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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언러닝: 이제 그만 좀 배우고, 버리세요

덕파
7분
2시간 전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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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뭔가를 배우는 방식이 예전과는 꽤 달라졌다는 걸 느낍니다. 새로운 기술과 도구가 쉴 새 없이 쏟아지다 보니, 다들 이것저것 빠르게 찍먹하듯 익히고 넘어가는 듯 하죠. AI까지 더해지면서, 일단 써보고 익히는 게 어느 때보다 쉬워졌고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걸 빠르게 주워 담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 쉴 새 없이 배우는데도, 사람들의 불안은 줄기는커녕 더 커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저만해도 ‘이 정도면 잘 따라가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자꾸 뒤처지는 느낌이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게 덜 배워서 생기는 불안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열심히 주워 담은 것들이 너무 빨리 낡아버리는 탓이 크죠. 그러니 더 부지런히 채워봐도, 불안이 좀처럼 가시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는 얼마나 더 채우느냐보다, 무엇을 덜어내느냐가 더 큰 질문이 됐습니다. 오늘은 바로 그 지점, AI 시대에 버리는 법, 언러닝(unlearning)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출처: 작가, 클로드 생성>

 

더 공부하는데, 더 불안한 사람들

배운 내용들이 이전보다 빠르게 낡는다는 건 숫자로도 드러나는데요. 직업 스킬에는 ‘반감기’라는 게 있거든요. 이는 가지고 있는 역량의 시장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합니다. 원래 방사성 물질이 절반으로 붕괴하는 시간을 가리키던 표현인데, 이걸 사람의 역량에 빌려 쓴 거죠.

 

이 반감기가 2010년만 해도 10~15년쯤 됐습니다. 이전에는 한 번 잘 배워두면 십 년 넘게 우려먹을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2025년 기준으로는 기술 스킬의 반감기가 5년 미만으로 짧아진 것으로 전망됩니다(IBM·WEF 추정 정리). 특히 AI 같은 디지털 분야는 2년 안팎까지 떨어진다는 추정도 있고요.

 

이전보다 더 많이 배워도 계속 불안한 건 우리가 느려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쌓는 속도보다 상하는 속도가 빨라진 거죠. 그렇다면 결론이 좀 이상해집니다. 더 부지런히 배우는 것만으로는 이 불안이 풀리지 않는다는 뜻이 되니까요.

 

<출처: 작가, 제미나이 생성>

 

우리는 평생 쌓는 법만 배웠다

그럼 우리는 그동안 뭘 배운 걸까요. 학교, 시험, 입시, 스펙, 자격증. 가만 보면 이전까지는 더 많이 담는 사람이 유리한 구조였습니다. 이곳저곳에서 머릿속 창고를 누가 더 빽빽하게 채웠는지로 줄을 세웠죠. 그래서 우리 몸에 밴 공부의 기본기는 쌓기입니다. 비우는 칸은 애초에 배운 적이 없죠.

 

이게 틀린 전략이었던 건 아닙니다. 지식이 수십 년씩 버티던 시절엔, 많이 배워둔 사람이 곧 유능한 사람이었으니까요.

 

문제는 앞서 본 것처럼, 애써 배운 것들이 점점 더 빨리 낡는다는 데 있죠. 배우는 속도는 그대로인데 낡는 속도가 빨라지니, 어느 순간부터는 배우면 배울수록 이미 낡아버린 것들이 늘어나는 셈입니다. 분명 열심히 배웠는데, 손에 남는 건 자꾸 뒤처진다는 감각뿐이고요. 그래서 요즘의 불안은 충돌의 신호입니다. 세상은 바뀌었는데 우리는 여전히 쌓으면 이긴다는 낡은 방식을 그대로 고집하고 있으니, 머릿속이 자꾸 삐걱댈 수밖에요.

 

 

판이 바뀌었다면 우리도 패를 바꿔야합니다

여기서 잠깐 가위바위보를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상황을 좀 더 이해하려고 드는 예시이니 가볍게 따라와 주세요. 가위는 보자기를 이깁니다. 천을 싹둑 자르니까요. 이건 누구나 아는 규칙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위를 아주 잘 낼 수 있는 사람이죠.

 

그런데 어느 날, 보자기의 재질이 천에서 탄소섬유로 바뀐다면 어떨까요? 이제 아무리 날카로운 가위를 내도 그 보자기는 잘리지 않습니다. 가위가 약해진 게 아니라, 상대의 재질이 바뀐 거죠.

 

이는 요즘 우리가 느끼는 막막함의 원인입니다. 보자기가 탄소섬유로 바뀌었는데 우리는 자꾸 가위를 손보고 있죠. 날마다 가위를 더 날카롭게 갈고 또 갈아, 가위를 강화시키려고 합니다. 그게 우리가 아는 유일한 해법이니까요. 하지만 재질이 바뀐 보자기 앞에서, 날카로운 가위는 더 애처로운 헛수고일 뿐입니다.

 

<출처: 작가, 클로드 생성>

 

이제는 의심을 한번 해볼만 하죠. 우리가 교과서에서, 강의에서, 성공담에서 주워 담는 가르침의 상당수는 이미 천 시절의 가위질 요령일지도 모른다고요. 그러니 지금 필요한 건 가위를 더 잘 가는 일이 아닙니다.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는 걸 먼저 알아채는 일, 그리고 내가 쥔 패 자체를 바꾸는 일이죠. 그런데 패를 바꾸려면 손에 꽉 쥔 가위부터 일단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이 내려놓는 능력을 우리는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언러닝

흔히 학습이라고 하면 새 걸 머리에 넣는 한 방향만 떠올립니다. 그런데 사실 그 옆에는 낡은 걸 덜어내는 반대 방향이 나란히 있어야 하죠. 들이는 칸과 비우는 칸이 한 쌍인 거예요. 생각해보면 우리는 배우는 법을 정말 오래 훈련받았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길게는 16년이 넘죠. 그런데 그 긴 시간 동안 낡은 걸 버리는 법을 가르쳐준 수업은 없었습니다. 노트 필기하는 법은 배웠어도, 노트를 버리는 법은 아무도 안 가르쳐줬죠.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가 배워야할 것은 언러닝(unlearning)입니다.

언러닝, 요즘 나온 말 같지만 사실 무려 50여 년 전에 나온 통찰입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1970년 저서 『미래쇼크(Future Shock)』 18장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By instructing students how to learn, unlearn and relearn, a powerful new dimension can be added to education.”

학생들에게 배우고 버리고 다시 배우는 법, 런·언런·리런을 가르치면 교육에 강력한 새 차원을 더할 수 있다.

 

토플러가 반세기 전에 남긴 이 말이 요즘 다시 회자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스킬 반감기가 급격하게 짧아지면서, 언러닝은 지금 당장의 문제가 됐기 때문입니다.

 

<출처: 작가, 클로드 생성>

 

버리는 법: 언러닝 → 리러닝 → 뉴러닝

그럼 버린다는 게 구체적으로 뭘 하라는 걸까요. 막연히 “비워라” 하면 감이 잘 안오니까 세 칸으로 쪼개보겠습니다. 언러닝, 리러닝, 뉴러닝. 버리고, 다시 보고, 새로 엮는 순서입니다.

 

첫 단계는 언러닝, 낡은 걸 버리는 겁니다. 여기서 버린다는 건 아는 걸 지우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원래 이런 거야' 하고 당연하게 여기던 생각의 틀에서 한 발 빠져나오는 거죠. 사실 이게 제일 어렵습니다. 틀린 지식이야 틀렸다고 인정하면 그만인데, 당연해 보이는 전제는 의심할 생각조차 들지 않죠. 이를테면 '많이 아는 사람이 유능하다'는 오래된 믿음, 그 당연하던 전제부터 손에서 놓아보는 거예요.

 

두 번째는 리러닝, 본질을 다시 보는 겁니다. 틀에서 한 발 빠져나와 빈자리가 생기면, 그제야 대상을 새로 정의할 수 있어요. '유능함'을 다시 본다면? '얼마나 아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골라내고 어떻게 엮느냐'로요. 같은 단어여도 의미가 달라지죠. 통념을 내려놓아야 이렇게 새 정의가 들어설 틈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뉴러닝, 새로 만들어내는 겁니다. 다시 본 정의를 이 시대가 준 도구 위에서 실제 결과로 옮기는 거예요. 아는 것이야 이제 AI가 얼마든지 채워주니, 나는 거기에 내 판단과 안목을 실으면 되죠. 그러면 예전 같으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을 만들어낼 수 있고요. 결국 핵심은 도구가 아니라, 거기에 무엇을 실을지 아는 사람입니다.

 

<출처: 작가, 클로드 생성>

 

'무엇을 실을지 아는 사람'이란 건, 결국 판단과 취향, 맥락으로 이어집니다. 일의 미래를 짚는 많은 글들이, 입을 모아 지식이 흔해질수록 오히려 취향의 값이 오른다고 말합니다.GitHub도 공식 블로그에서 이런 말을 남겼죠 "병목은 결국 판단이고, 그래도 괜찮다. (…) 당신이 지고 다니는 맥락이야말로 리뷰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고, 그건 자동화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런 것들이 사람 몫으로 남는 이유는, AI가 아직 서툴러서가 아닙니다. AI가 더 똑똑해져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 AI는 '가장 그럴듯한 답'을 내놓는 데는 뛰어나지만, 그중 무엇이 좋은지, 무엇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지는 정답이 없는 물음이기 때문이죠. 그건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원하는가'를 정하는 일이라, 애초에 남에게 맡길 수도 없죠.

 

그렇기 때문에 버린다고 끝이 아닙니다. 버리고, 다시 보고, 새로 만드는 데까지가 한 묶음이죠. 그 끝에 손에 쥐는 건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무엇을 고르고 무엇을 버릴지 아는 눈입니다.

 

<출처: 작가, 제미나이 생성>

 

오늘 당장 버릴 한 가지

여기까지 왔다면 처음의 그 불안이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더 쌓는다고 풀릴 일이 아니라면, 오늘 더 쌓지 못한 나를 채찍질할 필요는 없어졌으니까요. 대신 비우고, 다시 채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 결론이 또 하나의 거창한 결심으로 번지면 곤란합니다. “이제부터 다 갈아엎겠다”는 다짐만큼 작심삼일에 어울리는 것도 없으니까요.

 

그러니 오늘은 딱 하나만 비워보면 어떨까요. 머릿속 어딘가, 한때는 분명히 옳았지만 지금도 정말 맞는지 슬쩍 의심스러운 통념이 하나쯤 있을 겁니다. “이 일은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당연히 받아들이던 것이요. 책상에 쌓인 메모 중에 ‘이건 작년 얘기였지’ 싶은 한 장을 쓱 빼보세요. 언러닝의 첫 칸은 그만큼 작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장은 그 한 장을 뺀 자리가 어디로 이어질지 안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2005년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앞을 보며 점을 이을 수는 없다. 점은 뒤돌아볼 때만 이어진다.” 오늘 비운 한 칸이 어떤 그림이 될지는, 한참 지나 돌아볼 때라야 보일 겁니다.

 

버리는 기술은 한 번의 결심이 아니라, 천천히 몸에 드는 습관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떤 통념 하나를 비워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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