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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어느 날 AI가 시니어 개발자를 모두 대체한다면

zwoo
7분
2시간 전
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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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회사가 시니어 개발자를 채용해야 하는 이유는?

 

디즈니 영화 ‘월-E’에는 인간 선장과 AI 비서가 지구 귀환을 두고 대립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700년 전 지구를 떠날 때 입력된 정보에 따라, AI는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 여전히 위험하다고 판단한다. 반면, 선장은 지구 탐사 로봇이 가져온 작은 식물을 보고, 이제 지구로 귀환해도 괜찮다고 결정한다. 이 장면은 흔히 경직된 AI 판단과 유연한 인간 판단의 대비로 해석된다.

 

그런데 만약 AI가 지속적으로 지구의 오염도를 학습해서, 이제 지구에 귀환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어떨까? 그래도 인간 선장이 필요할까? 사실 우주선은 미리 정해진 경로에 따라 자율주행을 하며, 실질적인 업무는 AI 비서가 처리한다. 인간 선장이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선장의 역할을 대대로 인간이 맡아야 했던 것은, 판단할 책임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만약 지구 귀환이 실패로 끝났다면, 그 선택의 책임은 AI가 아니라 선장이 져야 했을 것이다.

 

현실에서 우리는 AI에 점점 더 많은 판단과 역할을 위임하고 있다. 몇 년 전, 내가 개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코딩을 도와주는 AI가 등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입 개발자의 단순한 업무를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서더니, 이제는 구체적인 지시 없이도 하나의 서비스를 구현하고, 사람의 판단을 교정하기도 하는 능력을 갖추었다. 

 

어쩌면 현재 시니어 개발자의 업무 상당 부분을 AI가 대체하는 날이 머지않았을지도 모른다. 최근 고도화된 AI 서비스들은 AI 에이전트들을 여러 개 만들어서 마치 하나의 팀처럼 역할을 부여하고 상황에 따라 적절한 에이전트에게 라우팅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만약에 좀 더 미래에, AI 시니어 에이전트를 만들 수 있다면, 그럼에도 회사는 시니어 개발자를 채용할 이유가 있을까?

 

나는 이 고민을 토대로, 평소 존경하던 시니어 개발자분들이 AI로 대체되는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이 글에서는 그 질문을 따라가며, 내가 도달한 결론과 그 이유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물론 미래는 열려 있기에, 나와 다른 예측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다른 미래를 상상해 본 분이 있다면, 댓글로 공유해 주셔도 좋을 것 같다.

 

<출처: ChatGPT 생성>

 

미리 요점만 콕 집어보면?

  • 디즈니 영화 ‘월-E’의 선장 사례처럼, AI가 판단을 대신하더라도 그 판단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주체로서 인간은 여전히 필요하다.
  • 국내 IT 조직에서 시니어 개발자는 기술 판단뿐 아니라 실패 시 설명과 수습, 신뢰 회복까지 담당하는 책임의 중심에 있는 역할이다.
  • AI는 판단을 정교하게 내릴 수는 있어도 책임을 자기 문제로 끌어안을 수 없기에, 회사는 여전히 시니어 개발자를 채용해야 한다.
 

국내 IT 조직 속 시니어의 역할은?

개발 직군에서 시니어는 기술 리더로서의 역할이 먼저 요구된다. 동시에 동료들의 성장을 돕는 역할도 함께 맡는다. 미국에서는 이를 엔지니어 트랙과 매니저 트랙으로 나누어 각각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 IT 조직에서는 많은 경우 ‘팀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한 사람이 두 역할을 함께 수행한다.

 

이런 구조에서 팀장은 프로젝트의 품질을 관리하는 동시에, 개별 팀원의 성장과 업무 분배에도 관여해야 한다. 권한이 많은 만큼 결정해야 할 일도 많고, 그 결정의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팀장의 몫으로 귀속된다. 시니어라는 역할은 단순히 기술적 판단을 내리는 위치가 아니라, 그 판단이 실패했을 때 조직 내에서 설명과 수습을 담당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AI 시니어의 한계가 드러난다. AI는 기술적 판단을 내리는 데에는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 판단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동일한 방식으로 떠안기는 어렵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단순히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그로 인해 발생한 손실과 후속 영향을 자신의 역할과 신뢰에 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급여나 인센티브 조정, 역할 변화, 평가 하락 등은 그 책임이 조직 내에서 가시화되는 대표적인 형태다.

 

AI는 판단의 결과로 인한 손실이 자기 존재에 귀속되지 않는다. AI에게 법인격(法人格)을 부여하자는 논의도 있지만, 그 법인격에게 책임을 묻는 행위 역시 결국은 인간 이해당사자에게 책임을 되돌리는 구조로 귀결된다. 이런 점에서 AI의 판단은 결과를 산출할 수는 있지만, 책임의 주체가 되기는 어렵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시니어 개발자의 정의

동료들과 대화해 보면, 단순히 연차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시니어라 부르지는 않는다. 상황에 맞게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고, 그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감당할 수 있는 개발자, 그리고 동료들이 신뢰하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을 시니어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시니어는 보통 팀장이 되어 팀원들에게 업무를 분배하고 코드를 리뷰한다. 팀원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찾아와 현재 상황을 공유하고, 방향성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 경험이 많은 시니어는 많은 문제에 대해 적절한 해법을 제시하지만, 언제나 옳은 판단만을 내리지는 않는다. 중요한 차이는 판단의 정확성 자체가 아니라, 그 판단이 잘못되었을 때 책임을 질 수 있는지에 있다.

 

이 책임은 판단 이후에 발생하는 설명, 수습, 신뢰 회복까지 포함한다. 이 점에서 시니어의 역할은 단순히 정답을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판단의 결과가 조직에 남겼을 흔적을 끝까지 정리하는 사람에 가깝다.

 

 

AI 시니어 에이전트와 시니어 개발자: 같은 판단, 다른 책임

내가 존경하는 한 시니어 개발자에게 좋은 판단이 무엇인지 질문한 적이 있다. 그분은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만 문제가 생기도록 만드는 것이 좋은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판단의 질을 낮추자는 뜻이 아니라, 판단의 결과가 미치는 영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예를 들어, 한 온라인 서비스에서 트래픽 증가에 대비해 캐시 전략을 변경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응답 지연이 잦아 성능 개선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이다. AI 시니어 에이전트는 과거 트래픽 패턴, 장애 이력, 캐시 히트율 데이터를 분석한 뒤, 캐시 TTL을 늘리고 일부 동적 요청을 캐시 대상으로 포함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시뮬레이션 결과, 장애 가능성은 낮고 평균 응답 속도는 유의미하게 개선될 것으로 예측된다.

 

시니어 개발자 역시 같은 데이터와 설계안을 검토한 뒤,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코드 변경 범위는 제한적이고, 롤백도 가능하며, 과거에도 유사한 설정 변경이 큰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결국 AI와 시니어 개발자는 동일한 기술적 판단을 내린다. 캐시 전략을 변경해 배포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다만 시니어 개발자는 여기서 한 가지를 더 고려한다.

 

‘이 판단이 실패했을 때, 그 결과를 어디까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

 

<출처: ChatGPT 생성>

 

문제가 발생할 경우 예상되는 최대 피해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해당 문제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지, 수습을 위해 필요한 인력과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를 추가로 검토한다. 그 결과 위험이 크다고 판단되면, 작업을 연기하거나 영향을 받는 고객 범위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결정을 수정할 수 있다.

 

이 차이는 사람이 더 현명해서가 아니라, 사람은 판단의 실패로 인해 잃게 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근거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더라도, 책임이 귀속되는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행동은 달라질 수 있다. AI의 판단을 아무리 정교하게 튜닝하더라도, 그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려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AI의 판단은 결과를 산출할 수는 있지만, 그 결과로 발생하는 피해를 자기 문제로 끌어안을 수는 없다. 회사가 AI를 시니어로 고용하기 어려운 이유 역시, 판단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귀속 구조에 있다.

 

인간 사회에서는 판단의 실패가 곧 피해로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문제를 사전에 줄여야 하며,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설명하고 사과하며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 역할은 아직까지 AI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남아 있다.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AI가 점점 더 많은 판단을 대신하게 될수록, 시니어의 역할은 사라지기보다는 오히려 더 분명해진다. 다만 그 역할은 더 많은 코드를 작성하거나, 더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이 아니라, AI가 만들어낸 판단의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위치로 이동한다. 시니어의 역할은 그저 AI가 틀리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AI의 판단을 전제로, 그 판단이 실패했을 때 조직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설정하는 일에 가깝다. 무엇을 자동화할지보다, 무엇까지 자동화해도 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또한 시니어는 책임을 분산시키지 않는 역할을 맡는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AI가 그렇게 판단했다”는 말로 상황을 정리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그 판단을 승인했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사실을 설명해야 한다. 시니어는 그 설명의 주체가 되며, 판단의 맥락을 공유하고, 잘못이 있었다면 인정하고, 이후의 선택을 다시 해야 한다.

 

결국 시니어의 역할은 판단 자체보다, 판단 이후의 세계를 정리하는 일에 가깝다. AI가 만들어낸 결과를 조직과 서비스가 감당할 수 있는 형태로 연결하는 완충 지점, 그 자리에 사람이 필요하다.

 

 

결론: 시니어 개발자는 필요하다

AI는 앞으로도 더 많은 판단을 대신하고, 더 많은 업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시니어 개발자가 하던 일들 중 상당 부분도 AI가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흐름을 되돌리거나 부정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사람을 계속 채용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판단의 결과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주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판단이 실패했을 때 손실을 감당하고, 피해를 설명하고,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꽤 오랫동안 사람의 영역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AI가 만들어낸 판단을 바탕으로 최종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시니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을 자동화할지보다, 무엇까지 자동화해도 되는지를 고민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한 발 뒤로 물러서지 않고 그 선택을 내가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앞으로도 여전히 사람이 시니어로 남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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