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기술 업계의 언어는 꽤 단순했습니다. 누가 더 빠른지, 누가 더 정확한지, 벤치마크 숫자가 얼마나 높은지가 거의 전부였죠. 그런데 요즘 AI 업계를 보면 분위기가 조금 다릅니다. 모델 성능 이야기를 하다가도 어느새 가재, 고블린, 이상한 별명, 너드한 말투 같은 것이 따라붙습니다. 얼핏 보면 그저 인터넷 농담 같지만, 실제로 이 현상은 꽤 파장이 큽니다.
OpenAI는 아예 공식 글을 통해 모델이 ‘고블린(goblin)’ 같은 표현을 과하게 쓰게 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로이터(Reuters) 역시 OpenClaw 계열 에이전트를 둘러싸고 ‘가재(lobsters)’, ‘가재 키우기(raising lobsters)’ 같은 표현이 커뮤니티 안에서 퍼지고 있다 전했습니다.
저는 이 현상이 AI 업계가 유난히 가벼워져서 생긴 일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AI는 본질적으로 텍스트 위에서 움직이는 산업입니다. 프롬프트도 텍스트고, 사용 경험 공유도 텍스트입니다. 그렇게 깃허브 이슈와 리드미(README), X 포스트, 디스코드 대화, 튜토리얼까지 전부 텍스트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길고 어려운 기술 설명보다 짧고 반복하기 좋은 상징이 훨씬 빨리 퍼집니다. OpenAI가 말한 고블린도, OpenClaw 주변의 가재라는 밈도 결국 성능 수치보다 먼저 기억하기 좋은 일종의 문화적 인터페이스가 된 셈이죠.
하나 더,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AI 도구는 다른 소프트웨어보다 훨씬 강하게 “같이 쓰는 느낌”을 줍니다. 혼자 설치해서 조용히 쓰고 끝나는 툴이 아니라는 뜻이죠. 누군가는 프롬프트를 공유하고, 누군가는 워크플로를 자랑하고, 또 누군가는 실패담을 밈으로 바꿔 퍼뜨립니다. 사람들은 도구를 쓰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도구를 둘러싼 말투와 문화까지 함께 소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AI 업계에서 밈은 장식이 아닙니다. 사용 경험을 더 쉽게 설명하게 만들고, 같은 도구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 묘한 동질감을 만들어주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결국, AI 업계가 밈과 캐릭터에 ‘빠진’ 게 아닙니다. 밈과 캐릭터가 AI 업계에 ‘빠진’ 것에 가깝습니다. 기술이 복잡할수록 사람들은 이해하기 쉬운 상징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 상징이 반복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 기능보다 이 상징이 주는 뉘앙스를 먼저 기억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가재와 고블린이 단순한 농담을 넘어, AI 생태계를 설명하는 언어가 되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물론 AI 업계라고 아무 말에나 밈이 붙어 커진 건 아닙니다.
우선 고블린은 귀엽기만 한 캐릭터는 아니죠. 좀 장난스럽고, 살짝 엉뚱하고, 어딘가 너드한 느낌이 있습니다. OpenAI도 공식 글에서 이 goblin이란 표현이 특정 시기 모델 출력에서 늘어났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Nerdy” 성격 설정과 연결돼 있었다고 설명했죠. 그러니까 이건 우연히 한두 번 튀어나온 말이 아니라, AI에 의도적으로 “이상하게 재밌는 말투”를 요구하다 함께 퍼진 표현이었던 셈입니다.
가재도 마찬가지입니다. OpenClaw 쪽 커뮤니티에서는 에이전트를 ‘가재’라고 부릅니다. 곧 에이전트를 돌리고 키우는 일을 ‘가재 키우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널리 퍼졌죠. 이 표현이 재밌는 이유는 AI 에이전트를 그냥 설치형 프로그램이 아니라, “계속 돌보고, 학습시키고, 잘 굴러가게 만들어야 하는 존재”처럼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에이전트라는 기술의 성격을, 가재라는 말이 훨씬 쉽게 전달해주는 거죠.
이처럼 두 상징은 기술을 딱딱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뭔가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그냥 "에이전트"라고 하면 솔직히 좀 차갑고 어렵게 들리잖아요. 그런데 여기에 가재나 고블린 같은 표현이 붙으면 느낌이 확 달라집니다. 갑자기 이 기술이 설명서 속 기능이 아니라, 성격이 있고 반응도 제각각인 무언가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 점이 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어려운 기술 설명보다 이미지가 잡히는 말을 더 오래 기억하거든요. 모델 구조나 시스템 아키텍처는 금방 잊어도, “그 고블린 같은 말투”나 “까다로운 가재를 키우는 느낌”은 머리에 남습니다. 그러니까 이 표현들은 그냥 웃긴 별명이 아닙니다. 복잡한 기술을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도록 돕는 일종의 번역 장치에 가깝습니다.
결국 가재와 고블린은 어렵고 낯선 AI를, 개발자들이 자기들 언어로 더 쉽고 재밌게 바꿔 부르며 밈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긴 말이 커뮤니티 안에서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기술보다 그 분위기와 캐릭터가 먼저 기억되기 시작한 거죠.
밈의 진짜 힘은 사람을 구경꾼에서 참여자로 바꾸는 데 있습니다. 기능만 좋은 도구는 한 번 써본 다음 “좋더라”하고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밈이 붙고 커뮤니티가 커지면 달라집니다. 사람들이 그 도구를 설명하고 싶어하며, 써본 경험을 자랑하고 싶어집니다. 나아가 자기 식으로 해석해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새로운 AI 에이전트를 써봤다고 해보겠습니다. 기능만 이야기하면 “자동화가 잘 된다”, “속도가 빠르다” 정도에서 끝납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 가재를 키웠다” 같은 표현이 붙는 순간, 그 경험은 갑자기 남에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됩니다. 훨씬 쉽게 기억되고, 보다 빨리 퍼지며, 더 쉽게 따라 하게 되죠. 복잡한 기술이 짧고 재밌는 한 문장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기술은 원래 입소문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아도 설명이 복잡하면 남에게 전하기 귀찮아집니다. 반면 밈은 그 복잡한 설명을 확 줄여줍니다. 일종의 압축 파일처럼 핵심 감각만 남겨서 전달해주는 거죠.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도 "그게 정확히 뭔진 모르겠는데, 좀 재밌어 보이네?"라며 반응합니다. 이 반응이 좋은 트리거입니다. 기술은 원래라면 먼저 이해한 다음에야 움직이는데, 밈은 이해보다 관심을 먼저 만들어주니까요.
그다음부터는 커뮤니티가 알아서 커집니다. 누군가 밈을 보고 흥미가 생겨 처음 써보고, 누군가는 사용 후기를 올립니다. 또 누군가는 그걸 패러디해 또 다른 글이나 이미지를 만들고, 다른 누군가가 그걸 보고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면서 들어옵니다. 이 흐름이 이어지면 사람들은 더 이상 그 도구를 혼자 쓰지 않습니다. 같이 쓰고, 같이 떠들고, 같이 실험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바로 그때부터 제품은 단순한 기능 묶음이 아니라 커뮤니티의 중심이 됩니다.
모두 밈의 힘입니다. 좋은 밈은 사람을 웃기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사람을 모이게 하고, 계속 머무르게 하고, 자기도 뭔가 얹어보고 싶게 만듭니다. 그래서 밈이 한번 제대로 붙은 제품은 단순히 “좋은 툴”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용자가 자기 경험을 보태는 생태계로 커지게 됩니다.
그러니 밈은 마케팅 문구보다 강할 때가 많습니다. 회사가 일방적으로 던지는 문장이 아니라, 사용자들이 스스로 꺼내 쓰고 퍼뜨리는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재든 고블린이든 이런 표현이 커뮤니티 안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 그건 그냥 유행어가 아니라 생태계를 키우는 연료가 됩니다. 기술은 회사가 만들지만, 문화는 사용자들이 키웁니다. 그리고 AI 업계에서는 밈을 업고 그런 문화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밈이 재밌고, 커뮤니티가 활발해지는 것까지는 많은 분이 쉽게 이해하실 겁니다. 그런데 그 다음, 정말 중요한 단계가 있습니다. 이렇게 자리 잡은 문화와 그로 인한 커뮤니티는 제품의 해자가 되기 시작합니다.
보통 해자라고 하면 기술력, 데이터, 자본, 유통 같은 걸 먼저 떠올리잖아요. 물론 그것들도 여전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AI 시장은 생각보다 기능 격차가 빨리 좁혀집니다. 오늘 대단해 보이던 기능이 몇 달 뒤에는 다른 서비스에도 비슷하게 들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능 차이도 계속 따라잡히고요. 그러다 보니 “기능이 더 좋다”만으로는 오래 버티기 점점 어려워집니다. 이럴 때 강하게 남는 것이 바로 사람들이 그 제품을 둘러싼 문화에 얼마나 익숙해졌는가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도구를 오래 쓴 사람은 단순히 그 기능만 익히지 않습니다. 그 도구를 쓰는 사람들 특유의 말투를 알고, 어디서 정보를 얻어야 하는지도 알고, 커뮤니티 안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도 압니다. 쉽게 말해 제품 하나를 쓴 게 아니라, 그 제품이 속한 세계에 적응한 상태가 되는 거죠. 이 상태까지 오면 다른 대안이 나와도 쉽게 옮기지 않습니다. 기능이 조금 더 좋아 보여도, 이미 익숙한 언어와 분위기, 사람들, 참고할 자료가 있는 쪽이 훨씬 편하거든요.
그래서 너드한 브랜딩이 강한 제품은 생각보다 단단한 팬층을 보유합니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기능 때문에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제품을 둘러싼 분위기까지 함께 쓰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툴을 쓰는 사람들은 이런 농담을 한다”, “이 생태계에서는 이런 표현이 통한다”, “여기서는 이런 방식으로 공유한다” 같은 기억이 쌓이면, 이 시간들은 그냥 사용 경험이 아니라 소속감에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소속감은 생각보다 잘 깨지지 않습니다.
저는 그래서 가재나 고블린 같은 밈을 가볍게만 보지 않습니다. 이런 표현은 웃기려고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끼리는 이걸 이렇게 이해한다”는 공통의 언어를 만들어줍니다. 공통 언어가 생기면 사람은 더 오래 남고, 더 많이 공유하고, 더 쉽게 다른 사람을 데려옵니다. 그렇게 들어온 사람도 다시 그 언어를 배우고 따라 쓰게 되고요. 이 과정이 반복되면 브랜드는 광고비를 많이 쓰지 않아도 점점 더 강한 생태계를 가지게 됩니다.
결국 해자는 꼭 거창한 기술 장벽으로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떠나기 아까운 문화, 익숙해서 벗어나기 어려운 분위기, 들어오면 괜히 계속 머물게 되는 언어도 충분히 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AI 업계에서 너드한 브랜딩이 무서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냥 재밌어서 퍼지는 게 아니라, 퍼질수록 더 강한 락인을 만드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앞으로 AI 제품은 “성능이 좋은 도구”만으로 브랜딩하기 점점 어려워질 겁니다. 물론 모델 성능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속도, 정확도, 가격, 안정성 같은 건 기본이니까요. 그런데 기본이 어느 정도 비슷해지고 나면, 결국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는 건 숫자보다 느낌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서비스는 똑똑하다”보다 “이 생태계는 재밌다”, “여긴 계속 들어가 보고 싶다”, “이 툴 쓰는 사람들 분위기가 좋다” 같은 게 더 오래 남는다는 뜻입니다.
예전 테크 브랜딩은 조금 더 정제된 방향을 추구했습니다. 차갑고, 똑똑하고, 믿을 만하고, 빈틈없어 보이는 이미지가 강했죠. 그런데 AI는 조금 다릅니다. 사용자가 단순히 결과물만 받는 소비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직접 프롬프트를 넣고, 결과를 다듬고, 워크플로를 만들고, 그 경험을 공유하는 참여자에 가깝죠. 그러니 이제는 기업이 완성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용자가 그 안에 들어와 같이 놀고, 실험하고, 자기 식으로 해석할 여지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강력한 AI 브랜드는 더 인간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꼭 친절하고 따뜻할 거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좀 더 캐릭터성이 있고, 말투도 있으며,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놀 수 있는 여백이 있는 브랜드가 될 겁니다. 너무 반듯하고 완벽해 보이는 브랜드보다, 약간의 장난기와 개성을 가진 브랜드가 더 강하게 기억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개발자 생태계에서는 이런 차이가 더 크게 작용할 겁니다. 어차피 개발자들은 기능만 쓰는 사람이 아니라, 도구에 대해 떠들고 비교하고 밈을 만들어 자기 경험을 덧붙이는 사람들이니까요.
앞으로는 문서나 예제, 데모 영상, 커뮤니티 글, 밈까지 전부 합쳐져 하나의 브랜드 경험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예전에는 브랜딩과 제품 경험이 어느 정도 나뉘어 있었다면, AI 업계에서는 둘이 거의 붙어버렸습니다. 제품을 쓰는 과정 자체가 곧 브랜드를 체험하는 과정이 되고, 커뮤니티에서 오가는 농담과 표현까지도 브랜드의 일부가 되는 거죠. 그러니 이제 AI 기업은 단순히 좋은 모델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람들이 계속 머물고 싶어지는 문화까지 함께 설계해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고 봅니다.
결국 가재와 고블린 같은 사례가 보여주는 것도 같은 흐름입니다. 이건 그냥 인터넷 유행어가 아닙니다. AI 업계가 어떤 식으로 사람을 모으고, 묶어두고, 자기 생태계 안으로 끌어들이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앞으로도 AI 시장에서는 성능 경쟁이 이어지겠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싸움이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누가 더 강한 세계관을 만들고, 누가 더 오래 기억할 문화를 갖느냐의 싸움입니다. 저는 그 경쟁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해질 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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