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요즘IT가 〈AX일지〉를 연재합니다. AX는 지금 가장 뜨거운 말이지만, 현장에서 실제로 어떤 고민 끝에 무엇을 제안했고 무엇이 되고 무엇이 안 됐는지까지 밝힌 기록은 드뭅니다. 그 자리를 채워 보자는 취지에 위시켓 AIDP가 공감해 함께 기획했습니다. 위시켓 AIDP는 위시켓의 AX 사업부입니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판단을 결론이 나기 전에 공개하고, 결과가 나오면 잘된 것과 안된 것을 함께 싣습니다.
이 시리즈는 한 회사의 손익이 실제로 달라질 때까지의 여정을 기록합니다. 필자는 현장에서 고객의 이야기를 듣고 실제 구축을 돕는 AIDP의 FDE(Forward Deployed Engineer)들입니다. 고객사 특정을 막기 위해 업종 특성과 규모는 일반화했고, 대화는 취지를 살려 재구성했습니다.
[AX일지] ② 대표님이 곧 시스템인 회사의 AX는 어디서 시작할까
: 유튜브로 큰 중고차 회사에 AI보다 먼저 제안한 것
유튜브 채널을 키워 성장한 중고차 판매 회사가 있습니다. 고객들은 영상에서 차를 고르고 설명하는 대표님을 보고, 그 사람을 믿고 매장까지 찾아오죠. 그런데 매장에서 그 고객을 맞이하는 사람은 대표님이 아닙니다. 스무 명 남짓의 딜러들입니다. 믿고 온 사람과 맞이하는 사람이 다른 것이죠.
이 회사에는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장사가 안돼서 생긴 고민이 아닙니다. 경쟁 상대가 점점 자본과 시스템을 갖춘 큰 회사들로 바뀌면서, 다음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있었습니다. 요즘 대부분의 대표님들이 그렇듯, 그다음이 AI라는 데에는 의심이 없었습니다. 대표님은 AI 도구를 직접 붙들고 쓰실 만큼 열심이셨고요. 하지만 AI를 어디에 어떻게 써야 좋을지는 모르셨죠.
그런 회사가 저희에게 처음 건넨 말은 “고객용 앱을 만들고 싶다”였습니다. 저희는 바로 앱을 만드는 대신, 이 회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대표님과도, 현장의 직원들과도, 지금 실제로 무엇이 불편한지를 물었습니다. 앱을 만들어 달라는 회사에 앱이 정답이 아닌 경우를 여러 현장에서 봤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가 가려는 곳은 어디이고, AI는 거기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앱은 그 길의 몇 번째 걸음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회사에 앱은 맞는 처방이었습니다. AI를 회사의 성장 엔진으로 하려면 꼭 필요한 첫 과정이었죠. 다만 중요한 건 이게 첫걸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다음 단계로 해야 할 일들이 있고, 그건 AI 에이전트 구축 같은 거창한 뭔가가 아니었습니다. 이번 글에는 제가 무엇을 보았고 왜 이렇게 판단했는지, 그렇다면 AX가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다음 단계로 무엇을 제안했는지 기록했습니다.

제가 이 회사에 궁금한 것은 무슨 기능을 만들고 싶은지가 아니었습니다. 일이 실제로 어떻게 흐르는지였습니다. 회사의 규칙은 어디에 적혀 있는지, 새로 온 직원은 그것을 어떻게 배우는지, 대표님이 영상에서 한 약속이 매장까지 어느 길로 도착하는지, 고객이 항의하면 누가 무엇을 근거로 판단하는지. 회계 장부까지 다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며칠 지나 직원들의 답이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상당수 질문의 답이 “대표님한테 물어봐요”였거든요.
일하는 규칙은 대표님이 그때그때 말로 정했고, 문서나 시스템에는 남지 않았습니다. 규칙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또 생기니 실무자들은 매번 다시 물어야 했고, 대표님은 최종 결정자이면서 동시에 회사에서 가장 큰 병목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병목이 어디서 끊어지는지를 보여 준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한번은 대표님이 유튜브 촬영에서 특정 차량을 특가로 팔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딜러가 보는 전산에는 원래 가격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영상을 보지 않고 방문한 고객에게 딜러는 전산에 적힌 가격대로 차를 팔았고, 고객은 나중에 영상을 보고서야 특가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항의가 들어왔고 회사는 보상으로 수습해야 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딜러의 실수 같지만, 딜러는 자기가 아는 정보대로 일했을 뿐입니다. 촬영하는 팀과 결정하는 대표님과 판매하는 조직 사이에 정보가 흐르는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고객 응대나 사후 처리도 마찬가지여서, 현장에서 정리된 일이 고객이 대표님과 직접 통화하면 뒤집히곤 했습니다.
즉 이 회사의 문제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대표님의 기준도, 좋은 결정도, 현장의 정보도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것이 기록되지 않고 흐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진단했던 다른 현장들과 놀랄 만큼 같은 구조입니다.
앱은 완성됐습니다. 고객이 실제 매물을 보고, 상담을 신청하고, 자기 차를 팔겠다고 등록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의뢰받은 범위로 보면 프로젝트는 여기서 끝나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AI 시대에 살아남는 기업이 되고자 하는 대표님의 의지를 알고 있었고, 앱이 그 시작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회사에는 고객사의 AX 성숙도를 다섯 레벨로 보는 공식 모델이 있습니다. 각 레벨은 단계별로 실행해야 합니다. 레벨을 건너뛰면 그게 반드시 부채가 되어 돌아오거든요.

의뢰는 “앱 개발”로 왔지만, 대표님이 앱을 만들어 달라고 하신 진짜 이유는 AI 시대에 대비된 회사라는 도착지였습니다. 그런 회사란 AI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을 처리하는 것을 넘어 AI를 통해 실제 이익을 만들어내는 회사죠. 그러려면 먼저 AI가 정리된 데이터 위에서 실제 업무를 도와야 합니다. AI가 업무를 거들려면 일의 기록이 사람과 부서 사이를 흐르고 있어야 하고, 기록이 흐르려면 기록이 존재부터 해야 합니다. 이 회사의 핵심 업무들은 그 맨 아래 레벨, 암묵 운영에 있었습니다.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설계는 처음부터 이랬습니다. 앱으로 기록이 생기게 한다. 다음에 그 기록을 이어서 차 한 대에 얼마가 남는지 보이게 한다. 이익이 보이면 AI를 어디에 얼마나 쓸지가 정해지고, AI를 적용하며, 에이전트는 그 위에서 굴러갑니다. 앱은 의뢰받은 이 AX 과정의 첫 번째 걸음이었습니다.
출시된 앱은 실제로 그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고객이 어디서 와서 무엇을 봤고 어떤 상담을 했는지가 처음으로 남기 시작했습니다. 직원들이 앱에 차량 사진을 찍어 올리면 고객에게는 신뢰 자료가 되고, 회사에는 회사의 표준대로 찍었다는 기록이 남습니다. 관리자가 특가를 등록하면 고객이 보는 화면과 딜러가 보는 전산이 동시에 바뀝니다. 대표님의 결정이 현장으로 바로 이어지는 길이 처음 생긴 것입니다.

출시 3주가 지나는 동안 마케팅도, 유튜브 채널 소개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회원 104명이 가입했고 상담 신청 20건이 들어왔습니다. 예전 같으면 어디에도 남지 않았을 스무 번의 상담이, 이번에는 한 건도 빠짐없이 고객 관리 시스템에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딜러 세 명이 차량 사진 스무 장을 앱으로 올린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숫자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 회사에 처음으로, 세어 볼 수 있는 기록이 생겼습니다.
만드는 동안 버린 것도 있습니다. 기능을 여럿 넣어 보다가, 대표님과 이야기한 뒤 홈 화면의 많은 부분을 숨기고 핵심만 남겼습니다. 공들여 구현한 기능 하나는 운영 방침이 바뀌면서 통째로 폐기했습니다. 이미 만들었다는 이유로 남겨 두면 그때부터는 자산이 아니라 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만들지만큼, 무엇을 만들지 않고 무엇을 버릴지를 정하는 것도 이 일의 큰 부분입니다.
제가 이 회사에 제안하려는 것은 Lv2, 프로세스 정형에 가깝습니다. 일이 흐르는 경로가 시스템에서 보이는 상태입니다. 겉으로 보면 이익이 보이는 화면을 만드는 일이지만, 그 화면에 담기는 것은 이 회사가 어떤 흐름으로 돈을 벌고 있는지입니다. 이 회사는 광고를 하고 영상을 올리지만, 그 광고를 보고 온 고객이 실제로 차를 샀는지, 그 한 건에 돈이 얼마나 들었고 얼마가 남았는지를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고객 관리 도구를 도입한 적도 있지만, 현장에서 입력하지 않으니 숫자가 찍히지 않았습니다. 앱 이전에 이 회사에 있던 그 구조가 여기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튜브와 앱과 매장으로 흩어져 있는 흐름을 하나로 잇는 것을 제안하려 합니다. 고객이 어디서 들어와서, 어떤 상담을 거쳐, 계약까지 갔는지. 그 한 건에 비용이 얼마나 들었고 실제로 얼마가 남았는지. 회계 장부를 다시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한 건에 얼마가 남는지를 보려면 그 한 건이 어디서 들어와 계약과 정산까지 갔는지가 끊기지 않고 이어져야 합니다. 이익을 본다는 것은 결국 일의 흐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잇는다는 뜻입니다.

규칙이 대표님 머릿속에만 있다는 문제는 이 다음입니다. 무엇을 규칙으로 삼을지, 어디까지를 예외로 인정할지를 정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근거 없이 기준부터 세워 사람을 평가하기 시작하면 그 시스템은 오히려 불공정해집니다. 어느 응대가 실제로 계약으로 이어졌는지, 어떤 처리가 결국 회사에 손해였는지를 숫자로 볼 수 있게 된 다음에야 규칙이 대표님의 말에서 회사의 기준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중고차 시장은 알선 수수료 정찰제와 하자 발생률 공개 쪽으로 가고 있고, 이 기록은 소급되지 않습니다. 지금 쌓기 시작해야 그때 볼 것이 있습니다.
제안에 앞서 부탁드리려는 것도 하나 있습니다. 당분간 새로운 것을 만들지 말고, 지금 만든 앱에서 기록이 쌓이게 두자는 것입니다. 급하다고 이것저것 손대기 시작하면 모처럼 쌓이기 시작한 기록이 오염됩니다. 쌓이는 시간을 주고, 그동안 급한 문제만 제가 잡는 것이 다음 레벨을 위한 준비라고 판단했습니다. AI 시대에 대비된 기업이 되는 방법이라고 해 놓고 당분간 만들지 말자고 하니, 이상하게 들리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 더 만드는 것보다 기록이 온전히 쌓이는 편이 이 회사에 남는 것이 많습니다.
이 제안서에도 AI라는 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앞선 현장들에서 반복해 배운 것이 있습니다. 기록이 흐르지 않는 회사에 AI를 얹으면, 틀린 기록으로 틀린 판단을 더 빨리 내리게 될 뿐입니다.
계산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AI는 공짜가 아닙니다. 도구를 구독하고 시스템을 운영하는 데 계속 돈이 듭니다. 고객 한 명을 데려오는 데, 차 한 대를 파는 데 AI를 위해 얼마까지 쓸 수 있는지를 알아야 AI를 도입할 수 있고, 그 답은 한 건에 얼마가 남는지에서 나옵니다. 자기 지갑을 볼 수 없는 회사는 AI 예산을 세울 수 없고, 예산 없는 도입은 유행을 따라가는 지출이 됩니다. 이익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 AI가 할 일이 생깁니다. 들어온 문의를 먼저 분류하고, 응대의 기준을 지키도록 돕고, 어느 채널에 쓴 돈이 실제로 돌아오는지를 사람 대신 지켜보는 일 같은 것들이죠.

이 제안은 눈에 보이는 것을 파는 제안이 아닙니다. 그래서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은 종류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받아들여진 뒤에도 지켜볼 일이 남습니다. 이 회사에는 고객 관리 도구를 도입해 놓고 쓰지 않은 전례가 있고, 이익 계산에 필요한 기록이 어디까지 준비되어 있는지도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앱을 만들어 달라던 회사에 앱이 아닌 것을 제안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돌아보면 저희가 이 회사에 드리고 싶었던 것은 순서였습니다.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아직 하지 않을지의 판단이죠. 이 판단이 유효했는지, 이 프로젝트에 어떤 결정이 이어졌고 어떤 성과가 났는지는 후속 편에서 쓰겠습니다. 저희의 프로젝트는 한 회사의 손익(P&L)이 실제로 달라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이 회사의 여정도 거기까지 담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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