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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일본 개발자의 좌충우돌 첫 납품기: 기술 너머의 신뢰

김동혁
7분
3시간 전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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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냄새 밴 낡은 사무실에서 시작된 도전

저에게 일본에서 개발자로 일하며 가장 긴장했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그날을 꼽습니다. 난생처음 작성한 코드가 서버에 배포되던 날도, 심각한 버그를 냈던 날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고객 앞에 홀로 섰던, 도쿄 외곽의 어느 택시 회사 방문일이었죠. 도쿄의 화려한 빌딩 숲을 벗어나 전철로 한참을 달려 도착한 이바라키현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오래된 건물이 서 있었습니다.

 

<출처: 작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켜켜이 묵은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쇼와 시대의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그곳은 최신 IT 기술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곳을 지키고 있는 직원분들은 의외의 따뜻함으로 저를 맞아주셨습니다. 머리가 희끗한 연배 높은 직원분들은 서툰 일본어로 인사를 건네는 저에게 "멀리서 오느라 고생 많았어, 여기 좀 앉게"라며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셨습니다.

 

일본어가 완벽하지 않은 외국인 개발자가 통역도 없이 마주 앉아야 했던 그 자리. 낡은 건물의 풍경만큼이나 낯설고 두려운 '맨땅에 헤딩'의 현장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속으로 "과연 내 일본어 실력으로 이분들의 업무를 이해하고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까?"라고 끊임없이 되물었습니다. 다행히 고객의 따뜻한 배려 덕분에 프로젝트는 첫발을 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제가 마주할 진짜 어려움은 언어 장벽이 아니라, 레거시 기술 속에 숨겨진 암호 같은 코드들, 그리고 바닥부터 신뢰를 쌓아가야 하는 고독한 과정 그 자체라는 것을요.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실패로 점철된 아픈 첫 시도와, 그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며 배운 ‘기술 너머의 가치’에 대한 기록입니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주니어 개발자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미리 요점만 콕 집어보면?

  • 일본어가 완벽하지 않은 외국인 개발자가 통역도 없이, 고객 앞에 홀로 섰던 순간은 낯설고 두려운 ‘맨땅에 헤딩’의 현장이었습니다.
  • 회사 사정상 예산 문제로 프로젝트팀이 해체되었고, 기존에 델파이(Delphi)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저 혼자 복구하며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 그러나 결국 기술을 완성하는 것은 사람 간의 신뢰이며, 끝까지 책임지려는 태도만 있다면 그 진심은 반드시 통하게 되어 있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팀 해체, 그리고 홀로 남겨진 프로젝트

<출처: 작가>
 

 

기대감으로 시작했으나 마주한 현실

2022년, 일본에서의 첫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치고 본사로 복귀했을 때 제 마음은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습니다. 회사로부터 사내 위탁 개발로 들어온 ‘택시 배차 및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하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인데요. 저를 포함해 경험이 적은 일본인 개발자, 열정적인 필리핀 인턴, 그리고 우리를 이끌어줄 한국인 베테랑 리더까지 총 4명이 한 팀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구성도 꽤나 완벽해 보였죠.

 

"드디어 우리만의 사내 솔루션을 만들 수 있겠구나!" 팀원들과 매일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쏟아냈습니다. 일주일간 서로 으쌰으쌰 하며 화면 설계를 정리했고, 프론트엔드는 리액트(React), 백엔드는 스프링 부트(Spring Boot)로 개발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습니다. 최신 기술 스택으로 무장한 프로젝트는 성공을 보장받은 것처럼 보였고, 저희는 자신감에 차 있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말이죠.

 

예산 삭감, 그리고 델파이(Delphi)와의 만남

하지만 그 부푼 꿈은 정확히 일주일 만에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월요일 회의 시간, 회사 사정상 예산 문제로 프로젝트팀을 해체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다음 지시였습니다. 다른 팀원은 모두 철수하고, 이 프로젝트를 저 혼자 진행하라는 것이었죠.

 

심지어 요구사항도 "기존에 델파이(Delphi)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역컴파일(Decompile)해서 똑같이 복구하라"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4명이 함께 최신 웹 기술로 만들려던 프로젝트가, 갑자기 저 혼자 짊어져야 할 짐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것도 모자라 수십 년 전 기술인 Delphi 시스템을 복제해야 하는 ‘과거로의 회귀’가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어 변수명과 동작하지 않는 코드의 늪

<출처: 작가>
 

 

외계어가 되어버린 코드들

지시받은 대로 기존 시스템을 역컴파일해 보았지만, 모니터에 뜬 결과물을 보는 순간 저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영어로 되어 있어야 할 변수명들이 가타카나와 한자로 뒤섞인 ‘일본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변수명뿐만 아니라 함수명까지 일본어로 작성된 코드는 마치 난해한 고문서를 해독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기능은 또 왜 그리 많은지, 수십 개의 화면과 복잡한 로직이 얽혀 있었지만 정작 제대로 동작하는 기능은 거의 없었습니다. 화면 껍데기만 겨우 복구되었을 뿐, 버튼을 누르면 에러 메시지가 쏟아졌고 데이터베이스(DB) 연결조차 불투명했습니다. Delphi는 최신 언어와 달리 관련 자료나 레퍼런스를 찾기가 너무 힘들었고, 구글링을 해도 2000년대 초반의 문서만 드문드문 나올 뿐이었죠. 매뉴얼도, 설계서도 없는 상황에서 오직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일본어 코드 덩어리’만 붙들고 있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번역기를 켜고 시작한 히어링

혼자서 끙끙 앓다가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아 결국 고객을 직접 만나러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 저는 일본에 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동행한 영업 선배님의 일본어조차 절반도 알아듣지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담배 냄새 자욱한 사무실에서, 저는 스마트폰 번역기를 켜고 더듬더듬 단어를 조합해 질문을 던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말이 통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이해하려는 태도”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제가 서툰 일본어로 질문을 던지고, 못 알아들은 부분은 녹음을 해서라도 이해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자 변화가 생겼습니다. 처음엔 경직되어 있던 고객도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기 시작한 것이죠. 창고에서 먼지 쌓인 매뉴얼을 찾아주신 것도 그즈음이었습니다.

 

 

한 달 250시간의 사투, 그리고 귀국을 고민하다

<출처: 작가>

 

두 마리 토끼를 쫓다 넘어진 날

하지만 1인 개발의 한계는 명확했습니다. 프로젝트 시작 후 2~3개월이 지났을 무렵, 회사의 지시로 저는 다른 신규 프로젝트에 추가 투입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지옥 같은 이중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낮에는 본업인 신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퇴근 후와 주말에는 택시 앱 개발에 매달려야 했죠. 택시 프로젝트 업무를 제외하고도 본업 근무 시간만 한 달에 250시간을 찍을 정도로 살인적인 스케줄이었습니다.

 

체력은 바닥났고,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냥 한국으로 돌아갈까?" 이런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었습니다. 결국 과부하가 걸린 저는 신규 프로젝트팀에서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는다며 호된 질책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팀에서 방출되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기술적으로 Delphi 시스템을 단순히 베끼는 것만으로는 유지보수와 확장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에, 저의 번아웃과 맞물려 첫 번째 시도는 뼈아픈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로컬에서 클라우드로, 웹(Web)으로 다시 시작된 기회

<출처: 작가>

 

든든한 지원군과 함께한 재도전

실패의 쓴맛을 보고 난 뒤, 잠시 잊고 지냈던 택시 프로젝트가 기적처럼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회사를 잠시 떠나셨던 선배님이 복귀하시면서, 이 프로젝트를 Delphi가 아닌 ‘웹 기반 시스템’으로 다시 제안해 보자고 하신 겁니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참여했던 프로젝트 회사의 사장님, 그리고 예전에 함께 손발을 맞췄던 필리핀 인턴 동료까지 합류하여 든든한 드림팀이 다시 꾸려졌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아, Delphi 대신 처음에 계획했던 웹 기술을 과감하게 도입했습니다.

 

기술적 난제를 해결한 협업의 힘

가장 큰 변화는 데이터의 안정성이었습니다. 기존 Delphi 시스템은 로컬 PC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이라, 컴퓨터가 고장 나면 모든 데이터가 날아갈 위험이 있었죠. 우리는 이를 아마존 웹 서비스(AWS) 클라우드 기반으로 전환하여 데이터 안정성을 확보했습니다. 또한 투박하고 사용하기 어려웠던 기존 UI를 걷어내고, 웹 표준에 맞춘 직관적이고 편리한 사용자 경험(UX)으로 개선했습니다.

 

특히 가장 큰 난관이었던 ‘택시 요금 계산 로직’을 해결하던 과정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문서에도 없는 복잡한 수식을 찾아내야 했는데, 저는 숫자를 하나하나 대입하며 엑셀로 시뮬레이션을 돌렸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심야 할증과 거리 비례 요금이 복합적으로 적용된 계산식을 역으로 찾아냈고, 이를 고객에게 제안했을 때 “맞아요! 바로 그 식입니다!”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했던 일이, 팀이 뭉치고 기술적 방향성이 명확해지자, 비로소 해결되기 시작했습니다.

 

 

“돈짱 덕분에 생각이 바뀌었어” - 오마카세와 눈물

<출처: 작가>

 

신뢰가 만든 기적

우여곡절 끝에 시스템을 무사히 납품하고, 택시 회사 사장님과 회식을 하게 된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특별히 오마카세와 비슷한 고급 코스 요리집으로 저희를 데려가 주셨는데요. 정갈한 요리가 나오고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사장님께서 술잔을 기울이시며 의외의 고백을 하셨습니다. “사실 나는 어릴 적 재일교포들과 싸운 기억 때문에 한국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순간 분위기가 정적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사장님은 이내 웃으며 덧붙이셨습니다. “그런데 ‘돈짱(제 별명)’이 땀 흘리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네.” 60대 사장님의 입에서 나온 그 진솔한 말씀을 듣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습니다. 지난 몇 달간 250시간씩 일하며 한국으로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들, 일본어 변수명을 보며 절망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인정받음의 안도감

<출처: 작가>

 

안도감과 함께 울컥하는 감정이 솟구쳤습니다. 단순히 시스템을 납품한 개발자가 아니라, 진정한 파트너로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먹었던 요리의 맛보다, 사장님의 그 한마디가 제게는 더 깊은 위로와 보상으로 다가왔습니다. 신뢰는 곧 새로운 기회로 이어졌습니다. 택시 회사는 배차 시스템에 이어 ‘급여 관리 시스템’ 개발까지 저희에게 맡기고 싶다고 제안해 왔습니다. 단순한 외주 개발자가 아니라, 회사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주는 진정한 파트너가 된 것입니다.

 

 

결론: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진심을 다하는 태도입니다

<출처: 작가>

 

이바라키의 낡은 사무실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를 통해 제가 배운 것은 명확합니다.

 

  • 첫째, 언어와 환경은 결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유창한 일본어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을 직접 찾아가 이해하려 노력하는 ‘성실한 태도’였습니다.
  • 둘째, 실패는 끝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사실입니다. Delphi 프로젝트의 처절한 실패가 없었다면, 웹으로의 전환이나 AWS 도입의 필요성을 이토록 절실히 깨닫지 못했을 겁니다.
  • 셋째, 결국 기술을 완성하는 것은 사람 간의 신뢰입니다. 아무리 완벽한 코드를 짠다 해도, 고객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그 프로젝트는 절반의 성공일 뿐입니다. 지금 해외 취업을 준비하거나, 낯선 환경에서 고객과의 소통을 두려워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도망치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도 반드시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자리를 지키며 끝까지 책임지려는 태도만 있다면, 언젠가 그 진심은 반드시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의 서툴고 부족했던, 하지만 치열했던 첫 납품 이야기가 타국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개발자들에게 “실패해도 괜찮다”는 작은 용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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