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X/UI 디자이너로 일하다 보면 한 번쯤은 이런 순간이 옵니다. “이 구조는 사용자가 불편해할 것 같습니다”라고 이야기했는데, 곧바로 “근거 있나요?”라는 질문이 돌아오는 순간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막상 근거를 보여주고 싶어도 정작 팀 안에는 그 근거를 만들 데이터가 없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GA는 설치만 되어 있고 이벤트 설계는 안 되어 있거나, Amplitude는 도입 논의만 몇 달째 하고 있거나, 사용자 인터뷰는 일정과 리소스 문제로 계속 밀리기 일쑤입니다. 심지어 초기 스타트업에서는 로그조차 제대로 남지 않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애초에 데이터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회사가 오히려 더 많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상황에서도 제품은 계속 만들어집니다. 누군가는 버튼 위치를 정해야 하고, 어떤 화면을 없앨지 결정해야 하고, 사용자가 왜 여기서 멈추는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특히 주니어 디자이너들이 가장 많이 흔들립니다. “데이터가 없으니 내가 하는 말은 결국 느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디자이너들이 사용자 경험에 대한 문제의식은 분명히 가지고 있는데 조직이 그걸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상황이거나, 권한이 없거나, 또는 그것을 팀 안에서 설득 가능한 언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막힙니다.
그러다 보니 “뭔가 복잡해 보여요”, “UX가 별로인 것 같아요”, “사용자가 헷갈릴 것 같아요” 같은 표현만 남게 되고, 회의실 공기는 순식간에 추상적인 감상평 토론장이 되어버립니다. 마치 디자인 회의인데 갑자기 모두가 영화 평론가가 된 느낌입니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데이터 인프라가 부족한 환경에서 디자이너가 어떻게 사용자 문제를 관찰하고, 그것을 어떻게 정리하고, 또 어떻게 최소한의 정량적 근거처럼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가장 먼저 중요한 건 “불편해 보인다”를 “어떤 행동이 막히고 있다”로 번역하는 연습입니다. 실제 실무에서는 같은 문제라도 표현 방식에 따라 설득력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화면이 복잡해 보여요”라는 말은 팀 안에서 금방 공중분해 됩니다. 또한 이미 디자이너가 정성적인 감정을 판단에 섞어서 내놓은 셈이죠.
하지만 “현재 구조에서는 사용자가 다음 행동을 판단하기 위해 읽어야 하는 정보량이 많습니다”라고 바꾸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불편하다거나 복잡하다는 감정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판단할 수 있는 현상 그 자체만 공유하는 겁니다. “CTA보다 프로모션 배너가 더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스크롤을 끝까지 내려야 핵심 행동이 보입니다”, “선택지가 동시에 너무 많이 노출됩니다” 같은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UX 문제는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행동의 언어로 설명되어야 합니다. 사용자가 무엇을 못했고, 어디서 멈췄고, 왜 다시 돌아갔는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해야 문제는 꽤 구체적인 형태를 갖게 됩니다.

그 다음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행동 패턴을 수집하고 묶는 것입니다. 거창한 데이터 플랫폼이 없어도 의외로 많은 정보는 주변에 이미 흩어져 있습니다. CS 문의, 리뷰, 슬랙 메시지, 운영팀 피드백, QA 이슈, 사용자 반응 같은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결제 버튼이 안 보여요”, “저장한 줄 알았는데 안 됐어요”, “로그인하니까 작성한 내용이 사라졌어요” 같은 이야기들이 반복된다면, 그건 단순한 개별 의견이 아니라 특정 행동 흐름에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각각의 말을 행동 기준으로 다시 태깅하는 것입니다. ‘CTA 발견 실패’, ‘상태 인지 실패’, ‘로그인 흐름 이탈’, ‘정보 탐색 실패’처럼 유형을 나누고 반복 횟수를 세기 시작하면, 정성 데이터도 어느 정도 패턴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이런 방식은 작은 팀에서 꽤 현실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분석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문제가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수준까지는 충분히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처리 우선순위나 유형의 심각도, 중요도까지 매겨본다면 생각보다 다음 디자인할 것이 명확해질 수 있습니다.

사용자의 행동 자체를 관찰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찰은 거창한 사용성 테스트가 아닙니다. 옆자리 동료에게 프로토타입을 잠깐 보여주는 수준이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의외로 사용자들은 굉장히 솔직하게 행동합니다. 인터뷰에서는 “괜찮았어요”라고 말해놓고, 실제로는 버튼을 못 찾고 화면을 세 번 왔다 갔다 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스크롤을 반복하거나, 잘못된 버튼을 누르거나, 갑자기 멈춰서 한참 읽고 있는 행동들도 모두 중요한 신호입니다. 특히 “왜 여기서 멈췄지?”라는 질문은 UX 디자이너가 가장 자주 던져야 하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실제 제품에서도 사용자는 생각보다 자주 길을 잃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UX 문제는 굉장히 거대한 기능 문제가 아니라, 바로 이런 작은 멈춤에서 시작됩니다.

시간을 재보는 것도 생각보다 강력한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회원가입 완료까지 몇 초가 걸리는지, 상품 탐색 후 결제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필터를 찾는 데 얼마나 헤매는지를 직접 측정해 보는 것입니다. 물론 정식 퍼널 데이터처럼 정교하지는 않습니다. 정량적인 근거도 빈약하고요. 하지만 특정 행동만 유독 오래 걸린다면 분명 무언가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사용자가 특정 단계에서 반복적으로 멈춘다면 정보 구조나 시선 흐름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UX에서 중요한 건 단순히 기능이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사용자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다음 행동으로 넘어갈 수 있느냐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좋은 UX는 종종 “생각을 덜 하게 만드는 것”과 연결됩니다. 화면 안에서 사용자가 계속 고민하기 시작하면 이미 흐름은 조금씩 깨지고 있는 상태일 가능성이 큽니다.

경쟁 서비스의 패턴을 분석하는 것도 꽤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특히 데이터가 부족한 초기 조직일수록 이미 검증된 패턴을 참고하는 건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커머스 앱이 하단 고정 CTA를 쓰는 이유, 회원가입을 여러 단계로 나누는 이유, 특정 위치에 장바구니를 두는 이유에는 나름의 축적된 맥락이 있습니다. 물론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업계 전반이 반복적으로 선택한 구조라면, 최소한 왜 그렇게 설계했는지는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종종 주니어 디자이너들이 “차별화”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사용자에게 익숙한 흐름까지 무너뜨리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사용자는 새로운 UX를 배우러 앱에 들어오는 게 아닙니다. 대부분은 그냥 빨리 목적을 달성하고 싶어 합니다. 가끔은 가장 평범한 구조가 가장 좋은 UX인 경우도 많습니다. 처음부터 대단한 차별점을 가져가려고 하지 마세요. 검증된 패턴에서 출발해서 조금씩 다듬어 나가보세요.

결국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에서 중요한 건 ‘느낌으로 디자인하지 않는 습관’입니다. 데이터가 없다고 해서 UX까지 감으로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디자이너는 사용자의 행동을 더 집요하게 관찰하고, 흐름을 구조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용자가 어디서 멈추는지, 왜 망설이는지, 어떤 순간에 길을 잃는지를 계속 해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관찰을 ‘복잡한 것 같다’ 같은 감정적인 수준에서 끝내지 않고, 행동과 구조의 언어로 바꾸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생성형 AI나 자동화 도구가 더 많아질수록 화면을 빠르게 만드는 능력 자체는 점점 평준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신 사용자 행동을 읽고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은 오히려 더 중요해질 겁니다. UX 디자이너의 역할은 화면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사용자의 다음 행동을 설계하는 사람이라는 걸 항상 기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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