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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AI 시대의 디자이너를 위한 글쓰기

디논
8분
2시간 전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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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 AI 시대를 사는 디자이너의 무기, UX 심리학에서는 UX 심리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와 중요성에 대해 다루었다. 핵심은 사용자의 심리를 이해해야 긍정적인 경험을 디자인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AI가 몇 줄의 프롬프트만으로도 고충실도(Hi-Fi) 화면을 만들어내는 지금 시대에는, 인간 고유의 공감 역량을 발휘해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을 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출처: 작가, 요즘IT 캡처>

 

그렇다면 공감을 위한 이해의 기초인 UX 심리학은 어떻게 공부할 수 있을까? 사실 자이가르닉 효과, 목표 가속화 효과, 피크 엔드 법칙과 같은 개념과 그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론이 실제 서비스에 어떻게 적용됐는지 살펴보고, 이를 디자인 아이디어로 연결하는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정리해야 비로소 온전히 나의 지식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바로 이 지점에서 막히곤 한다. 글을 읽으며 이론은 이해했지만, 막상 사례를 마주하면 설명하기 어려운 데다 글로 정리하려 하면 생각이 흐트러진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UX 사례를 분석하고 하나의 글로 완성함으로 나만의 사고 체계를 만들어가는 글쓰기 방법을 5단계 프레임워크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는 실제로 내가 책 「30가지 심리학 이야기로 풀어보는 UX 디자인」을 집필할 때 활용했던 방법이기도 하다.

 

UX 심리학 글쓰기를 위한 5단계 프레임워크

분석과 글쓰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하나의 주제를 정하는 일이다. 아직 주제를 정하지 못했다면, UX 심리학과 관련된 아티클을 두루 살펴본 다음 가장 흥미가 가는 주제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그 다음으로 5단계 분석 내용을 정리할 노트를 미리 만들어두는 것이 좋다. 이 글에서는 노션(Notion)에 정리한 내용을 예시로 들어 설명한다.

 

UX 심리학 분석 5단계 프레임워크 <출처: 작가>

 

1. Research: 개념 리서치

분석의 첫 단계는 핵심 정의를 정리하는 일이다. 피크 엔드 법칙(Peak-End Rule)을 예로 들어보자. 이는 사람들이 하나의 경험을 평가할 때, 전체 경험의 총합이나 평균이 아니라 ‘가장 강렬했던 순간(Peak)’과 ‘경험이 끝나는 순간(End)’을 중심으로 기억하고 판단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 Research 단계에서는 개념 정의를 한 문장으로 명확히 쓰는 것이 중요하다. 정의를 한눈에 보여주는 그림이나 도식도 함께 정리해두는 것이 좋다. 나중에 다시 살펴볼 때 텍스트를 읽지 않아도, 그림만 보고 개념이 바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론의 정의에서 끝내서도 안 된다. 정의가 개념의 ‘결론’이라면, 추가 리서치는 그 과정과 맥락을 이해하는 단계가 되어야 한다. 이때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 이 이론은 어떻게 밝혀졌을까?
  • 어떤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개념일까?
  • 이 개념과 함께 자주 언급되거나 여기서 파생된 관련 이론은 무엇일까?
  •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이러한 질문을 앞서 예시에 던져 보자. 피크 엔드 법칙은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과 바바라 프레드릭슨(Barbara Fredrickson)이 고통 경험을 조작한 실험을 통해 처음 제시됐다. 두 학자는 고통의 강도와 지속 시간을 다르게 설계한 두 가지 조건을 비교했고, 그 결과 사람들의 선호가 고통의 총량이 아니라 ‘마지막 경험’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Research 단계 예시 <출처: 작가>

 

이처럼 어떤 관찰과 검증 과정을 통해 개념이 도출됐는지 그 뿌리를 살펴보면 이해가 깊어진다. 그에 따라 이후 단계에서 더 적절한 사례를 찾고 디자인 전략을 고민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2. Explore: 사례 탐색

개념 리서치로 이론의 정의와 맥락을 파악했다면, 다음 단계는 이 이론이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사례를 탐색하는 일이다. 이때 탐색 범위를 반드시 디지털 서비스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일상 속 개인적인 경험부터 떠올려보는 편이 개념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태국 여행을 갔을 때 도착하자마자 몸살이 나 이틀 동안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숙소에 누워 있었지만, 마지막 날 방문한 온천이 너무 좋아 여행 전체가 행복한 기억으로 남는 경우를 상상해볼 수 있다. 여행의 시작은 힘들었지만 끝에서 느낀 감정이 전체 인상을 바꿔버린 피크 엔드 법칙의 사례다. 이런 일상 속 경험으로 심리학 개념이 이론서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반복적으로 겪어온 사고 패턴임을 확인할 수 있다.

 

Explore 단계 예시 <출처: 작가>

 

그 다음 디지털 서비스로 범위를 넓혀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 이론이 잘 적용된 사례만 찾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같은 이론이라도 어떤 지점에서는 긍정적인 경험을 만들지만, 다른 지점에서는 강한 거부감이나 이탈을 유발하기도 한다.

 

피크 엔드 법칙의 좋은 사례로는 픽사의 404 오류 페이지를 들 수 있다. 오류 페이지는 사용 흐름이 끊기며 부정적인 감정이 급격히 높아지기 쉬운 구간이다. 픽사는 이 순간에 ‘슬픔이’ 캐릭터를 활용한 재미있는 디자인을 적용해, 사용자의 실망감이 정점(peak)까지 치솟는 것을 완화한다. 즉, 부정적으로 형성될 수 있는 피크 경험을 디자인으로 관리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나쁜 사례로는 스포티파이의 구독 해지 경험을 들 수 있다. 이 서비스는 해지 과정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여러 단계를 거치도록 설계돼 있어 마지막 순간에 강한 불쾌감을 남긴다. 이 경우 이전까지의 사용 경험과 무관하게 해지 과정에서 형성된 부정적 감정이 서비스 전체를 대표하는 기억으로 남는다. 이처럼 사례를 정리하다 보면 엔드 지점이 어떻게 서비스의 인상과 사용자 경험을 망치는지 분명하게 이해하게 된다.

 

Explore 단계 예시 <출처: 작가>

 

사례 탐색은 반드시 직접 사용해본 서비스에만 국한될 필요도 없다. 이론과 관련된 해외 아티클이나 UX 분석 글을 찾아보며, 평소 접하지 않았던 사례를 새롭게 접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새로운 사례를 찾기 위해 앱스토어 인기 순위 차트를 살펴볼 수도 있다. 상위 랭킹에 오른 앱을 직접 다운로드해 사용해보고 해당 이론이 작동할 수 있는 지점을 의식적으로 관찰해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례 그 자체보다 해당 이론이 어떤 방식으로 적용됐는지를 분석하는 데 있다.

 

이처럼 사례를 탐색하는 과정을 거치면 다음 단계인 ‘이 이론을 디자인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다.

 

3. Apply: 디자인 적용

탐색 단계에서 사례를 충분히 살펴봤다면, 이제 이론을 디자인 전략으로 전환해볼 차례다. 앞에서 나쁜 사례를 찾았다면 오히려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더 수월하다. 예를 들어, 앞서 살펴본 스포티파이의 구독 해지 경험을 떠올려보자.

 

이 사례의 핵심 문제는 서비스 종료 시점이 부정적으로 설계돼 있다는 점이다. 이를 출발점으로 삼아 해지 과정이나 해지 이후의 경험을 어떻게 다시 설계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식이다. 예를 들어 ‘이용 권한을 잃게 된다’는 식의 위협적인 UX 라이팅 대신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거나 그동안의 이용 기록을 긍정적으로 정리해 보여주는 방식도 가능하다.

 

Apply 단계 예시 <출처: 작가>

 

앞서 조사한 사례가 아니더라도, 평소 자주 사용하는 서비스나 현재 기획 중인 서비스에 적용할 새로운 전략을 떠올려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밀리의 서재의 경우, 책을 끝까지 읽어도 ‘진도율 100%’라는 표시 외에는 완독에 대한 분명한 보상이 제공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도 어딘가 덜 마무리된 듯한 찝찝함을 느낄 수 있다. 이때 피크 엔드 법칙을 고려해 완독 직후 축하 메시지를 제공하는 디자인을 추가한다면 서비스가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Apply 단계 예시 <출처: 작가>

 

이처럼 1, 2단계가 개념을 이해하고 조사하는 과정이었다면, 3단계에서는 심리학 이론을 본격적으로 디자인 판단에 활용하게 된다.

 

4. Think: 사고 확장

글을 쓰기 전 마지막 단계는 사고를 확장하는 시간이다. 이때는 앞서 이론을 조사하고 사례를 탐색하며 떠올랐던 질문이나 의문이 생겼던 지점을 먼저 적어본 뒤 스스로 답해볼 수 있다. 1, 2, 3단계는 같은 이론을 다루는 이상 누구나 비슷한 내용을 담지만, 4단계에서는 나만이 다룰 수 있는 내용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스포티파이 해지 절차 사례를 더 확장해볼 수 있다. ‘서비스 해지 시점의 경험을 리텐션으로 연결하려면 어떤 디자인을 시도해볼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이 질문에는 단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꼭 정답을 맞출 필요도 없다.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만약 적절한 질문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AI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어떤 방향으로든 내 생각을 확장할 수 있다면 좋은 질문이 된다.

 

Think 단계 예시 <출처: 작가>

 

5. Write: 언어화하여 정리

마지막 단계는 이제까지 모아둔 여러 재료를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하는 과정이다. 4단계를 거치며 개념 정의와 이론의 뿌리, 관련 사례와 리디자인 아이디어, 그리고 한층 확장해본 생각까지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쌓였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 내용을 그대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읽기 쉬운 흐름으로 재배치하는 일이다.

 

여기서 말하는 독자는 글의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피크 엔드 법칙을 적용한 디자인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둔다면 이를 고려해 목차를 짜야 한다.

 

Write 단계 예시 <출처: 작가>

 

예를 들어 2단계에서 찾은 일상 사례는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 서두에 배치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서비스 디자인이나 이론을 말하기에 앞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을 보여주며 몰입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다음 ‘왜 이런 사례가 발생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자연스럽게 피크 엔드 법칙의 정의를 소개하는 본론으로 넘어갈 수 있다.

 

본론에서 개념을 정리한 이후에는 글의 주제인 ‘디자인 적용 방법’을 다루게 된다. 이해를 돕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이론 설명에만 머무르기보다 앞서 찾은 사례 위주로 풀어내는 편이 낫다. 이때 잘 적용된 사례와 그렇지 못한 사례를 나란히 비교해 보여줄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목차로 정리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목차를 먼저 세팅해두면 실제 글을 쓸 때 헤매지 않고 일관된 메시지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다.

 

 

마치며: AI 시대,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

지금까지 UX 심리학 이론을 학습하고 이를 나만의 언어로 정리하는 방법을 살펴봤다. 단계를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단순히 이론을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심리학 개념을 디자인 아이디어로 연결하는 사고방식까지 연습할 수 있다. 또한 하나의 주제를 깊이 탐색하고 이를 글로 구조화하는 과정은 사고력을 끌어올리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고력이야말로 AI 시대에 더욱 중요하게 요구되는 역량이다.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책, 「AI를 이기는 철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저자 오가와 히토시는 AI 시대에는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과 그에 복종하는 사람으로 인재 양극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AI의 노예 혹은 복종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말로 표현하는 언어화 연습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AI를 이기는 철학’으로, 다음과 같은 세 단계로 구성된다.

 

AI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기 위해 중요한 철학의 3단계

 

  1. 의심: 고정관념 부수기
  2. 재구성: 정보 수집하기
  3. 언어화: 말로 표현하기
     

출처: 오가와 히토시, 「AI를 이기는 철학」

 

마지막 단계, ‘말로 표현하기’가 바로 언어화다. 결국 ‘사고’란 사물의 본질을 고민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을 말로 표현함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이렇게 제대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이 더욱 필요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대부분 작업을 가져갈 것이라 예측되는 전환기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습은 결국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UX 심리학처럼 새로운 분야를 공부할 때도, 이론을 많이 아는 것 자체보다 이론을 기준으로 사례를 해석하고 이를 디자인 전략으로 연결한 뒤, 다시 자신의 언어로 정리해보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글에서 소개한 5단계 프레임워크를 반복하는 일은 사고력을 기르는 연습뿐 아니라 그런 성장을 증명하는 나만의 포트폴리오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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