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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대에서 한국의 IT산업 발전사를 살펴보자면, 1980년대는 정보통신시대의 서막이 열리는 시기였습니다. 정보통신의 중요성을 국가 차원에서 인식하고, 2번이나 정보통신의 해로 선정하여 정보통신강국으로 나아간다는 지향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한국 특유의 역동적인 얼리어답터로서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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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시대정신 IT 일곱 번째, 한국 정보통신 시대의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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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대한민국은 박정희 정권이 물러난 후 다시 군부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좌절과 저항이 반복되며, 정치 사회적으로 상당한 어둠이 드리워져 있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1970년대에 이어 1980년대에도 눈부신 발전을 이어나갔습니다. 중복 투자된 중화학 공업을 구조 조정했고, 경쟁력 있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정책을 펼치면서 재벌이 양산되기도 하였습니다. 달러 가치와 석유 가격이 낮아지고 국제금리도 하락하면서 소위 3저 호황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은 눈부신 경제발전과 함께 세계에서 주목하는 국가로 성장해나갔습니다.


정보통신 국가 선언

이러한 시대에서 한국의 IT산업 발전사를 살펴보자면, 1980년대는 정보통신시대의 서막이 열리는 시기였습니다. 정보통신의 중요성을 국가 차원에서 인식하고, 2번이나 정보통신의 해로 선정하여 정보통신강국으로 나아간다는 지향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한국 특유의 역동적인 얼리어답터로서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던 것입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컴퓨터에 대한 시장 수요가 500대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외국의 영향을 받아 인터넷의 도입이 시작되었습니다. 1982년 서울대학교 컴퓨터 공학과와 한국 전자기술연구소의 중형 컴퓨터가 전용선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최초의 SDN(System Development Network)의 탄생이었습니다. 또한, 1983년에는 KAIST(한국과학기술원)의 중형 컴퓨터도 SDN으로 연결되었습니다. SDN은 TCP/IP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국제적인 표준에 부합하는 한국 최초의 인터넷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81년 1월에는 세운상가에 삼보엔지니어링이 설립되었고, 조립 PC 수준이기는 하지만, 1981년 1월 국내 최초의 PC인 SE-8001이 출시되어 독자적인 브랜드로 판매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진1: 조현정 비트 컴퓨터 대표 (출처: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https://spri.kr/)

최초의 IT 벤처기업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조현정 대표는 인하대 전자공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3년 호텔방에서 숙식하면서 2년 넘게 의료정보 프로그램을 개발하였습니다. 대학교 3학년 시절에 450만 원으로 창업을 하였으니 국내 1호 벤처기업인 비트 컴퓨터입니다. 비트 컴퓨터의 설립과 함께 대통령 직속으로 정보산업육성위원회가 발족되었고 1986년에는 벤처캐피털 법이 공표되었습니다.

또한, 1983년 2월 삼성 이병철 회장은 소위 도쿄선언으로 반도체 개발을 시작하였습니다. 1983년 12월 64K D램 출시를 시작으로, 대한민국은 반도체 강국으로 접어들었고, 이것은 IT산업의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조현정 대표는 1986년에는 테헤란 밸리에 입성했고, 1990년에는 최초의 병역특례기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비트교육센터를 설립하여 후진을 양성하였고, 1988년에는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협회를 조직하여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계를 선도하였습니다.

1983년 정부는 당 해를 정보산업의 해로 선포하였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실업계 고등학교에 5000대가 넘는 8비트 컴퓨터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야심 차게 발표했지만, 실제 결과는 여기에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의욕적인 정책에 힘입어 이때부터 대기업들이 PC 생산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IP 주소를 할당받았고, 1987년에는 닷kr(.kr) 도메인이 본격적으로 사용되며 세계의 인터넷 확장 물결에 더욱 적극적으로 합류하였습니다. 1987년 정부는 다시 정보통신의 해를 선언하였고, 1989년 교육용 컴퓨터의 표준을 IBM 16비트 컴퓨터로 선정하면서 컴퓨터의 보급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한글 워드프로세서의 개발과 한글 이야기

한발 더 들여다보면, 1980년대는 한글 워드프로세서 개발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컴퓨터의 일반 보급이 활성화되기 시작하자, 영어뿐만 아니라 한글로 입력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요구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사진2: 아래아한글 (출처: 한글과 컴퓨터)

한글 워드프로세서 발전사를 보면, 미 문화원에서 1980년 WORD80이라는 한글, 한자, 영문처리가 가능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것이 최초였습니다. 다음으로 국내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것은 1982년 애플 호환기종용 한글 워드 프로그램, 한글문자편집기 1.0이었습니다. 서울 북고등학교에 2학년 재학 중이던 박현철 씨가 개발한 것으로 당시 신문에 대서특필되기도 하였습니다.

1983년에는 고려시스템에서 만든 명필이라는 워드프로세서가 만들어져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이 프로그램은 한글코드와 자판의 표준 규격 제정을 이끌었습니다. 1985년 이후, 시장성을 확인한 대기업이 대거 참여하면서 한글 워드프로세서 개발의 춘추전국시대가 벌어졌습니다. 삼보에서 보석글이 나왔고, 금성사에서 가나다라, 현대전자에서 바른글, 삼성전자에서 글벗 등이 나왔습니다.

1988년에는 한컴퓨터연구소에서 한글 2000이라는 프로그램이 나왔습니다. 한글2000은 모든 기종에서 한글을 사용할 수 있는 한 단계 진일보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1989년 후일 한글과 컴퓨터를 설립한 이찬진씨는 한글 2000 프로그램에 영향을 받아 서울대 컴퓨터 연구회에서 만난 김택진 등과 함께 아래아한글 워드프로세서를 만듭니다. 1989년 1.0 버전을 출시했는데, 대중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한글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통일해나갔습니다.

아래아한글은 자체에서 제작한 글꼴이 내장되어 있었고, 별도의 프린터용 모듈 없이 모니터에 보이는 그대로 출력이 가능했으며, 선 그리기, 특수 문자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기능을 많이 갖추고 있었기에 업계를 단숨에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아래아한글의 성공 이후에는 한동안 한글 워드프로세서 개발 붐이 일어났습니다. 훈민정음, 파피루스, 아리랑 등의 프로그램이 출시되었지만 아래아한글을 넘어서기는 어려웠습니다.

사진3: 아래아한글 (출처: 블로터닷넷 http://www.bloter.net/)

한편으로 1980년대는 PC통신이 준비되고 개시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40대 이후 세대는 PC통신의 추억을 가진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월드와이드 웹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이전에 한국에는 PC통신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1984년 데이콤이라는 회사에서 한글 이메일 서비스를 처음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이 서비스를 기반으로 1986년에 데이콤에서 천리안이라는 PC통신 서비스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때를 계기로 PC 통신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한국경제신문에서 1988년 케텔(KETEL) 서비스를 시작하였고, 1991년 한국통신(현 KT)이 케텔을 인수하여, 코텔(KORTEL)을 거쳐 하이텔(HITEL)로 개편하면서 우리나라 웹 서비스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PC통신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1989년에는 경북대학교 전자과 학생들의 동아리 하늘소에서 이야기라는 PC통신 전용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PC통신 프로그램인데도 불구하고 자체적으로 한글을 내장하고 있었고, 다양한 글꼴이 제공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늘소의 이야기 프로그램은 영어로 된 컴퓨터 용어들을 새롭게 창작한 다양한 한글 용어로 전환하면서 사용하였습니다. 심지어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자는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으니 차가운 컴퓨터 속에서도 대한민국 젊은 청년들의 뜨거운 애국심을 느낄 수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 참고 문헌:

1) 한국산업기술발전사. 산업통상자원부.
2) 대한민국 IT사 100. 2009년. 비즈북스. 김중태.
3) 세계가 놀란 한국의 과학기술. 2011년. 자음과모음. 조중행 외.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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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 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뉴밀레니엄 시기, IT 벤처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한때 IT 콘텐츠 업체를 창업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최고의 콘텐츠를 찾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출판 분야에 뛰어들어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하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다. IT와 출판 분야에서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출판 콘텐츠와 온라인 네트워크의 결합에 대해 깊이 고민 중이다. 저서로 SNS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대안을 제시한 <소셜네트워크, 야만의 광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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