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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기획자는 왜 나노 바나나를 쓰게 됐을까?

여행하는 기획자
7분
2시간 전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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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존재하지 않는 기술을 설명해야 할 때 이미지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 선행 연구소에서 일하다 보면 아직 세상에 출시되지도 않은 기술을 기획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잘 쓰고 있는 챗봇보다 더 나은 '다음'은 무엇일지, 그 미래의 기술이 실제로 생활에 도움이 되는 건 맞는지를 고민할 때가 많다. 

 

이럴 때 기획자에게 중요한 역량은 단순한 기술 설명이 아니라, 와닿는 시나리오와 콘셉트를 제시하는 힘이다. 문제는 그 시나리오를 말로만 주절주절 풀어내면 전달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백 마디 말보다 강렬한 한 장의 이미지가 더 뇌리에 남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기획 과정에서 텍스트보다는 이미지를 통해 커뮤니케이션하려고 한다. 

 

커뮤니케이션에 이미지만 한 게 없다는 건 알지만, 막상 레퍼런스 이미지를 찾으려 하면 한계에 부딪힌다. 검색 엔진에 있는 이미지는 대부분 '과거의 데이터'다. 내가 상상하는 미래의 장면, 아직 존재하지 않은 기술이 실현된 일상 이미지는 어디에도 없다. 텍스트로 구구절절 설명을 덧붙이다 보면 기획서만 두꺼워질 뿐. 전달력은 떨어지고 설득은 점점 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구글의 나노 바나나는 꽤 괜찮은 구원투수가 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기획자가 ‘나노 바나나’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알아보고자 한다.

 

<출처: 작가 생성>
 

어떻게 나노 바나나를 사용하는가?

나노 바나나를 가장 자주 사용하는 순간은 시나리오를 보여줄 때이다. 업무가 쏟아질수록 설득해야 하는 장면도 함께 늘어난다. 특히 하나의 핵심 기술이 모빌리티, 냉장고, 홈로봇처럼 서로 다른 제품과 서비스로 확장될 때 이 문제는 더 분명해진다. 같은 기술이라도 어떤 맥락에서 쓰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시나리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나노 바나나로 특정 상황을 묘사하거나, 해당 기술이 필요한 인물을 그려달라고 구체적으로 요청한다.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상황을 공감할 수 있도록 프롬프트를 설계한다. 

 

시나리오를 보여줘야 하니 어떤 경우에는 웹툰 형태의 직관적인 이미지가 필요하고, 어떤 경우에는 실사에 가까운 장면이 더 효과적이다. 중요한 것은 이미지의 스타일이 아니라, 이 장면이 왜 필요한지 한눈에 전달되는 것이다. 나노 바나나는 이 지점에서 설득의 속도를 분명히 앞당겨준다. 

 

왜 기술이 필요한지 공감대가 형성되면 이제부터 실제 실현된 모습을 구체적으로 기획한다. 추상적인 설명보다 "그래서 화면에서는 무엇이 어떻게 보이는가"에 집중하여 프롬프트를 설계한다. 키 화면을 생각하며 와이어 프레임이나 UI 구조를 그릴 때도 나노 바나나는 제법 유용한 역할을 한다. 완성도를 기대하여 그려내기보단 가장 빠른 속도로 형태를 끌어내는 데 목적이 있다. 초기 UI를 빠르게 도출해 보고 가능성과 방향성을 탐색하는 과정에서는 사람의 손보다 AI가 훨씬 기민하다. 물론 이 역시 초안에 가깝다. 하지만 설득을 마친 뒤 구현의 논의를 시작하기에는 충분한 출발점이 된다. 

 

와이어 프레임을 직접 그리려면 최소 30분 이상 고민을 하지만 이렇게 AI로 시작하면 훨씬 빠르게 제작이 가능하다. 불필요한 수정사항을 없애려면 매우 상세한 프롬프트 가이드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내가 최근에 사용한 와이어 프레임 프롬프트를 변형해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다. 

 

메인 홈 화면 프롬프트

마이크로 러닝 앱인 '나노 바나나'의 메인 홈 화면 와이어 프레임을 그려줘. 상단에는 '나노 바나나'라는 글자 로고와 검색창이 있고, 그 아래에는 'UX 디자인', 'AI 전략' 같은 카테고리 버튼들이 가로로 나열되어 있어. 화면 중앙에는 영상 썸네일과 제목이 들어간 카드들이 세로로 배치된 깔끔한 모바일 UI 레이아웃을 보여줘. 화이트와 그레이 톤의 미니멀한 스타일로 제작해 줘.

 

시청 화면 프롬프트

지식 공유 숏폼 앱의 상세 시청 화면 와이어 프레임을 생성해 줘. 전체 화면은 영상 영역이고, 화면 오른쪽에는 세로로 좋아요, 저장, 공유 버튼이 떠 있어. 화면 하단에는 'AI 요약'이라고 적힌 반투명한 텍스트 상자가 있고 그 안에 요약 문장들이 들어가야 해. 맨 아래에는 '상세 내용 보기'라는 큰 버튼이 있는 고충실도 와이어 프레임으로 만들어줘.

 

마이페이지 대시보드 프롬프트

사용자의 학습 통계를 보여주는 마이페이지 와이어 프레임을 설계해 줘. 상단에는 사용자 프로필과 '7일 연속 학습 중'이라는 문구가 보여야 해. 화면 중간에는 일주일간의 학습량을 나타내는 격자무늬 히트맵 차트를 넣어주고, 그 아래에는 관심 분야 비중을 보여주는 원형 차트를 배치해 줘. 전체적으로 전문적이고 신뢰감 있는 대시보드 레이아웃으로 그려줘.

 

3개의 화면에 대한 와이어 프레임을 그려줘

 

나노 바나나로 만든 와이어 프레임 <출처: 작가 생성>

 

이렇게 작성하면 위와 같은 와이어 프레임이 금세 만들어진다. 

 

<출처: 작가 생성>

 

이에 더해 나노 바나나는 단순히 UI를 그리는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개인 작업물을 넘어 타인과 공유하기 위한 디자인 컴포넌트를 정리하는 단계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초기 UI를 바탕으로 컬러, 폰트, 크기 같은 기본적인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빠르게 빠르게 설정하고, 팀이 함께 참고할 수 있는 공통의 기준을 만드는 데에도 유용하다. 완성된 디자인 시스템을 기대하기보다는 논의를 시작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만드는 데 적합하다.

 

<출처: 작가 생성>

 

서비스를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UI가 도출되면 상황을 설명하는 서비스 플로우를 그릴 때 역시 사용할 수 있다. 구체적인 인터랙션에 대한 플로우를 보여줄 수 있고 주요 기능 간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플로우도 함께 보여줄 수 있다. 

 

 

나노 바나나를 잘 사용하는 법

실무에서 잘 사용하면 시간을 급격히 줄일 수 있는 나노 바나나지만 마법의 요술램프처럼 갑자기 뚝딱 결과물이 나오는 건 아니다. 활용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계속 프롬프트를 실험하면서 최적의 프롬프트를 설계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미래 기술이나 상황을 묘사할 때는 그냥 두리뭉실한 프롬프트를 넣기보단 꼭 넣어야 하는 치트키가 있다. 바로 [상황] + [사용자 행동] + [디바이스 형태]로 작성하는 것이다. 끝에는 항상 형용사를 붙여 넣는데 '미래지향적', '홀로그래픽' 이런 문구를 넣어 선행 기술로서의 시나리오가 잘 그려지도록 프롬프트를 설계한다.

 

여러 실험을 통해 구체적인 프롬프트를 설계했다 하더라도, 100% 내가 원하는 완벽한 이미지가 나오진 않는다. 최근에 만든 이미지는 얼굴 자체는 형태를 일관성 있게 유지하면서 시나리오를 도출했지만, 손가락이 기괴하게 도출되었다. 그림 그리는 모습의 이미지를 제작했는데, 팔레트를 잡은 엄지손가락이 팔레트를 뚫고 올라온 형태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한국어 글자가 깨지는 현상 역시 매우 빈번하게 발생하는 오류다. 이런 경우 정확히 오류를 지적하면서 미세한 수정을 바로 잡아 나가야 한다.

 

  • '손가락이 어색하지 않게 해 줘.'
  • '한국어는 정확히 작성해 줘'


이런 형태로 콕 집어 다시 만드는 형태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미지 오류가 발생한다면 카메라 앵글을 바꿔 이미지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면 된다. 

 

비약적으로 좋아진 부분은?

나노 바나나를 쓰면서 좋아진 부분은 이해관계자 대부분이 동상이몽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문자로만 커뮤니케이션할 땐 미세하게 서로가 생각하는 방식들이 달랐다. 하지만 이미지는 모두 동일 선상에서 같은 눈높이로 시작하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아쉬운 부분은?

반면, 아쉬운 점은 너무 일반적인 결과물로 소통하게 된다는 점이다. AI는 기존의 데이터 중에서도 일반적인 데이터들의 조합을 가져오기 때문에 어딘가 좀 평이한 구석이 있다. 가령 로봇을 그리라고 하면 혁신적이고 특별한 로봇 대신, 어디서 많이 본듯한 좀 일반적인 로봇만 가져오는 게 좀 아쉬웠다. 

 

누군가의 데이터를 그대로 학습해 내 결과물에 반영된다는 의미는 결국 내 데이터도 사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적극적으로 나노 바나나를 업무에 도입하는 걸 꺼려지는 이유 중 하나가 보안이다. 기업의 기밀이 노출될 위험이 크기에, 조각조각 꼭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만 나노 바나나를 활용하게 된다. 

 

나노 바나나 활용 사례 <출처: 작가 생성>

 

 

이제 기획자가 할 일은 무엇인가

요즘 AI를 둘러싼 메시지는 대체로 비슷하다. "시간이 비약적으로 줄어들고 업무 생산성이 200% 올라간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온전히 맞는 말도 아니다. 나노 바나나를 하루에도 수십 번 쓰다 보니,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된다기보단 시간의 쓰임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그럴싸한 초안을 만들어주는 건 나노 바나나가 순식간에 해주니 효율성이 올라간다. 하지만 그 70점을 90점, 100점짜리 결과물로 만드는 디테일한 수정은 여전히 까다롭고 사람의 손길이 필요했다. 

 

0점에서 70점을 빠르게 채우는 역할은 분명 AI가 대체할 것이다. 그럼 나머지 30점을 채우기 위해 기획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제 기획자는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이게 왜 필요한가"를 설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림은 그림일 뿐, 이게 왜 필요한지 그 타당성이나 논리에 좀 더 집중하는 역할이 되지 않을까? 그림은 그림일 뿐이다. 이미지는 결과물이지 목적이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이미지가 어떤 맥락에서 필요했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며 왜 지금 이 형태여야 하는가에 대한 논리다. 

 

'커피를 마시는 여자'라는 이미지가 있다면 기획자의 역할은 더 멋진 커피 컵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 장면에 이야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왜 그녀는 커피를 마시고 있는지, 이 장면에서 사용자에게 어떤 감정이나 행동을 유도하는지, 앞뒤 맥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말이다. 결과 이미지를 나열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이를 단단한 이야기로 연결하는 사람. 그 힘이 앞으로의 기획자에게 더 필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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