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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버려야 하는 것들: Unlearn

고코더
7분
1시간 전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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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배울 때 "일단 지금까지 알고 있던 거 다 잊어."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싶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뭘 잊으라는 건지… 그런데 배우면 배울수록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된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대충 익힌 정석 한두 개가 제대로 된 수읽기를 배우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고 하죠.

 

AI 도구도 비슷합니다. ChatGPT를 열고, Cursor를 설치하고, Claude를 구독했습니다. 뭔가 달라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업무는 더 복잡해진 것 같고, 회의는 줄지 않았고, 결과물의 품질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AI 결과물 검토"라는 업무가 하나 더 생긴 느낌이죠. 새 도구는 들여왔는데, 그 도구가 대체해야 할 기존 방식은 하나도 버리지 않은 겁니다. 덜 배워서가 아닙니다. 덜 버려서입니다. 그리고 그 버리는 행위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Unlearn’입니다.

 

미리 요점만 콕 집어보면?

  • 2026년 1월, 카카오 정신아 의장이 신입 공채 자리에서 'Unlearn'을 화두로 던져 화제가 됐다. 새로 배우라는 말이 아니라, 먼저 버리라는 말이었다.
  • AI 시대에 뒤처지는 이유는 덜 배워서가 아니라, 예전에 배운 것을 못 버려서다.
  • Learn - Unlearn - Relearn 루프의 중간 단계를 건너뛰는 팀이 "AI 써도 왜 안 빨라지지?"에서 막히는 이유, 그리고 프로덕트 메이커가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사례 중심으로 다룬다.
 

Unlearn이란 무엇인가?

Unlearn은 '학습'을 의미하는 러닝(learning)에 '부정'을 뜻하는 접두사(un)가 더해진 말입니다. 과거에는 유효했으나 현재의 성공에 제약을 가하는 사고방식과 고정관념, 행동양식 등을 고의로 잊거나 폐기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비워야 새로 채울 수 있다는 관점에서입니다.

 

Unlearn
<출처: 작가>

 

여기서 잠깐, AI에도 '머신 언러닝(Machine Unlearning)'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AI 모델이 이미 학습한 데이터 중 특정 정보를 선택적으로 삭제하는 기술입니다. 개인정보나 저작권 문제가 있는 데이터를 모델에서 제거할 때 쓰이죠. AI를 처음부터 재학습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고, AI 윤리와 법적 책임 문제에 대응하는 수단으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인간의 Unlearn과 머신 언러닝은 같은 단어에서 출발하지만 결이 다릅니다. 머신 언러닝이 특정 데이터를 기술적으로 삭제하는 것이라면, 인간의 Unlearn은 자신이 옳다고 믿어온 판단 기준 자체를 의심하고 내려놓는 것입니다. 기술적 조작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는 점에서 훨씬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이 바로 지금 우리가 이 개념을 다시 꺼내 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왜, 지금 다시 Unlearn일까?

Unlearn 카카오 정신아
<출처: 카카오 뉴스룸>

 

2026년 1월 7일, 카카오 AI 캠퍼스에서 특별한 자리가 열렸습니다. 정신아 카카오그룹 CA협의체 의장이 2026년도 신입 그룹 공채 크루들과 처음으로 만나는 '파이어사이드 챗' 행사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정 의장은 신입 크루들에게 'AI 네이티브 인재'로 성장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AI 네이티브 인재란 AI를 동료로 삼아 필요한 일을 명확히 전달하고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면서 꺼낸 단어가 'Unlearn'이었습니다. "어제의 답이 오늘의 정답이 아닐 수 있는 만큼, '내 방식이 맞다'는 과거형 확신을 내려놓고, 새롭게 학습하며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인문학적 러닝은 계속해 사고의 깊이를 키우되, 기술적 러닝은 천장을 열고 더 빠르게 갈아타야 성장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다"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정 의장이 이 말을 건넨 대상이 '신입'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디딘 신입에게 Unlearn을 강조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역설적이게도 이는 기존 조직 구성원들이 이미 Unlearn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신입에게 먼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방식이 조직 안에서 얼마나 단단히 굳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Learn - Unlearn - Relearn 루프

트렌드코리아 2026
<출처: 미래의창>

 

트렌드 코리아 2026의 AX 조직 키워드에서는 AI 시대의 학습 문화 변화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Learn, 즉 AI 활용법을 새로 배우고, Unlearn, 즉 PC 시대와 아날로그 시대에 익힌 과거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Relearn, 즉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학습하는 것. 조직이 이 루프를 얼마나 잘 돌리느냐에 따라 생산성이 달라진다는 분석입니다.

 

이 세 단계 중 현장에서 가장 많이 건너뛰는 것이 바로 두 번째 단계, Unlearn입니다.

 

실제로 많은 팀이 이런 모습을 보입니다. AI 툴을 도입했지만 기존 보고서 양식은 그대로입니다. Cursor로 코드를 뽑지만 코드 리뷰 프로세스는 예전 방식 그대로입니다. Claude로 기획안 초안을 잡지만 결재 라인과 회의 횟수는 오히려 늘었습니다. AI를 새 도구로 쓰면서 기존 방식을 버리지 않으니, 결과적으로 할 일이 두 배가 된 셈입니다.

 

 

프로덕트 메이커에게 Unlearn이 어려운 진짜 이유

Unlearn이 어려운 것은 의지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판단 기준 자체가 과거 방식으로 굳어 있기 때문입니다.

 

기획자를 예로 들어볼게요. AI로 사용자 인터뷰 요약본을 뽑습니다. 5분이면 됩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을 검토할 때 무의식적으로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내가 직접 정리한 게 아니니까 믿을 수 있을까?" 혹은 "이걸 팀에 공유해도 될까?" 이 의심은 도구의 문제가 아닙니다. "직접 만든 것이 제대로 만든 것"이라는 오래된 믿음에서 나옵니다. 그 믿음이 AI 도입의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습니다.

 

개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능 하나를 만들 때 설계 문서를 먼저 작성하고, 구조를 잡고, 그 다음에 코드를 짜는 순서에 익숙합니다. 그런데 AI와 협업하면 프로토타입을 먼저 빠르게 뽑고, 동작을 확인한 뒤 구조를 정리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순서가 뒤집히는 겁니다. 

 

하지만 "설계 없이 코드부터 치는 건 불안하다"는 감각이 남아 있으면, AI가 5분 만에 만들어준 프로토타입을 두고도 일주일짜리 설계 문서를 먼저 쓰게 됩니다. 설계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닙니다. 설계의 타이밍과 깊이가 달라져야 한다는 겁니다.

 

팀장은 더 복잡합니다. 의사결정의 기준이 곧 자신의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전에 이 방식으로 해봤는데 안 됐어"라는 말은 Unlearn을 막는 가장 강력한 문장입니다. 그 경험이 틀린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AI가 도구로 들어온 지금의 맥락과 그 경험이 쌓인 맥락이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그게 Unlearn의 시작입니다. 경험을 내려놓으라는 게 아닙니다. 그 경험이 지금도 유효한지를 한 번쯤 다시 물어보자는 겁니다.

 

결국 Unlearn이 가장 어려운 사람은 가장 잘해온 사람입니다. 오래 쌓아온 방식이 성과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그것을 버리는 것은 자신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환경이 바뀌었을 때 과거의 성공 방식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 경우가 있다는 것, 그것이 Unlearn이 지금 이 시점에 다시 강조되는 이유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Unlearn 적용
<출처: 픽사베이>

 

사실 실천은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첫 번째, 내가 갖고 있는 업무 기준 하나를 꺼내 물어보세요.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업무 기준 중 하나를 골라 이 질문을 던져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기준은 언제,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진 것인가?" 예를 들어, "기획서는 반드시 직접 써야 한다"는 기준이 있다면 그게 AI 이전 환경에서 생긴 것인지 살펴보는 겁니다. 기준을 바꾸라는 게 아니라, 기준의 출처를 한번 확인해 보자는 겁니다. 이 질문 자체가 Unlearn의 첫 단계입니다.

 

두 번째, 하나의 프로세스를 AI로 대체하는 실험을 하세요.

Unlearn은 선언이 아니라 실험으로 작동합니다. 매번 직접 작성하던 회의록을 한 번은 AI로 정리해 보고 기존 방식과 비교해 보는 것, 혼자 작성하던 주간 보고를 AI 초안으로 시작해 보는 것. 이런 작은 실험들이 쌓이면 어느 순간 "굳이 내가 직접 안 해도 되는 것"과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구분됩니다. 결과가 나쁘면 돌아가면 됩니다. 중요한 건 비교 자체입니다.

 

세 번째, '불편함'이 느껴지는 순간을 포착하세요.

AI 결과물을 보고 "왠지 찜찜한데"라는 감각이 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감각을 그냥 넘기지 말고, 잠깐 멈춰서 물어보세요. "이 불편함이 AI의 품질 때문인가, 아니면 내가 직접 만든 게 아니라는 이유 때문인가?" 전자라면 도구를 개선하면 됩니다. 후자라면, 그것이 Unlearn이 필요한 지점입니다. 불편함 자체가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마치며

Unlearn은 과거를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과거에 효과적이었던 방식이 지금 환경에서도 여전히 유효한지를 의심하는 태도입니다. 기술적 러닝은 천장을 열고 더 빠르게 갈아타야 합니다. 그런데 그 천장이 사실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오랫동안 옳다고 믿어온 판단 기준 안에 있다면 어떨까요?

 

AI 도구는 계속 좋아질 겁니다. 그 도구를 얼마나 잘 쓰느냐보다, 어떤 기준으로 쓸지를 결정하는 것이 프로덕트 메이커의 역할로 남습니다. 더 많이 배우기 전에, 한 번쯤 지금 들고 있는 것을 내려놓아 보는 자세가 필요한 때입니다.


<참고>

  • [Kakao] 2026 신입 공채 ‘파이어사이드 챗’ (정신아 의장 메시지)
  • [AI Matters] AI 시대 조직 변화와 인재 전략
  • [디지털데일리]기술은 진화했는데 업무 방식은 제자리... AI 도입 딜레마
  • [Trustworthy AI] Machine Unlearning of Features and Labels
  • [Velog] Unlearning : 머신러닝 모델도 '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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