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프로덕트] 시리즈
요즘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사실 '어떻게 만드는가'에 대한 기술적 장벽은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AI를 활용해서 뭔가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는데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더 중요해진 게 있습니다. 바로 이 두 가지를 정의하는 능력입니다.
[요즘 프로덕트]는 이렇게 탁월한 문제 정의로 시장의 판을 바꾸고 있는 메이커들의 사고방식을 추적해보는 시리즈입니다. 이번에는 아웃바운드 영업 없이 지난 해 1,000개 기업을 잡은 기업용 AI 서비스 웍스AI의 표철민 대표를 만났습니다.

표철민 대표는 요즘 하루에 3시간씩 잡니다. 쫓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무조건 도망만이 생존이다." 그가 하는 말이지만, 정작 그가 만드는 제품은 기업들이 AI를 도입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 웍스AI입니다. AI 때문에 도망치면서, AI로 도망치는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어딘가 아이러니하지만, 그는 이것을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AI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이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합니다.
그가 처음 AI 쪽으로 뛰어든 건 2023년 3월이었습니다. 블록체인 경기 침체로 회사 분위기가 무거웠던 시기, OpenAI API가 출시되던 날 밤 개발자 한 명과 함께 앉아 24시간 만에 제품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사이드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때는 이걸로 의미 있는 걸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초기였어요. 그냥 재미있는 걸 만들어 보자는 거였죠." 그게 지금의 웍스AI가 될 제품의 극초기 버전이었습니다.
3년이 지났습니다. 웍스AI는 지난해에만 1,000개 기업이 새로 도입한 기업용 AI 플랫폼이 됐습니다. 팀원은 20명입니다. 아웃바운드 영업은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영업 현장에서는 기업용 챗GPT의 국내 리셀러인 삼성SDS, LGCNS와 맞붙고 있고, LS그룹은 이 제품을 도입해 99% 비용 절감을 달성한 팀이 회장 표창을 받았습니다. 표 대표는 "AI가 없었으면 절대 못 했다"고 말합니다. 요즘IT '요즘 프로덕트' 시리즈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웍스AI의 전신은 '네이티브'라는 제품이었습니다. 2023년 초, 챗GPT가 막 화제가 되던 시절 한국어 사용자들에게는 뚜렷한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챗GPT가 영어에 비해 한국어를 훨씬 못했기 때문입니다. 표 대표는 여기서 틈새를 봤습니다. 번역 API를 앞에 붙여 한국어 입력을 영어로 바꾼 뒤 GPT에 보내고, 영어로 나온 답변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서 돌려주는 구조였습니다. "모든 네이티브 스피커들도 AI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컨셉이었습니다.
그런데 GPT-4가 나오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한국어를 너무 잘하게 된 거죠. 네이티브라는 제품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어디로 도망가야 할까, 하다가 ‘업무’로 좁히기로 했습니다. AI가 진짜 도움이 될 수 있는 영역은 결국 ‘일’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이에 2023년 8월, 이름을 웍스AI로 바꾸고 업무 특화 서비스로 피벗을 결정했습니다.
당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은 일반 직장인에게 높은 장벽이었습니다. 표 대표 팀은 여기에 집중했습니다. 문서 번역, 회의록 작성, 보고서 작성 같은 직장인들이 자주 마주치는 업무에 프롬프트를 미리 심어두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바로 결과가 나오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닌데, 그때는 나름 신박한 아이디어였어요."
초기에 담을 수 있는 기능의 기준은 단순했습니다. 당시 AI 성능으로 잘할 수 있는 것, 그중에서도 직장인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번역이 가장 먼저였고, 이후 유저 피드백을 받으면서 기능을 하나씩 붙여나갔습니다. 3년간 150회 이상의 업데이트가 그렇게 쌓였습니다. 현재는 번역뿐 아니라 보고서 작성, 엑셀 분석, 이미지 및 동영상 생성, 문서 관리 등 직장인의 업무와 관련된 다양한 기능을 담은 서비스로 성장했죠.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기업용 서비스를 염두에 둔 건 아니었습니다. 표 대표는 줄곧 B2C만 해온 사람이었고, B2B는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개인용으로 준비했던 서비스가 우연히 기업용 서비스에서 빛을 발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죠.
개인 사용자가 늘어나던 시기, 그는 요금 모델 실험을 병행했습니다. 당시 챗GPT 유료 구독이 월 22달러였는데, 실제 사용 데이터를 들여다보니 하루 평균 여섯 번 대화를 나눈다고 해도, 대화당 과금하면 한 달에 9천 원 수준이었습니다. 고정 월정액보다 실제로 쓴 만큼만 내는 종량제가 사용자에게 훨씬 유리하다는 계산이 섰습니다. 그렇게 후불 종량제를 도입하게 됐죠.
반응은 좋았지만, 문제는 그다음에 나타났습니다. 서비스를 쓰고 난 뒤 결제 시점 이전에 카드를 해지해버리는 사용자들이 생긴 것입니다. 이른바 "먹튀"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개인에게는 더 이상 후불 종량제를 제공하지 않고 월 구독료를 내는 모델로 바꾸게 되죠.
그런데 이 종량제 모델이 기업 시장에서 먹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표 대표에 따르면 챗GPT 기업용 구독은 인당 월 40~50달러, 직원 1,000명이면 한 달에 7,000만 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AI를 매일 쓰는 헤비유저는 전체의 10%에 불과하고, 아예 안 쓰는 직원도 절반에 달한다고 합니다. 종량제로 전환하면 실사용량 기준으로만 과금되기 때문에, 어떤 회사든 월정액 구독 대비 95% 이상 저렴해진다는 게 그의 계산입니다.
개인 사용자에게는 독이 됐던 후불 종량제가, 기업에게는 오히려 강점이었습니다. 비용 부담 없이 전사 도입이 가능하고, 안 쓰는 직원이 많아도 그만큼 비용이 줄어드니까요. 또 웍스AI 입장에서도 ‘먹튀’ 위험 부담이 적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웍스AI는 본격적으로 기업용 제품으로 무게중심을 옮겼습니다. B2C 실험의 실패가 B2B의 무기가 된 셈이었습니다.

기업 고객을 상대해보니 개인 사용자와는 전혀 다른 요구들이 쏟아졌습니다. 기업들이 가장 먼저 물어보는 건 보안이었습니다. 표 대표는 "지난 2년간 AI 기능 개발보다 보안 기능만 거의 개발했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웍스AI는 현재 5중 차단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외부 공격을 막는 웹 방화벽(WAF)이 맨 앞에서 한 번 거르고, 하드웨어 DLP, 소프트웨어 DLP, AI 가드레일, 마지막으로 LLM 자체 가드레일까지 순서대로 통과해야 합니다. "왜 코드를 올렸는데 실행이 안 되냐는 문의가 고객센터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5중 차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표 대표는 말합니다.
비용 관리도 기업의 큰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종량제의 장점이 자칫 단점이 될 수 있는 지점, 즉 요금이 예상보다 많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를 관리자 기능으로 해소했습니다. 전사 한도와 인당 한도를 미리 설정할 수 있고, 비용이 높은 모델은 관리자가 아예 꺼둘 수도 있습니다. 기본료는 없습니다. 3,000명, 4,000명 규모의 기업도 사용하지 않으면 요금이 0원입니다.
기업의 요구에 따라 직원들의 사용 현황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누가 언제 로그인했는지, 어떤 파일을 올리고 내려받았는지, 어떤 에이전트를 만들었는지까지 모든 활동이 감사 로그로 쌓입니다. 부서 간 데이터 차단도 적용돼 있어, 인사팀이 만든 AI 에이전트를 재무팀이 볼 수 없습니다. 직원들이 사내 IP에서만 접속할 수 있도록 통제하거나, 집에서는 파일 다운로드를 막는 것도 가능합니다.
기업의 보안과 비용 관리 등에 대한 요구에 빠르게 대응하다 보니, 현재 LS그룹, 현대건설, 포스코인터내셔널, 한국거래소, 서울시 교육청을 비롯한 6개 교육청 등 규모가 큰 기업, 공공기관들이 웍스AI를 전사 도입했습니다.
기업 고객이 늘어나면서 웍스AI에는 독특한 기능들이 하나씩 붙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기업들의 요구사항을 반영하다 보니, 해외 서비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능들이 생겨난 겁니다. 표 대표는 그중 가장 독특한 것으로 '킬 스위치'를 꼽습니다.
버튼 하나를 누르면 전 직원의 접속이 즉시 차단되는 기능입니다. 조사, 감사 등의 상황에 대비해, 외부 인력에게 민감한 정보를 노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건 진짜 전 세계에서 저희밖에 없을 거예요." 표 대표의 말입니다. 한국 기업 특유의 니즈가 만들어낸 기능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오너 이름을 AI에 입력하지 못하도록 막는 금칙어 설정, 계열사마다 다른 도메인을 하나의 워크스페이스에서 통합 관리하는 기능, 특정 그룹웨어 계정으로만 로그인을 허용하는 설정까지. 기업마다 다른 요구사항을 하나씩 받아 제품에 녹여온 결과입니다. 표 대표는 하루에 최소 50개 이상의 고객 문의를 직접 처리한다고 합니다. "피드백이 타당하다 싶으면 2시간 안에 업데이트해요. 그냥 바로 고쳐드립니다."
개인정보 처리 방식도 한국 기업 환경에 맞게 설계됐습니다. 직원이 주민번호나 전화번호가 포함된 문서를 올리면, AI 가드레일이 국내 서버에서 해당 정보를 자동으로 마스킹한 뒤 해외 LLM으로 전송합니다. 정보가 해외 서버로 나가기 전에 국내에서 걸러지는 구조입니다. 올해 1월 시행된 AI 기본법 요건도 이미 제품 안에 내장돼 있습니다.
표 대표는 웍스AI가 "모델 개발사와 B2B 고객들 사이에서 최신 AI 모델을 잘 버무려서 갖다 드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웍스AI에서는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같은 외산 모델은 물론, 국내 소버린 AI 모델까지 골라서 쓸 수 있습니다. 개발자가 아닌 일반 직장인 입장에서는 어떤 모델이 좋은지 비교해볼 여유가 없는데, 웍스AI가 그 선택지를 한 곳에 모아두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도면 분석이 필요한 고객이 생기면, 전 세계 AI 모델 중 도면에 최적화된 것을 찾아 붙여주는 식입니다.

천 개 이상의 기업이 고객이 되며 생긴 또 다른 변화도 있습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최신 모델을 웍스AI에 먼저 선공개해주는 AI 개발사들이 생기기 시작한 겁니다. 국내 소버린 AI 경쟁에서 3강에 오른 모델 중 두 개를 웍스AI가 국내 최초로 서빙하기도 했습니다. "저희 고객들 입장에서는 좋은 모델을 빨리 받아서 좋죠." 규모가 신뢰를 만들고, 신뢰가 다시 고객에게 돌아오는 구조입니다.
영업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지난해 1,000개 기업이 들어왔다면, 경쟁사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습니다. 지금 웍스AI의 영업 현장 맞은편에는 삼성SDS와 LGCNS가 있습니다. 챗GPT 엔터프라이즈의 국내 총판들입니다. 팀원 20명짜리 스타트업이 대기업 SI 계열사와 같은 테이블에서 경쟁하고 있는 겁니다.
표 대표는 해자를 묻는 질문에 조심스럽게 답합니다. "AI 시대에는 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요. 딸깍하면 모든 게 튀어나오는 마당이니까요." 실제로 웍스AI가 먼저 만든 종량제 모델을 비슷하게 따라 만드는 국내 B2B 회사들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기술 구현 자체는 더 이상 해자가 되지 않는다는 걸 표 대표도 압니다.
그가 유리하다고 보는 건 다른 지점입니다. "구현보다는 뭘 만들 것인가의 해자"입니다. 천 개 기업의 피드백은 경향성을 띱니다. 어떤 시즌이 되면 비슷한 요구가 겹쳐서 들어옵니다. 웍스AI는 그걸 가장 먼저 감지하고, 가장 빨리 만듭니다. 다른 회사들은 그다음에 따라옵니다. "저희가 맨날 고객 피드백을 먼저 받고 있으니까요." 말하자면 선점한 고객 기반이 다음 제품의 나침반이 되는 구조입니다.

팀 규모도 무기입니다. 20명 중 개발팀은 10명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불가능한 규모였겠지만, 지금은 AI로 개발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AI가 없었으면 절대 못 했죠." 피드백이 타당하다 싶으면 2시간 안에 업데이트가 나갑니다. 대기업 SI 계열사가 따라오기 어려운 속도입니다.
B2B가 처음이었던 표 대표가 택한 또 다른 전략은 제품의 결을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특유의 딱딱함 대신, 직관적이고 아기자기한 UI를 고집합니다. 비디오 생성 기능 하나를 만들더라도 '카메라 고정', '안정적', '역동적' 같은 용어 대신 마우스를 올리면 예시 영상이 재생되는 방식으로 만듭니다. "토스 수준의 압도적으로 쉬운 제품에 집중하자"는 게 그의 목표입니다. 전사 도입용 제품인 만큼, AI에 익숙하지 않은 직원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입니다.
표 대표는 AI 업계 한복판에 있으면서, AI에 가장 위협받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라는 걸 압니다. 신입 기획자들이 클로드 코드로 시니어 수준의 기획을 건너뛰고 제품을 만들어 내는 걸 매일 봅니다. "프로덕트 메이킹의 전문성이라는 게 의미가 있나." 그가 매일 하는 고민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메이커에게 창이 열려 있다고 보는 건 메이커들이 "깎는 것"을 잘하기 때문입니다. AI는 딸깍 한 번으로 제품을 뚝딱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다듬는 건 다른 얘기입니다. "해본 사람이 잘해요. 뭘 어떻게 깎아야 되는지 알잖아요." 제작팀을 꾸려 협업하고, 오더를 내리고 받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 그 역할을 AI에게 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이 창이 “2년 안에 닫힐 수 있다”고도 합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란 것이 불과 2년 만에 무의미해진 것처럼요.
그런데 “더 근본적인 위기는 따로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일식집 주방장처럼 깊은 도메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AI의 도움으로 직접 제품을 만들기 시작하면, 만드는 기술만 있고 도메인이 없는 IT 업계 사람들이 설 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IT 업종이 다른 업종보다 큰일 났어요." 스스로 클로드 코드 에반젤리스트를 자처하며 주변 모든 사람에게 바이브코딩을 권하고 다니는 사람이, 정작 그 파도가 자신에게 가장 먼저 덮칠 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결국 그가 선택한 답은 더 빠르게 도망치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도 새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B2B인 웍스AI와는 별개로, 개인용 AI 에이전트를 처음부터 다시 짜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앱 하나씩. 그냥 무조건 만들어요." 뭘 만들지를 아는 사람이 살아남는 시대에, 많이 만들어봐야 뭘 만들지가 보인다는 겁니다. 많은 기업이 찾는 프로덕트를 만들고도, 그의 도망은 계속됩니다.
“자기 제품에 안심할 수 있는 날이 한 달 정도밖에 안 되는 시대 같아요. 열심히 도망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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