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이용하면 사원들의 업무 효율이 크게 올라갑니다." 영업사원들이 고객사에 흔히 말하는 세일즈 멘트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기업 담당자들은 "저희는 아직 그런 게 필요한 단계가 아니에요.", "일단 급한 것부터 처리하고, AI는 좀 더 검토해 봐야겠습니다."라며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B2B AI·SaaS 제품을 판매하는 사람이라면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을 겁니다. 기업에선 분명 AI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작 계약서 앞에서는 "나중에"가 됩니다. 왜 그럴까요? 이에 일본 시장의 데이터가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줍니다. 도쿄상공리서치(TSR)가 2025년 8월 6,645개사를 대상으로 한 ‘생성 AI에 관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생성형 AI를 조직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은 대기업이 43.3%인 반면, 중소기업은 23.4%에 그쳤습니다. 약 20%포인트, 1.9배의 격차입니다. 이 수치는 B2B AI 솔루션 기업들이 중소기업 시장에서 마주하는 진입 장벽과 저항감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저항의 구조를 3가지로 분석하고, 일본 시장에서 실제로 이 장벽을 넘은 AI SaaS 기업 “LegalOn Technologies”의 사례를 통해, 고객을 설득하는 제품 설계 전략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글에서 중소기업은 IT업계가 아닌 일반적인 기업을 지칭한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미리 요점만 콕 집어보면?
"AI? 대기업이나 쓰는 거 아니에요?"
이 반응의 본질은 예산 문제가 아닙니다. 라그자스가 2026년 4월, 일본 전국 비즈니스 퍼슨 3,000명을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종업원 1~300명)의 59.0%가 "AI 도입 예정이 없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습니다. 절반이 훌쩍 넘는 비율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필요를 못 느껴서' 멈춰 있는 겁니다.


흥미로운 건 미도입 기업의 우려와 도입 기업의 현실적 과제가 닮아있다는 점입니다. 데이코쿠데이터뱅크(TDB)가 일본의 1만 312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생성 AI에 관한 기업 동향조사」(2026년 3월 실시)에 따르면, 이미 AI를 활용 중인 기업들은 과제로 "전문 인재·노하우 부족"(55.13%), "장단점 평가가 어려움"(43.8%)을 가장 많이 꼽았습니다.
먼저 도입한 기업들조차 인력 부족과 효과 측정에 애를 먹고 있다면, 인프라가 취약한 미도입 중소기업이 지레 겁을 먹고 돌아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이 데이터와 현장의 장벽을 종합해 보면, 중소기업이 AI 도입을 주저하는 진짜 이유는 크게 세 가지 구조로 요약됩니다.
첫째, 필요성 인식의 부재입니다. "지금 업무가 돌아가고 있는데 왜 바꿔야 하나"라는 질문에 AI 판매자가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합니다. 대기업은 경쟁사 도입 현황, 업계 트렌드, 이사회 보고 등 외부 압력이 도입 결정을 밀어줍니다. 중소기업은 그런 압력이 약합니다. "남들이 한다"는 논리가 통하지 않습니다.
둘째, 현장 적응에 대한 불안입니다. AI를 도입하면 기존 업무 방식이 바뀝니다. 직원들이 새 시스템을 배워야 합니다. "배우는 시간 동안 업무가 밀리면 어떡하지?" "잘못 쓰면 오히려 문제가 생기는 거 아냐?" 이런 불안은 ROI 계산표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중소기업일수록 한 사람이 여러 업무를 겸하기 때문에, 업무 방식 변화의 영향 범위가 더 넓습니다.
셋째, 실패 리스크에 대한 민감도입니다. 대기업은 AI 프로젝트가 실패해도 다른 프로젝트로 만회할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은 다릅니다. 한 번 실패하면 "그것 봐라, AI는 우리한테 안 맞는다"가 됩니다. 의사결정권자 입장에서는 "안 해서 잃는 것"보다 "해서 잃는 것"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데이코쿠데이터뱅크(TDB)의 「생성 AI에 관한 기업 동향조사」(2026년 3월 실시, 5월 14일 발표)에서도 흥미로운 데이터가 나옵니다. 생성형 AI를 활용 중인 기업 중 "대단히 효과가 있다"고 답한 비율은 소규모 기업이 29.7%로 대기업(20.8%)보다 높았습니다. 즉, 실제로 도입한 중소기업은 AI의 효과를 더 크게 체감했다는 거죠.

여기서 핵심은 앞의 세 가지가 모두 '도입 전'에 작동하는 장벽이라는 점입니다. 도입한 기업일수록 효과를 크게 체감한다는 사실은 제품의 효용은 이미 증명이 됐고, 막혀 있는 것은 '쓰기 시작하는 순간'까지의 거리임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B2B AI 솔루션 판매자가 "기능이 좋다"를 아무리 강조해도 중소기업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효과가 의심스러워서가 아니라, 그 효과를 확인하기 전에 넘어야 할 장벽이 높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것은 기술 설명이 아니라, 필요성을 납득시키고(첫째), 변화의 부담을 줄이고(둘째), 실패의 두려움을 덜어주는(셋째) 진입 설계입니다.
저 역시 일본에서 일하면서, B2B 영업 현장에서 "AI 기능이 경쟁력을 만듭니다"라는 메시지가 중소기업 앞에서 번번이 막히는 경험을 했고, 그 원인이 바로 이 3가지 구조임을 깨달았습니다.
LegalOn Technologies(리걸온 테크놀로지스)는 2017년 도쿄에서 두 명의 기업 변호사가 창업한 일본발(發) 법률 AI 기업인데요. 현재는 도쿄와 샌프란시스코에 거점을 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2019년 4월 일본 최초의 AI 계약 검토 서비스 'LegalForce'를 출시하며 시작해, 2026년 3월 말 기준 전 세계에서 8,500개 이상의 조직이 유료로 사용하고 있죠. 일본 상장사의 30% 이상이 고객입니다. 2025년 10월에는 ARR(연간반복매출) 100억엔을 돌파했는데요. 제품 출시 6년 반 만의 달성이자, 일본에서 창업한 AI 기업으로서는 최초의 사례입니다.
다만 짚어둘 점이 있습니다. LegalOn이 정량적으로 검증한 침투처는 상장사(대기업)입니다. 규모별 고객사수 내역은 공개하지 않았으며, "일본 국내 중소기업 N개사 도입" 같은 수치도 따로 발표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사례를 중소기업 공략 관점에서 볼 가치가 있는 이유는, 진입 방식 자체가 규모의 장벽을 낮추도록 설계됐기 때문입니다.
LegalOn은 자사 서비스가 "변호사 한 명이 법무를 전담하는 1인 법무·소규모 법무"부터 "중규모·대규모 법무팀"까지 폭넓게 쓰인다고 밝혔고, 실제 한 중소기업 경영자는 "계약 리스크를 생각하면 매우 저렴해 곧바로 도입을 결정했다"고 평가했습니다(LegalOn 영업 파트너 매칭 코멘트).
즉, 이 글에서 LegalOn을 보는 관점은 "중소기업을 다 점령했다"가 아니라, 대기업에서 쌓은 신뢰를 어떻게 작은 조직까지 내려보냈는가입니다. 그 진입 설계를 세 가지로 분석합니다.
LegalOn은 처음부터 "AI로 법무 전체를 혁신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계약서 검토 한 가지에 집중했습니다. 그것도 "계약서를 AI가 작성합니다"가 아니라 "심사·수정 시간을 줄여드립니다"였습니다.
왜 이 선택이 중요할까요? 계약서 검토는 법무팀의 반복 업무 중 가장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입니다. 동시에 "틀리면 큰일 나는" 고위험 업무이기도 합니다. LegalOn은 이 업무에서 AI가 검토를 하고, 최종 판단은 사람이 하는 구조를 설계했습니다. AI가 위험 조항을 찾아주고, 변호사가 승인하는 방식입니다.
이 설계가 중소기업의 불안을 낮췄습니다. "AI가 실수하면 어떡하지?"라는 질문에 "최종 판단은 당신이 합니다"라고 답할 수 있었습니다. AI를 "대체자"가 아닌 "보조자"로 포지셔닝한 것입니다.
LegalOn의 진입 방식은 거창한 "전사 혁신"이 아니라 단일 업무에서 작게 시작하는 데 있습니다. 법무팀의 계약서 검토라는 한 가지 업무에서 먼저 효과를 증명하고, 그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확장하는 방식입니다.
LegalOn의 도입 흐름도 같은 맥락입니다. 무료 온라인 상담과 실제 제품 데모로 시작해, 영업 담당이 고객의 업무를 듣고 맞춤 플랜을 제안하며, 계약 후에는 커스터머 석세스 담당이 운용 정착까지 지원하는 구조입니다(LegalForce 공식 도입 흐름). 가능성이 아니라 "실제로 쓸 수 있는가"를 먼저 확인시키는 방식입니다. 그 결과 LegalForce 사용자 223사를 대상으로 한 자체 조사(2024년 3월)에서 심사·수정에 걸리던 시간이 평균 40%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고, 도입 사례에 따라서는 검토 시간이 절반으로 단축된 곳도 있었습니다.
작은 조직 입장에서 이 접근법은 리스크를 낮춥니다. "전사 도입"은 실패하면 큰일이지만, 한 업무에서 시작하는 작은 범위의 트라이얼은 실패해도 손실이 제한적입니다. 그리고 트라이얼에서 효과를 체감하면, 내부 설득이 쉬워집니다. "우리 팀이 써봤는데 진짜 좋더라"는 말이 어떤 영업 자료보다 강력합니다.
LegalOn은 계약서 검토에서 시작해 점진적으로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계약서 검토(LegalForce) → 전자계약·계약 관리 → 법무 상담 관리(Matter Management) → 기업 거버넌스(2025년 Fides 인수) 순서입니다.
이 확장 경로의 핵심은 기존 고객의 인접 업무라는 점입니다. 계약서 검토를 쓰던 고객이 "계약 관리도 한 곳에서 하면 편하겠다"고 느끼면 자연스럽게 확장됩니다. LegalOn은 이 흐름을 "Legal Operations Platform"이라는 비전으로 묶었습니다.
왜 이 순서가 작은 조직까지 확장하는 데 유효했을까요? 첫째, 확장 비용이 최소화됩니다. 이미 계약서 검토로 신뢰를 쌓은 고객에게 인접 업무를 제안하면, 별도의 영업 비용 없이 재계약(업셀)이 일어납니다. 둘째, 자원이 부족한 조직일수록 "새로운 공급자"를 찾기보다 "이미 쓰는 공급자의 다음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LegalOn은 이 심리를 정확히 공략했습니다.
2025년 7월 시리즈 E에서 5,000만 달러를 추가 조달하면서 발표한 방향은 "AI 에이전트"입니다. 단순 검토를 넘어 계약 업무의 자동 분류(Triage Agent), 초안 작성, 승인 워크플로우까지 AI가 처리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이 확장도 "계약서 검토"라는 핵심 업무에서의 신뢰가 기반입니다.
LegalOn의 사례에서 B2B AI 판매자가 가져갈 수 있는 전략적 시사점을 정리합니다.
중소기업 고객에게 "AI 시대에 뒤쳐지면 안 됩니다"는 설득력이 약합니다. 대신 "이 업무에서 주 5시간이 2시간으로 줄어듭니다"가 통합니다. 추상적인 미래보다 구체적인 현재의 개선을 보여줘야 합니다.
LegalOn이 "심사·수정 시간 평균 40% 단축"이라는 숫자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입니다. 이 숫자는 고객이 자신의 업무에 대입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팀이 계약서 검토에 쓰는 시간이 주 10시간이면, 6시간으로 줄어든다는 거네."
"전사 도입 시 할인해 드립니다"는 대기업 전략입니다. 중소기업에게는 "한 팀에서 한 달만 써보세요"가 더 효과적입니다.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이 확장의 시작입니다.
미니 PoC의 핵심은 성공 기준을 미리 정의하는 것입니다. "효과가 있으면 도입합니다"가 아니라 "검토 시간이 50% 이상 줄면 도입합니다"처럼 구체적인 기준을 함께 설정합니다. 기준이 명확하면 고객 내부에서 의사결정이 빨라집니다.
AI 도입이 실패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기존 업무 방식과 충돌"입니다. 아무리 좋은 AI라도 현장 직원이 쓰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LegalOn이 "AI가 검토하고, 사람이 최종 판단"이라는 구조를 선택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기존 업무 흐름(변호사가 계약서를 검토한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검토 속도만 높입니다. 직원 입장에서는 "새로운 방식"이 아니라 "빠른 도구"로 느껴집니다.
B2B AI 판매자는 제품 시연을 할 때 "이 기능이 있습니다"가 아니라 "당신의 업무가 이렇게 바뀝니다"를 보여줘야 합니다. 고객의 현재 업무 흐름을 먼저 파악하고, 그 흐름 안에서 AI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설계해야 합니다.
중소기업 고객은 AI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삽니다. "이 AI가 좋습니다"보다 "당신의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합니다"가 더 설득력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B2B AI 판매자의 역할은 "기술 판매자"에서 "도입 설계자(Onboarding Architect)"로 확장됩니다. 도입 설계자는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성공하는 경로를 설계합니다. 어떤 업무에서 시작할지, 누가 먼저 쓸지, 성공을 어떻게 측정할지, 확장은 어떤 순서로 할지 말이죠.
LegalOn의 영업 조직이 단순 세일즈가 아니라 "Customer Success"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계약을 따내는 것보다 고객이 실제로 효과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효과를 본 고객이 다음 고객을 데려옵니다.
고객에게 제품 기능을 나열하기 전, 아래 체크리스트를 통해 고객의 성공 경로를 먼저 설계해 보세요.
마지막으로 위 체크리스트는 단순히 한 번 읽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 첫 미팅을 잡을 때마다 책상 위에 올려두고 확인하는 '영업의 나침반'으로 활용해 보시길 바랍니다. 기술은 변해도, 고객의 성공을 돕겠다는 '도입 설계자'의 마음가짐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바로 한 명의 고객에게, 기능 대신 '성공 경로'를 제안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일본 중소기업의 AI 도입률 23.4%는 "시장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직 도입하지 않은 약 76%의 시장이 그대로 남아 있고, 접근 방식의 전환에 따라 그 점유율을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는 기회의 장이라는 의미입니다.
저 역시 비슷한 고민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스마트폰 도입 초기, 모바일 앱 솔루션을 제안하던 시절이었는데요. 엔지니어 중심 조직이었던 저희는 기술의 우수성만을 내세우며 "이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설명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냉담했습니다. 도입률은 저조했고, 어렵게 계약한 고객들조차 제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만족도가 낮았습니다.
변화는 관점을 완전히 바꾼 뒤에야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가' 대신, 고객의 업무 프로세스를 옆에서 지켜보고 그들의 고민을 뜯어보았습니다. 고객의 실제 업무 흐름에 맞춰 앱 구성을 재설계하고, 언제든 손을 내밀 수 있는 파트너십을 구축하자 상황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기술적 우수함을 증명하는 것은 개발자의 몫이지만, 그 기술이 고객의 성공으로 이어지게끔 경로를 설계하는 것은 우리의 몫 아닐까요?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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