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는 GTM의 기본 개념과 가상의 예시를 들어 보았습니다. 시장 상황을 분석해 여기에서 타깃 시장(Target Market)을 설정하고 고객군(Segment)을 도출해내, 대표적인 페르소나(Persona)를 설계해 그들의 행위를 시나리오로 상정한 다음, 이에 대응하는 제품을 만들어가는 것.
이번에는 실제로 제가 코칭한 스타트업의 사례로 알아보는 GTM을 보고, GTM을 설계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개념 SOM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제가 코칭하게 된 기업의 이름은 “루트렌”으로, 핵심 제품은 아메타민D라는 보존 성능을 가진 원료 물질을 연구·개발·생산하는 것입니다.
이 물질은 주로 화장품 등에 쓰이며, 기존에 폭넓게 사용되고 있는 “1-2헥산다이올”을 대체해 이른바 “무보존제 화장품”을 만들 수 있게 해줍니다. 여러분이 만약 이 기업의 GTM을 설계한다면, 어떤 시장을 목표로 하시겠습니까?
최초에 우리 기업이 선택했던 시나리오는, 한국콜마나 코즈맥스 같은 대형 ODM* 기업이 우리 물질의 효용을 평가해 선택하고, 이 ODM 기업을 이용하는 많은 화장품 브랜드에 “무보존제 화장품” 옵션을 제공해 선택을 유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첫 번째 단계에서부터 잘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ODM: Original Design Manufacturer(주문자 개발 생산)의 약자로, 제조업체가 제품의 기획, 설계부터 개발, 생산, 포장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고, 고객사는 이를 자사 브랜드로 판매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물론 한국콜마나 코즈맥스 같은 곳에서 우리 제품을 선택해준다면 너무 쉬운 일이겠지만, 그런 기업에서 신생 스타트업의 물질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한국콜마에서 스타일난다(3CE)의 요청을 거절하고, 당시에는 작은 생산 기업이었던 코즈맥스와 손잡았던 사례에서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죠. 실제로도 그 두 기업은 우리 회사의 요청에 별다른 응답을 해오지 않았습니다.
쉬운 길이 막힌 이 상황에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떤 시장에서, 어떤 플레이어 혹은 어떤 상황을 목표로 해야 할까요?
그래서 새롭게 제시한 GTM 시나리오는 ODM 플레이어가 아니라 소비자, 즉 최종 제품 브랜드에서부터 “무보존제”의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 가치를 소비자의 추가 지불로 증명하자고 제안했죠. 그렇게 소비자가 이 가치를 인정하고 추가 지불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레드 오션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수많은 브랜드 가운데 일부는 차별화를 위해서, 또 누군가는 수익성을 위해서라도 우리 제품인 아메타민D를 선택해주지 않을까요?
이 실험을 수행하기 위한 우리 회사의 첫 번째 제품이 생산되었습니다. 운 좋게도 어느 피부과의 PB 제품에서 먼저 우리 물질을 선택해주었고, 덕분에 비교적 수월하게 생산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1-2헥산다이올은 피부 장벽을 전제로 하는 화장품에서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진피층에 흡수됐을 때에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피부과 의약품 레벨에서는 1-2헥산다이올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이 피부과에서 우리 물질을 선택해준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 이제 우리 회사는 이 제품에 대해 두 가지 시장 접근 소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극민감성 피부에도 안전”하다는 “무보존제”에 대한 소구입니다. 우리 소비자는 벤치마크 제품 대비 “안전하다”는 이유만으로 10~15%의 추가 비용을 지불할 수 있을까요?
두 번째로 준비한 것은 더 많은 유효 성분 함량입니다. 우리 물질인 아메타민D는 1-2헥산다이올에 비해 약 20% 수준의 사용량으로도 동일하거나 더 뛰어난 보존 성능을 보여줍니다. 1-2헥산다이올은 보통 전체 용량의 3~4%가 들어간다고 알려져 있는데, 100ml 용량 기준으로 보면 아메타민D를 선택할 경우 3% 이상의 공간이 비게 되는 셈입니다. 우리는 이 공간에 유효 성분인 세라마이드, 피부 진정 효과 물질인 시카(CICA), 피부 재생에 사용되는 판테놀 등을 채워 넣었고, 그 결과 벤치마크 제품 대비 2배에서 5배 수준의 유효 성분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두 번째의 마케팅 소구는 “안전”이 아니라 “고기능성”입니다. 과연 소비자는 유효 성분이 몇 배 더 들어간 제품에 10~15%의 추가 비용을 지불해줄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실험은 준비 중입니다. (아마도 이 글이 발행될 즈음에는) 실험의 성과가 어느 정도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 기업과 우리 제품의 GTM, 그리고 가야 할 시장과 그 시장에 가는 방법은 이렇게 설계해볼 수 있다는 점을 소개해보고 싶었습니다.
GTM과 이어지는 중요한 개념으로 SOM이 있습니다.
IR 덱에서는 흔히 SOM-SAM-TAM을 설명하는 슬라이드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수많은 IR 교육이나 코칭에서 시장 규모의 중요성을 언급하게 되고, 이때 꼭 근거와 출처가 필요하다는 식의 설명을 듣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가트너라든가, 또 여러 종류의 시장조사 기관에서 언급하는 시장 규모를 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연스럽게 CAGR이 어떻다든가, 2050년에는 어떤 규모가 될 것이라든가 같은 이야기도 하게 되죠. 저 역시 창업자이던 시절, IGA 마켓 리포트를 이마케터나 스크린다이제스트에서 찾아 IR 덱에 넣으며 ‘거대한 시장’이라고 주장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게 아래 뉴스의 게임 내 광고는 제가 창업자이던 시절 삼성전자 PAVV 광고주와 함께 집행했던 광고 소재입니다. 꿈과 희망이 가득하던 그 시절….

잠시 이야기가 샜는데, 결국 이는 시장을 단계적으로 좁혀 이해하기 위한 프레임입니다. 각각 SOM(Serviceable and Obtainable Market, 수익 시장), SAM(Serviceable and Addressable Market, 유효 시장), TAM(Total Addressable Market, 전체 시장)으로 시장 규모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접근법입니다.
TAM은 우리 제품이 이론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전체 시장 규모를 의미하며, SAM은 그중에서도 현재의 제품과 비즈니스 모델로 실제 공략이 가능한 시장입니다. SOM은 SAM 가운데에서 지금의 자원과 실행력으로 단기간에 확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 시장을 뜻합니다. 굳이 시장을 따로 구분하는 이유는 시장을 크게 보이게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서부터 실제 고객을 확보할 것인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전략과 실행은 언제나 SOM에서 시작됩니다.
이런 류의 전망의 유효성에 대해 투자자나 VC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한때 시장을 선도했던 3D TV 시장 규모에 대한 전망으로 한번 상상해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과연 2014년에 3D TV의 호황이 왔었던가요?
물론 투자자 입장에서 시장의 규모는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시장의 규모가 크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료용 지혈제를 개발하면서 전체 의약품 시장을 TAM으로 제시한다거나, 시장조사 기관이 내놓은 무작정 낙관적인 수치를 가지고 우리 미래가 밝고 희망차다고 주장하는 것으로는 투자자뿐만 아니라 창업자 본인조차 설득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SAM은 TAM의 20%로 가정하고, SOM은 SAM의 10%로 가정해, 결과적으로 SOM이 TAM의 2%라고 주장해버리고 나면, 이제 GTM과는 영영 돌아오기 힘든 갈래길로 나뉘어버린 셈이기도 합니다. 아래 이미지의 예시로 설명해보자면, 전체 반려동물 가구의 2%를 SOM으로 규정했을 때, 그 2%에게 시장 침투 혹은 접근을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요?

SOM에서 중요한 것은 획득 가능성(Obtainable)입니다. 즉, 획득 가능한 시장의 특징과 성격을 갖고 있어야 하기에 SOM은 어느 정도 공통점을 가진 규정 가능한 동질성 집단이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전체 시장의 2%라고만 규정했을 때, 과연 그 2%는 어떤 동질성을 가지게 될까요?
그래서 SOM의 시장 규모는 동질성에서부터 역순으로 설계해 가져와야 합니다. 예를 들면 반려견주이면서 다견 견주인지 단견 견주인지, 2인 가구인지 3~4인 가구인지를 정의한다거나, 출근할 때 반려견을 유치원에 맡기는지 집에 혼자 두는지와 같은 여러 조건을 기준으로 동질성을 가진 그룹을 먼저 정의합니다. 그중에서 “우리 제품이 가장 가치를 잘 제공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룹을 선택했을 때, 그 규모가 얼마라고 추정이 된다”와 같은 방식이어야 합니다.
마찬가지 TAM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
제가 2020년에 만났던 여성 창업팀 기업인 3J는 여성들이 성병 검사를 하기 위해 산부인과를 방문하는 데 높은 심리적 허들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 검사 키트를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방식을 시도했습니다.

당시 시장조사 리포트에서 대한민국의 성병 검사 시장 규모는 100억 원 수준이었지만, 그렇다고 TAM이 100억 원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경우 TAM은 위의 예시 이미지와 유사한 방식으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인구 가운데 타깃 여성의 규모와 WHO가 권고하는 연간 검사 횟수를 정의하면, 우리가 목표로 삼을 TAM을 보다 현실적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다시 목표 고객군(Target Segment)을 규정해가며 SOM을 명확하게 설계해나간다면 투자자에게도, 그리고 창업팀 본인에게도 훨씬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Go-To-Market 전략의 본질은 “얼마나 큰 시장을 꿈꾸는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실제로 점유할 수 있는 시장을 얼마나 정확히 정의하고, 그 시장을 뚫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SOM은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제품의 가장 이상적인 고객을 형상화하고, 그 고객 세그먼트를 전제로 가치를 전달해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GTM 전략과 가장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SOM을 기준으로 GTM을 설계한다는 것은 단순히 타깃 시장의 크기를 줄인다는 의미가 아닐 것입니다. 고객 세그먼트, 핵심 문제, 메시지, 채널, 세일즈 방식까지 모든 실행 요소를 하나의 현실적인 전제 위에 정렬하는 작업을 의미해야 합니다.
SOM이 분명해지면, 마찬가지로 GTM도 분명해집니다. 모든 고객에게 통하는 가치를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고객군이 반드시 반응할 하나의 문제 정의가 드러나고, 마케팅 메시지는 브랜드 스토리가 아니라 구매를 촉발하는 문장으로 만들어 지겠죠. 또한 유통 채널과 세일즈 전략에서도 역시 “가장 효율적인 채널은 무엇인가” 찾는 일에서 시작하지 않고 “이 고객은 실제로 어디에서 우리를 발견해 어떤 방식으로 설득되어 구매하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고객 여정과 시나리오를 다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이야말로 GTM 전략을 문서에 들은 계획이 아니라 검증할 수 있는 행동으로 만들어줍니다. SOM을 직접 겨냥한 GTM으로 작은 성공을 빠르게 만들고, 그 성공을 반복 패턴으로 바꿔야 시장 확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GTM 전략의 완성은 시장 진입을 말하는 순간이 아니라 선명한 SOM 안에서 첫 번째 고객을 확보하고 그 과정이 재현될 것이라는 확신을 얻는 순간에 이뤄집니다. 결국 시장을 크게 설명하는 전략보다, 지금 이 시장에서 실제로 이길 수 있는 전략이 GTM입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SOM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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