, 인텔은 삼두체제 (三頭體制)를 완성하였고 이때부터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비록 앤디 그로브가 인텔의 창업자는 아니었지만 현재의 인텔을 만든 최고 경영자이자 인텔의 상징으로 지금껏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앤디 그로브와 함께 인텔은 기술 혁신을 이루었고,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으며, 그가 직접 모든 살림을 챙기면서 인텔만의 기업 문화와 경영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입니다.

 

로버트 노이스는 초기 기술 개발과 전체적인 사업 방향에만 관여하면서 개인적인 생활을 즐겼고, 오로지 연구를 좋아하는 학자 타입의 고든 무어는 연구실에 스스로를 가두고, 주로 기술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해주는 해결사 역할을 했습니다. 그 외에 제품 개발에서 마케팅, 기술 혁신, 직원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을 앤디 그로브가 맡았습니다.

앤디 그로브의 헌신과 열정을 바탕으로 인텔은 1990년대 매년 30% 이상 성장했으며, 80%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1987년 앤디 그로브가 CEO로 취임하기 직전 인텔은 세계 10위 근방의 반도체 업체였지만, 그가 인텔을 맡고 난 후 1992년 세계 1위 반도체 업체가 되었고, CEO를 그만둔 1998년에는 200억 달러가 넘는 매출을 기록하면서 눈부신 성과를 이뤄내고 인텔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었습니다.

 

무어의 법칙으로 널리 회자되는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1년 6개월마다 2배씩 높아진다는 이론은, 순수한 무어의 통찰력으로부터 나왔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비록 1975년, 24개월로 수정되기는 했지만, 실상 법칙이라기보다는 앤디 그로브의 집념이 만들어낸 성과를 관찰한 결과를 무어가 요약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앤디 그로브는 무어의 법칙이 말하는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직원들에게 초과 근무를 시켰고, 그에 대한 대가를 스톡옵션으로 지불하여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헌신하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앤디 그로브가 2016년 3월 21일 세상을 떠났을 때,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애플의 팀 쿡 등 동종 업계의 많은 인물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를 최고의 경영자, IT업계의 거인으로 추모하였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조금 더 들여다보면, 물론 그가 탁월한 경영자이긴 했지만 그가 모든 면에서 훌륭한 사업가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현시점에서 살펴보았을 때, 의문 부호가 붙을 만한 일들도 많이 벌였습니다. 누구나 그러하듯 그의 삶과 사업 스타일에도 빛과 그림자가 공존했다는 말인데, 앤디 그로브의 생애를 통해서 그의 경영 스타일도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치열한 생존 본능의 뿌리

앤디 그로브(Andrew Stephen "Andy" Grove, 1936 ~ 2016)는 처음부터 미국 사람이었던 것이 아니라 본래 안드라스 그로프라는 이름을 가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출생한 이민자 출신입니다.

앤디 그로브 (출처: 위키백과)

그는 미국으로 건너와 인정받는 공학자로 안착하기까지 롤러코스트 같은 변화무쌍하고 다사다난한 일들을 겪어야 했습니다. 유년기에는 성공한 사업가였던 아버지 덕분에 좋은 교육을 받으며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시기에도 경제적으로는 넉넉했지만 건강이 좋지 못하여 심장 수술을 하면서 청력의 절반을 잃었고 평생 보청기 신세를 져야 하는 불운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즈음에 아버지가 2차 세계대전에 출전하여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남은 가족들은 독일군의 침공으로, 지하 방공호에서 숨죽이면서 생명을 부지하였고, 친척들이 유대인 대량 학살의 피해자로 죽어나가는 것을 목도해야 했습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아버지는 전쟁 포로의 상흔을 이겨내고, 다시 사업가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 덕분에 그는 공포에 떨었던 기억은 가슴에 묻어두고 수학, 피아노, 영어 등을 과외로 배우면서 대단한 우등생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온은 오래가지 못했으니 소련이 다시 헝가리로 침공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부모님과 이별하여 미국으로 건너갔고, 그러한 신산(辛酸)스러운 삶을 겪으면서도 뉴욕대학에서 화공학을 전공하고 수석으로 졸업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이후 당대 최고의 기업이었던 벨연구소의 입사 제의를 뿌리치고, 자신의 고향과 날씨가 비슷한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의 페어차일드 반도체에 입사했고, 다시 로버트 노이스를 따라 인텔이라는 신생기업에 합류하는 도전을 이어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다방면으로 교육받고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그가 1967년 저술한 <반도체의 물리학과 기술>은 전 미국의 반도체 교재로 채택될 정도로 뛰어난 저서였습니다. 이때부터 그의 전문가로서의 역량은 만천하에 알려지게 되었고,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의 프러포즈도 뒤따르게 된 것입니다.

 

 

거인의 빛과 그림자

인텔에 합류한 앤디 그로브의 대표적인 업적은 메모리 생산에만 몰두하던 인텔을 세계적인 마이크로프로세스 기업으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일본의 덤핑 제품으로 회사가 위태로워지자, 메모리 분야를 과감하게 구조 조정하고 마이크로프로세스 업체로 성공적인 변신을 하였습니다. 또한 CPU의 연산 명령어에 저작권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했고, 386 컴퓨터의 두뇌가 되는 80386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과 재고 문제에 시달리던 IBM의 판단 착오를 기화로, IBM의 하청업체 지위에서 벗어나 판매 업체를 다변화하면서 독립적이면서도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로 거듭나게 됩니다.

 

또한, 컴퓨터 부품업체로 독자적인 브랜드를 알리는 인텔의 마케팅 전략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며, 최고의 PC는 인텔 CPU를 사용한다는 인식을 소비자들에게 널리 심어주었습니다. 다른 컴퓨터 업체의 광고비를 일부 부담하면서까지 함께 광고를 하거나 자신의 로고를 노출하면 CPU 가격을 할인해주는 당시로는 획기적이면서도 공격적인 마케팅 기법으로, 인텔의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가격을 높이면서 급격한 성장을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 이면에는 어두운 면도 없지는 않았으니 펜티엄이 출시되었을 때, 부동소수점 문제와 같은 연산 오류를 간과하여 소비자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대규모 리콜 사태를 겪기도 했으며, 냉정한 관리 문화로 지각하는 직원들은 피도 눈물도 없이 질책하는 과정에서 파긴과 같은 최고의 엔지니어를 내보내는 우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회사에서 퇴사하는 사람을 붙잡아두고 온갖 비난을 해서 잠재적인 경쟁자의 기를 꺾는 치졸한 행태를 회사 문화로 만들기도 하였고, 매출 목표와 생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직원들을 기계처럼 평가하고 닦달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등 전형적인 냉혈한 같은 사업가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인텔을 이끌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인텔 코리아 홈페이지(intel.co.kr)

특히 먼지를 제거하는 방진복을 개발하여 반도체 생산의 불량률을 획기적으로 낮추었지만, 그러한 결벽증을 사무실에도 적용하여 사원들의 책상을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사용하도록 강압하여 미스터 클린이라는 조롱 섞인 호칭을 듣기도 했습니다.

 

앤디 그로브는 이처럼 편집광적인 기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는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시장 변화에 편집광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사업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지론을 펼친 것입니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강조하는 현대 IT 기업들과는 상반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마냥 단점만 지적하기는 어려운 것이 그가 상하를 가리지 않고 실적 위주로만 평가하고 상부의 특권을 없애는 오직 실력 위주의 수평적인 기업 문화를 위해서 노력한 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청력에 장애가 있으면서 어린 시절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나치 치하 아래서 불안에 떨었던 기억은 그를 편집광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추론해볼 수 있으며, 그것이 반도체와 같이 정밀한 기계 부품을 다루는 업체의 특성과는 오히려 잘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비록 앤디 그로브는 업계에서 냉혹한 전사였지만 모교인 뉴욕대학교에 2천6백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하였으며, 미국의 미래를 위해서 교육의 중요성을 강요하며, 자신의 경영 노하우를 가감 없이 강의를 통해서 알려주고, 전파하면서 찬사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끝으로 그의 편집광적인 태도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양날의 검이었겠지만, 양질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생산하여 시장을 주도했습니다. 또한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기술혁신을 통해서 점점 더 성능 좋은 제품을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구매할 수 있게 만들었고, PC를 대중화시킨 공로는 마땅히 인정받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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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

닷컴 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뉴밀레니엄 시기, IT 벤처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한때 IT 콘텐츠 업체를 창업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최고의 콘텐츠를 찾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출판 분야에 뛰어들어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하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다. IT와 출판 분야에서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출판 콘텐츠와 온라인 네트워크의 결합에 대해 깊이 고민 중이다. 저서로 SNS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대안을 제시한 <소셜네트워크, 야만의 광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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