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생성형 AI를 다루는 분위기를 보고 있으면 가끔 이런 장면이 보인다. 다들 AI가 굉장히 강력한 도구라는 건 알고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화면 시안을 빠르게 만들 수 있고, 카피 초안을 뽑을 수도 있고, 무드 보드를 정리할 수도 있고, 코드까지 얼추 형태를 갖춰서 내놓는다. 한 번이라도 잘 맞는 경험을 해보면 그 충격이 꽤 크다. 예전 같으면 며칠 걸렸을 작업이 몇 분 안에 형태를 갖추고,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아이디어가 갑자기 눈앞에 보이는 수준으로 구체화된다. 그러니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강력한 도구를 다루는 태도가 어느 순간부터 도구를 잘 쓰는 태도라기보다, 요술램프를 문지르는 태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충 말 몇 마디 던져놓고, 알아서 내 의도를 읽고, 알아서 맥락을 채우고, 알아서 예쁜 결과를 내놓길 기대하는 식이다. 한마디로 딸깍하면 짜잔 하고 완성형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믿는 분위기다.
그런데 생성형 AI는 소원을 읽는 램프의 정령이 아니다. 내가 넣은 재료를 불려서 보여주는 증폭기에 더 가깝다. 그래서 입력이 흐리면 결과도 흐리고, 질문이 얕으면 답도 얕고, 판단이 비어 있으면 결과는 어디선가 본 듯한 평균값으로 수렴한다. 조금 더 단순하게 말하면 이렇다. 돌을 넣으면 돌이 나오고, 금을 넣으면 금이 나온다.

물론 AI는 돌을 꽤 그럴듯하게 다듬어줄 수 있다. 표면을 매끈하게 만들고, 요즘 트렌드처럼 포장하고, 보기에는 제법 괜찮아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재료가 애매해도 결과는 얼핏 괜찮아 보이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여기서 착각하기 쉽다. 화면이 그럴듯하니 내 생각도 그럴듯했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AI는 생각을 검증해 준 것이 아니라, 덜 정리된 재료를 빠르게 가시화해 준 것뿐이다. 결국 실무에서 중요한 건 AI가 뭘 해주느냐보다, 내가 뭘 넣고 있느냐다.
이 지점에서 디자이너들이 자주 쓰는 프롬프트를 보면 왜 결과가 자꾸 평균으로 가는지 바로 보인다. 미니멀하게 해줘, 감성 있게 해줘, 트렌디하게 해줘, 앱처럼 보이게 해줘, 요즘 스타트업 느낌으로 해줘 같은 문장들이다. 이런 말은 취향은 담고 있지만 판단은 담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금융 서비스 화면을 만든다고 하자. 미니멀하고 신뢰감 있게 만들어줘라는 요청만으로도 결과는 나온다. 하지만 높은 확률로 무난하고 안전하고 어디서 많이 본 금융 앱 비슷한 화면 하나가 돌아올 것이다. 누구를 위한 화면인지, 사용자가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금 중요한 게 가입 유도인지 신뢰 형성인지 이해도 향상인지, 기존 구조의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같은 핵심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보기엔 단정한데 실무적으로는 별로 쓸모가 없다. 이게 돌이다.
반대로 좋은 프롬프트는 문장이 길어서 좋은 것이 아니다. 판단이 들어 있다. 같은 작업을 부탁하더라도 이렇게 달라진다. 첫 방문 사용자가 5초 안에 이 서비스가 소액 투자 플랫폼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바로 계좌 연결을 유도하기보다 먼저 신뢰를 형성해야 한다. 그래서 상단에는 과장된 수익률이 아니라 서비스 구조를 짧게 설명하는 카피가 필요하고, 첫 CTA는 투자 시작보다 서비스 둘러보기가 더 자연스러워야 한다.
화면 분위기는 전통 금융 앱처럼 무겁기보다 스타트업 서비스처럼 가볍되, 너무 캐주얼하면 안 된다. 경쟁사처럼 혜택 배너를 과하게 쓰지 말고, 정보 밀도는 낮게 유지해달라. 이건 단순히 말이 많은 프롬프트가 아니다. 사용자, 과업, 우선순위, 금지 조건, 톤 기준이 함께 들어간 프롬프트다. 이게 금이다.
좋은 프롬프트가 뭔지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이것부터 구분하는 것이다. 형용사만 많은 요청은 대체로 돌이고, 판단 기준이 들어간 요청은 금이다. 예쁘게, 감성 있게, 트렌디하게, 미니멀하게 같은 말만 있으면 AI는 평균적인 스타일 조합으로 답한다. 반대로 누가 쓰는지, 뭘 하게 해야 하는지, 어떤 방향은 피해야 하는지, 무엇을 더 중요하게 볼지까지 적혀 있으면 결과는 훨씬 덜 흔들린다. 좋은 프롬프트를 쓰는 일은 결국 문장을 잘 꾸미는 기술이 아니라, 원하는 결과가 작동하기 위한 조건을 빠뜨리지 않고 넘기는 일에 가깝다. 디자이너로서 프롬프트를 잘 쓰고 싶다면, 최소한 아래 다섯 가지를 고민해 보면 좋다.

AI는 내가 누구를 위한 걸 만드는지 알 리가 없다. 따라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건 누가 쓸 건지를 정확하게 명시해주는 것이다. 즉, 누구를 위한 결과물인지 먼저 적어야 한다. 같은 홈 화면이라도 첫 방문 사용자용인지, 기존 고객용인지, 내부 운영자용인지에 따라 구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 서비스를 경험해야 하는 핵심 대상이 빠지면 AI는 가장 보편적인 사용자를 가정한다. 그러면 결과도 보편적인 평균값으로 간다. 즉,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이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용자가 결과적으로 어떤 액션을 해야 하는지,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이 화면에서 사용자가 결국 뭘 해야 하는지 적어야 한다. 단순히 보기 좋은 랜딩페이지를 만드는 것과, 사용자를 회원가입 직전까지 보내는 랜딩페이지를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핵심 과업을 전달할 때 디자이너들이 자주 빠지는 실수인데,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특성상 결과물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는 잘 설명한다. 히어로 영역이 여기 있고 특장점 설명이 여기 있다는 등의 구역 설명은 비교적 잘하지만, 그래서 이게 뭐를 위해 해야 하는데? 는 잘 설명하지 못하는 편이다. 제일 중요한 건 결과물의 형태가 아니라 그 결과물의 목적이다.

AI는 당연하게 내가 뭘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모른다. 물론 최근엔 기술이 더 발전해서 랜딩페이지를 만들어달라고 하면, 서비스가 잘 드러나거나 회원가입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설계해 주는 경우도 있지만, 기획은 사람의 일이다. 서비스를 생각하고 만들어야겠다고 판단한 사람의 몫이라는 거다. 이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덜 중요한 것이 갈린다. 그 우선순위를 알려줘야 AI도 어디에 힘을 줘야 할지를 이해한다.
좀 더 요약하자면, 이 결과물에서 제일 중요한 기준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해줘야 한다. 신뢰 형성인지, 전환인지, 이해도인지, 정보량인지, 차별화인지가 정해져야 한다. 대표님들이 화려하면서도 미니멀하게 해달라고 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잘 생각해보자.
우선순위가 없으면 AI는 모든 걸 조금씩 만족시키는 무난한 결과를 낸다. 또한 컨셉을 명확하게 해주지 않으면 당연히 무난한 컨셉을 가져온다. 제일 재미없는 형태가 나오고, 초점도 흐릿한 결과물이 나오고, 결국 토큰만 소모하고 실무에도 도움 되는 게 나오지 않는다.

열심히 만들다 보면 자꾸 의도와는 다른 결과물을 가져오는 경우가 잦다. 이럴 땐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전달해야 한다. 원하지 않는 것을 명확하게 밝혀줘야 AI도 스스로 허용 범위인 하네스를 만들어 움직일 수 있다.
이 한 줄이 없으면 요즘 유행하는 AI 스타일 디자인이 나와버린다.

AI는 우리의 눈과는 다르게 작업물을 인식하지만, 그래도 스스로 리뷰할 수 있는 기준점을 알려줘야 그 방향으로 계속 반복 개선을 진행한다. 어떤 것이 있어야 작업물의 결과가 좋다고 판단할 것인지를 알려주자.
이런 평가 기준이 없으면 결국 AI한테 갑질을 하기 시작한다. ‘별론데?’, ‘이거 아니야’ 같은 피드백만 반복된다. 이 다섯 가지를 하나의 프롬프트로 결합하면, 이렇게 쓸 수 있다. 이 정보 구조를 가진 프롬프트를 입력해주면, AI의 결과물이 훨씬 정교하고 구체적인 결과물이 되는 마법을 볼 수 있다.
실제 상황에서의 예를 들어, 피그마와 연결해서 쓸 수 있는 툴의 랜딩페이지 히어로 섹션을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돌 같은 프롬프트: 디자인 툴 랜딩페이지 히어로 섹션 만들어줘. 미니멀하고 세련된 느낌이면 좋겠어.
물론 이 프롬프트로도 결과는 나온다. 하지만 높은 확률로 아주 익숙한 SaaS 랜딩 화면 하나가 돌아온다. 어디서 많이 본 AI 스타일 디자인에, 뭘 얘기하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은 흐릿한 주제 의식 등이 보일 것이다. 디자인은 깔끔하긴 한데, 이 툴이 왜 필요한지 잘 안 보이고, 결국 별로라는 인식만 생긴다. 위 템플릿을 적용해서 이렇게 한번 써보자.
금 같은 프롬프트: 이 히어로 섹션은 피그마를 쓰는 실무 디자이너를 위한 것이다. 이 툴은 완성된 화면을 플로우차트처럼 구조화해 보여주는 도구이기 때문에, 핵심 메시지는 화면을 그리는 도구가 아니라 흐름을 관리하는 도구라는 점이어야 한다. 목적은 예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3초 안에 기존 플러그인이나 피그잼과 무엇이 다른지 이해시키는 것이다. 복잡한 다이어그램처럼 보이면 안 되고, 개발자 도구처럼 차갑게 보여도 안 된다. 실무 SaaS답게 정돈된 톤은 유지하되 지나치게 차갑지 않았으면 좋겠다. 첫 CTA는 구매보다 데모 보기가 우선이다. 결과는 제품 구조가 먼저 보이고, 차별점이 한 줄 안에 이해되며, 첫 진입 부담이 낮아야 한다.

프롬프트를 단순히 길게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길게 쓰지 않고도 가능할 수 있다. AI가 스스로 판단해야 할 기준을 일목요연하게 적어서 넘겨준다는 점이다. 누구를 위한 것이고, 어떤 목적이 있고, 무엇이 제일 중요하고, 어떻게는 하지 말아야 하고,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를 순차적으로 정리해서 적어주자. 팁이라면, 각각 항목을 번호를 매겨서 라벨과 함께 전달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이 템플릿을 AI가 항상 직접 작성하도록 하면 금상첨화가 된다.
프롬프트를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이 첫 질문만 생각한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두 번째 질문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아무리 좋은 프롬프트여도 첫술부터 배부른 결과물이 나오진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질문부터가 진짜 질문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처음 나온 결과를 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집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좋은 디자이너는 결과물을 감정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결함의 위치를 말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프롬프트의 품질이 올라갈 수 있다. 결국 AI 시대의 프롬프팅은 한 번에 완벽한 주문을 외우는 기술이 아니라, 어긋난 결과를 보고 어디를 조정해야 하는지 아는 디렉팅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즘처럼 생성형 AI를 두고 딸깍하면 짜잔 하고 뭐라도 나오는 분위기에서는, 오히려 질문의 품질을 더 엄격하게 봐야 한다. 왜냐하면 예전보다 훨씬 쉽게 그럴듯한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결과물도 엉성해서 중간에라도 스스로 멈출 수 있었다. 지금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도 꽤 괜찮아 보이는 결과가 나온다. 그래서 부족한 판단이 더 가려지게 된다. 이 부족했던 판단의 나비효과는 제품이 점점 커지고 있을 때 갑자기 튀어나와 모든 것을 망칠 수도 있다. 이게 최근의 분위기에서 간과되고 있는 진짜로 위험한 부분이다.
AI가 너무 똑똑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덜 생각해도 결과가 나와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생성형 AI 시대에 디자이너가 배워야 할 것은 AI에게 예쁘게 말하는 기술이 아니다. 좋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조건을 문장으로 만드는 기술이다. 누가 쓰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더 중요하게 볼지, 무엇은 절대 아니어야 하는지, 결과를 어떤 기준으로 볼지를 넣는 것. 결국 이게 금이다.
돌을 넣으면 돌이 나오고, 금을 넣으면 금이 나온다. 이제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건 더 화려한 주문이 아니라, 더 정확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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