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PyCon Korea 2025에서 진행된 <"네? 파이썬을요? 제가요?" 부제: 우당탕탕 개발자로 성장하기(진행중)> 세션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비전공자로서 어떻게 파이썬으로 개발을 하게 되었는지, 발표자의 솔직한 경험담을 공유합니다. 발표 자료는 PyCon Korea 2025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추후 파이콘 한국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영상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네? 파이썬을요? 제가요? 우당탕탕 개발자로 성장하기 (진행중)
노아(Noa) 개발자
안녕하세요. 2025년 8월, ‘Weave with Python’이라는 주제로 PyCon Korea 2025가 개최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세션 발표를 할 기회가 주어졌고, 덕분에 현재진행형인 저의 성장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 개발을 시작하거나, 직종을 개발로 바꾸는 데 망설이는 분들에게 비전공자의 성장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세션 발표 후 질의응답 시간에 궁금해하셨던 부분들에 대해 조금 더 공유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노아(Noa)라는 이름으로 몇몇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익숙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본명으로 알고 계신 분들도 계시는데, 잘 어울린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기분 좋습니다. 오래전부터 노동요로 즐겨 듣는 음악들이 있습니다. 라디오헤드(Radiohead), 린킨파크(Linkin Park), 못(MOT)이라는 밴드의 음악과 영화 듄(Dune)의 OST를 주로 듣습니다. 최근에는 클래식을 더 많이 듣는 것 같아요. 의외로 졸리지 않고 좋습니다.
네, 저는 비전공자입니다. 개발과는 무관한 외국어 전공에 역시나 개발과는 무관한 일만 해왔습니다. 어쩌다 개발 공부를 시작하게 되어 첫 번째 회사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웹 개발을 주로 하다가, AI 부서에서 파이썬을 사용해 업무를 하는 경험도 해보았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통해 무언가 새로 시작함에 앞서 주저하고 계신 분들과 용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것을 마주할 때, ‘저 사람은 이렇게 했네, 나라면 이렇게 했을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도 해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남의 이야기라서 생각보다 더 재미있을 수도 있죠.

목차의 제목들이 흥미로우면서도 조금은 곤란해 보입니다. 개발을 시작한 이래로 저의 의식의 흐름을 크게 나누어, 목차로 표현해 봤습니다. 그럼 차례차례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꺾여도 그냥 하는 사람”. 이 말은 저 자체를 표현하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유행하던 말은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이런 것이었죠. 생각해 보면 사람의 마음이 전혀 꺾이지 않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꺾인다는 것은 상처받고, 힘들어하고, 좌절하고, 실패하고 등등 여러 가지가 있을텐데요. 일이나 주변 상황으로 인한 마음의 꺾임과 관계나, 내면의 이유로 인한 마음의 꺾임은 누구나 겪으며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살면서 단 한 번도 꺾이지 않은 분이 있다면, 축하드립니다. 조금은 부럽습니다.
저는 개발자로서 첫걸음을 내딛은 상황, 처음 팀원으로 참여한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인데, 당신은 너무 자주 꺾인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신입이던 저는 가이드 없이 업무가 떨어지면 순간 난감해하는 것이 첫 번째 반응이었습니다. 지시 사항이나 해야 할 작업에 대해 분석하고, 분석한 것을 기반으로 어떻게 만들어 갈지 생각하고, 내가 아는 선에서 설계하고 적용해 본 다음에 도저히 안 되는 부분은 물어보면 되는데 말이죠. 당시에는 연결이 잘 안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렵다”라거나, “못 하겠다”거나 심지어는 “어떻게 하죠..?”라고 약간 습관처럼 했던 말들 때문에 제가 너무 자주 꺾인다는 그 말이 나온 것 같습니다.
물론 당시 분위기가 크게 험악하지는 않았고, 그 말을 한 당사자도 장난처럼 말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다 “그게 뭐? 꺾이는 게 뭐 어때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초반에 당황하고 “어떡하지..?” 하다가도 결국 숨을 고르고 다시 찬찬히 생각하며, 어느새 코드를 작성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었거든요. 이후에 언젠가 다시 “당신은 너무 자주 꺾여.”라는 말을 들었을 때, “꺾여도 그냥 하는 게 중요한 것 아닐까요?”라고 답한 기억이 납니다.
앞서 노동요로 즐겨 듣는다고 했던 밴드인 라디오헤드(Radiohead)와 린킨파크(Linkin Park)에게서 배우는 점이 있습니다. 그들의 삶과 음악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꺾여도 그냥 하는 사람들이었거든요. 밴드의 삶을 여기에서 길게 늘어놓을 수는 없으니 굳이 나열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들의 음악을 듣다 보면 음악에 그들이 의도를 넣었든 아니든 어떤 치유가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꺾여도 흔들리지 않고, 아니, 꺾이고 흔들리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그냥 하는 태도가 어떤 것을 하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는 태어나면서부터 “Hello World!” 했을까요? 사람마다 성장 속도와 성장 방향과 범위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수치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제가 개발자가 될 것이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언어학자를 꿈꾸던 때가 있었고 화가를 꿈꾸던 때가 있었으니까요. 디지털과 저는 관계가 없는 것 아닐까 부러 멀리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먹고 살기 위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하던, 한 단어로 축약해 비전공자입니다. 우리나라의 사회 통념상 “몇 살에는 뭐 해야지~ 그 다음에는 뭐 해야지~” 하는 것이 의무처럼 작용하는 분위기가 별로라고 생각했고, 여전히 별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위기가 사람들을 더 위축시키는 것일지도 모르죠. 어쨌거나 저는 다음 먹고살 거리를 찾기 위해, 온라인 오프라인을 불문하고 서칭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아버지의 삶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전에 들었던, 그리고 현재 보여지는 아버지의 상황들이 보였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70대이십니다. 아버지께서 20대였을 때 코볼(COBOL) 독학을 시작으로 개발을 접하셨고 인사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셨다 하셨어요.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의 시작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셨죠. 아버지는 여전히 개발 관련 서적을 탐독하시고, 이것저것 만들어보십니다. 말 그대로 재미있어서, 즐겁게 개발하시는 분이시죠. 직업은 농부지만요. 얼마 전 통화 중에도 “아빠는 제미나이(Gemini)가 괜찮던데, 넌 코딩할 때 뭐 쓰냐?”고 하셨습니다. 개발 관련 참고 자료 좀 보내달라 하셔서 프론트엔드, 백엔드, 인프라, AI 등등 많은데 어떤 것을 원하시냐고 여쭈었더니 뭐라고 대답하셨을까요?
아버지는 “모든 것”이라고 간략하게 답하셨죠. 정말 최근에 나눈 대화지만, 아버지가 새로운 걸 받아들이시는 한결같던 태도가 저의 결정에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아버지를 보니 개발이야말로 20대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흥미를 가지고 ‘늘 새롭게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라는 알 수 없는 확신이 들었죠. 그래서 서칭의 여정을 달리며 개발자분들을 찾아 메시지를 보내고, 커피챗을 신청했습니다. 그렇게 친해진 주변 개발자분들에게 “지금껏 본 신입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몇 살이었나요?”라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웹상에서 어떤 분의 어머니께서 50대에 독일의 아우스빌둥(Ausbildung)의 웹 개발 관련 과정을 이수하고, 신입으로 입사하여 행복한 일상을 보내신다는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것이 촉매제가 되어 그때부터 국비지원 교육기관을 찾아 수업을 듣기 시작했죠. 언젠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개발자 친구가 “언니, 개발 한 번 해보는 거 어때요?”라고 했던 것이 다시 떠올라, 그 친구에게 연락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정보를 취합해 비교한 후 등록했습니다.
물론 6개월의 교육기간 동안 배운 것으로, 전공자들이 학교에서 4년 혹은 그 이상 학습한 지식에 견줄 바는 아니겠지만, 확실한 것은 즐거움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모호하게 말로 주어진 프로세스를 코드로 구현하고, 화면상에서 구체적으로 동작하게 한다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육 기간이 한 달쯤 남았을 때부터는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딱 열 군데씩만 보내자! 하고 돌렸던 것 같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학원에서 모의 면접이라는 것을 진행했습니다. 여러 기술적인 문답이 오갔고, 며칠 뒤 따로 한 번 더 면접을 보자고 학원을 통해 연락이 왔고요. 기뻤던 마음이 “다른 부분은 다 좋은데 나이가 핸디캡이네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와장창 깨져버렸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어쨌거나 2차 면접까지는 통과할 수 있겠구나 싶은 마음에 더 열심히 이력서를 돌렸습니다. 나이가 핸디캡이라고 한 회사에서 입사 제안이 왔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이력서를 넣었던 다른 회사에서 면접 제안이 왔고, 입사를 제안받았습니다. 최종적으로 저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입사 후 2주 정도 사내 프레임워크에 대한 교육을 받고 여러 프로젝트에 깍두기로 참여했습니다. 실전 프로젝트에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다는 것에 에너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고양이손에 비유될지라도 말이죠. 그러다 정식으로 첫 프로젝트에 팀원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여러모로 굉장히 힘들었는데 처음 합류한 프로젝트라 더 압박감이 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힘들어도 뭐 어때 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 시기가 “당신은 너무 자주 꺾인다.”라는 말을 들었던 시기였네요. 힘든 만큼 배운 것도 많았고,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전반적인 흐름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첫 번째 프로젝트가 끝나고 한숨 돌리나 했습니다. 이제 팀원으로서, 신입 개발자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사장님이 “프로젝트 하나 맡아서 해봐야지?”라고 하셨습니다. 마치 제가 이제 1년 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계신 것처럼요. 난감했습니다. 겁이 덜컥 났죠. 첫 번째 참여했던 프로젝트 팀의 리더는 제가 아직 그 정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걱정되는 마음이었을 거예요. 무언가를 맡아서 한다는 것에는 그만큼의 책임도 따르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제 막 1년을 채웠는데, 개발 실력 향상에 더 집중해야 할 시기가 맞기는 합니다.
물론 저도 걱정이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프로젝트를 맡아서 한다는 것에는 PM의 역할, PL의 역할도 다 해내야 했기 때문이죠. 고객과 소통하고, 소통한 내용을 바탕으로 업무 프로세스를 잡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고객과 확정을 짓고, 그것을 바탕으로 업무 분배를 하는 등 실로 모든 것을 다 해야 하는 포지션이니까요. 한참 걱정을 하다가 문득 “언젠가는 하게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모르면 물어가며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조건을 붙였죠. 저에게 조언자를 하나 붙여주시면 해보겠다고.
협의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부터 클라우드 서버에 WEB, WAS, DB 설치와 설정까지 상급자들에게, 고객사와 연결된 업체들에게도 물어가며 협의도 하고, 환경 세팅도 하고, 부사수 케어도 해보았습니다. 부사수였던 분은 현재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운이 좋았다고도 생각해요.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그렇게 1차 개발을 완료했고, 중간발표와 결과 발표까지 하게 됐습니다. 결과 발표 후 고객사에서 2차 프로젝트도 함께하고 싶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무언가를 더 해보고 싶어서 이 시기에 사내 스터디를 개설했습니다. 서로 의견을 나누며 즐겁게 일하는 문화를 조성해 보고 싶었죠. 다행히 참여해 주신 분들 모두 이러한 모토에 공감하여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상황은 계속해서 변하기 마련입니다. 갈 사람이 없던 기관 유지보수에 자원해서 가게 되었습니다. 거리가 비교적 가깝기도 했고, 그 기관의 주변 환경 자체를 좋아해서 조금 신났었습니다. 마음의 휴식을 위한 시간이 왔다고 즐거워했죠. 신입 때 팀원으로 참여했던 프로젝트가 이 기관의 몇몇 시스템 구축이었기 때문에, 알고 있는 시스템이니 괜찮겠지 하고 가볍게 생각했던 저 자신을 원망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라고들 하죠.
그림을 그릴 때도 이젤에 종이를 걸어 놓고 종이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리다가 한 번씩 일어나서 멀리 뒤로 가서 보면 수정할 부분이 보이기도 합니다. 개발 당시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다시 보이는 계기가 된 것이죠. 요청을 받고 코드를 확인하면 도대체 누가 한 것인가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나였습니다. 초기에 시스템 구축 때 “나중에 유지보수에서 해결해 주세요.” 하고 마음속으로 외쳤던 것을 결국에는 스스로 고치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지금의 나는 다르게 생각하는구나. 시야가 조금 넓어진 느낌이랄까요?
대략 다섯 개 정도의 시스템을 구축했었는데, 수정이 끝이 없었습니다. 마침 기관에서는 신규 사업도 진행하고 있어서 덕지덕지 붙어 있는 코드들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내선 전화기에서도, 키보드에서도 불이 난 것 같았죠.
기관 담당자에게, 기관과 신규 사업을 진행하는 타 업체 담당자들에게, 본사의 닦달에 치이느라 동네 북이 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꺾여도 그냥 하는 사람입니다. 결국 유지보수 기간이 끝나던 마지막 날에는 기관 담당자분들이 헤어지기 아쉽다고 하시며, 함께 식사 요청도 해주셨고요. 외근 기간 동안 100%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여러모로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유지보수 기간이 끝나고 본사로 복귀하기 약 5주 전, 사내 스터디 멤버였던 동료에게 AI팀을 신설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침 슬슬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때였습니다. 동시에 기관의 유지보수를 담당하던 업체에서는 저에게 이직 제안을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이 들면 새로운 것을 하지는 못한다. 여기는 업체가 바뀌어도 웬만하면 기존 인원들을 이어서 고용하니 평생 직장이나 다름없지 않나. 잘 생각해봐라.” 나이를 넘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해 왔던 만큼 ‘나이’라는 단어가 저에게는 어떤 버튼이랄까요? 그런 것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응? 그렇게 생각하시나? 그럼 그거 내가 깨드리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것, 왜 못하나요? 아버지는 이미 70대를 넘기셨는데도 Gemini와 Claude Code로 바이브 코딩도 하시면서 굉장히 즐거워하신다구요. 그래서 신설된다는 AI팀의 팀장에게 저도 끼워 달라고 했습니다. 임원진과의 미팅 때도 신설 팀에 끼워 달라고 졸랐죠. 그 패기를 보신 건지, 웃기다고 생각하신 건지, 승락해 주셔서 팀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파이썬으로 실무를 하는 것? 물론 처음이었습니다. 어느새 긴장감이 저를 감싸더군요. 이미 어느 정도 진행 중이던 데모 프로젝트 개발 코드를 분석하고, 제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것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이미 구축 중이던 RAG 시스템에 대한 평가 모듈을 구현해 보았습니다. 물론 공부해 가면서 했습니다. AutoRAG 라이브러리나, RAGAS 등 이미 존재하는 것들이 있었지만, 작은 무언가라도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것이죠.
파이썬 실무는 처음이지만 하다 보니 뭔가... 꼴보기 싫지가 않더라고요. 책도 사고, 강의도 보고, 어쩐지 의욕이 생겼습니다. 새로운 것이라 그런 것일까요? 재미있으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쩐지 def로 시작하는 파이썬의 함수 선언 방식이나, 코드 자체가 귀엽게 느껴졌습니다. 뭐든 그렇지만, 귀여우면 끝 아닐까요?

파이썬으로 이런저런 작업들을 해보고 있었지만, ML은 또 새로운 느낌이더군요. 굉장히 넓고 깊은 바다를 단순하게 낙서처럼 그린 지도를 들고 항해하는 기분입니다. 가볍게 접근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공부하며 한 땀 한 땀 해보고 있었습니다.
어쩌다 좋은 기회로 한 연구기관과 ML을 활용한 연구를 진행해 보았습니다. 제안서도 써보고, 발표도 해봤죠. “나는 주니어인데… 왜…”라는 생각, 물론 들었지만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할 수 있으면 하는 거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더 많이 어렵고 매 순간 압도됐습니다. 공부할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싶지만, 어쨌거나 실적이 중요한 것이 현실입니다. 여러 가지를 혼자 하려다 보니 초반에 잡았던 설계대로 흘러가지 못했고, 약간 샛길로 새버린 상태가 되었습니다. 심리적 압박도 크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처음인 상태인데 짧은 기간 안에 모든 것을 완벽히 해내야 했던 것이죠. 스스로 느낀 압박감일 수도 있었겠지만요. 그러다 마지막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지만, ML을 위해 데이터를 다뤄보고, ML에 대한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큽니다.

여러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만난 분들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개발 공부를 시작한 것도, 새로운 기술을 접하는 것에 겁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파이콘에 발표를 하겠다고 덥썩 신청서를 보낸 것도, 모두 개발자 커뮤니티의 ‘배워서 남 주는’ 문화에서 오는 응원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사실 다들 나아가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지 않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도 “잘하고 싶다”와 “건강을 위해 진정해”의 줄타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션 발표 때 한 분이 그런 질문을 하셨어요. 제가 정확히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몰입의 시간과 휴식 시간을 어떻게 분배하냐는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면 원래 세웠던 루트에서 보완하려다 보니 자꾸 옆길로 새게 되고, 양이 늘어나니 체력 관리도 안 되고, 쉬는 시간마저 “이건 노는 거야!”라고 합리화하며 무리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시간을 정해 놓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과 디지털 기기는 쳐다도 안 보는 시간을 철저하게 분리하려고 노력합니다. 100% 철저하게 지켜지지는 않지만, 컴퓨터 앞에서 몰입하는 시간 외에는 산책도 하고, 가벼운 조깅도 하고, 고양이들을 쓰다듬기도 하면서 몰입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하고는 해요.
그렇게 요즘은 균형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건강히 살아 있어야 재미난 것들을 오래오래 할 수 있으니까요. 개발자는 허리 싸움이라는 말도 어디에서 봤는데, 저도 그렇고 다른 모든 개발자 친구들도 모두 건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결국은 꾸준히 즐겁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조율하는 것에 신경 쓰자고 다시금 다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크거나 작은 꺾임, 무너짐, 상처를 성장의 거름으로 여기고 재정비 후 다시 앞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해왔습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은 어디에든 존재하고, 내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는 배울 것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튼튼해져 있죠. 그러니까 어떤 이유로든 지금 힘들다 하더라도 일어나서 다시 하다 보면, 지나고 보면 꺾인 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요.
저의 다음 여정은 어떻게 될까요? 분명한 것은 느리더라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이번 파이콘 2025 세션 발표를 통해 성장기를 전하고, “시작”을 주저하는 사람이 있다면 감히 용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의 걸음이 누군가에게는 시작을 응원하는 작은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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