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스파크가 녹음기를 만들었다. 지난 7월 24일 서울 광진구 본다빈치뮤지엄 능동에서 열린 미디어 데이에서 차세대 AI 워크스페이스 6.0을 공개하면서, 이 신용카드 크기의 AI 녹음 디바이스 ‘세컨드브레인 노트’도 함께 선보였다. 녹음도 텍스트 전환도 요약도 스마트폰으로 이미 충분히 되는데, 업무용 에이전틱 AI를 만드는 소프트웨어 회사가 하드웨어를 내놓은 이유는 뭘까.
이날 젠스파크가 미디어 데이에서 핵심으로 내세운 것은 '세컨드브레인'이다. 이메일과 캘린더, 노션과 구글 워크스페이스에 흩어진 업무 정보를 하나의 지속형 메모리로 묶어, 작업이 끝나면 맥락이 끊기던 문제를 겨냥했다. 이메일 에이전트 '젠메일', 디자인 에이전트 'AI 디자인', 역할별 AI 에이전트와 함께 일하는 '젠팀'이 이 메모리를 쓰는 제품들이고, 하드웨어도 같은 맥락이다. 화면 밖 회의와 대화까지 메모리에 넣기 위한 입력 장치다.
나는 젠스파크 유료 사용자였다. 맥락 기반으로 여러 워크플로우를 한 번에 처리한다는 강점에 결제했지만, 모델 제공사들의 LLM 성능이 올라가면서 결국 발표용 슬라이드를 만들고 다운로드 받는 정도에 그쳤다. 채팅창 하나로 되는 일에 굳이 다른 창을 열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이날 가장 궁금했던 것은 “다시 결제할 이유가 생겼을까”였다.
이 글에서는 미디어데이에서 공개된 내용과 함께, 세컨드브레인 노트와 AI 디자인, 젠팀을 며칠간 써본 경험을 정리했다. 기기는 미디어데이 현장에서 대여했다.

이미 스마트폰으로도 녹음할 수 있는데, 왜 굳이 녹음 기능을 가진 하드웨어였을까? 공식 블로그에서는 이를 "세컨드브레인의 귀"라고 표현한다. 이미 문서로 남은 정보는 커넥터로 끌어올 수 있지만, 결정이 실제로 내려지는 회의실 안의 대화는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다.
하드웨어 사양에도 그 의도가 보인다. 신용카드 크기에 두께 2.95mm, 무게 26g이다. 맥세이프 자석으로 스마트폰 뒷면에 붙이거나 카드 지갑에 꽂아두는 형태다. 버튼을 2초간 누르면 표시등이 켜지며 녹음이 시작되고, 한 번 충전으로 최대 35시간 연속 녹음한다. 4개의 MEMS 마이크가 카드 상단과 좌우에 배치되고 내부에 진동전도센서가 하나 더 들어간다. 젠스파크는 AI 빔포밍으로 약 5미터 거리의 목소리까지 잡고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화자를 구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 사람의 통화에 맞춰 설계된 스마트폰 마이크와는 겨냥하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매끈한 카드가 손에 착 닿는 순간 의구심이 감탄으로 바뀌었다. 얇고 가볍다! 휴대성은 물론 접근성과 직관적인 사용성도 뛰어났다. 지금은 카드 지갑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AI 녹음 요약의 수요는 이미 검증됐다. 나도 네이버의 '클로버노트'와 사내 LLM인 '아이멤버Chat AI 회의록' 기능을 번갈아 쓴다. 스카이워크 노트(Skywork Note AI)나 플라우드 노트(Plaud Note) 같은 선행 하드웨어 제품들도 있다. 그래도 왜 굳이 별도 기기였을까 궁금할 수 있다.
UX 관점에서 찾은 답은 녹음 품질이 아니라 인터랙션 비용에 있다. 갑자기 잡힌 미팅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잠금 패턴을 풀고 앱을 찾아 실행하는 동안 대화는 이미 흘러간다. 길어지는 회의에 스마트폰을 계속 켜두어야 하는 것도 부담이고, 녹음 도중 전화나 알림으로 흐름이 끊기는 것도 신경 쓰인다.
세컨드브레인 노트는 그 과정을 버튼 하나로 압축했다. 가격은 정가 199달러, 출시 프로모션가 179달러로 경쟁 제품과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기기 값만 드는 것은 아니다. 문자 전사는 무료 플랜에서 월 300분까지이고, 유료 플랜인 플러스와 프로에서 하루 24시간 한도 내 무제한이 된다. 기기를 사도 구독이 전제된다는 뜻이다.

세컨드브레인 노트는 단순히 녹음 후 텍스트로 요약해 주는 단독 기기에 머물지 않는다. 녹음이 곧바로 젠스파크 워크스페이스에 쌓여, 회의에서 오고 간 내용을 보고서를 쓸 때 참조할 수 있다.프롬프트를 아무리 잘 쓴다 해도 AI가 배경이나 맥락까지 모두 파악하기는 쉽지 않은데, 세컨드브레인은 의도나 맥락을 매번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단순히 기기 기능만 놓고 보면 경쟁 제품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 점이 가장 큰 차별점이다.
실제 회의 녹음을 결과물에 활용한 사례는 뒤의 ‘젠팀’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세컨드브레인 노트를 사용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회의의 녹음과 요약 공유가 일상이 된 지금, 기업 환경에서 데이터 보안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 세컨드브레인 노트에 기록된 음성은 암호화되어 마이크로소프트 애저(Azure)에 저장되고, 엔터프라이즈급 보안 체계인 SOC 2 Type 2 및 ISO/IEC 27001:2022 기준을 따른다.
한국보다 사흘 앞선 7월 21일 도쿄 발표에서는 데이터 보안과 관련된 조건이 좀 더 구체적으로 공개됐다. 현지 배포 자료와 보도에 따르면, 일본 엔터프라이즈 플랜 계약자를 대상으로 일본 국내 데이터 레지던시(Data Residency) 제공이 시작됐고 사용자가 데이터 연결을 개별로 제어할 수 있다는 설명도 나왔다. 데이터를 모델 학습에 쓰지 않고 외부 모델 제공사에 데이터 무보존(Zero Data Retention)을 적용한다는 조건 역시 팀과 엔터프라이즈 플랜 기준이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한국에서 수집한 데이터가 국내 리전(region)에 저장되는지까지 확인되지 않아, 요즘IT 편집부를 통해 행사 후 젠스파크 측에 서면으로 다시 물었다. 답은 이렇게 정리된다. 데이터 레지던시는 엔터프라이즈 고객 전용이라 일반 사용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엔터프라이즈 고객의 데이터는 리전별로 분산 저장되지만 한국 리전 구축은 아직 확인 중이고, 개인정보는 미국 애저 서버에 보관된다. 결국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국내 리전이 있느냐에 있다. 또한 데이터의 보존 기간은 사용자가 직접 삭제하기 전까지 무기한이며, 삭제하면 전사본과 인덱스까지 즉시 함께 지워진다.

그래서 179달러를 내고 기기를 산 개인 사용자의 녹음은 국내에 남지 않는다. 다만 이게 이 제품만의 허들은 아니다. 우리가 이미 쓰고 있는 대부분의 AI 도구도 데이터를 해외 리전에 두고, 국내 저장이나 데이터 무보존 같은 조건은 기업 계약에서만 열린다. 개인 사용자라면 새로운 위험이 하나 늘어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쓰던 도구와 같은 조건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어떤 회의를 녹음할지 가려내는 감각만 있으면 된다.
다만 조직은 사정이 다르다. 망 분리와 국내 저장이 필수인 금융이나 공공에서는 국내 레지던시가 확정되는 시점에야 도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잠깐이지만 들고 다니며 떠오른 아이디어는 이 기기가 일만 잘하는 도구로 남아야 할 이유가 있을지였다.
스마트폰 이외 늘 몸에 지니는 물건은 어느 순간 애착의 대상이 된다. 손때 묻은 지갑이나 키링처럼 말이다. 하루의 내 대화를 가장 많이 듣는 기기라면 업무 요약 너머의 역할도 가능하지 않을까? 오늘 회의에서 내가 어떤 말투를 썼는지, 어떤 주제에서 목소리가 올라갔는지만 짚어서 교감까지 가능한 '애착템'이 되면 좋을 것 같다. 성능은 이미 충분하니 다음 차별성은 감성이라고 본다.

젠스파크는 국내에서 슬라이드 디자인 툴로 많이 알려졌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접했다. 그래서 이번 6.0에서도 ‘AI 디자인’에 기대가 높았는데, 실제 결과물의 퀄리티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전 AI 디자인은 룩앤필을 확인하는 프로토타입 수준에 머물렀다면 6.0은 클로드 오푸스 4.7 모델로 애플리케이션 목업이나 동적 웹사이트처럼 백엔드까지 연결하여 복잡하고 정교한 완성된 작업물까지 뽑아낸다.
좋아진 지점은 모델 성능만이 아니었다. AI 디자인이 손대는 곳도 결국 맥락이다. 방향만 반대다. 세컨드브레인 노트가 이미 쌓인 기억에서 맥락을 꺼내 온다면, AI 디자인은 아직 없는 맥락을 만들기 전에 채운다. 기존에 만들어 둔 디자인 자산을 끌어오는 방식, 그리고 사용자에게 되묻는 방식 두 가지다.
다른 AI와 비교했을 때 차이점은 버튼 하나까지 섬세하게 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깃허브(GitHub), 피그마(Figma), 코드베이스, 기존 디자인 에셋 등을 연동해 디자인 시스템을 먼저 정의하고, 이것을 이용해 화면을 만들면 된다.
실제로 깃허브를 붙여 만들어보니 확실히 기존에 만들어 놓은 것들을 불러와 편집하는 흐름이 매끄러웠다. 협업 관점에서 의미 있는 것도 이 부분이다.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각각 정의한 컴포넌트가 따로 놀지 않게 한 번에 정의해 준다.
디자인 시스템 정의한 후 프로토타입 제작톤앤매너를 유지한 채 화면이 순식간에 나온다.
젠스파크 디자인으로 프로토타입 제작 <출처: 젠스파크 제작, 작가 편집>
더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영상 제작이다. 영상 제작의 대표 툴인 시댄스(Seedance)와 클링(Kling) 모델을 골라 쓸 수 있다는 점이 좋았지만, 진짜 차이는 영상 생성 전이었다.
프롬프트에 “30초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라고만 적으면 바로 영상을 뽑지 않는다. 대신에 사용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클립을 몇 개로 나눌지, 어떤 모델을 쓸지, 오디오는 어떻게 처리할지, 처음과 끝을 루프로 이을지, 모션 강도는 어느 정도로 줄지 등 정교한 설정을 도와준다.
기획자라면 이 과정이 익숙할 것이다. 상사나 클라이언트가 “느낌 있게 해주세요”라고 할 때 우리가 되묻는 질문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처럼 선택지를 제시하면 한 번에 원하는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체감 속도도 시댄스와 클링 각 모델에서 직접 만들 때보다 빨랐다. 다만 크레딧 소모가 크다. 5초 영상 제작에 1,000 크레딧이다. 플러스 플랜 기본 크레딧이 월 10,000이니 5초 영상 열 개, 합쳐서 50초 분량이다. 프로 플랜은 월 125,000 크레딧으로 10분 정도가 되고, 쓰지 않은 크레딧은 다음 달로 넘어가지 않는다. 영상 제작이나 완성도 높은 프로토타입까지 쓸 생각이라면 플러스 기본 크레딧으로는 부족하다. 플랜별 크레딧은 구독할 때 티어를 골라 조정할 수 있다.
젠스파크 디자인으로 영상 만드는 모습 <출처: 젠스파크 제작 작가 편집>
‘젠팀’은 역할별 전문 AI 에이전트를 채팅방에 불러 함께 일하는 협업 플랫폼이다. 카카오톡 단톡방을 떠올리면 정확하다.
시작은 초대다. 필요한 AI 에이전트들을 부른 뒤 @로 호출해 각자에게 일을 준다. 실제로 넣어본 프롬프트 예시는 다음과 같다.
프롬프트
@Tech Lead 는 git 허브 현재 상황을 파악해서 기술적으로 수정 보완할 부분을 정리한 후 각 Agent들이 해야 할 업무롤을 정해주고 @Engineer 는 향후 개선 방향 중 임베딩 유사도 피처 추가 — 게시글-댓글 의미적 유사도를 sentence-transformers로 계산해 피처에 추가를 실행해 주고 @Code Reviewer 는 안전 필터 개선된 부분을 리뷰하고 @QA 는 Test plan를 작성해
젠팀으로 유튜브 영상 댓글 생성 개발하는 모습 <출처: 젠스파크 작가 편집>
감탄한 지점은 내가 개입할 필요가 없었다는 데 있다. 에이전트들이 서로의 작업물을 읽고 다음 단계로 넘겼다. 테크리드가 짠 업무 분배를 엔지니어가 받아 구현하고, 코드 리뷰어가 그 결과를 검토하고, QA가 테스트 플랜을 붙이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여기에 세컨드브레인 데이터가 얹히면 프로젝트 배경을 매번 설명할 필요가 없어진다. 회의에서 나온 의견들이 메모리에 있으니, 에이전트끼리 알아서 자동으로 굴러간다.
주의할 점은 개입이 적어지는 만큼 초기에 결정한 방향이 틀렸다 해도 그 오류가 QA까지 그대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지점에서 검토하고 결정해야 할지는 생각해야 한다.
세컨드브레인 노트에서 액션 아이템 정리 후 젠팀에 활용 모습<출처: 젠스파크 작가 편집>
여러 AI 도구를 쓰면서 느낀 공통점은 모델은 점점 똑똑해지는데 결과물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 원인은 대개 모델이 아니라 쓰는 사람과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즉 나는 알고 AI도 알아야 하지만 AI가 모르는 정보가 무엇인지조차 내가 몰라서 빠지는 함정이다.
젠스파크는 자체 모델을 만들지 않는다. GPT와 클로드, 제미나이를 비롯한 70개 이상의 외부 모델과 각종 도구를 작업에 맞게 골라 쓰는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에 집중한다. 즉 모델 성능으로는 애초에 차별화할 수 없다.
그래서 기억의 품질을 전면으로 내세우면서 세컨드브레인을 핵심으로 잡은 이유도 이 지점이 아닐까 싶다. 세컨드브레인 노트가 데이터를 주워 담고, AI 디자인은 만들기 전에 되묻고, 젠팀은 그렇게 모인 맥락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한다. 젠스파크에 있는 기능들은 따로 놀지 않는다. 기억하고, 확인하고, 나눠 쓰는 하나의 흐름이다.
물론 아직 데이터가 쌓인 게 없어서 기억은 완벽하지 않고, 크레딧은 비싸다. 그럼에도 1만 크레딧을 모두 태우고 결국 추가 결제를 했다. 처음의 질문에 대한 답은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앞으로는 도구가 나를 얼마나 아는지가 곧 생산성이 되는 시대라면, 다음 경쟁은 모델의 성능이 아니라 기억의 품질과 감성에서 갈릴 것으로 보인다.
ⓒ요즘IT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