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로 꼽히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올해 한국의 산업 안전 서비스 하나가 상을 받았습니다. 이름은 ‘AIR’. 산업 현장에서 작업 전에 반드시 작성해야 하는 위험성평가서를 AI가 초안까지 만들어 주는 서비스죠.
디자인 상을 받은 제품이라 하면 으레 전문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모인 팀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AIR의 첫 프로토타입을 만든 것은 에너지 기업 GS파워 발전소 직원 다섯 명이었습니다. 다섯 명 모두 코딩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비개발자였죠. 이들이 2024년 GS그룹 사내 해커톤에 나가 이틀 만에 만든 프로토타입이, 고용노동부 장관상 수상을 거쳐 2년 뒤 전국 사업장에 배포되고 디자인 상까지 받은 것입니다.
해커톤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실제 제품이 되는 일은 드뭅니다. 대부분은 발표가 끝나는 순간 운명을 다하죠. 아이디어가 좋아야 살아남는 것이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도 현실화되기까지는 그 여정이 험난하니까요. 그렇다면 AIR에는 무엇이 더 있었을까요.
이 과정의 한가운데에 52g(오이지)가 있습니다. 52g는 GS그룹의 오픈 이노베이션 커뮤니티로, 그룹 전체의 AI·디지털 확산을 주도하는 변화 관리 역할을 수행합니다. 요즘IT는 AIR를 처음 만든 GS파워 부천안전보건팀 이주필 팀장, 그리고 이 제품을 상용 서비스로 키운 ㈜GS 52g 스튜디오의 심재혁·선우정·김원희 매니저를 만나, 아이디어가 살아남는 데 무엇이 필요했는지 들어보았습니다.

낯선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사내 해커톤이나 AI 경진대회에서 나온 프로토타입 대부분은 데모와 함께 사라집니다. 아이디어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당장 수익이 되는 일이 아니거나, 만들 사람이 없거나, 어렵게 만들어도 운영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AIR는 그 관문들을 어떻게 통과했을까요. 이 인터뷰는 그 답을 따라갑니다. 문제를 고른 사람, 만들게 한 구조, 그리고 이어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52g(오이지)란?
52g는 GS그룹의 AI·디지털 확산을 이끄는 오픈 이노베이션 커뮤니티로, 'Open Innovation GS'의 약어입니다. 계열사마다 활동하는 '52g 크루'와 지주사 소속의 '52g 스튜디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크루는 소속 기업을 대표하여, 조직의 변화를 직접 시도하고, 그 경험을 공유하는 실행 주체입니다. 올해부터 GS뿐만 아니라 외부 회사도 '오픈크루'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스튜디오는 이 활동의 실행을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이 이야기는 AI가 아니라 번거로운 문서 작업에서 시작합니다.
위험성평가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된 의무입니다. 어떤 작업을 하기 전에 그 작업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빠짐없이 끄집어내고, 등급을 매기고, 개선 대책을 세워 문서에 담아야 합니다. 올해 6월부터는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무는 조항까지 시행됐습니다.
절차는 번거롭습니다. 설계 자료와 운전 매뉴얼, 과거 사고 사례를 모아 놓고 작업자들이 토론하며 위험 요인을 하나씩 채워 넣는 일로, 이주필 팀장에 따르면 ‘제대로 하면 한 건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립니다. GS파워 부천사업소에서만 한 달에 600건 안팎의 작업이 발생한다고 하니, 산술적으로 매달 최대 600시간이 서류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그가 답답했던 것은 시간 자체가 아니라 그 시간이 빼앗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사전 평가와 문서 기록도 중요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안전 대책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됩니다. 문서 작업에 1시간이 걸리면 현장에서 써야 할 시간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니 아쉬웠죠.”(이주필 팀장)
안전을 위해 만든 절차가 정작 안전을 확인할 시간을 빼앗는 구조였던 것이죠.
또 하나의 문제는 사람이었습니다. 2020년을 전후로 시니어 근무자들이 대거 교체되면서 현장은 빠르게 젊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팀장의 말에 따르면 위험성평가는 평가자의 경험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현장에는 변수가 많기 때문에 경험이 많아야 다양한 예측을 할 수 있습니다. 끼임 사고가 날 만한 곳인지, 질식 위험이 있는 곳인지는 경험으로 판단하는 것이죠.” 그래서 시니어와 주니어는 위험을 “도출할 수 있는 레벨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 이주필 팀장의 설명입니다.

이에 GS파워는 2023년, 2004년부터 쌓아온 JSA(작업안전분석) 데이터에 안전보건공단의 KRAS 기법을 결합한 자체 기법 P-JSA를 만들었습니다. 20년 치 작업 데이터와 평가 결과를 분석해 발생 가능한 위험을 440개 표준 유해위험요인으로 정형화하고, 세 단계 추론으로 해당하는 것을 찾아가게 한 것입니다.
P-JSA는 잘 정착했지만, 여전히 사람이 직접 위험을 상상해 찾고 클릭해야 했기에 소요 시간도, 시니어와 주니어 간의 격차도 좁히는 데는 한계가 있었죠.
이 문제를 AI로 풀어보자고 제안한 것은 GS파워 기계정비팀의 한 젊은 직원이었습니다. 2024년, GS그룹이 개최한 1박 2일 생성형 AI 해커톤에 참가해보자는 것이었죠. 원래 2025년쯤으로 잡아 뒀던 AI 접목 계획을 한 해 앞당긴 것입니다.
팀은 다섯 명으로 꾸려졌습니다. 안전보건팀 3명, 기계정비팀 2명. 이주필 팀장이 사람을 고른 기준은 직무가 아니라 태도였습니다. “안전 담당자 외에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의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안전에 관심을 두고 현장에 적용하려 노력하는 현업 담당자들로 꾸렸습니다.”

코치로 붙은 52g 스튜디오 개발자 김원희 매니저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MISO로 위험성평가 관련 플로우를 하나 만들어 드렸는데, 다음 날 그 팀에서 300개를 더 만들어 오셨어요. 각 케이스마다 대응되게끔 작업 플로우를 다 만들어 오셔서, 역시 전문가 분들은 다르구나 생각했습니다.” MISO는 코딩 없이 블록을 연결하듯 워크플로우를 짜면 AI 서비스가 만들어지는 GS 그룹의 AX 플랫폼으로, 비개발자 다섯 명이 이틀 만에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던 배경입니다.
이 팀장의 팀은 P-JSA를 위해 만들어뒀던 440개의 표준 위험 요인 데이터를 워크플로우 각 단계의 LLM에 입히고, 거기에 고용노동부가 구축한 과거 사망사고 유발 고위험요인(SIF) 데이터를 붙였습니다. 이 선택이 결과를 갈랐습니다. “여러 사업장이 저희를 찾아와 하소연한 것이, 자체 AI 위험성평가를 만들어봤는데 다 실패했다는 겁니다. 이유는 AI가 아무 말이나 다 해준다는 것이었어요. 저희는 실제 과거 데이터로 440개를 추려 놓았고, 거기에 법령에서 요구한 SIF를 붙여서 실제로 있을 법한 상황을 도출해 준다는 차이가 있었죠.” (이주필 팀장)
이름은 팀에서 가장 어린 1995년생 직원이 지었습니다.
“제가 이상한 네이밍을 던지는 걸 듣고 있던 팀원이 ‘혹시 AIR는 어떻겠습니까’ 하더군요. AI Risk Assessment의 앞글자인데, 공기처럼 누구나 쓸 수 있고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뜻까지 담을 수 있었죠. 다들 순간 ‘이거다’ 했습니다.”(이주필 팀장)

살아남는 데 필요한 것은 잘 작동하는 제품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도구가 현장에서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를 두고, 해커톤 이후 고도화 과정에서 팀 내부에 열띤 논쟁이 있었습니다. AI가 만든 결과를 참여자들이 다시 검토하는 절차를 넣어야 한다는 안전팀과, 편의성을 고려해 결과를 그대로 쓰자는 정비팀의 입장이 부딪혔죠.
이 대립은 AI 성능이 나빠서가 아니라 좋아서 생긴 것이었습니다.
“저희가 평소 잘하는 위험성평가를 50이라 한다면, AI는 100에 가까운 결과물을 내놓습니다. 처음에는 ‘성공했다, 이대로 적용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 그런데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우리 사업장에 맞지 않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AI도 실수할 수 있으니 걸러 주는 절차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이주필 팀장)
AI가 틀린 말을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해야 하는 것들이고요. 다만 우리 현장에 실제로 접목할 수 있느냐의 차이인 거죠.”
개발자 관점에서 이 절차는 정석에 가깝습니다. 김원희 매니저의 설명입니다.
“AI는 현실 세계를 모릅니다. 현실의 맥락은 사람만 알 수 있으니, AI는 입력된 맥락 안에서 최대한 그럴듯하게 뽑아 주고 사람이 마지막에 검수하는 것이 거의 정석 패턴입니다. HITL(Human-in-the-loop)이라고 해서, 이런 위험한 작업에는 반드시 넣도록 되어 있습니다.”

결국 ‘안전을 위해서라면 약간의 불편함도 감수하는 것이 맞다’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이에 AIR에 사람이 검토하는 절차가 반영됐고, 지금도 각 단계마다 사람이 리뷰를 마쳐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선우정 매니저는 이것이 AIR만의 원칙이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AI가 100%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저희 지론입니다. 항상 마지막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기준으로 AIR도, 52g에서 만드는 다른 AI도 만들고 있습니다.”
결과물의 품질은 AI가 높였지만, 그것을 현장이 믿고 쓸 수 있는 형태로 만든 것은 쓰는 사람들의 합의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AIR는 GS파워 내부에서 위험성평가에 활용하는 도구가 됐습니다. 하지만 내부 도구에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2025년 6월, 현장 점검을 나온 고용노동부 감독관이 AIR를 보고 외부 배포를 제안했습니다.
GS파워가 컨설팅하던 민간 업체 한 곳에 무상으로 배포한 것이 시작이었고, 이 사례가 공정안전관리 우수사례로 뽑혀 고용노동부 장관상을 받으면서 GS그룹 차원의 사회공헌 활동으로 확대됐죠.
여기서부터 52g 스튜디오가 전면에 나섭니다. 내부에서 쓰던 도구를 외부에서도 쓸 수 있을 만큼 제품화하는 것이 과제였죠.
“당시 MISO로 만들어진 형태는 GS파워 현장에 맞춰진 것이라, 다른 회사가 쓰기에 적합한 형태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브랜딩과 웹사이트 디자인, 외부 회사가 쓸 수 있는 형식까지 52g 스튜디오가 이관받아 배포하게 된 거예요.”(심재혁 매니저)
현장 전문가는 현장으로 돌아가고, 제품은 제품 만드는 사람들이 이어받은 것입니다.
52g 스튜디오가 AIR를 맡으며 가장 크게 바꾼 것은 UX였습니다. 김원희 매니저는 그 이유를 사용자에서 찾았습니다.
“가장 많이 신경 쓴 건 UX입니다. 무상 배포 대상인 영세 사업장까지 고려해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제품이 되어야 했어요. 그러려면 단계 하나하나마다 어려움 없이 쓸 수 있어야 했죠. 60대 이상 사용자가 쓴다 생각하고 UX를 하나하나 쪼개서 기획했습니다.”
그는 “정부 문서에는 ‘해야 한다’는 지침만 있을 뿐 세부적인 가이드가 없어요. 그래서 영세한 곳에서는 실제로 ‘차라리 벌금을 내자’며 실행을 하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라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방향을 잡아 준 것은 사용자 테스트였습니다. 52g 스튜디오는 고용노동부 소속 중대산업사고예방센터(중방센터)와 협업해 실제 안전 관리자들을 불러 UT(user test)를 반복했습니다. 작아서 안 보이는 글씨, 지나치기 쉬운 입력 안내 등 크고 작은 문제를 하나씩 잡아 고쳤고, 회사마다 제각각인 위험 등급 체계는 프리셋 몇 개로 대응하는 대신 아예 처음부터 조립해 쓸 수 있게 다시 만들었습니다.
선우정 매니저는 이렇게 다듬어진 AIR를 사용하던 한 사업장의 풍경을 기억합니다.
“인터뷰를 하러 간 소규모 사업장이 있었습니다. 직원이 12명이고 안전 조직이 따로 없어서, 그중 한 명이 이 일을 맡고 있었어요. 새로 오신 분이라 위험성평가를 작성해 본 경험이 전혀 없는데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AIR로 기본적인 작업을 할 수 있게 되고, 열두 명이 모니터 앞에 모여 그 결과물을 보면서 의견을 나눌 수 있었어요.”(선우정 매니저)
심재혁 매니저는 AIR가 작은 사업장에 준 가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위험성평가서 작성 경험이 적은 회사들은 기존에는 법적 기준만 맞추어, 무슨 보호구인지 모른 채 ‘보호구를 착용해야 합니다’라고 적는 식이었습니다. AIR는 작성 단계에서 어떤 보호구를 어디서 어떻게 착용해야 하는지 세부 정보까지 제안합니다.” 사용자 중 한 사람은 AIR를 “사막의 오아시스 같다”고 표현했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52g 스튜디오의 손을 거쳐 내부 툴에서 외부 솔루션으로 완성된 AIR는 2026년 2월 27일부터 중방센터를 통해 10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에 정식으로 무상 배포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용 중인 회사는 292곳(2026년 7월 29일 기준)까지 늘었고, 도입 전 약 1시간이던 위험성평가 작성 시간은 약 5분으로 줄었습니다.
사회공헌 대상이 아닌데도 쓰고 싶다는 요청이 이어져 소정의 구독료를 받는 유상 제공이 최근 시작됐지만, 52g는 유료 이용자를 늘리겠다는 목표가 있다기보다 “무상 배포의 가치를 높이는 사회공헌 활동에 집중해 무상과 유상의 기준을 나눈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GS에서 그간 다섯 번의 해커톤을 진행하며 선보인 수많은 프로토타입 중 외부 제품화까지 성공한 것은 AIR가 첫번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연한 성공이라기보다, 52g가 의도적으로 다듬어 온 프로세스 위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그 프로세스의 출발은 기술이 아니라 문제 정의입니다.
“저희가 가장 주안점을 두는 건 문제 정의입니다. AI 시대에 대부분의 문제는 AI가 풀 수 있어요. 그런데 AI 생성물이 너무 많아지면 쓸모없는 결과물만 쌓이죠. 그래서 진짜 중요한 문제를 푸는 게 더 중요해요. AIR가 잘된 것도 현업이 진짜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업이 그 문제 정의를 잘하게 하는 것이 저희가 집중하는 일이고요.”(선우정 매니저)

이처럼 문제 정의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계열사의 ‘52g 크루’가 현업과 함께 진짜 문제를 찾고 정의합니다. 현업이 현장에서 풀어야 할 진짜 문제를 찾으면, 업무 전체의 여정을 톺아보고, 업무 단위를 쪼개봅니다. 리서치도 진행합니다. 이 과정을 각사의 52g 크루가 돕습니다.
“처음부터 업무를 구조화하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늘 하는 일이라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가려내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인터뷰를 아주 깊게 합니다.”(선우정 매니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합니다. 전체적인 워크플로우를 그려 놓고 필요한 데이터,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 구간, AI에 위임할 구간을 정합니다. 선우정 매니저는 이를 요리에 빗댔습니다. “일종의 ‘현장형 레시피’ 기법입니다. 요리할 음식이 정해지면, 요리사가 직접 투입돼야 할 자리와 AI라는 주방 도구가 투입될 자리를 비율로 나눈 다음, 그 레시피를 보고 프로덕트를 만듭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판단은 언제나 요리사, 즉 사람이 하는 거죠.” 300~400명이 참가하는 해커톤에서는 이 과정의 축약판으로 코칭이 이뤄지는데, AIR 팀은 현장에서 문제를 정의해 해커톤에 들고 온 경우였습니다.

해커톤이 끝난 뒤에도 52g의 문제 해결은 계속됩니다. 선우정 매니저는 “모델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았던 초반에 52g가 겪은 고민은 해커톤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아이디어로만 끝난다는 것"이었다며, " 3회차부터 현실화에 힘을 쏟았다”고 말했습니다.
또 AIR처럼 외부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정식 제품은 만들어진 뒤에도 유지보수가 중요합니다. 52g 스튜디오가 이를 전담해 AIR가 프로토타입에 그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AIR의 상용화는 저희 스튜디오가 맡았고, 현업의 의견을 듣고 서비스에 반영하며 다시 현장에서 활용되는 선순환을 만들었어요.” (선우정 매니저)
현장에서 변화를 시도하며 문제를 발굴하는 문화부터 해커톤과 제품화까지. 아이디어가 각 단계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받쳐 주는 구조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구조는 조직의 공기도 바꿨습니다.
“처음에는 바텀업, 즉 현업이 스스로 AI를 활용해 자기의 문제를 푸는 것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다양한 활동으로 리더들의 생각도 함께 바뀌면서, 탑다운의 과제도 이뤄지니 두 가지가 조화되어 선순환이 일어났습니다.”(이주필 팀장)
AIR의 다음 단계는 범위 확장입니다. 심재혁 매니저는 “안전 프로세스에서 위험성평가는 일부분”이라며, 최근 다음 단계인 작업 전 회의(TBM)까지 커버했고 “결국 AIR는 전반적인 산업 안전 프로세스를 모두 커버하는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김원희 매니저는 조금 더 멀리 내다봤습니다. “사용자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서비스를 만들어 무료로 뿌려도 누군가 써 준다는 건 거의 기적이에요. 그런데 AIR는 돈을 내고도 쓰겠다는 고객사가 한두 군데씩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AIR가 대한민국 안전의 표준이 됐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17년 동안 에너지 업계에서 일한 이주필 팀장에게 소회를 물었습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작은 아이디어였고 작은 도전이었습니다. 그것이 나의 필요가 되고, 회사의 필요가 되고, 또 다른 사업장의 필요가 되면서 상품화까지 됐으니까요. 아이디어에서 끝나는 경우가 굉장히 많고 이것도 거기서 끝날 수 있었는데, 중간에 사명과 열정을 가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이주필 팀장)
AIR의 2년을 따라가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살아남는 데 필요한 조건이 보입니다.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문제를 정의했고, 코딩을 못 해도 만들어 볼 수 있는 도구와 코치가 있었고, 만든 사람이 현장으로 돌아간 뒤에도 제품을 이어받아 끝까지 다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하나라도 없었다면 AIR 역시 해커톤과 함께 사라진 수많은 프로토타입 중 하나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끝에는 스타트업의 성공 문법과는 다른 그림이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 시장성 있는 문제와 돈이 되는 사용자를 골라야 하는 스타트업과 달리, GS는 시장성보다 현장의 필요를 기준으로 현업이 정의한 문제를 골랐고, 그 답을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까지 쓸 수 있게 다듬었으며, 이를 경쟁이 아니라 사회공헌으로 풀었습니다. 직원 열두 명이 모니터 앞에 모여 앉은 그 작은 사업장의 풍경은, 대기업의 AX가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답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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