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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모도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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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IT역사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PC의 태동기라는 것입니다.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힘들었던 메인 프레임 컴퓨터 시대를 지나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실리콘밸리의 반도체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페어차일드 반도체라는 회사를 나온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만든 인텔에서 고집적 회로로 제작한 중앙처리장치를 출시하는 등 반도체 하드웨어 기술이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개인용 컴퓨터에 대한 도전과 대장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반도체 기술을 이용한 트랜지스터의 발명으로 인해서 컴퓨터는 훨씬 더 작은 크기에 더 빠른 계산 속도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980년대 PC가 보편화되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1970년대 태동기의 PC 역시, 많은 사람들을 열광시켰습니다. 과거의 컴퓨터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공공기관에서 사용되거나 특수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대기업 등에서만 활용되었습니다. 당시 컴퓨터라는 것은 최첨단에 있는 물건이면서 동시에 엄청난 능력을 가진 군사용 무기와 같은 경외의 대상이었습니다. 신화속의 동물인 용과 같은 느낌을 주었던 컴퓨터가 사람의 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으니 많은 사람들이 흥분하고 관심을 가졌던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인간이 슈퍼맨이 되거나 아이언맨의 수트를 입는 것처럼 개인 능력의 엄청난 확장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직은 다소 과장이라 할 수 있지만, 공상과학영화의 사이보그 시대의 첫 시작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코모도 컴퓨터
최초의 PC는 흔히 1975년 MITs사에서 애드 로버츠가 개발한 알테어 8800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256바이트의 메모리를 가지고 있었고, 300에서 400달러 사이의 금액에 판매되었습니다. 알테어 8800은 인텔의 8080 CPU를 장착하고 있었고, 철제케이스, 파워, RAM(메모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사용자가 직접 조립해서 쓸 수 있는 컴퓨터였습니다. 이후 애플 컴퓨터, 코모도어 VIC-20 등이 시장에 출시되었습니다. 이 알테어 8800은 많은 젊은이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습니다.
애드 로버츠는 본래 MITs에서 전자계산기 조립 키트를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레스 솔로몬이라는 한 잡지사의 편집장이 이 회사에 인텔 8080 CPU를 이용해서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전자계산기를 만들어볼 것을 권했고 그것이 알테어 8800 프로젝트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알테어 8800은 수백 대의 판매고를 이룰 것이라는 예측을 훨씬 뛰어넘어 5,000대 이상이 팔리게 되었습니다.
알테어 8800을 접한 젊은 시절의 빌게이츠는 컴퓨터에 사용될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베이직이 탄생했고 이후 MS-DOS까지 만들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사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한편 알테어 8800을 접한 스티브 잡스는 앞으로 PC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감하고,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 아타리라는 회사에서 함께 일한 인연이 있던 로널드 웨인과 함께 애플 컴퓨터를 창업하게 됩니다.
CPU
애플Ⅰ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CPU였던 6502CPU를 장착하고 4KB의 메모리를 설치한 제품으로 666달러에 판매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제품은 컴퓨터에 해박한 지식이 있는 전문가들이 조립하고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로 대중성이 부족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만든 애플Ⅱ는 1977년에 출시되었는데 케이스에서부터 호감을 갈 수 있도록 신경을 썼고, 스피커를 달아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고, 벽돌깨기와 같은 간단한 게임도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후 애플Ⅱ에서 구동될 수 있는 다양한 컴퓨터 게임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등 범용성을 가진 PC로 애플Ⅱ는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이후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을 잡고, 베이직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한 애플Ⅱ플러스를 1979년 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컴퓨터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글로벌 PC 시장을 장악해 나갔고, IBM PC와 함께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양분하기에 이릅니다.
이 시기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소개하면, 애플 컴퓨터를 함께 구상하고, 초창기 투자자였던 로널드 웨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977년 1월 3일 애플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창업을 하기 3개월 전 웨인은 자신의 지분을 800달러에 팔아버렸습니다. 스티브 워즈니악, 스티브 잡스와 같은 괴짜들과 함께 창업을 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못 미더웠던 그는 자신이 갖고 있던 애플 컴퓨터의 지분 10%를 팔고 발을 빼버린 것입니다. 후일 그가 내던진 지분은 300억 달러의 가치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웨인은 갖은 부침을 겪은 끝에 현재 네바다주에서 국가 보조금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미래를 읽는 눈이 밝지 못했던 그가 내리 성급한 결정의 대가가 그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버린 것입니다.
팔로알토 연구소
이와 유사한 기업의 사례도 있습니다. 제록스의 팔로알토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1970년대 앞으로 다가올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를 내다보고, PC에 들어갈 기술들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마우스를 이용한 컴퓨터의 작동 등 당시로는 혁명적인 개념의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하지만 경영진과 엔지니어들은 이러한 개념을 이해하거나 수용하지 못했습니다.
제록스의 기술은 결국, 이것의 시장성과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던 애플에 의해서 흡수되고 말았습니다. 1979년 제록스 경영진이 스티브 잡스를 팔로알토 연구소에 초대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잡스는 연구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고, 복사기 판매에만 열을 올리는 경영진에게 지쳐 있던 연구원들은 잡스와 대화를 나누면서 막힌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코드가 맞았던 연구원들의 기술은 상당히 애플에게로 이전되었고, 제록스를 나온 연구원들은 MS사를 비롯한 다양한 소프트웨어 회사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에피소드는 역시 기술에 대한 이해, 미래에 대한 전망의 유무가 특정한 개인뿐만 아니라 한 기업의 운명을 가르게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