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반복적인 SQL 업무를 자동화하는 AI 에이전트 '곰곰이'의 후속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먼저 읽고 오시는 걸 추천합니다.
요즘 기업들의 AI 도입 사례를 부쩍 자주 보게 됩니다. 특히 자연어로 데이터를 분석하는 Text-to-SQL 에이전트 사례가 눈에 띄게 늘었는데요.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많은 초기 도입 사례에서 AI 에이전트가 슬랙봇의 형태로 소개된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곰곰이도 처음엔 슬랙 채널에서만 활동했고, 덕분에 빠르게 프로토타이핑하여 동료들에게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곰곰이를 웹앱으로 이사시켰습니다. LLM과 AI의 잠재력을 슬랙이라는 작은 그릇에 계속 가둬둘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그리고 웹으로 이사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풀어보려 합니다. 슬랙봇으로 AI 에이전트를 운영하고 있거나 고민 중인 분이라면, 저의 사례가 작은 힌트가 됐으면 합니다.
목차
- 슬랙은 AI의 잠재력을 담을 수 없다
- 웹 전환으로 달라진 것들
- 커맨드와 예약: 반복 분석을 자동화하다
- 곰곰이 제작자의 생각
- 앞으로 남은 여정
곰곰이가 슬랙봇으로 시작한 건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슬랙은 동료들이 하루 종일 켜놓는 업무용 메신저입니다. 새로운 환경을 따로 세팅하거나 배울 필요 없이 곰곰이를 바로 써볼 수 있었고, 데이터 분석 결과를 동료들에게 공유하는 것도 쉬웠습니다. 빠르게 프로토타이핑하고 동료들의 반응을 확인하기엔 슬랙만한 환경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쓰면 쓸수록 불편한 지점들이 생겼습니다.
첫 번째는 보안입니다. 슬랙에서 회사 정보를 공유하는 건 이미 익숙한 일입니다. 그런데 DB와 연결된 AI가 슬랙 위에서 데이터를 조회하고 분석한다는 건 왠지 찝찝합니다. 보안 통제가 높은 조직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데이터 조회와 반출에 대한 사용자별 권한 체계가 있는 곳이라면, 곰곰이가 슬랙에서 자유롭게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 자체가 허락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가독성입니다. 아래 사진은 슬랙에서 곰곰이의 데이터 분석 답변입니다. 표는 줄이 맞지 않아 읽기가 어렵습니다. 그래프를 그리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고, 굵게나 밑줄 같은 마크다운 기본 포맷도 제대로 렌더링되지 않습니다. 곰곰이가 데이터 분석 과정에서 도구를 선택하고 생각하는 흐름인 ReAct 추론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슬랙으로는 데이터 분석 결과를 보여주기에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는 확장성입니다. 슬랙은 채팅 앱으로서 훌륭하고 SDK나 플러그인도 잘 갖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 만든 웹앱과 비교하면 기능을 추가하고 커스텀 할 때 발목이 잡힙니다. 개인화된 대화, 보고서 이미지 다운로드, 로그인과 권한 관리, 어드민 기능 같은 것들은 슬랙에서 만들 수 없습니다.
슬랙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곰곰이의 잠재력을 전부 끌어내려면 제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백엔드에 익숙한 개발자입니다. 데이터 설계, 인프라 구축, API 개발은 늘 하던 일이라 부담이 없습니다. 그런데 버그 없이 잘 동작하는 웹앱을 만드는 건 솔직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몇 달 전 이야기입니다. AI 코딩 에이전트 덕분에 이제 퀄리티 높은 웹앱도 직접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슬랙봇 개발도 쉬운 편이긴 한데 AI의 도움이 잘 닿지 않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반면 AI 코딩 에이전트로 직접 웹앱을 만들면 빠르게 원하는 데로 모두 만들 수 있어 슬랙봇 보다 웹앱 개발이 더 쉬워진 상황이 됐습니다.
그래서 AI 에이전트의 족쇄가 되는 슬랙을 벗어나 직접 웹앱을 만들어 곰곰이가 능력을 더 자유롭게 보여줄 수 있는 브라우저 환경으로 이사시켰습니다.

가장 먼저 달라진 건 개인화입니다. 회원가입과 로그인으로 접근하게 되면서 채팅을 공유 환경뿐만 아니라 나만의 공간으로도 쓸 수 있게 됐습니다.

나의 데이터 분석 채팅을 나만 볼 수 있는 게 생각보다 꽤 중요합니다. 곰곰이의 고객인 사내 동료들은 아직 데이터를 직접 다루는 습관이 충분히 쌓이지 않은 분들이 많습니다. 내가 한 질문이 누군가에게 바보 같아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곰곰이 사용을 주저하게 만들 수 있거든요. 나만 볼 수 있는 대화가 생기니까 자유롭게 질문하고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아직 만들진 않았지만 유저나 그룹별로 접근 가능한 데이터 종류를 제어하는 권한 관리도 웹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입니다.

답변의 표현도 훨씬 풍부해졌습니다. 곰곰이가 마크다운으로 답변하도록 만들고 브라우저에서 렌더링하니까 표, 코드, 텍스트 포맷이 제대로 보입니다. 슬랙과 웹에서 곰곰이의 답변을 비교하면 답변의 가독성이 더 좋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죠.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면 마크다운과 잘 호환되는 Mermaid 문법으로 답변하게 할 수 있는데, 그러면 순서도, 막대, 꺾은선, 파이 그래프 같은 시각화를 코딩 없이 프롬프트만으로 보고서에 바로 넣을 수 있습니다.

곰곰이가 데이터를 분석하는 ReAct 추론 과정을 채팅에서 바로 볼 수 있다는 것도 생각보다 유용합니다. 보고서가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졌는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거든요. 동료들이 질문한 결과가 예상과 다르다고 확인을 요청해 올 때 추론 과정을 같이 들여다보면 어디서 어떻게 틀렸는지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덕분에 “이 부분에서 이렇게 접근하면 됩니다” 같은 구체적인 피드백을 주기가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직접 만든 웹앱이니까 원하는 기능을 그냥 만들면 됩니다. 당연한 말 같지만 이게 생각보다 큰 차이입니다. 데이터 분석 보고서를 HTML 렌더링된 형태 그대로 이미지로 저장할 수 있고, 좋아요 버튼을 누르면 대화 내용을 요약해서 곰곰이의 장기 기억에 넣을 수 있습니다. 뒤에서 설명할 커맨드와 예약도 웹 인터페이스 안에서 생성, 수정, 삭제가 가능합니다. 슬랙에서는 시도조차 못 했던 것들입니다. 우리가 웹앱에서 당연하게 기대하는 경험들을 이제 곰곰이도 갖추게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대시보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데이터를 받아보는 방식은 두 가지였습니다. 새로운 정보나 가끔 필요한 분석은 데이터 분석가에게 요청해서 보고서로 받고, 자주 봐야 하는 정해진 지표들은 대시보드로 봤습니다. 곰곰이 채팅이 전자를 담당해 주고 있다면, 후자는 여전히 대시보드가 필요합니다. 채팅 분석만으로는 그 경험을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옵저버빌리티처럼 데이터도 한곳에 모여 있어야 시너지가 난다고 생각해서 데이터 대시보드도 같은 웹에 직접 개발했습니다. (Chart JS 사용) 차트는 곰곰이가 만드는 게 아니라, 코딩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아 사람이 직접 만들고 있습니다. 곰곰이를 웹으로 이사시켰기 때문에 채팅과 대시보드를 한곳에서 제공할 수 있게 됐고, 두 가지가 만들어낼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곰곰이로 데이터 분석을 잘하려면 순차적으로 질문하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지금 진행 중인 투표가 있어?” → “해당 투표 후보자의 득표 Top3를 알려줘.” → “Top3 후보가 붙었던 다른 투표 모두 알려줘.” → “회차별 투표수 그래프를 포함해서 보고해줘.” 물론 이걸 한 번에 요청해도 곰곰이는 높은 확률로 맞는 답변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LLM의 특성상 단계적으로 접근할수록 결과의 품질이 올라가는 건 사실입니다.

문제는 매주 같은 분석이 필요할 때입니다. 이 과정을 매번 반복해야 한다면 귀찮습니다. 동료들의 곰곰이 사용 빈도도 자연스럽게 떨어질 것이고요. 그래서 만든 게 커맨드 기능입니다.
만족스러운 대화가 있으면 곰곰이에게 “이거 커맨드로 만들어줘”라고 하면 됩니다. 곰곰이가 대화를 분석해서 사용자에게 확인받아야 하는 입력 정보, 데이터 분석 SQL, 분석 방법, 보고서 작성 형식 등을 프롬프트로 정리하여 저장합니다. 다음부터는 /vote-weekly-report 같은 커맨드 하나로 동일한 보고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커맨드 검색, 수정, 삭제 같은 관리도 웹 인터페이스 안에서 바로 할 수 있습니다. 슬랙이었다면 불가능했던 것들입니다.

커맨드를 만들었다고 해도 사용자가 직접 실행하러 와야 한다면 여전히 귀찮은 일입니다. 그래서 예약 기능을 붙였습니다. 원하는 주기와 시점에 커맨드를 예약해 두면 곰곰이가 알아서 분석을 실행하고, 핵심 내용 3줄 요약과 바로 가기 링크를 슬랙으로 보냅니다. 사용자는 알림을 받고 지표에 이상한 점이 있을 때만 웹에 들어와서 그 세션 그대로 곰곰이에게 이어서 물어보면 됩니다.

슬랙의 접근성과 웹의 경험을 합친 것입니다. 인터페이스를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조합입니다.
곰곰이가 생기고 나서 데이터 업무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SQL을 모르는 동료가 직접 데이터를 확인하는 게 자연스러워졌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 하는 횟수도 늘었습니다. 예약 기능 덕분에 지표의 이상을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감지할 수 있게 됐고요. 기존에 없던 개념의 데이터 플랫폼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저의 기대보다 많이 안 씁니다. 이렇게 좋은 도구인데 동료들이 각자의 이유로 자주 찾지 않습니다. 무슨 데이터가 있는지 모르겠다, 너무 바빠서 데이터까지 볼 여유가 없다, 데이터를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 했다, 습관이 없다. 들어보면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이유들이 일단 곰곰이에게 물어보기 시작하면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궁금한 게 생겼을 때 ChatGPT를 켜는 것처럼요. 새로운 도구는 써보면서 익히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ChatGPT랑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데이터에 대해 궁금해하고 분석 결과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어렵다는 건 공감합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건 동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입니다. 불편한 점을 물어보고, 사용 방법을 알려주고, 기다리는 것. 시간이 해결해 주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이 AI가 아닌 사람이 필요한 지점이 아닐까요?

곰곰이를 처음 기획하면서 생각했던 것들은 대부분 만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도달해서 스스로도 좀 놀랐습니다. 지금은 소프트웨어 개발의 대격변기니까요. 다음에 뭘 만들지 아직 계획은 없습니다. 그냥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들을 꺼내봅니다.
멀티 에이전트, 다른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분야별로 에이전트를 따로 만들어 협업하게 하는 경우를 종종 봤습니다. 질문 의도를 분석하는 에이전트, 작업을 계획하고 지휘하는 에이전트, SQL만 전담하는 에이전트, 답변만 만드는 에이전트, 이런 식으로요. 흥미롭긴 한데 곰곰이는 아직 도구 수가 많지 않아서인지 단일 에이전트로도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기도 한데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어드민 API를 도구로 제공해서 채팅으로 어드민을 관리하는 것도 생각해 봤습니다. 사실 AI 에이전트의 본질은 분야가 달라도 다 똑같습니다. 요청을 받고, 생각하고, 도구를 골라 실행하고, 결과를 관찰합니다. 기존 어드민 API들을 곰곰이가 쓸 수 있는 도구로 만들어준다면 “곰곰아 다음 주 투표 미리 만들어놔. 가이드 문서 보고 알아서 해!” 같은 것도 가능해집니다. 도구와 가이드만 주면 곰곰이가 데이터 분석가 말고도 뭐든 될 수 있는 거죠. 안 해봐서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사내 모든 문서와 정보를 RAG로 넣어주는 것도 재밌는 상상입니다. 창사 이후 모든 지라 티켓, 슬랙 대화 내용들을 곰곰이에게 제공한다면 창업자보다 회사를 더 잘 아는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LLM과 RAG의 한계가 있으니 기대만큼은 안 되겠죠. 역시 안 해봐서 모릅니다. (언젠가 곰곰이 3탄이 나올 수 있다면 좋겠네요.)
©️요즘IT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