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자정 무렵 X(구 트위터)에 올라온 글 하나가 여러 IT 커뮤니티에 빠르게 퍼졌습니다. 바로 안드레 카파시(Andrej Karpathy)가 직접 업로드한 엔트로픽 합류 소식이었죠. 그는 앞으로 몇 년이 LLM 프론티어에서 특히 결정적인 시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과 함께 엔트로픽 합류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 짧은 글은 올라온지 하루를 조금 넘긴 지금, 현재 조회수는 2,500만을 훌쩍 넘었습니다.

매체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OpenAI에서 또 한 명이 엔트로픽으로 넘어갔다, AI 인재전쟁이 격해진다, 엔트로픽이 또 점수를 땄다는 등이었죠. CNBC는 엔트로픽이 OpenAI를 기업 가치에서 추월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또 다른 고위급 영입에 성공했다고 정리했고, 다른 매체들도 비슷한 흐름으로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카파시가 엔트로픽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됐는지, 그리고 어떤 배경에서 이 영입이 이뤄졌는지를 함께 보면 이번 소식이 더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오늘 이 글에서 그 두 가지를 짚어보겠습니다.
카파시가 들어간 곳은 엔트로픽의 사전학습(pretraining) 팀입니다. 사전학습은 LLM이 만들어지는 가장 비싸고 오래 걸리는 단계죠. 인터넷에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텍스트를 모델에 통째로 주입해서 언어와 지식의 토대를 까는 작업이고, Claude나 GPT의 기본기가 여기서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카파시는 이번 주부터 엔트로픽의 사전학습 팀에 합류하며, Claude 자체를 사용해 사전학습 연구를 가속하는 새 팀을 출범시킬 예정이라고 합니다.
AI 회사가 자기 모델을 사내에서 도구로 쓰는 건 새로운 얘기가 아니죠. 그런데 카파시 팀의 작업은 조금 다릅니다. 모델을 만드는 방법 자체를 푸는 연구에 Claude를 본격적으로 투입한다고 하죠. 이는 어떤 데이터로 어떻게 학습시켜야 모델이 더 똑똑해지는지, 그 질문을 푸는 일에 Claude가 실제 팀원처럼 들어간다는 얘기입니다.
이 소식에서 우리가 봐야 할 지점은 모델 출시 사이클입니다. 지금 새 모델은 6개월에서 1년 간격으로 나옵니다. GPT-4 다음 4o, Claude 3 다음 3.5. 한국 IT 업계는 이 간격을 기준으로 다음 분기 제품 로드맵을 짜고, 어떤 기능을 우리 서비스에 언제 붙일지 계산합니다. 그런데 모델을 만드는 연구 자체에 AI가 직접 들어가면 이 간격이 흔들립니다. 사전학습 단계에서 사람이 풀던 문제를 AI가 함께 풀기 시작하니까요. 6개월이 3개월이 될지, 그대로일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우리가 기준 삼던 6개월~1년이 절대값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어떤 사람이 그 자리에 앉느냐에 따라 새로 나올 Claude의 방향도 달라집니다. 그게 카파시였다는 점이 이 채용의 두 번째 무게입니다. 테크크런치는 이번 영입을 두고 "카파시는 LLM 이론과 대규모 훈련 실무 사이를 연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연구자다. 이런 팀을 만들도록 그를 채용한 것은 엔트로픽이 순수한 컴퓨팅 파워가 아니라 AI 보조 연구로 OpenAI나 Google과 경쟁하겠다는 분명한 신호"라고 짚었습니다.
이 채용 결정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2주 전으로 돌아가봐야 합니다. 2026년 5월 7일, 엔트로픽 공동창업자 잭 클락(Jack Clark)이 Axios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잭 클락은 이런 말을 합니다.
"제 예측은 이렇습니다. 2028년 말까지 AI 시스템한테 '너 자신을 더 나은 버전으로 만들어봐'라고 말하면, 그게 완전히 자율적으로 그 작업을 해낼 가능성이 절반 이상입니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확률을 구체적으로 못박았는데, 2028년 말까지 AI 모델이 자기 후속 모델을 완전히 훈련시킬 확률이 60% 이상이라는 수치였습니다.
엔트로픽은 원래 AI 안전을 가장 강하게 외쳐온 회사입니다. OpenAI에서 나온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와 잭 클락 같은 창업자들이 "더 안전한 AI를 만들겠다"는 명분으로 차린 곳이죠. 그런 회사의 공동창업자가 "AI가 자기 후속 모델을 자율적으로 훈련할 확률 60%"라는 수치를 공식 인터뷰에서 못박았다는 점은, 잭 클락 개인의 의견 발표를 넘어 회사의 입장을 드러내는 발언에 가깝습니다. 인터뷰가 나간 5월 7일, 엔트로픽은 자사 연구 조직 'The Anthropic Institute'의 4대 연구 의제를 공식 발표했는데, 그중 하나가 AI 주도 R&D(AI-driven R&D) 영역이었습니다.
발언과 의제 발표가 같은 날 5월 7일, 카파시 합류가 그로부터 12일 뒤인 5월 19일입니다. 그가 새로 꾸릴 팀의 정체는 Claude로 사전학습 연구를 가속하는 팀이고요.
회사 내부 상황을 보면 방향이 더 분명해집니다. Axios가 같이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엔트로픽 사내에 800개 이상의 AI 에이전트가 운영되고 있고, 엔지니어들은 소프트웨어 개발 속도가 20~40% 빨라졌다고 보고합니다. 특정 종류의 코드는 더 이상 직접 작성하지 않고 에이전트에게 맡긴다는 엔지니어들도 있습니다.
회사 차원에서 "AI로 AI를 더 빨리 만든다"는 방향이 이미 자리잡고 있었고, 카파시 영입은 그 흐름의 마지막 퍼즐 같은 인사로 보입니다.
카파시는 7개월 전 인기 테크 팟캐스터 드워케시 파텔(Dwarkesh Patel)과 2시간 25분짜리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그가 던진 평가가 한동안 업계에서 화제가 됐죠.

업계가 "에이전트의 해"라고 부르는 2025년에 대해 카파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반적으로 모델들은 아직 거기까지 못 왔어요. 업계가 너무 큰 점프를 시도하면서 마치 굉장한 것처럼 가장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slop입니다." 영어 slop은 직역하면 가축 먹이쯤 되는 단어인데, 업계 은어로는 "허접한 결과물" 정도로 통합니다. 톱티어 연구자가 자기 분야 모델을 두고 쓰기엔 꽤 센 표현이죠.
같은 자리에서 그는 LLM 자체에 대해서도 독특한 비유를 꺼냈습니다. "우리는 동물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유령(ghost)이나 영혼(spirit)을 만들고 있는 거예요. 진화로 훈련시키는 게 아니라 인간이 인터넷에 올린 데이터를 모방하도록 훈련시키니까요." LLM은 진화로 빚어진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 남긴 데이터를 흉내 내는 유령 같은 존재. 인간 같지만 인간이 아닌, 완전히 다른 종류의 지능이라는 시선입니다.
이 두 발언을 함께 놓고 보면 카파시의 입장이 또렷해집니다. 현재 모델은 아직 허접한 수준이고, 이 유령 같은 존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우리는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시선. 그가 AGI까지 10년이 걸린다고 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발전이 더디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 수준이 사람들이 떠드는 만큼 굉장하지 않다는 뜻이었죠.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이 사전학습 팀에 들어갔다는 점은 따로 짚어볼 만합니다. 사전학습은 모델의 기본기, 즉 이 유령이 어떤 데이터를 보고 어떤 방식으로 빚어질지를 결정하는 단계입니다. 그가 깊이 관여해 만든 새 Claude는 단순히 더 똑똑한 모델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모델은 slop"이라고 평한 사람이 그 slop을 벗어나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데이터와 학습 방법을 다시 짤지가 이번 영입이 던지는 진짜 질문입니다.
카파시의 이런 시선은 엔트로픽이 줄곧 강조해온 노선과 자연스럽게 맞물립니다. 엔트로픽이 강조해온 "더 안전한 AI"라는 명분의 핵심은 결국 모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더 잘 파악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모델을 유령으로 보고 그 유령이 빚어지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보겠다는 카파시의 시각이, 엔트로픽의 방향과 정확히 같은 결입니다.
합류 발언에서 카파시가 쓴 "앞으로 몇 년이 결정적"이라는 말도 이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읽힙니다. 10년 뒤에 AGI가 온다고 보더라도, 그 10년 동안 어떤 모델이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지느냐가 결국 AGI가 어떤 얼굴로 등장할지를 결정합니다. 카파시는 그 결정이 일어나는 첫 몇 년이 지금이라고 봤고, 그 결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직접 만들 수 있는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카파시 한 명의 이직 뉴스를 두고 이렇게 길게 들여다볼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이번 사건에는 몇 가지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AI 회사가 자기 모델로 자기 모델을 만드는 단계에 본격 진입했고, 모델 자체에 대해 가장 명확한 시각을 가진 연구자 중 한 명이 그 작업의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습니다. 엔트로픽이 secondary market에서 약 1조 달러로 평가받으며 OpenAI(약 8,800억 달러)를 이미 추월했다는 점까지 함께 보면, 이 흐름이 짧게 끝날 흐름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카파시 합류 트윗의 끝 문장입니다.
"교육에 대한 열정은 여전합니다. 시간이 되면 그 작업을 다시 시작할 계획입니다."
카파시는 2024년 7월에 Eureka Labs라는 AI 교육 스타트업을 직접 세운 인물입니다. "80억 명 모두에게 최고의 교육을"이라는 비전을 내건 회사였죠. 그런 회사를 사실상 보류하고 엔트로픽에 들어갔다는 점이, 지금 LLM 프론티어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가 어떻게 보는지를 어떤 말보다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AI가 AI를 만드는 단계가 본격 시작됐고, 이 흐름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는 걸 카파시가 자기 거취로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그 작업의 한가운데에 명확한 시각을 가진 연구자가 들어갔다는 점은, 앞으로 나올 Claude의 성격 자체가 다시 정의될 수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한국 IT 업계도 모델 사이클과 모델의 성격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본격적으로 계산해야 할 겁니다. 우리가 다음 분기 로드맵을 짤 때 기준 삼던 두 축이, 동시에 바뀔 수 있는 시점에 와 있기 때문이죠.
©️요즘IT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