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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AI가 다 만드는데, 왜 자꾸 기획을 말할까?

네오1024
8분
3시간 전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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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코딩 시대, 가짜 속도에 현혹되지 않고 기획의 주도권을 지키는 법

 

며칠 전 한 후배에게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선배님, 주말에 AI로 앱 하나 만들었는데 가능성이 있을지 한번 봐주세요.” 반나절 만에 만든 앱이라더군요. 물론 반나절 만에 만들었으니 오류도 있고, 모든 기능이 깔끔하게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후배가 어떤 서비스를 만들고자 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불과 2~3년 전엔 기획서를 쓰고 디자인 시안을 잡고, 개발자 통해 만들기까지 최소 몇 주, 길게는 몇 달이 걸렸을 일입니다. 그게 토요일 오후 한나절로 줄었죠.

 

요즘은 AI와 몇 시간 대화하면 그럴싸한 서비스 하나가 뚝딱 나옵니다. 아이디어를 실제 화면으로 옮기는 데 드는 시간과 돈이 거의 공짜에 가까워진 셈입니다. 이렇게 만드는 비용이 확 낮아지자, 시장의 룰도 함께 바뀌고 있습니다. 꼼꼼한 사전 기획보다는 얼마나 빨리 만들어 시장에 던지고 피드백을 받느냐는 ‘속도’가 비즈니스의 생존을 결정하게 됐죠. 책 'AI 시대의 설계자들'의 내용을 빌리면, AI시대의 ‘속도의 경제학’이 시작된 것입니다.

 

속도의 경제학은 대량 생산을 통해 비용을 낮추는 '규모의 경제'를 넘어, 시장 변화를 빠르게 읽고 실행하여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전략을 뜻합니다. 여기서 비용을 낮추는 역할은 AI가 확실하게 해주고 있는 셈입니다.  숫자로 보면 더 와닿습니다. Enlight Lab에 따르면, 작은 서비스의 MVP(프로토타입) 개발 비용이 5만 달러에서 5천 달러 수준으로 내려왔고, 앤트로픽(Anthropic)이 정리한 자료를 봐도, 기획부터 배포까지 몇 주가 걸리던 개발 사이클이 이제 몇 시간 단위로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만드는 비용이 거의 공짜가 된 지금,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요? 단순한 속도 경쟁을 넘어, 진짜 쓸모 있는 가치를 만드는 방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왜 우리는 만들기 전부터 기획 회의에 진을 뺐을까?

AI가 나오기 전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한번 실험해 보고 싶어도, 동작하는 프로토타입을 구경하는 것 자체가 일이었습니다. 기획서를 다듬고, 디자인 시안 피드백을 주고받고, 개발 스프린트에 일정을 태워 실제로 굴러가는 화면을 보기까지는 적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달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죠. 사실 담당자들 입장에서는 만들어보고 버려질 수도 있는 프로젝트에 선뜻 힘을 쏟기가 어려운 심리적 저항도 컸습니다. 결국 이렇게 여러 단계를 거쳐, 어렵사리 만든 MVP를 시장에 냈다가 반응이 없으면, 그동안 쏟아부은 여러 부서의 시간과 노력이 통째로 매몰 비용이 되어 사라지곤 했죠.

 

그래서 사람들은 만들기 전에 판단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시장 조사를 하고, 경쟁사를 분석하고, 내부 검토를 거치고, PPT를 만들어 회의실에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임원 보고를 통해 의사결정을 받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멀쩡한 아이디어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회의실에서 사장되는 일이 흔했죠. 비합리적이어서가 아닙니다. 그냥 만들어보는 비용이 더 비쌌으니까, 미리 따져보는 게 그 이전엔 더 합리적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간과하는 맹점이 있습니다. 바로 만들기 전에 검토하는 시간 역시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이디어를 검증하겠다며 시장 조사를 하고, 기획서를 만들고, 수정하고를 반복하는 동안, 수많은 실무자와 의사결정권자의 인건비와 시간이 소리 없이 녹아내립니다. 결국 진짜 제품은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엄청난 기획 리소스가 매몰되고 마는 셈입니다.

 

시도하는 비용이 너무 비싸다 보니 시도 대신 사전 판단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는 만들어보지도 못한 채 기획 단계에서 이미 에너지가 소진되는 모순에 갇혀 있었죠. 실패를 피하고자 돌다리만 두드리다가, 정작 다리를 건너기도 전에 지쳐버리는 상황이 반복된 겁니다. 그리고 이 전제가 지금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목업 하나가 PPT 백 장보다 훨씬 강력하다

제가 앞서 말한 후배가 만든 앱이 딱 그 증거입니다. 대화 반나절이면 MVP가 나옵니다. 매몰 비용이 확 줄어들었다는 건, 게임의 룰 자체가 바뀌었다는 뜻인데요.

 

비용이 낮아지면 우리가 일하는 방식과 논리도 통째로 바뀝니다. 예전에는 “이 아이디어가 성공할 확률은 몇 %일까?”를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분석 장표를 썼습니다. 이제는 “일단 만들어보고, 아니면 다른 걸 시도해보자”가 정답입니다. 머리로 상상하고 시뮬레이션하는 비용보다, 빠르게 만들어서 눈으로 보고 체감해보는 것이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죠.

 

여기서 핵심은 ‘실패를 마음껏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한 번 실패하면 한 달짜리 부서 리소스가 통째로 날아갔지만, 이제는 아침에 뚝딱 만든 화면이 반응이 없으면 점심때 갈아엎고, 오후에 새로운 버전을 시도하면 됩니다. 매몰되는 비용이 극단적으로 줄었기 때문에 그만큼 부담도 줄어들었습니다. 이렇게 실패의 빈도가 늘어날수록, 자연스럽게 보다 유용하고 완성도 높은 결과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배우는 속도(학습의 밀도)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고, 이것이 속도의 경제학이 가져다준 진짜 혁신이죠.

 

<출처: 작가>

 

이 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자리가 바로 기획입니다. 예전 흐름은 ‘아이디어 → PPT → 개발팀 → 최소 몇 주 뒤 결과물’이었습니다. 지금은 ‘아이디어 → AI와 대화 → 하루 만에 동작하는 화면’입니다. 말로 백 장을 설명하는 기획서보다, 눈앞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화면 하나가 가장 완벽한 기획 명세서가 된 겁니다.

 

여기엔 또 하나의 이점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소통 비용의 극적인 감소입니다. 도형과 텍스트로 가득한 PPT 화면 기획서만 보고 회의를 하면, 백 명이면 백 명 머릿속에 다 다른 그림을 그립니다. 당연히 커뮤니케이션 미스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마우스로 클릭하면 다음 페이지가 열리고 눈으로 화면을 직접 볼 수 있고, 눌러볼 수 있는 실제 MVP(프로토타입) 앞에 모이면 오해의 여지가 사라집니다.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이, “자, 이거 클릭해서 살펴봐 주세요” 한마디면 사람들의 각각의 상상이 하나로 정리되기 시작합니다.

 

저 역시 비슷한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아이디어를 긴 문서로 설명하는 대신, 바이브코딩으로 하루 만에 동작하는 MVP(프로토타입)을 만들어 회의에 들어갔습니다. 마이크 버튼을 눌러 음성 인식을 직접 테스트해 보거나, 클릭 한 번으로 분석 결과를 띄워주는 등 실제로 구동시켜 볼 수 있는 가벼운 프로토타입이었습니다. 

 

회의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설명만 듣던 사람들이 직접 동작시켜 보고 체험해 보는 참여자로 바뀌었습니다. 구체적인 화면이 눈앞에 있으니 옥신각신할 필요 없이 본질적인 의견이 오갔죠. 흥미롭게도 어떤 프로토타입은 보여주자마자 그 자리에서 즉시 거절당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한 방향이 전혀 아니네요.”라는 솔직한 피드백을 단 하루 만에 얻은 겁니다.

 

그럼에도 전혀 아쉽거나 후회되지 않았습니다. 만드는 데 쏟은 시간이 고작 하루였기에 심리적 타격도 크게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 방향은 확실히 정답이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즉시 파악하고, 다음 날 바로 보완책을 세우는 값진 소득을 얻었습니다. 시도하는 비용이 극도로 낮아지면서, 기민한 실패와 피드백의 수용이 다음 성공을 위한 가장 안전한 디딤돌이 된 거죠.

 

정리해 보면, AI 시대의 속도의 경제학은 단순히 개발 시간을 단축한 것을 넘어, 기획 단계에서부터 지지부진하게 흐르던 의사결정의 병목을 효과적으로 해결했습니다. 상상 속 아이디어를 반나절 만에 동작하는 화면으로 증명하고, 회의실의 상상을 하나로 싱크를 맞추고,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초고속으로 검증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그렇다면 반나절 만에 동작하는 프로토타입을 척척 찍어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모든 고민이 끝난 걸까요? 진짜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의도의 방향성’

물론 만들기가 쉬워졌다고 해서 성공의 문턱까지 낮아진 것은 아닙니다. 손가락만 움직이면 그럴듯한 화면이 뚝딱 나오니, 뚜렷한 목적 없이 막연한 아이디어만 일단 쏟아내고 보는 시도도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든 MVP는 아무리 빠르게 만들어도 쓸모가 없습니다. 검증하려는 명확한 가설이 없다 보니, 실패를 겪어도 무엇을 고쳐야 할지 배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출처: 작가, ChatGPT로 생성>

 

이렇게 생각 없이 AI를 통해 속도만 올릴 때의 문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쓸모없는 결과물이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명확한 의도 없이 AI에 의존해 뚝딱 만들어낸 화면은 겉보기엔 그럴듯해 보여도, 정작 사용자의 진짜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무용지물이 되기 쉽습니다. AI는 사용자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요청하는 사람의 지시가 모호할수록 그 빈틈을 엉뚱한 기능이나 작위적인 논리로 채워 넣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정교한 디렉션과 꼼꼼한 사후 검증, 그리고 최종적인 사람의 판단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가치 있는 제품이 만들어집니다. 그렇다면 AI를 활용해 진짜 쓸모 있는 제품을 잘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무에서 즉시 적용해 볼 수 있는 세 가지 규칙을 정리해 봤습니다.

 

  • 첫째, 한 번에 완벽한 결과물을 기대하지 마세요.
    처음부터 수십 장짜리 기획서를 AI에 집어넣어 완성본을 한 번에 뽑아내려 하면 십중팔구 엉뚱한 결과가 나옵니다. 핵심 기능 한 페이지, 또는 가장 중요한 핵심 모듈 하나씩 점진적으로 고도화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정확합니다.
  • 둘째, 검증하려는 문제를 최대한 작고 뾰족하게 정의하세요.
    해결하려는 범위를 넓게 잡을수록 AI의 기획과 설계 방향도 흩어지게 됩니다. “마이크 버튼을 눌러 음성 인식을 시도할 때, 오인식 없이 자연스럽게 정보가 입력되는가?”처럼, 단 하나의 명확한 가설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시도의 비용을 극단적으로 낮추는 방법입니다.
  • 셋째, AI의 결과물을 반드시 주도적으로 검증하고 제어하세요.
    AI는 사람의 지시가 모호할수록 그 빈틈을 엉뚱한 기능이나 작위적인 논리로 채워 넣는 특성이 있습니다. AI가 뱉어낸 화면 설계나 기능이 원래 풀려고 했던 비즈니스 핵심 문제와 진정으로 맞닿아 있는지 날카롭게 검증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컴퓨터가 알아듣는 개발 언어 문법(Syntax) 즉 프로그래밍을 잘 짜는 사람이 실력자였습니다. 하지만 코드를 AI가 짜주는 지금, 진짜 실력은 ‘무엇을 왜 만드는가’라는 의도(Intent)를 얼마나 또렷하게 정의할 수 있느냐로 옮겨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AI에 무언가를 던지기 전에 다섯 가지를 점검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1. 무엇을 만드는가: 목표를 딱 한 줄로 적어본다
  2.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사용자가 머릿속에 그려지는가
  3. 왜 만드는가: 이게 풀리면 그 사람에게 무엇이 달라지나
  4. 무엇으로 성공을 판단하나: 실패와 성공을 가를 숫자나 신호
  5.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경계와 제외. 이걸 안 정하면 AI 폭주의 시작이 된다


이 다섯 개가 흐릿한 상태로 AI에 던지면, 빠르지만 무의미한 결과물이 나옵니다. 반대로 이게 또렷하면, 같은 AI로 같은 시간 안에 훨씬 정교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더 의도를 정리한 후 실제 MVP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주의할 사항은 무엇일까요? 제품을 만드는 사이에 이 의도가 너무나 쉽게 흐려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AI가 그럴듯한 화면을 단숨에 뽑아내면, 사람은 “오, 이거 꽤 멋진데?” 하고 넋을 잃기 쉽습니다. 정작 원래 해결하려던 본질적인 문제는 뒤로 밀려나고, AI가 뱉어낸 매력적인 화면에 끌려다니는 주객전도가 발생하죠.

 

이 함정에서 벗어나 의도를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주 단순하지만 강력한 장치가 필요합니다. 바로 작업 화면 한구석에 내가 풀려는 단 하나의 문제를 항상 메모로 띄워놓는 것입니다.

 

<출처: Unsplash / Patrick Perkins>

 

AI와 실시간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결과물을 다듬다 보면, 생각의 곁가지가 계속해서 뻗어 나가며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 그때마다 화면 옆에 적어둔 원래의 목적을 흘끗 쳐다보고 방향을 다잡아야 합니다. “이 멋진 기능이 정말 우리가 처음에 정의했던 사용자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가?”라고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것, 이 단순한 버릇 하나가 AI에게 휩쓸리지 않고 주도권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마치며

결국 AI 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은 단순히 MVP를 더 빨리 만들어내는 속도 경쟁을 넘어, 그 빠른 시도 속에 담긴 ‘의도의 방향성’을 끝까지 잃지 않는 데 있습니다. 방향을 잃은 MVP는 쓸모없는 결과물 더미가 될 뿐이지만, 또렷한 의도와 가설이 실린 시도는 비록 실패하더라도 다음 단계를 향한 가장 귀중한 단서(학습)기 때문이죠.

 

AI는 앞으로도 더 빠르고 강력하게 진화할 겁니다. 그 빠른 시도들을 조율하고, 진짜 쓸모 있는 결과물로 이끄는 건 사람의 의도에서 나올 거고요. 속도에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고 기획의 중심을 지키는 힘이야말로, AI 시대에 우리가 쥘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무기 아닐까요?


<참고>

  1. 책 《AI 시대의 설계자들》 
  2. Anthropic, “2026 Agentic Coding Trends Report”
  3. EnlightLab, “Vibe Coding for MVP Development: The 2026 Expert 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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